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워프를 해본다.
낚시라는 취미를 모르는, 여행을 즐긴다는 사람들은 외국이나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곳으로만
눈길, 발길을 잇지, 국내의 오지에 있는 볼 것도 없고 즐길 것도 없고 모든 것이 불편하기만 한
먼 섬으로는 가지 않을게다
집을 떠나서 도로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목포의 낚시점에 들러서 준비를 하고,
또 배를 탈 수 있는 우리나라 땅 끝에 있는 진도에 도착해서 얼마 전에 생긴
사우나라도 찾아가서 잠간, 피로를 푼답시고 뜬눈으로 설치고는 물고기라도
몇 마리 잡아보려면 새벽밥이라도 든든히 먹고 가야겠기에 진도 팽목항에서
일찍 문을 연, 부지런한 식당에서 만 원짜리 백반을 필수적으로 먹어야한다.
남들은 곤히 잠든 새벽시간에 배를 타고 또 몇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데
검은빛 바다 위를 볼 사람 찾는 이도 없는데 작은 밤배를 타고 한없이 흘러가다보면
불편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었다......
웬만하면 좀 더 안전하고 큰 여객선을 타고 다니면 좋겠건만 낚시가 뭐기에
아침물때가 어떻고, 낚시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갖고자 잠도 못자고 위험도
무릅쓰고 그랬는지.... 어찌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안전이 첫째라고 부르짖던 정 교수는 가거 도를 다닐 적에도 꼭, 여객선 사용을 고집했지만
언젠가 보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누워있는 폼이 눈에 익다했더니 결국에는 사선을 이용했는데
눈이 마주치자 좀 무안했던가 보다…….
"여객선을 타니까 너무, 낚시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더라고……. "
(누가 뭐라고 했나?! -,,-)
지난해 여름철까지만 해도 지구의 끝까지도 갈수 있는 시간이 걸렸던 만재 도였지만
늦가을부터는 새로운 고속여객선 직항노선이 신설되었기에 예전보다 절반도 넘게 시간이 줄었다,
6시간이 걸렸던 것이 두 시간 남짓에 도착 할 수가 있게 되었으니 만재도로서는 또 한 번의 기적이요 혁명이었다.
97년도에 전기공급이 시작되는 첫번째 기적을 시작으로, 무거운 통에 담긴 가스연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2003년 경에는 이동통신의 개통으로, 몇년전 부터는 물통으로 길어서 나르던 우물을 폐쇄하고 상수도 공급의
기적이 시작되었으니 냉장고가 생겼고, 세탁기도 생겼고, 에어컨이 달리더니 작년 겨울에는 전자레인지까지 들여놨고
무거운 가스통을 배에서 내려 좁은 골목길로 끌어 올려야하는 고단함에 이제는 인덕션을 설치해 볼까도 한다.
지난 6월초에 만재 도를 다녀왔었고 교통편이 편리해졌으니 매달 만재도 구경을 하기가 쉽겠기에
7월 달에도 계획을 잡았지만 한치가 대풍인 해이다 보니 먹물잔치에 배를 불리다 보니 오랜만에
여서도 부근까지도 가봤다.
한치 열풍이 숙었고 냉동고도 가득 채웠고 갈치낚시에 사용하고 남았던 꽁치포도 준비했기에
7월 하순경에 만재 도를 가려고 하니 자꾸만 일기가 불순해졌다.
아침 일찍 텃밭에 가서 작물을 손보고 있는데 서 씨 아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만재도 안 갈껴? 난, 지금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아니? 일기예보 상으로 보아서는 여객선이 어제 부터 안다니는 것 같던데?”
소귀신이 씌어있을 서 씨 아저씨는 벌써 군산을 지났다니 되돌아오라고해도 소용이 없을테니
목포까지 가서 여객선이 운항을 할건지 확인을 해야 할 판국이었고 주말에 목포에 나왔다가
만재 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경록이를 만나서 앞으로도 몇 일간 주의보가 해제되기 않겠기에
점심만 먹고 돌아와서는 소양강 어느 골짝이로 갔다고 했다.
