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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2021년 만재도의 볼락낚시 2.

by 찌매듭 2021. 6. 27.

어딘가에 밤새 내려 두었던 열기그물 중 몇 틀을 걷어서 싣고 왔는데 아직,

수온이 낮아서 그물코마다 열기가 많이 걸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새로 바꾼 배의 속력이 빠르다 보니 손질 터에 나를 내려놓고는 또 다른

그물들을 걷으러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줌마가 고기 손질을 할 수 있는 연장통을 내주었기에 가위로 굵은 가시부터 따내고

비늘긁개로 비늘을 치고, 내장을 따내야 하는데 낚시를 오면 가장 귀찮고 싫은 일이지만 안 할 수도 없고…….

가거도 라면 손질 도우미를 부를 수도 있지만 일손이 귀한 만재도 에서는 손을 움직일 수

있는 할머니들이라면 소속된 집이 있기에 아무에게 손질을 부탁할 곳이 마땅치가 않은 편이었다.

 

'경록이파' '현진이파' '이장파' 주로 세파로 나뉘어 있고 그 외의 다른 집에서는 배가 있어서

그물을 친 다해도 고기 손질을 해줄 일손을 구할 수가 없으니 잡아도 소용이 없다는 게지…….

 

 

밤을 새웠지만 편한 자리에서 편하게 낚시를 하고 일찍 부터 쉬며 놀고 있었기에 별로

고단하지도 않은 몸뚱이는 그런 대로 잘 움직여줬다.

 

그물일이 끝나려면 낮이나 돼야 할 테니 아저씨와 아줌마는 그때나 올라가서 아침겸 점심식사를 할게다.

 

펄떡 거리는 왕볼락 열 마리를 살림망에 옮겨 담아 물속 깊이 내려놓고 손질한 고기들은

냉동고의 한켠에 넣어 놓곤 집으로 올라갔는데 빈집에서 벌거벗고 뛰어 다니면서

물을 한차례 뒤집어쓰고는 차려놓은 아침밥을 먹고 창문에서 내려다보니 가거도 에서

오전 8시에 출발했다는 여객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도 짙은 해무가 낀 것이 아침기온이 제법 서늘하겠네…….)

 

 

잠시 혼절을 했던 시간이 지나가고 혼백이 다시 돌아왔기에 눈이 떠졌는데

오후 세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해무도 걷히고 맑은 날씨는 전형적인 만재도 날씨인데

오후에 일찍 나가고, 아침에 날이 밝으면 일찍 들어오는 것이 만재도의 낚시공식 아닐까?!

낚시며 다른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잘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니 경험처럼

좋은 교훈은 없는 것 같다…….

 

그물에서 고기를 거둬내고, 상한 그물을 손질하여 다시 물속에 내려놓고 들어왔을

아저씨가 잠을 깨울까봐 조용히 쉬고 있었기에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건네면서

모닝커피를 대신하는 건배를 하곤, 카톡으로는 전할 수 없었던 그동안의 쌓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헤치다 보니 오후 네 시가 넘었다.

 

목포에서 여객선이 오기 전에 갯바위로 나가봐야겠다고 하니 더운데 더 쉬었다가

늦게 나가라고 했지만 아침낚시는 안되지만 오후낚시는 이르게 시작되는 만재도의

특성상 나가야겠다고 짐을 챙겼다.

 

오늘은 분명히 라면을 챙긴 것을 재차, 확인했고, 도시락이며 얼음 병이며 지렁이도

화끈하게 오백 그램이 담긴 새 박스를 가지고 나가야겠다.

 

물 폭탄 기법을 시전하려고 밑밥도 다섯 덩이를 가지고 나가기로 했고 전에 가져다 놓은

작은 바가지도 꺼내달라고 했다.

 

내려 올 때쯤이 됐겠다고 미리 배터에 내려와 있던 노 선장이 어제보다 바람이 좀 더,

세차다며 어느 자리에 연연하기보다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조용한 곳으로 가자기에

점찍어 두었던 포인트는 잊기로 했고, 잔잔한 곳을 찾아서 둘러보다가 외마도의 아래쪽

홈통을 끼고 내려 보기로 했는데 외마도 에는 이곳, 저곳에 홈통이 하나, , , , 다섯,

여섯 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한 곳으로 네 번째 내려 보는 곳이다.

 

아저씨와 노 선장은 자꾸만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서 짧은 대로 낚시를 하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이렇게 물이 거센 날 동굴 깊은 골속에

채비를 내려 본들 휩쓸리며 흔들리는 바늘을 물어줄 고기가 있기나 할지…….

