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아듀~ 2018년 만재도 3.(만재도의 새로운 변화) by 찌매듭 2018. 12. 28. 허~~~~ 오늘은 바람방향도 바뀌었지만 파도도 어제보다 곱절은 높아진 것 같았다. 앞의 물골을 살살 넘어가선 바람이 의지될만한 곳마다 사람들을 내려주고는 큰 섬의 뒤로 돌아가 보니 첫날 내렸던 자리도 내려 보기가 쉽지가 않을 것같기에 건너편의 동쪽자락으로 내리고 보니 편하기는 하고 바람에 의지는 되겠지만 물방향이 어지러운 곳이고 한 여름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낚시를 해도 심심하지 않을 자리지만 몇 번을 내렸어도 겨울에는 재미가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끝자락의 깊은 곳을 공략해보면 맑은 물색을 피해 멀리 있을 고기를 만날 수도 있을 테니 8미터쯤에 수심을 맞추곤 건너편을 보니 뜰채를 내리고 있었는데 크기를 알 수없는 감성돔 한 마리를 막 떠내고 있는 것이 보였기에 집중을 해보았지만 맹렬하게 덤벼드는 노래미 등살에 난감해 하고 있었지만 노래미는 감성돔의 척후병 노릇을 한다니 수심을 줄여가며 버텨볼밖에....... 물방향이 완전히 뒤로 바뀌었기에 채비가 머물지를 못하는 뒤쪽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는데 물이 절반 넘게 줄어들었으니 바늘이 바닥에 자꾸 걸리고 배도 고프기에 도시락이나 먹어치워야겠다. 따뜻한 국물도 곁들이면 좋겠기에 라면 한 봉지를 꺼내려고 등가방속에 손을 넣었더니 먼저 걸려 나온 것이 된장라면이었다. (국물이 끝내준다는 우동을 꺼내려했는데, 이런……. 된장~!!!!!!! -_-;; )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눈길이 간 돌 틈새를 보니 어떤 못된 것이 다녀갔기에 케미라이트 빈 봉지며 폐건전지를 쑤셔 박아놓았던데 이렇게 수심이 얕은 곳에서 무슨 욕심을 부려보겠다고 줄줄이 달린 열기카드채비까지 가져왔었을까?! 남은 평생을 입질도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것이 분명 할 텐데..... 이른 점심도시락을 먹어 치우 고나니 젊은 선장이 달려왔는데 뱃전에 서있던 사람이 손짓을 하면서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기에 전화를 해보니 바람이 터질 것 같기에 뒤쪽으로 모두 자리를 옮겨야겠으니 준비를 하라고 한다. 서둘러서 짐을 꾸려 배에 오르니 갈만한 곳도 없으니 뒤쪽의 아무 곳에나 내려서 남은 시간을 보내라고 하니 동쪽자락에서 서쪽자락으로 자리만 옮긴 셈이었는데 물이 잔뜩 졸아든 서쪽 자락에서는 여름철이라면 몰라도 겨울철의 이시간대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으니 이리저리 내년 여름을 위하여 너무도 잘 아는 자리이긴 하지만 다시 한 번 물속들을 더짚어보다가 올라갈 수 있는데 까지 올라보는 암벽등반도 해보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외지에서 몰려온 선상낚시 배들이 여러 척이 몰려와서는 다른 배가 더듬고 지나간 자리를 또 더듬고 다니니 무슨 고기가 남아날까 모르겠다……. 먼 곳을 바라보니 어제보다 한결 물결이 높아졌기에 일찌감치 짐을 꾸려놓고 있다가 일찍 온 배에 올랐는데 바람에 의지가 되는 녹섬 안쪽에까지 사람들이 들어 가있었고 모두들 짐들을 꾸려놓고 있었다. 섬 식구들은 내일부터는 날씨가 나빠진다고 배터에서 그물을 걷어서 챙기고 있었고 이르게 들어온 날이기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전화가 오래도록 울려대고 있기에 목포의 아이들이 전화를 하는가보다고 받아들고 보니 예전에 인천에서 돌김을 주문했었다는 손님이었다. 아직 돌김이 나오지 않은 모양이니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해보라고 끊으려니 누구냐며 되묻기에 섬에 낚시를 온 손님이라고 하니 그러냐며 끊더니만 잠시 후에 다시 집 전화가 울렸고 조금 전의 그 손님이었다. “낚시를 오셨다니 걱정이 되서 전화를 다시 드렸는데요?! 어디선가 지진이 났데요~~~ 쓰나미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조심히 낚시를 하시라고 다시 전화를 했어요~~~~“ “아~~ 네~~~ 걱정해 줘서 고맙습니다~~ 조심할게요~~~!! ” (가만있어라~~~!!!! 목소리가 좀 보이 쉬한 것이 어딘가가 멋져 보이기도 할 것 같은데? 인천이라고? 서울에서 멀지도 않고..... 