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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2021년 만재도의 볼락낚시 1.

by 찌매듭 2021. 6. 26.

 

해가 바뀌면서 무척이나 바다가 보고 싶었지만 어딘가로 나서려고만 하면

번번이 가로막는 일들이 생겼다.

 

지난해에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만재도로 감성돔 낚시를 다녀온 이후로는

정말, 깊은 겨울이 되고부터는 어디로 나서볼 생각을 못했다.

 

천방지축, 날뛸 때에는 날씨가 어지간하기만 해도 움직여보았는데 이제는 점점,

바다가 무서워지는 건지, 두려워진 다기 보다는 어려워 졌다는 쪽이 맞는 것 같다…….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다 보니 방안에 들어 앉아있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고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어디에서 빨간 새우를 취급한다는 문구가 눈에 띄어

주문해 본 것이 왔는데, 미끼로 쓰기에도 적당한 크기다싶어 마나님보다 빠르게

손을 놀려서 한 줌을 덜어내어 설탕, 소금 절임을 해놨는데 써볼 기회가 언젠가는 오겠지?!

 

쉴 새 없이 낚시를 다니는 후배와 시간이 맞아 가자미낚시를 다녀오게 되었기에

동해의 공현진항 구경을 하게 되었고 동해의 깊고 검푸른 물은 언뜻 보면

수면이 눈높이 위로 올라가 있는 착각이 들기도 하는데 시원하다기보다는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것이 남쪽의 쪽빛물색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가자미는 반찬감으로 손색이 없기에 마나님의 앙코르가 있어 한 번 더 거진쪽으로 다녀왔고,

대구도 낚아보려고 벼르기만 하다가 어느 사이에 3월이 가고, 4월도 지나가 버렸다.

 

동해의 장호 항에서 진달래 감생 이를 낚겠다고 가본 것이 벌써 이십년 전이다.

배를 타고 어딘가로 달려가 보니 먼저 도착한 배들이 두어척 있었지만

낚시들을 안 하고 뱃전을 짚고 서있기에 아직 시간이 안되었을까 했는데

먼저 도착한 배에 탄 꾼들이 낚시를 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잠시 후에 알게 되었다…….

 

닻을 내리고 자리를 잡자마자 거인이 배를 쥐고 흔드는 느낌에

아차, 이게 아니구나싶었고 일행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배를 돌려야겠다고 선장에게 말하니 그때까지는 멀쩡한 듯한 후배가 불만을 토했다......

아니, 형님,,,, 배를 돌리자니욧?! 아직, 밑밥도 한번, 넣지 못했……. 우웩~~~~~!!!!!”

 

나까지 속이 이상해지기 시작했고 선장에게 오늘은 은근히 파도가 높아서

낚시가 어렵겠으니 선비 반을 내겠다고 하니 두말없이 항으로 배를 돌렸고

다른 배들도 곧, 따라오는 것이 보였는데 진달래 감생 이를 낚으려다가 뱃속을 딸 뻔 한 날이었다.

 

돌아와서 밑밥 통에 가득 담긴 밑밥을 그대로 얼음가게의 냉동 창고에 몰아넣고는

사나흘 후에 좋은 날이 있기에 다시 가보게 되었는데 크릴이 형태도 없이 삭아져

뻘건 밑밥 죽으로 변한 샤베트는 별로 효과가 없는듯했다…….

 

배의 높은 곳에 올라가 어딘가를 보고 있던 선장이 고기떼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인다며 중계를 했고 그때부터 집중을 하면 곧 입질과 함께

크고 작은 마릿수의 감성돔들을 낚아 올리게 되었는데 배를 육지 쪽으로 가까이 붙여서 하는

이상스런 낚시를 몇 번 하게 되었지만 곧 소문이 나면서 아수라장이 되고부터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공현진항에 처갓집이 있기에 해마다 12월초에는 끈을 달아서 던져 넣는

통발 두어 개로 도루묵 줍기 행사를 한다는 지인(知人)의 소개로 가보곤,

거저먹기식의 반찬장만이 연례행사가 되기도 했는데 어느 해에는 일찍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고는 속초의 해수사우나로 가서 몸을 녹이다가 이른 새벽에 와야겠다고