 

이번에는 볼락만을 목적으로 했기에 쏘가리 루어 대를 챙겨왔으니 굴속 깊이까지 들어가기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 거리는 물소리도 거슬렸고 잠간 물이 서는 순간에 내려 본 웜 채비에

큰 노래미가 먼저 달려들곤 했으니 낭창한 루어대로는 제압도, 들어올리기도 쉽지가 않았다…….

 

보령의 작은 여에 개그맨 남희석군의 부친과 함께 내려 함께 낚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짧은 루어 대에 연두색 웜으로 노래미를 낚아 내는 것이 신기했는지

한참이나 바라보다간 몇 개를 얻어갔고 그것으로 재미를 봤다며 다음날 점심을 샀는데

식당 아줌마가 구두쇠 아저씨가 남에게 밥을 사는 건 처음 봤다고 놀라워했는데

그 속사정을 알면 그런 말을 못했을 게다…….

 

구십 년대 말경에 웅천의 명물이었던 조학성이라는 무창포 제일낚시점주를 통하여

외연도로 농어낚시를 가던 날 배안에서 남 사장을 처음 만났는데 자기가 누군지 알아

맞춰보라며 웃어보였는데 묘한 표정이 어디서 본 것 같았다?!

 

하회탈 흉내로 뜨기 시작한 남희석이란 개그맨과 비슷하다고 하니 자기가 바로

남희석의 아버지라고 소개를 했다.

 

낚시를 무척이나 즐기는 편이었는데 웅천에서 목욕탕과 숙박업소도 하기에 여유가 있는

편이었지만 무창포와 웅천의 얼치기 낚시꾼 떼거리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모두가 맨손에

맨 입이였고 혼자만 도시락을 싸오고 비용을 내주는 눈치였는데 빈대에 둘러싸여 있는

그 고충을 누가 알았겠나?!

 

웅천 제일낚시점의 점주였던 학성이를 만나게 된 인연으로 감성돔 찌낚시와 농어 루어낚시와

참돔낚시를 가르쳐 주었기에 학성이가 낚시에 눈을 뜨게 되었고 작은 배도 장만을 하니

손님도 늘어났다. , 무창포로 낚시점을 늘려서 옮겼고 가게도 제법 잘되었는데 겨울철,

비수기에 학성이가 노름을 하면서 배가 넘어갔고 가게도 넘기게 되었다.

 

손님으로 다니던 김 씨라는 사람을 무창포 제일낚시를 인수할 사람이라며 소개를 하면서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시켰는데 이 사람이 무창포에서 낚시를 완전히 배워서 몇 년 후에는

고향인 오천으로 돌아가서 참돔 배낚시를 전파하지 않았다면 오천 항이 오늘날 같이

번화해지지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위도 페리호 사건이 안 일어났다면 계속 위도로 낚시를 다녔을 테고 어청 도를 다녀오다가

웅천을 지나치며 새로 생긴 낚시점에 들르지만 않았으면 학성 이를 만나지도 않았을 테고

김 선장도 낚시를 몰랐을 테니 오늘날 서해중부권의 참돔선상낚시의 판도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굴속에서 노래미의 웜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기에 잔 이빨에 썽둥, 썽둥 잘라지는

웜을 갈아 끼는 것도 귀찮기에 쏘가리 루어 대를 접어내고

다시 입구로 나와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물 폭탄으로 바깥으로 불러내보기로 했다.

 

한참, 돌돔낚시를 다니던 관탈도에서 그날 이용했던 어선에 큰 물통이 있는 것을 보고는

밑밥 통에서 주걱으로 감질나게 뿌리느니 남은 밑밥을 통에 쏟아 붓고 물을 길어 젓국을

만들어서 손잡이 달린 바가지로 퍼부으니 즉시 효과가 나타나서 돌돔을 마릿수로 낚았었다.

 

그 후로 그 배에서는 물 밑밥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데 언젠가 대관탈도의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다 보니 그 배가 저 만큼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쉴 새 없이 돌돔을 낚아 올리는 것을 보곤,

후배는 함부로 천기누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쓴 입맛을 다셨는데 그 사람들만 그럴까?!