한동안 열심히 일을 했고 7월말에 쉬는 시간이 생겼기에 보름 정도 만재 도에서 보내려던
황금 같은 시간이 누렇게 떠버렸으니 마음속까지 떠버린건 아닌지 모르겠다.
언젠가 서 씨 아저씨의 아줌마가 어디를 가셨을까, 밤늦도록 들어오지를 않기에 연락을 해보니
강원도 어딘가로 친구들과 놀러왔는데 모레나 가겠다기에 말도 없이 그러는 가고 나무라니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못들었는가 보다고 얼버무리기에 알았다고 끊고는 아줌마가 돌아오자 졸혼을 선언했다고 했다.
졸혼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아줌마는 이혼이라고 생각했던지 크게 화를 내면서
“이 ×새끼가……. 실컷 부려먹고는 나이 드니까 날 버릴라고?……. 나쁜놈 같으니라구…….”
“어허~~~ 그게 아니고……. 우리가 이제 이 나이에 어디를 가서 나쁜 짓을 하겠어?!
서로 눈치 보지 말고 간섭하지 말고 자유롭게 지내자는거지…….”
듣고 보니 아줌마가 그 제안에 구미가 더 당겼는지 잠잠해 지셨기에 서 씨 아저씨는 작년 겨울에도
만재 도에 와서 보름정도의 일정을 보냈고 허름한 집을 사서 수리를 해서 사용하겠다고 했는데
나에게도 천만 원쯤 투자를 하면 방 하나를 주겠다고 제안을 했는데 그 돈이면 제주 살이 몇 년을
할 수가 있을 텐데 가끔씩의 다님이 좋은 만재도지, 오랜 기간이라면 끔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건축기술이 있는 서 씨 아저씨가 민박집의 웃채를 수리하여 방 세 개를 만들어 내면 방 하나와
식대와 종선 비를 면제해 주겠다는 경록이의 제안이 있었는데 서 씨 아저씨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아직도 확실하지가 않다.
소양호에 갔을 서 씨 아저씨에게서 연락이 왔기에 통화가 가능한 지역에 자리를 잡았을까 했더니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는데 바다만 못했던가보다…….
‘오호~~~???!!!! 저 아저씨가 정말 자유롭게 된 모양이지??? 나도, 졸혼을 선언해 볼까?!
서 씨 아저씨네 아줌마는 등산이며, 땅볼 자치기와, 밤새워서 그림 맞추기의 달인이기에 좋아라. 했겠지만
우리 집 마나님은 내 그림자만 숨겨도 찾고 난리가 나는데 여러 가구가 있는 지금 사는 집의 구조상
오래 집을 비울 형편이 안 되다 보니 어림도 없는 제안일 것이다…….
"그렇게 자유롭게 나다니고 싶으면 이 집을 팔고 아파트로 가면 되잖아?"
살인적인 세금문제와 쉽지 않은 결단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야 하기에 그림도 그려보고
계산도 해보지만 한 두해에 결정이 될 일이 아니다 보니 초조하기까지 하다.......
날씨가 어떤지 민박집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서 씨 아저씨가 일행들과 함께 어제 들어왔다는데
여객선이 운항은 했지만 너울거림이 컸기에 멀미로 쓰러진 동행자 중에는 짐 가방을 챙기지 못해
다음날 가거도에서 나오는 배에서 돌려 받기로 했다는데 이번에는 날씨만 보고 물때는 안보고 갔는지
물줄기가 폭포같이 흐르는 사릿날에 들어갔던데 여러 날의 일정이다 보니 어느 날엔가는 큰 재미를 보겠지......