방파제를 돌아 나오는데 동내 사람 하나가, 전날 던져둔 통발을 건져 나오는 것을 본

뒷모습만은 예뻐 보이는 아줌마가 탄성을 올리면서 싱싱한 도루묵을 좀 사고 싶다고 하니

이깟걸, 어찌 돈을 받겠는가? 며 한 양푼 퍼주는 것을 보았기에, 나도 좀, 얻자고 하니

아래위로 훑어보는 폼이 남녀차별을 하려는 것 같았는데 마지못해 반 양푼쯤 퍼주고는

건너편의 어선들이 작업하는 곳에 가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기에 그쪽까지 둘러보게 되었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상품크기로만 골라서 수협에서 수매하여 냉동고에 보관을 했다가

소비시기에 맞추어 출하를 한다했고 상처가 났거나 크고 작은 것들은 값이 없기에

버려야 하니 할머니들이 가져다가 철조망 꼭지에 꽂아 놓고 적당히 마르면 거둬들이고

잊으면 내버린다는 그야말로 도루묵이었다.

 

기웃거리는 모습을 본 선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매운탕 거리를 찾는 가고 묻더니

큰 드럼통 안에 담긴 마구잡이 도루묵들을 턱 끝으로 가리키면서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하기에 욕심껏 퍼 담아 차에 싣고는 담배 몇 갑을 사다주었는데

먼 바다로 싣고 나가서 쏟아 버리는 품이라도 덜어 주었는가 모르겠다.

 

아는 집마다 도루묵 한 바구니씩을 내려 주고 한 쿨러 꺼리만 가져와서는

추운 옥상에서 손질씨름을 하다가 재채기와 콧물범벅이 되다보니

다음부터는 사먹는 것이 싸고 편하겠다고 마나님이 잔소리를 하기에

젊어서는 천하에 못된 짓만 하다가 어느 교회 장로가 되었다는 늦게 철이든

친구 놈에게 방법과 장소를 알려주니 같은 교회 신도들을 몰고 다니면서

연례행사를 하는 눈치였다.

 

지난 해, 만재도에서 만났던 창호가 자리를 양보해주어 손맛을 본 감사의 표시로 조기를 한짝 보냈나본데

옥상에서 손질하며 시간을 보냈지만고 한 달에 두 번은 물 구경을 해야 섭섭하지가 않을 텐데, 3월 달은

물비린내도 못 맡아봤고 4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자 초조해지는 느낌이었다.

 

초여름 같은 더운 날이 며칠 이어지고 비소식이 들리면서 다시 기온이 내려가기 전에

강원도 산길을 달려서 쏘가리낚시라도 다녀와 보려고 급히 짐을 꾸려 집을 나섰는데

작년에는 왜? 쏘가리 낚시를 건너뛰었을까?!

나름, 근신의 시간을 갖겠다고 생각을 했었기에 만재도의 여름철도 건너뛰었었다…….

 

너무도 익숙한 강원도의 산길과 물길을 따라서 쏘가리 몇 마리와 얼 만큼의 산나물도 뜯었지만

점점 단속의 강도가 높아진다는 현수막이 내걸렸기에 전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승용차로는 갈수가 없는 곳에서 사람의 손길도 타보지 못하고 쇠어버릴 두릅을

한소쿠리 꺾어든 것이 큰 수확이었다.

 

 

4월의 물 구경을 이것으로 대신하고 5월부터는 제대로 된 물 구경을 해야 할 텐데

장마철보다 더 잦은 비 내림으로 좀처럼 날 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한가하게 보였는지 꼬맹이 하교길도 부탁을 받았고 텃밭을 오가며 금년 농사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씨앗도 구해봤다.

기상예보 상으로는 5월에 비온 날이 19일이나 됐다니 장마가 봄철로 당겨진 건지.......

 

 

5월 하순경에 갈칫배 선장을 했던 사람이 작은 어선을 한척 장만하였기에 철이른 한치가

많이 낚이니 시간을 내서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근두운을 이용하여 낯익은 항구에 도착하여 10분 거리를 나아가 풍을 놓자마자

뒤에 있는 손님이 한치를 두어 마리 낚아 올렸기에 횟감을 장만했다며 손짓을 했고

종이컵에 담긴 내용물도 함께 들이켰지만 맹물 같은 것이 요즘 이슬은 알콜 돗수가 제로인 것도 있는가보다…….