 

가파도로도 낚시를 다닌 적이 있었다. 마라도에서 긴 꼬리 벵에돔 낚시를 하고 있노라면

철가방으로 자장면을 갯바위까지 배달을 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가파도 돌돔의

씨알과 마릿수는 전국에서 으뜸이라 하겠는데 성게를 이리저리 끼워서 돌돔을 낚아 내는 것을

보고 배운 현지 민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 시키고 자기네들이 직접 돌돔을 잡아서

팔기 시작했는데 오는 것을 억지로 막지는 않았지만 떨떠름해 하는 표정과 몸짓에서

욕심의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는 가파도로의 발길이 무뎌졌다.

 

가파도산 활돌돔의 공급이 상당량이라는 소문이 들려왔기에 혀를 찬 것도 오래전이었는데

언젠가 방송에서 가파도의 물속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냉면사발만한 크기의 전복이 있기에 껍질이 물속에 수북하게 쌓인 전복무덤이 있다면서

해녀들도 거기까지는 들어가기가 위험하다는 물골의 생김새를 보고는 저러하여 큰 돌돔이

그리도 많았는가보다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나님이 옆에서 혀를 찼다.

 

물 폭탄 같은 물 밑밥의 효과 때문인지 폭발적적인 입질이 들어 왔는데 채비가 정렬이 되고

다섯을 세기 전에 장대 끝에 입질이 나타났으니 극성스럽게 덤벼드는 모기떼의 공습에

약을 뿌릴 새도 없이 손을 휘저어 가며 모기를 쫓았고 뒤쪽에 봐두었던 홈통으로

낚은 고기를 던져서 모아가며 열을 셌다 싶으면 쿨러백의 지퍼를 열어서 고기를 퍼 담기를

여러 차례 하다 보니 쿨러백이 동글동글하게 변했다.

 

 

언젠가 인낚의 제품 평가기회가 있어서 낚은 고기를 살려둘 수 있는 살림통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해 겨울에 만재도로 감성돔 낚시를 왔다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고기를 못 낚았었는지,

파도가 드세어 사용할만한 여건이 안됐었는지 그 후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조차 잊고 말았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창고에 잘

간수해 두었다며 내주었기에 어제부터 잘 사용해 보고 있는 중이었다.

 

어제도 신발짝만 한 큰 볼락 열 마리를 담아 두었다가 둥근 살림망에 옮겨서는

작업 터의 기둥에 붙들어 매놨었고 오늘도 큰 볼락으로 골라서 몇 마리를 더 담다 보면

서울까지 기포기를 틀어서 살려 올라갈 것이 있겠기에 입술에 살짝 바늘이 걸린 큰 볼락을

또 몇 마리 담아보는 밤이다.

 

 

초저녁에 휘몰아치는 입질이 있어 일찌감치 고기망태를 가득 채웠으니 낚시가 여유로워졌다,

 

간식도 찾아보고, 시원한 캔 맥주도 한 모금, 눕기 편한 곳을 찾아 등을 내려놓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또롱하니 밤하늘을 가득채운 별바다를 올려다보며

어떤 별이 내별일까 찾아도 보는 별 놀음을 하다간, 갑작이 오싹하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고모님이 주신 묵주와 성수도 챙겨왔으니 믿는 구석이 있지만, 주책없는 도깨비라도 나타나면 어쩔까?

 

예전에 노 선장의 아버지가 뒷산 너머로 고기잡이를 갔었다가 정신없이 낚이는 고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 가야하는 생각을 잊었다간, 주변을 둘러보니 완전히 어두워졌기에 서둘러서

망태를 둘러메고 돌아오게 되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 고기 한 마리를 달라기에

내주었고 또 얼 만큼을 오니 다른 사람이 나도 한 마리를 달라했고, 또 얼 만큼을 오니 또 다른 할배가

나도 달라하니 오늘 내가 큰 변을 당하는구나 곤, 정신이 혼미해졌고

정신없이 걷고 뛰면서 고기를 내주기를 반복하다간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단다.

 

날이 밝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제의 길을 되찾아가니 군데군데 물고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그 앞에는 몽당 빗자루도 있고 낡은 모자며 신발등 이상한 것들이 있었다는데,

예전 같으면 섬사람들의 이상한 소리로 여겼겠지만 나도 이상한 경험이 있다 보니

이제는 아주 무시할 수가 없게 되었다…….ㅜㅜ

 

그래, 고기를 많이 잡아놨으니 무언가가 나타나면 나도 한 마리씩 주면돼지, 까이꺼, ,,,,ㅜㅜ

만약을 대비해서 더 잡아 놓을까?!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밥시간을 또 놓쳤다. 밥이란 것이 꼭, 시간을 맞춰서 먹어야하는건 아니겠다만,

이런 곳에서 어두워져서야 밥을 먹겠다고 몇 가지 찬도 없는 도시락을 꺼내어 헤드랜턴을 켜면

달려드는 벌레들이 입 근처로, 콧속으로, 눈 속으로 달려드니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기에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훤할 적에 먹어치워야 한다고 매번, 생각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낚시라는 이상한 중독에 빠져 있다 보면 밥 먹는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가 않다,

, 고기라는 것들이 왜 밥 먹으려는 시간에는 없던 입질을 하는지…….