사리 물때에 가거도에 가서 며칠을 보내고 조금물때에 만재도로 장소를 옮겨서 낚시를 하는
꿈의 일정이라면 가장 완벽한 만족도가 있는 건데 여태껏, 두 번밖에 그런 일정을 못 가져 봤으니
세 번째의 일정이 언제일지 모르겠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만재도의 민박집 아저씨와 통화가 잦게 되었는데
서 씨 아저씨는 배터리를 아낀다고 갯바위에서는 전원을 꺼버리는 알뜰함에 통화가 안됐고
낚시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있을 시간대에는 잠을 깨울까봐 통화를 못하겠기에
민박집 아저씨에게만 서 씨 아저씨 일행이 어디에 내렸는지, 얼 만큼 고기를 낚았는지
물어봤지만 바쁜 마무리 미역작업과 여름 낚시는 하지를 않는 아저씨는 시원한 대답을 못했다.
수온이 너무 높아 고기가 낚이지를 않는다며 한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자잘한 고기를 낚은 날은
성공한 날이고, 입질도 못 본 날이 허다했고 너울이 심술을 부려서 안전한 곳을 찾아 삼일을 같은 장소에서
세 명이 모여앉아 밤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열흘정도를 보내고는 기상이 더 악화되기 전에 빠져나왔다는데 차에 비린내도 못 풍기고 올라왔다는
뒷소식에 의아하기만 했다.
서 씨 아저씨도 만재 도를 다닌지가 15년이 넘었으니 갯바위에서 백일기도를 두 번은 했을 테고
손바닥 보듯 보는 포인트가 열 곳이 넘을 텐데 어찌된 일일까???
서울로 돌아왔을 서 씨 아저씨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대신 복수를 해주려고 날을 잡은 것이
보름 후였으니 이 정도의 기간이라면 물속도 제자리로 돌아왔을 테고 미역작업도 끝이 났다니
눈총 받을 일도 없겠기에 몇 번이나 꾸리고 풀기를 반복했던 짐 보따리들과 텃밭에서 따온 작물들과
별도의 까까보따리도 싣고 집을 나섰다.
만재도로의 여객선 운임은 세 가지로 4만 원대, 5만 원대, 0.5만 원대의 우대, 일반, 도민…….
휴가 날짜를 잡아놓고는 안달을 하던 만재 도를 두 번째 방문하게 된 전주에서 달려온 심 실장은
통영과 격포권에서는 나름대로 한 낚시를 한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는데 얼마나 기대가 컸는지
매표창구 앞에서 토끼 춤을 추며 즐거워했고 곧추선 불편한 의자였지만 지난번의 가거도를 들러 갔던
때와 다른 짧은(?) 운항시간대에 불편함을 잊었는지 채비 베끼기와 조끼안의 소품점검에 집중하는 것이
고기나 제대로 잡기나 하려는지 모르겠다.
척, 보면 알아야지 만재도에서는 너무 작은 봉돌의 불필요함은 들여다보면서 골라내기의 시간이 지나야
만재 도에 적응하게 될 것이라는 조언에는 비음까지 내품었는데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는 부류겠지……. -,,-
유통을 아는 만재도민이 별도의 냉동고를 설치해 놓고 육지와 같은 가격대로 판매를 한다는
무거운 크릴과 파우더 같은, 밑밥과 미끼는 사가지고 가지 않아도 되었기에 한결 편해졌고
아래쪽에 사용하는 냉동고까지 배달도 된다니 만재도의 변화가 놀랍기만 하다.
짐 정리를 간단하게 하고 저녁 도시락을 받아 들고, 만재 도에 들어 온지가 이십일이 되어간다는
현지 민으로 변한 손님은 모기의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해줄듯이 덥수룩하게 수염이 자라있었는데
‘인낚’의 게시판에서 만난 ‘달리는 피셔맨’이었다.
반갑게 수인사를 나누고 만재도의 동쪽방향에서 오늘밤을 보내게 되었다.