 

선장까지 네 명의 인원이었기에 3.5톤의 작은 배라지만 두 대를 펼쳐 놓은 거리를 오가려니

번거로워서 한곳만을 집중하게 되었고 예년보다 이른 한치 구경에 시간을 잊고 있었는데

갑작이 기온이 내려갔는지 입질이 뚝, 끊기었고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만 들어가자고 수작을 걸어오기에 많은 양의 비가 있을 거란 예보를 보았기에

채비를 걷고 말았다.

 

항에 들어온 시간이 새벽 1, 근처의 사우나는 문도 열지를 않았다.

뒤에서 낚시를 하던 손님의 숙소에서 잠시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울산에서 왔다는 손님이 연간 계약을 했다는 투 룸 형태의 숙소는 보증금 오백만원에

연간 월세가 사백만원이라 했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매일같이 낚싯배를 타고나가

낚은 고기는 집에 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남는 고기는 선장이 팔아 온다면서

낚시꾼의 로망 섞인 끝없는 낚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다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서른 마리 가량의 한치로 또 이렇게 물 구경은 한 셈이었지만 시원하게 가슴이 뚫리는

제대로 된 낚시는 언제쯤 할 수 있을까?!

본격적인 갈치시즌 전에 추자도 골창에서 마릿수 조과가 보장되는 볼락낚시를 몇 번 하겠다는

대물호 선장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험한 날씨의 연속으로 두 번 만에 종료한다고 했기에

짐 가방만 꾸리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아직 만재도의 낚시시즌은 이르지만 물색만 어지간하다면 볼락낚시는 가능할 것 같기에

그물에 걸려드는 열기의 수확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다가 가거도의 볼락낚시에서

돌돔과 농어가 한두 마리씩 섞여 낚인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만재도의 작은 아저씨에게

물색이며 수온이 어떠한지 알아보니 어서 와서 볼락을 많이 잡아가라며 바람을 불어 넣기에

볼락만을 낚아보기로 하고 짐 꾸리기를 시작했지만 욕심이 새나오는지 농어도 곁들여 보려고

4호찌, 5호찌에 굵은 목줄과 바늘까지 챙겨 넣다보니 간단해야할 볼락 낚시 짐이 점점 늘어났다.

 

6월 초순의 조금물때를 맞추어 날을 잡으려고 했지만 비소식과 파고가 높아질 예보를 보고는

며칠 앞당겨서 5월의 마지막 날에 집을 나서게 되었는데 새로운 배편인 오후 세시 배를 타려면

아침 일찍 나서야하니 만재 도를 처음 가보는 느낌이다.

 

목포의 낚시점에 전화를 하니 생미끼가 없다는 대답에 당황스러워졌다…….

마침 노 선장의 아들인 경록이가 목포에 나와 있다는 연락이 있었기에

생미끼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고 여러 곳을 뒤져서 한 박스가 있는 것을

통째로 구해놨으니 걱정 말라는 연락이 왔다.

 

목포에 도착하여 경록이에게서 생미끼를 건네받았고, 삼계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시원한 커피도 한잔 들이키게 되었는데, 커피를 즐기지는 않지만

뜨거워야할 오늘밤을 위하여 두 잔이면 잠을 멀리 쫓아줄 성분의 약수를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동절기보다 30분이 늦춰진 출발시간과 세 번째 바뀌었다는 여객선은 전번 것보다는

크기가 작기는 하지만 가거도와 만재도민에게는 넉넉한 크기였다.

 

매표소 앞에 서있는 낯익은 모습의 만재도 할머니들은 백신 접종차 목포에 나왔다

돌아가는 중이라 했고 대부분, 가거도로 가는 낚시꾼이었고 만재 도는 단 세 명뿐이었다.

 

 

3시간이 채 안 걸려서 이제는 만재도가 아닌, 만재 항에 도착한 여객선이 조심스레

접안을 시도했고 손수레를 갖고 미리 나와 있던 작은 아저씨가 손을 번쩍 들었다.