 

또 떡 덩어리가 된 도시락의 밥덩이를 젓가락으로 폭~! 찔러서 분명히 한 덩이임을 확인하고

굳은 시루떡 잘라놓듯이 몇 조각으로 잘라 놓고는 오가면서 한입씩 우물거리면서 절반을

넘게 먹었는데도 밥을 먹었는지 떡을 먹었는지 알 수가 없기에 오늘은 분명히 가지고 나온

라면 하나를 자정이 넘어서야 끓여 보았는데 어제보다 곱절이나 고기를 낚았기에 낚시도 시들해진 느낌이었다.

 

쿨러백이 넘치기 시작해서 얼음으로 사용하려고 담아온 2리터짜리 얼음병 두 개 중에 하나를

빼놓았고 늦게 잡은 고기들은 서늘한 갯바위 통에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한껏 담아 보았는데

시멘트 한포보다 더 무거워진 쿨러백은 들어 옮기기가 버겁기에 아침에 경록이에게

힘 좀 써서 실어 달라면 될게고 손질에 시간이 걸릴 테니 어제보다는 더 일찍 나가서

정리를 해야 급하지 않게 마무리를 지을 것 같다.

 

어쩌면 고기손 질로 바쁘다보면 아침 식사할 시간도 없이 배를 타야 할 수도 있고....

기상의 변화가 감지되어 하루 더 연장을 할 수도 없을 것 같고…….

마나님에게 사흘 안에 돌아오겠다고 약속도 했고…….

이미, 낚은 고기로도 목표달성이 넘었으니 욕심을 낼 필요도 없고…….

 

산다는 게 다 모험 같기도 하지만 오늘도 밥 위에 떡이라고 날씨며 수온이며

물색까지 모두 좋은날이었으니 좋은 일에 더 좋은 일이 겹치고 올라가는 그야말로

밥 위에 떡 같은 날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고했던가? 팔십 여개의 포인트가 산재해있고 매 포인트마다

두어 번에서 십여 번까지 만재도의 갯바위에 내려서 낚시를 하다 보니 익숙한 곳에서는

물속이 훤히, 보이는듯했다,

이제는 만재도의 모든 포인트를 내려 보았겠구나 했지만 아직도 못 내려 본 곳이

몇 곳 남았는데 간여 삼형제 중에서도 큰 간여에는 내려 보지를 못했는데

끝간여와 납작 간여가 비어있으니 굳이 큰 간여에 내려 볼 이유가 없었고

국도의 넘어 가는 자리에도 다른 사람들이 많은 고기를 낚는 것을 보았지만

기회가 닿지를 않아서 못 내려 봤었다.

 

지난해에야 내려 볼 기회가 있었지만 그곳을 꼭 내려 보고 싶다는 낯선 사람의 부탁에

양보를 했었고 서 씨 아저씨가 일행과 내리겠다고 앞으로 나서는 바람에 또 양보하고

난 후로는 그쪽으로는 갈 새도 없었다.

 

금년 여름철에 낚시꾼이 많이 몰리는 날이 있다면 분명히 비어있을 널빤지 자리 역시

꼭 내려 보고픈 자리로 왜 사람들이 지나쳐 가기만 하는지 몹시 의아했던 궁금증도

풀어야만 만재도의 숙제가 끝이 날 것 같다…….

 

, , 꿈과 현실의 차이란 것이 현실에서는 할 수 있는 것만 하는데 꿈속에서는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으니 꿈인들 못 꾸어 볼 것이 있겠어?!

 

 

새벽 4…….

더 이상의 낚시는 의미가 없기에 짐을 꾸렸고 주변 청소를 하니

저 멀리 수평선에서 서서히 진홍빛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일찍 짐을 꾸려 놓았는데, 어찌 알았을까?

첫 그물을 걷기도 전에 먼저 나를 태우러 배가 왔다…….