연일 치올리는 너울로 부속 섬을 나갈 기회가 적기에 시원한 아침저녁으로만 본섬의
뒷산을 넘어 다니면서 바다가 주는 만큼의 고기를 낚으며 한 달간의 휴가 일정을 만들었다는데
오래도록 이 시간을 기다리며 준비해왔다니 민박집 아저씨에게는 반가운 한 달 친구가 생겼다.
왼편의 불편한 자리에는 연실 너울이 오르내렸기에 낚시를 하기가 불편했고 이런 상황이라면
물속의 고기들이 다가 오기가 쉽지가 않은 상황이었는데 여러 번 내려 봤기에 잘 알고 있는
반복된 상황이 전혀 나타나지를 않았고 흘러 가는 물의 방향이 맞지를 않으니 농어도 보이지도 않았고
늦은 시간대에야 두어 번 모습을 보인 제대로 된 크기의 참돔이 너무, 너무 반갑기만 했고
열기며 쏨뱅이, 볼락, 우럭 같은 어종은 물론, 노래미 조차도 보이지를 않았다.
새벽에야 끈질긴 견제와 놀림 끝에 우악스런 당김이 있기에 큼지막한 농어가 결국에는 한 마리
물어주었나 했더니 몇 번이고의 힘든 헛뜰채질에 결국 불을 켜고서야 담겨 나와서는 부시리로
변해버렸기에 맥이 빠지고 말았다…….
지난 6월 달에 가거도 에서 오는 아침 배를 타려면 밤낚시를 마치고 들어오는 갯바위에서의
일정이 바쁘기만 했는데 낚은 고기를 손질할 시간이 바쁜차에 그물에 걸린 고기 손질작업을
시작하려고 나와 있던 할머니들이 모두 와서 고기 손질을 해주었기에 빠르고 편하게 정리가
되었는데 다음번에 올 때는 잊지 말고 까까간식이나 가져오라고 한 농담을 진담같이 담고 있었기에
이번의 고기 손질까지 부탁할 요량으로 까까박스를 준비해 왔었는데 손질할 고기가 없으니
민박집 아저씨 혼자서 칼을 휘둘러서 끝내 버렸다.
두 달 사이에 주먹만 한 크기였던 강아지가 폭풍성장을 하여 산토끼만큼 몰라보게 커졌고
더운 날씨로 미역작업은 끝이 났지만 그물작업을 8월말까지 중단하기로 하였기에 개인 시간이 난 아줌마가
홍합을 까고 있다간, 아침밥을 차려 내주었는데 고동을 깔 시간도 있었고 문어를 움켜 나올 짬도 있었다고 했다.
가거도 에서 8시에 출발했을 여객선이 아홉시가 채, 안 되어 이제는 항이 되어버린 만재 도에 도착한 것이
창가에서 보였고 아직도 존재가 낯선 에어컨을 켤 생각을 못하고 창문부터 열고 선풍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몸의 열기를 주체 못하던 심 실장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에어컨을 틀어대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참, 재작년 여름에 에어컨이 생겼었지?????)
서 씨 아저씨가 다녀간 지가 보름이 지났는데 왜? 물속상황이 안 달라졌을까?!
더워도 오후부터의 낚시는 일찍 되지만 아침 날이 밝으면서 부터는 입질이 뚝, 끊기는
만재도 특유의 가무댕댕한 물빛이 보이기에 전주에서 달려온 심 실장은 내일 아침에 마음 편히
철수하게 해주려고 너울과 바람의 영향을 안 받을 곳으로 가서 반찬고기라도 채워가라고 확실할 자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어두워지기 전에 그래도 돌돔이라고 할만한 것을 몇 마리 낚았으니 밤시간 또한
기대해 볼만 했으나 어두워졌어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 많던 볼락과 우럭, 쏨뱅이가 다 어디로 갔을까?
물이 많이 내려앉은 시간대에 강력한 조명을 들고 깊은 굴속까지 들어가서 물속바닥을 훑어봤지만
짧게 드리운 낚싯대에 달려드는 웜을 탐하는 노래미 한 마리도 보이지를 않았으니 이상기온에 잡고기까지
모두 깊은 물속으로 빠져 나간 것이 분명했다.