 

매일 같이 카톡으로 볼거리와 온갖 소식을 주고받다보니 어제도 만나 본 듯하니

손도 잡지 않았지만 낚시나 와야 얼굴을 볼 수 있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서 씨 아저씨보다 몇 배나 친근한 것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서 씨 아저씨는 카톡도 멀리하는 자연인이다 보니 지난번 겨울철에 봤으니 이번 여름에나

만재도 에서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상으로는 바로 갯바위로 가야하는데 상할 것이 몇 가지 있기에 집에 올라가서

간단하게 정리를 하곤 청갯지렁이 1kg을 종이 상자 두개로 나누어 담아 받았었기에

500그램이나 가지고 나가게 되었다.......

 

라면 한 봉지와 저녁 도시락, 시원한 음료수 등이 담긴 작은 쿨러 주머니를 들고

서둘러 배터로 내려가니 작은 아저씨가 밑밥을 몇 덩이나 내줄까 며 박스를 뜯고 있었기에

세 덩이의 크릴과 큰 얼음물병 두개를 대형 쿨러백에 쑤셔 넣고 시계를 보니

오후 여섯시가 넘어가고 있기에 발걸음을 빨리했다.

 

이번에는 볼락만을 대상어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골창을 끼고 있는 장소를 몇곳,

생각해두고 있었지만, 강한 남서풍이 남동풍으로 바뀌었기에 동쪽방향으로는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일렁이는 동쪽방향의 물결을 살펴보고는 뱃머리를 돌려서 등대가 있는 쪽의 큰 홈통으로

가게 되었는데 여지껏, 지나쳐 다니기만 했지 한 번도 내려 본적이 없었던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서 씨 아저씨가 언젠가 앞쪽의 높은 곳에서 낚시를 하게 되어, 안쪽으로 채비를

힘껏 던지면 큰 볼락이 곧잘 물고 나오긴 하나, 물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뜰채도

닿지 않는 높은 지형이기에 그대로 들어 올리다가 대부분을 떨어트렸다며

경록이와 함께 한탄을 했다는 안통 끝 쪽의 골창으로 모기 꽤나 있게 생긴 곳이었다.

 

다녀간 사람도 없었겠지만, 다녀갈 사람도 없는 곳이었기에 납 봉돌 한 톨 박힌 것이 없었고

오염된 흔적도 없는 것이 마음에 들었기에 설령 고기가 안 잡힌 다해도 섭섭하지 않다는

마음으로 볼락용 찌낚시와 농어용 찌낚시대를 펼쳐봤는데 볼락의 크기가 대단한 곳이겠기에

낭창한 2호대로는 볼락을 낚기로 했고 갈치 낚싯대를 만드는 장인이 만들어준

3호대 같은 2호대로는 농어찌낚시를 해보기로 했다.

 

물론, 납봉돌이 한개도 없는 곳이기에 갯바위의 째진 곳을 이용하여 받침대를 설치했으니

무봉돌 낚시를 하게 된 셈이었다.

 

가지고 나온 500그램이나 되는 청지렁이를 오늘밤에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까?!

볼펜 굵기 만한 지렁이를 첫 미끼로 꾀어 던져놓고 시계를 보니 오후 7시경이었는데

곧바로 찌가 사라지는 느낌과 함께 견제를 하니 세찬 당김이 있었고 신발짝만 한 크기의

첫 볼락이 낚여 올라왔다.

 

이미 중 썰물시간이었는데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연속적인 입질이 있기에 물속이

잘 들여다 보일 시간이기에 발밑을 유심히 보니 물골이 들어와 있는 것 같기에

7미터짜리 장대를 꺼내어 들이 밀어보니 5미터 이상의 수심이 나오기에 꾸준히,

발밑을 공략해 보기로 했고 정말, 물속에 수에즈운하가 있는지 지루하지 않게

입질이 들어오면서 감격스러운 크기의 볼락과 쏨뱅이며 우럭들이 연실 물려 올라왔기에

찌 낚싯대를 뒤로 걷어놓고 또렷한 입질을 즐겨보려고 장대 끝에 꽂았던 케미라이트를

전지 형으로 바꾸고 보니 물속까지 파란전지 불빛이 춤을 추었다.