고기도 못 잡았는데 나중에 걸 작업이라도??? ㅎㅎㅎ ) (집 전화에 찍힌 인천녀의 전화번호를 스마트 폰에 입력해 놓으면 카톡정보가 뜰 테니 자연스럽게 ㅎㅎㅎㅎ) (그런데 절에 있는 사람인지 카톡 정보가 안 뜨니 별일이네.... -_-;; ) 바림방향이 북동풍으로 바뀌었으니 내일은 서쪽으로 갈수밖에 없을 테니 수심이 얕은 곳으로 갈 테니 찌도 대폭 부력이 낮은 것으로 골라보았는데 장만한지 20년도 지난 케케묵은 찌가 손끝에 걸렸으니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이슬냄새도 안 맡고 만재 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일찍 잠을 청했고 도시락도 필요 없는 날이기에 이른 아침밥을 억지로라도 한술 뜨고는 아저씨는 산 너머로 낚시를 갔다. 동쪽에서 부는 바람만 아니면 아무도 찾지 않는 오른편의 째진 자리에서 흘려보면 감성돔이 물어 주는 자리가 가장 좋은 곳이겠는데 바람에 밀려서라도 왼쪽으로 가야하는 날이다. 선임자였던 주 사장님이 개척한 낮은 자리가 보이기에 두 시간 후면 물방향이 잡힐 테니 제대로 된 감성돔 세 마리면 만족하겠기에 손짓을 했고 내려 보니 물이 내려가고 있었으니 안전하게 오전시간을 보낼 수가 있겠고 물방향이 잡히기만 하면 고기구경도 분명히 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방향이 잡히기 전이니 심심풀이로 왼쪽을 더듬어서 우럭과 노래미를 몇 마리 낚았고 열기가 득시글한 자리다 보니 또 몇 마리를 낚아보다가 뒤쪽의 절벽을 올라가 보았는데 밤낚시를 하면서 밤에 물 시간을 잘못 맞추면 혼쭐이 나기도 하기에 내년 여름에 이른 물시간대에 내리게 된다면 로프도 내려 보고 발을 딛고 올라탈 틈새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면서 두어 번을 오르락 거리기도 했는데 서 씨 아저씨가 말을 안 듣고 건성으로 넘겨들었다가 두 번이나 혼쭐이 난 자리였다. 오늘은 ‘인낚’에서 건네받은 접이식 살림망을 꼭 사용해 봐야 할 텐데 적당히 조용한 홈통도 있으니 아주 아주, 사용이 딱인 날이 분명했다……. 두어 시간 만에 물방향이 제대로 잡히기 시작하여 뜻대로 되는 날이라며 푸짐하게 밑밥을 퍼 넣고는 채비를 담가보니 정확하게 방향이 잡혔다. 어느 정도까지 흘러가는 것을 확인하고 두 번째의 미끼를 끼우려는데 젊은 선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기를 잡았는지 물으려는지, 오늘 나가는 배가 오후 두시쯤이라는 연락이겠지?! “고기를 잡았습니까요?!” “아니?! 이제 곧 잡으려고~~~~~ -,,- ” “아무래도 파도가 심상치가 않아서 고생을 안 하려면 열한시에 출발을 한 다네요?! 사람들을 걷으려고 지금 나가는 중이니 준비하세요~~~~“ “이런~~!@#$%^&*()_)+!@#$%^&*( ” 산 너머에서 낚시를 하는 아저씨에게도 연락을 해줘야겠다. “이러저러해서 일찍 배가 나간다니 물칸에 살려둔 내고기도 꺼내주고 짐도 챙겨줘야겠소~~~” 떠나려는 날의 하늘색은 저리도 푸르건만 마음속엔 먹구름이 끼었다. 노 선장이 커다란 살림망에 담아둔 고기를 건네주었기에 기포기를 튼 물통으로 옮겨 담았고 말린 고기며 반찬거리 고기들도 챙겨 주었다. 오늘은 가거초로 선상낚시를 안 갔는지 만재낚시점의 빨간 배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바로 짐을 실을 수가 있었는데 배의 앞전에는 커다란 물탱크가 두개가 실려 있었다. 이틀간 낚시를 한 낚시점주와 총무가 낚은 고기를 싣고 갈 물통이라고 했다. 이틀 동안 낚아서 살려둔 감성돔이 서른 마리나 됐고 어젯밤에는 밤낚시를 했다던데 관여한다는 광주횟집에 고기가 떨어진 모양이지? 수심을 1미터쯤 주고는 지렁이 미끼를 푸짐하게 끼워선, 밑밥 한 짝을 쉼 없이 뿌려대어 고기를 띄워 올려서 물탱크에 가득 채울 고기를 낚았다는데 겨울에 이런 맑은 물색이 있는 날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았지만 운 좋게 이런 날을 만났기에 밤을 새웠다나보다. 열두시쯤에 만재 도를 떠난 배는 높아진 파도에 제 속력을 내지 못하고 엉기듯이 세 시간이나 걸려서야 서망항에 도착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손님을 내려 주고는 목포로 가버렸다.