낮에 나온 하얀 반달은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허리춤에 차고 갔다지만 낚시를 하면서
일찍도 뜬 밝은 반달은 반갑지도 않고 빛에 신경이 거슬렸지만 자정쯤에 뒤로 넘어 가면서
섬 그늘을 만들어 주었기에 최대한 수심 층을 깊게 잡고서 흘려 보면 예쁘장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사리들이 연실 물고 늘어졌는데 찌놀림은 제대로 주기에 심심풀이에 졸립지도 않았다.
심 실장(室長이) 애기를 달아 보았다는데 문어까지 작으니, 원.......
한 달에 네 번씩 통영 권과 격포권을 훑기에 초보가 아니라지만 만재도 에서만큼은
상초보에 속할 심 실장은 원줄이 3호에 목줄은 2호 정도를 사용하는 불안한 채비로
큰 소리를 치고 있었는데 아직, 제대로 된 고기를 걸어본 것 같지를 않으니 만재도의 대표주자들이
몇 번 혼을 내주어야 손을 떨고, 숨을 몰아쉬면서 몇번째 따지고 있는 낚시 가성비며, 만재도가
왜 이래? 라는 불평과 잔소리가 눅을 텐데 범 무서운줄 모르는 저, 하룻강아지를 어쩌면 좋을까?!
전지 찌의 불빛이 희미하기에 배터리가 다된 줄 알았더니 어디서 줏어 들은 것은 있는지
불빛을 최대한 줄여야 대물이 경계를 안 하겠기에 미리 그렇게 준비를 해왔다는데야
다른 말이 필요가 없었다…….
(그런 놈이 만재 도에 와서 원줄 3호에 목줄 2호를 쓴다니????? )
몇 마리씩 끼워댄 지렁이의 풍성함에 감격했는지 큼지막한 참돔이 두 마리 물어 주긴 했지만
마릿수가 부족한 밤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서는 만재도의 등대불이 휘휘, 돌아가는 것이 보여야하는데 안보였다.
6월 달에는 보였었는데 고장이 났을까? 아니면 첨단 GPS 장비 때문에 폐등대가 됐을까?
은근히 신경이 쓰이던 불빛이 오늘은 궁금해진다.
등대지기? (Light house keeper)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차면,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자악~은~섬~
통기타가 유행하던 시절에 자주 듣던 노래인데 무척이나 낭만적일 것 같은 직업 아니었을까?!
등대지기를 하면 밤에는 근무를 하고 낮에는 낚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겠기에 생각해 보곤 했었는데,
사실, 등대가 세워져 있는 아래쪽에는 좋은 포인트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지형상, 1급 포인트가 틀림없었다.
가거도의 3구 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낚시를 하다보면 겨울철, 파고가 높은 날에는
배를 타고 포인트를 찾아 갈수가 없으니 부지런히 도보 포인트를 찾아 나서야 했는데
억척스러운 3구의 민박집 아줌마에게 밑밥 통을 옮겨다 달라고 부탁을 하고 거리에 따라서
얼마씩의 비용을 지급하면 길이 끝나는 내리막길 앞까지 머리에 이어서 날라다 주곤 했다.
가까운 거리는 5천원, 먼 거리인 등대근처까지는 1만5천 원 정도에 옮겨다 줬는데
컴컴한 새벽부터 부지런히 다녀도 너댓 번 정도만 할 수가 있는데 날이 밝기 전에
옮겨다 주어야하기에 아줌마는 날이 밝는 것이 야속하다고 했다…….