 

내일 밤도 있지만 잘 살려 두었다가 기포기를 틀어서 서울까지 살려갈 횟감으로

깔끔하게 입술에만 바늘이 박힌 큰 볼락 열 마리를 부력형 살림망에 담가두었는데

나가는 물살을 타고 멀리까지 흘러나가 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는데 밤이

깊어지기 전에 고기를 담은 쿨러백이 무거워졌기에 몸놀림이 느려졌다.

 

전파가 잘 닿지 않는 곳이기에 작은 아저씨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여러 번 끊겼는데

궁금증에 경기가 드실까하여 전파가 잡히는 지형까지 이동하여 짧고 강한 통화를 했다.

 

본론만 말하겠어요~!!!!! 9시가 안됐는데 사십 마리가 넘었소~!!! 왕짜배기 볼락이

스무 마리 정도, 쏨뱅이와 우럭이 나머지요……. ~! 참돔만한 망상어가 두 마리,

한 뼘짜리 농어가 한 마리...... 농어는 있을 텐데 그 방향으로는 찌가 흘러가질 않고,

물때가 안 맞는 날이다 보니 절벽으로 채비가 붙어주질 않아요~!!!! 발밑에 골창이 있어

그 속을 파내면서 낚시를 하는데 속물이 이상하게 당겨서 깜빡 속는 챔질이 잦긴하지만

현재대로라면 내일 일찍와야할게요~! 이상~!!!!”

 

속사포같이 이쪽의 사정만을 쏟아 붓는 짧고 강한 통화를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오니

갯바위에 멸치가 한 마리 보였다. ‘그 사이에 농어가 훑고 지나갔나?’

 

미끼로 바늘에 걸어서 담그기가 무섭게 장대가 휘청거렸고 큼지막한 우럭이 물고 나왔기에

입속을 뒤져서 같은 멸치 한 마리로 세 번이나 재탕을 했는데 이래서 음식점에서도

남긴 반찬을 또 써먹는건가??!!

 

 

만재 도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멸치 미끼는 탁월한 효과를 보여주곤 하는데

팔십년 대에 유 선생님에게 끌려서 가거 도를 처음 갔을 때를 기억해 보면

당시의 가거도도 시멘트 한 점 없는 몽돌 밭이었기에 물위에서 택택이 목선으로 갈아타고

어딘가로 가서 전봇대만한 길이의 팔뚝만한 굵기의 글라스롯드 낚싯대를 힘겹게 들고

낚시를 시작했는데 잠시 후에 돌아온 배에서 건네받은 양동이에는 멸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배터진 멸치는 뚝~! 꺾어서 밑밥으로 던지고 온전한 멸치는 미끼로 바늘에 끼워서 쓰고........

그래도 참돔이며, 우럭이며 온갖 고기들이 물고 늘어졌는데 지금과 같은 현대적 장비와

밑밥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힘 안들이고 쉽게 고기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

 

 

오래전에 서 씨 아저씨와 국도 덕에 내려서 함께 낚시를 하게 되었는데 아줌마가

열기그물에 걸린 멸치 두 봉지를 소금을 뿌려서 건네주었기에 예전에 귀신을 만났던

건너편을 마주한 물골에서 고기를 제법 잡았는데 서 씨 아저씨는 한 마리도

쓰지를 않고 있었고 내가 멸치로 고기를 잡았다는 말도 믿지를 않았다.

 

더 맛좋은 크릴이며 지렁이도 안 무는데 사람도 아닌 물고기가 무슨 멸치젓을 먹겠냐며

코웃음을 쳤지만 한참후에는 진짜로 멸치만 먹는다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도 고기가 안 잡히기에 그냥 한번 끼어서 던져봤더니 우럭이 바로 물고 늘어졌고

계속 사용해보니 잘도 물어 주기에 아줌마가 준 멸치를 다 쓰곤, 놀고 있는 중이라고 했는데

그 다음 부터는 서 씨 아저씨가 멸치젓을 즐겨했는지 갖고 다니는지 알아서 잘 하고 있는 눈치였다.

 

따라 다니던 정 군도 멸치까지야 사용할 필요가 있을 까고 마다했다가는 옆에서 멸치미끼에

고기가 물려 나오는 내 낚싯대를 넋을 잃고 쳐다보며 밤을 새웠는데 불신이 깊으면 고기도 없지 않겠어?!