 

어제 오후배로 들어온 경록이가 덥기 전에 나를 먼저 실어 내자고 했을 게고

고기 손질을 하기위해 내려와 있을 경록이파 할머니들에게 내가 잡은 고기를

손질하라고 작은 아저씨가 일러 놓았기에 숙달된 팀원의 재빠른 손질 도움을 받아

잠간 사이에 손질을 끝낼 수가 있었다.

낯익은 할머니는 오랜 궁금증을 풀려는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말을 건네 왔다.

오래도록 이 집에 다니 신건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 고기 손질을 하라는 건 또 처음이요. 어떤 관계인진

모르겠지만 특별대우를 하는 건 틀림없으니 다음번에 오실 적엔 맨손으로 오시면 안되겠지라~~~?!“

그럼요~!!!! 다음번엔 맛있는 까까를 많이 가져 올게요~~~~ ^^ ”

 

잠시 후에 첫 번째 거둬온 그물을 싣고 배가 돌아왔고 내려놓기가 바쁘게 되돌아가선

두 번째의 그물을 걷어왔기에 바쁘게 일손이 돌아가기 시작했기에 손수레에 손질된

고기상자를 싣고 냉동고에 넣고는 집에 올라가서 개운하게 머리를 감고, 모기약과

비린내에 살짝 절었을 몸뚱이도 씻고는 짐을 꾸렸는데 오늘은 여유가 있는 날이다…….

 

차려 놓은 아침밥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홍합 국이 올라와 있었는데 조기 맛이 나는 생선은

정말 조기인가 했더니 간간하게 말려 놓은 참우럭이었는데 간도 딱 맞고, 건조가

알맞게 된 상태다 보니 조기 같은 맛이 난 모양이었다…….

 

오전 9시전에 가거도 에서 출발한 배가 도착 할 테니 잠시 누워서 쉴 사이가 없겠기에

배터로 내려오니 고기 손질이 한창이었다. 깊이 내린 그물에는 큼지막한 참돔이 걸려나왔다는데

아직 수온이 찬듯하니 한두 물때는 더 있어야 참돔이며 돌돔낚시가 시작될 게지......

 

볼락 기포 통을 준비하고 나니 경록이가 어제 잡은 고기들을 담아 주었고

오늘 잡은 것은 냉동고에 넣었다가 택배로 나중에 보내 달라했고 가져갈 짐들을

손수레에 실어서 선착장에 모아놓고 남은 시간이 있어 그동안 달라진 만재도의 모습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십여 분쯤 지체된 여객선이 도착했고 예전의 절반도 넘게 줄어든 운항시간에 목포에 도착한 것이

한낮이었으니 생소한 느낌이었다.

 

딸아이가 퇴근도 하지 않은 훤한 이른 시간에 집에 도착한 것도 이상한 느낌이었고

짐 가방을 풀어 헤치고 대충 정리를 해놓고 손질해온 고기를 분류해서 냉동고에 넣었는데

경록이가 따로 챙겨 준 말린 생선도 한통 갈무리 했다. 이제 더워지면 한동안 구경하기가

어려울 테니 아껴 먹어야 겠다. 천천히 볼락 회를 장만하기 시작했는데

열 마리 중 아홉 마리가 살았으니 대충, 회를 떠내도 온 식구가 충분히 먹을 양이었다.

 

 

도심에서의 생활이란 것이 익숙하지만 지겹고 조밀한 일상이기에 잠시라도

벗어나고자 결심한 순간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저마다 여행을 떠나고자하는

목적이 다른 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겠지만 그것도 흔해 빠진 어느 온천이나

관광지 같은 곳이 아닌 먼 섬으로의 낚시여행이라니…….

 

그곳에서 낚시를 하면서 하는 생각이란 것이 자기의 혼잣말이기도하지만 자기 자신과의

이야기이기도하다

 

즐기자는 여행은 신파극의 자궁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낚시라도 다녀와서 조행 기랍시고

감정의 증폭행위에 속하는 글쓰기가 나중에 다시 읽어보았을 때 다소 민망하거나 부끄럽고

유치한감이 있다고 느끼면 신파고 그런 대로 괜찮다면 문학이나 예술에 들 수가 있을 텐데

이렇게 혼자 즐기다시피 하는 낚시여행의 조행 기는 아무래도 신파에 가까운 것 같다.

 

아무려나 사랑이란 감정은 때에 따라서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지만,

갯바위에서 느꼈던 기억은 늘 같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