맨몸도 움직이기가 힘든 지형이다 보니 낚시 가방과 도시락 통만 들고 가서는
거기서 부터는 밑밥통도 직접 옮겨야 했다. 등대 턱에서 부터 무거운 밑밥 통을
비탈진 내리막 돌길에 질질 끌어가며 내려가기도 힘이 들었고 고기를 잡던 못 잡던 간에
남은 밑밥을 다시 가지고 올라갈 생각은 엄두가 안 나기에 억지로라도 소모를 해야
빈 통으로 가볍게 올라가겠기에 열심히 밑밥을 퍼붓다보면 때가 맞은 건지, 쏟아 붓는
밑밥에 홀려 온 고기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고생하고 돈들인 만큼 포인트가 좋은 건지
집으로 돌아가 보면 그래도 남들보다 좋은 수확물을 내놓곤 했다.
섬을 돌아다니면서 마른풀을 그러모아 몇 마리 기르는 염소 밥을 장만하던 아줌마가
고기를 몇 마리 낚았는가 물어오기도 하는데 정말, 섬사람들의 고단한 살림도 놀랍지만
그 강인한 삶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곤 했다.
여러 번이나 어두운 새벽에 등대지기가 있는 숙소 앞을 지나가도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는데
등대위에 있기 때문이겠지…….
언젠가는 배를 타고 지나가다 낚시를 하는 사람이 등대 밑에 있는 것을 보고
근처에 내렸다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그곳의 등대지기였다.
어느 섬을 가던지 양쪽 돌출부에서 바다 한가운데로 뻗어 나온 방파제 끝에는
좌록우적(左綠右赤)의 무인등대가 있다 고하는데 왜 좌록우적(왼쪽에 녹색, 오른쪽에 적색)이라고 할까?
여느 방파제에 있는 등대는 흰색과 빨간색인데 좌록우적은 등대 불빛 색깔을 말한다는 것을…….
낮에는 건축물의 도색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항로를 표시하며 항구로 들어오는
배에 탄 사람의 시선으로 봤을 때 왼쪽은 흰색 등대에 녹색 불빛, 오른쪽은
빨간색 등대이며 적색 불빛을 사용하니 좌록우적이 맞는다고 한다.
등대의 도색과 불빛은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규칙이라고 한다.
항만이나 방파제에 있는 등대는 항구의 위치와 입출항 경계를 표시하며 입항할 때는
흰색 등대의 오른쪽으로, 빨간색 등대의 왼쪽으로 운항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간혹 노란색 등대를 볼 수 있는데 주변에 암초 등 위험물이 있음을 경고하는 등대는
일종의 신호등으로 해상 항로표지기에 등대지기의 공식 직함도 ‘항로표지원’이다.
만재도 에도 앞쪽에 있는 간출 여에 수상등대를 하나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잠시 중단했는데
9월 달부터 공사를 재개한다고 한다.
보령앞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홍서, 하홍서나, 복사초 같은 형태로 완공되면 은근슬쩍 다가가서
줄을 걸어 배를 붙들어 매어 놓고 낚시를 한번 해보면 좋겠다고 하니 경록이가 가능할거라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면허증을 따서 선장이 됐다고 했던가?
이틀 밤낚시를 하고 아침배로 먼저 나가야하는 심 실장(室長)과 짐 정리를 하고
기다렸지만 날이 훤하게 밝았어도 배가 오지를 않았다.......
몇 마리 안 되는 고기 손질과 육중한 체구에 베어든 육수에 찌든 몸뚱이도 대충 씻어야 하고
절대로 한 끼도 거를 수 없는 아침밥도 한술 떠넣어야하는데 늦는다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는데
주 사장님이 작명한 연인바위를 막 돌아오는 배가 보이자 반가웠나 보다.
“우이~쒸~!!! 왜 이렇게 늦는 거유? 짜증나고 바쁘게 생겼네……. ”
“낚시는 안됐을 것 같고, 빈손으로 손님을 보낼 수가 없기에 삼치라도 몇 마리 잡다보니 늦었지요~~~”
경록이의 재치 있는 대꾸에 심 실장(室長)의 입이 그만 헤~~ 벌어지고 말았다.
.
'사진이 담긴 조행기 > 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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