 

 

주 사장님이 즐겨 내리시기에 모두들 주 사장 자리로 불리는 곳도 발밑에 골창이 있는데

받침대를 설치해 놓고 집어등이나 보조 등이라도 밝혀 놓고 보면 저절로 음지가 생기는

발밑 그늘에서도 고기가 물고 늘어졌는데 다른 곳에서도 그늘을 만들어 놓고 낚시를 하다보면

발밑까지 농어가 들어 와서 손맛을 안겨주는 곳이 여러 곳이었다.

 

해우소의 변기통에서 밑밥을 주어가며 낚시를 하다보면 오른쪽의 그늘진 곳에는

농어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기에 앞쪽에서 입질이 뜨믄할 때마다 잠시 옮겨가서

담가보면 영락없이 물고 늘어져서 쿨러를 채워주곤 했다.

 

갑작이 위쪽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졌는지, 염소가 나타났는지 ~!’

소리가 났기에 등골이 오사삭하니 근지러운 느낌이 들었고 밝은 랜턴을 켜서

살펴보니 험한 절벽이기에 무엇이 떨어지거나 내려올 지형은 아니었는데 예전에

작은 아저씨가 도깨비를 만났을 때 나타났던 그런 현상 같았다.

 

언젠가 외마도 높은 덕 계단 턱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위쪽에서 갑작이 바람이

쏟아져 내려오기에 이상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서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급히

도망을 간적이 있었는데 한참 있다가 다시 돌아오니 갑작이 가만히 있던 장대가

~!’ 하고 돌아가서 당황해 한 적이 있었고 그만 걷어놓고 찌낚싯대를 발밑에 던져놓고는

뒤를 돌아보는데 큰 참돔이 덤벼들었는지 5호 줄이 200미터나 감겨있는 릴뭉치의 낚싯줄이

순식간에 ~!’ 하고 풀어져서 사라졌기에 혼이 반이 나간 적이 있었는데

오늘 밤도 미리 조심하는 것이 낫겠기에 열개나 되는 랜턴과 플래시를 모두 밝혀놓고

성수병도 꺼내서 흩뿌려 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깨비가 싫어한다는 팥도 가져올걸…….

인스턴트 팥죽이야 마트에 얼마든지 있는데 왜 두어 개 사오질 않았을까?! 마늘도…….

 

 

물위에 떠있는 살림망이 멀리까지 흘러나가서 한껏, 줄을 당기고 있는 것이 간조시간이 되었나 보다……

초저녁부터 몰아치는 입질에 살짝, 땀을 흘리고 체력도 소모해서인지,

살짝, 시장기가 돌기에 아줌마가 싸준 도시락을 열어봤는데 찹쌀을 많이 섞었는지

젓가락에 한 덩어리가 되어 들려지는 밥덩이를 보니 진밥보다는 된밥을 좋아하는 식성이다 보니

배가 고픈듯한데도 입맛이 당기질 않기에 라면을 끓여서 곁들여 보려고 가방을 뒤졌는데 보이질 않는다…….

집에서 짐 정리를 할 적에 분명히 꺼내서 가지고 내려왔었고 배안에서도

보였었고 아저씨도 새벽기운이 아직 쌀쌀하니 필요 할게라는 소리까지 했는데??????

몇 번이고 짐가방을 속을 뒤져보았지만 라면봉지가 보이질 않기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도깨비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성수 병을 열어, 주위에 흩뿌리고 신앙의 신비를 읊조렸는데 필요할 때만 찾는

얼치기 냉담자도 예쁘게 봐주실까 모르겠다……. ^^;;

 

절대적인 무신론자에 담력도 어지간하다고 자부하던 편이었는데 어쩌다 만재 도에 와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떡덩이 밥과 간식으로 시장기를 때웠고 극성을 부리던 벌레 떼들도 사라진 것을 보니

밤이 깊어지고 새벽으로 달려가는 시간이었는데 짧은 여름밤에 잠간이라도 눈 붙일 사이가 없겠지 싶어

작은 텐트며 깔개도 안가지고 나왔기에 편한 자리를 찾아 잠간 등을 기대고 쉬어 보기로 했다.

 

전파가 닿지 않는 곳이다 보니 통화도 제대로 안 되는 스마트 폰은 무용지물이 됐기에

저장되어 있던 메모와 사진을 보던 중에 어머니의 사진이 보였다.

 

, 어머니가 돌아가셨지?!’

작년 봄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는 아직도 집에서 가까운 요양원에 계신 것 같았고

사나흘마다 찾아보았었기에 낚시여행을 끝내고 올라가서 바로 찾아가면 집을 비우고

낚시를 다녀왔다는 걸 감쪽같이 모르실텐데........

 

아들의 별난 취미를 반대하지는 않으셨지만 당신이 몸져누우시고 부터는 곁을

비우는 것이 싫어서였는지, 바다에 가는 걸 위험하다, 생각 하시는지 이틀만 안보이면 큰 걱정을 하셨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자주 하셨는데 수구초심(首丘初心), 내 집에서 죽어야 한다는 명분이

그때 분들은 좀 더 강했던가 보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아직도 많지만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공자는 공양(供養)은 짐승도 하는 일이라고 하였는데 아직까지 우리 세대에서는

의무감에서라도 부모를 내팽개치는 사람은 드문데 우리세대를 낀 세대, 쉰 세대라고 한다던가?

 

하지만 부모를 진정 공경하고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병들어 누워있는 부모에게 밥을 떠먹일 수는 있어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어머니를

제 몸 씻듯이 깨끗하게 목욕시킬 수 있는 아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부모가 떠나는 순간에도 "평생 걱정만 끼쳐서 죄송했고 정말, 고마웠고 사랑했다!"라는 말도 못했던 것 같다.

 

저승으로 가는 길에는 강이 있다는데 그 강을 건너서 저승에 가면 부모 자식 간은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고 한다…….

연세가 있으셨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갑작스레 떠나실 줄은 정말 몰랐다.

금년은 넘기시겠지, 내년도 무사히 넘기실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누구라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리도 애타게 그려봤을까?!

 

어머니, 당신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어머니, 당신이 구름위에 계신다면

사계절 비가 되어 하늘까지 닿는 무지개다리를 놓겠습니다.

 

어머니, 당신이 강 건너에 계시다면

꿈에라도 나는 나룻배가 되어

밤낮으로 노를 저어 그 강을 건너가겠습니다.

 

그 아침의 햇살 같고

그 햇살의 풀잎 같고

그 풀잎의 이슬 같은

온화하고 인자하셨던 어머니

 

당신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내색조차 없으셨는데

같은 부모 노릇이 어찌하여 제게는 이다지도 힘이 들까요.

 

가끔 무겁게만 느껴지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어딘가로 훌훌 혼자만의 편안함을 찾아서 무작정 떠나고 싶습니다.

 

철부지 아이 적으로 돌아가서 철없이 뛰놀던 그 시절로 돌아가서

가슴이 터지도록 소리 높여 그리운 당신을 불러 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크게 부를 수도 없는 것이 쏟아지는 눈물에

밥을 말아 억지로 삼키는 먹먹함뿐입니다.

 

누구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는다고 하는데

아직도 불현듯 보고파지고 그립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길 위에서도 보이고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구름 속에서도 보입니다.

자다가 꿈속에서도 보입니다.

너무도 그립습니다.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잘 계신 거죠?!

 

후회(後悔)라는 말은 진정 '뒤에 하게 되는 참회'라는 뜻인가 보다.

 

 

잠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정신이 맑아졌기에 졸립지가 않았고 짧은 여름밤이 금방 지나갔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싸한 냉기까지 밀려오는 전형적인 만재도의 여름현상이 시작됐는데

아침낚시가 좀, 됐으면 시원한 밝을 녘 시간에 재미있고 편한 낚시를 할 수가 있을 텐데...

 

멀리 형제섬 사이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이 보였는데 어쩌면 곧, 배가 올지도 모르겠기에

주변 청소부터 해놓고 널따란 지형에 짐 가방을 뒤집어 내용물을 쏟아놓고 또 오늘밤에

사용하기 편하도록 정리를 마치자 배가 오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