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큰 사고를 방지하지 못했던 제구실을 못한 건물이 버젓하게 서 있는 것이 보였고 언제 또 다시 서망항을 찾아볼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잠시 팽목항에 들러서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가엾은 어린 넋들을 생각해 보곤 오랜만에 둘러보는 진돗길에 지루함을 잊었고 늦지 않은 시간에 집에 도착할 수가 있었기에 싱싱한 회한접시를 떠내어 딸아이와 마나님에게 맛보일 수가 있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된 것이 섭섭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 것이 매번 그렇지만 낚시를 간 첫날은 설레고 마지막 날은 아쉽기 때문이다. 만재 도를 전문적으로 다닌다는 낚시점도 선상 낚시 쪽으로 주력을 하는 눈치고 밤낚시를 위주로 하는 여름 낚시는 편한 선상낚시와 다른 장르의 낚시개발로 손님이 점점 줄어든 모양이다. 밤을 새우는 고단함과 많은 준비가 어렵고 힘들며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가 않기에 점차 마니아층도 줄어들고 있다. 또 만재 도를 개발하겠다는 안건이 제시되었던데 여객선이 접안할 수 있는 시설과 몇 년간의 공사기간으로 외지인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어떠한 모습으로 바뀔지 알 수가 없게 돼 버렸다. 과연 몇 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예전에 한 선임자가 만재 도에는 절대로 방파제가 생기면 안 된다고 섬을 떠나면서 절대로 변하지 말고 자연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어주기를 간구했었는데 삼십년도 안 되어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았다……. 곧 닥쳐올 새로운 변화로 멀리 떨어져 있는 갯바위까지는 변화가 없겠지만 방파제 확장공사며 새로운 사업으로 인한 번잡함과 작업을 하기위한 외지인들의 빈번한 출입과 2~3년간의 섬마을 파괴 작업(?)과 새로운 부수입에 몇 명의 낚시인은 안중에도 없는 시기도 있을 것이다. 멀리 떨어진 갯바위까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텐데도 새로 전입한 사람이 고무보트를 타고 휘젓는다며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던데...... 해마다 이른 여름철에 찾아가 보려면 섬마을에서 미역공동작업을 하노라고 7월말이나 되어야 배를 태워준다니 무더위에 갯바위에서 허덕여야했고 가을철에는 손님이 없다고 갯바위에 태워다 주기를 꺼려하기에 두 몫의 선비를 주마고 사정을 해야 하고 겨울에는 짧은 타이밍을 맞추어 손님들이 다투어 몰려들기에 조용한 낚시를 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추자도가 한창, 낚시의 메카로 떠올라 있었던 예전에는 서울에서 첫 번째 날틀을 타고 탐라에 도착하여 9시경에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면 12시쯤에는 어느 갯바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울 수가 있었고 떠나오는 날에는 충분히 오전과 낮 시간대의 낚시를 끝내고 오후 네 시 경에 목포를 돌아오는 여객선을 타고 탐라를 거쳐서 집에 도착하면 늦지 않은 저녁시간에 도착하여 얼음에 채워온 감성돔 회맛을 볼 수가 있었는데 이쪽 신안 권에서는 태도가 비슷한 조건인 것 같았다. 8시경에 목포항을 출발하면 11시쯤이면 도착하여 오후낚시를 할 수가 있을게고 마지막 날에는 가거도와 만재 도를 들러 오는 여객선이 오후 세시 경에 도착할테니 여유 있게 오전 낮, 낚시를 마칠 수가 있을 테니 제멋대로 다니는 낚시점 배에 매달릴 필요도 없고 칠흑 같은 어두운 새벽에 10톤도 안 되는 낚시점 배를 타고 안전 불감증을 안고 불안스런 낚시를 다닐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이제는 태도로 배와 민박을 같이 하는 곳을 찾아봐야겠다. 태도를 마지막으로 다녀온 지가 오래되긴 했지만 예전에 십여 번을 다녀봤었으니 낯설지도 않을 터이다. 처음 태도에서 만났던 김 선장은 이제 일을 그만 두었다하고 새로운 민박집이 생겼다하고 중태도 에도 새집이 생겼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낚시꾼들에게 악명 높았던 하태도 에도 친절한 다른집이 생겼다니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 조용하고 친절한 집을 찾아봐야겠는데 거꾸로 된 행보가 우습기도 하다. 집 근처에 전 선생이라는 멋진 낚시인이 한 분 있었는데 시간과 경제면에서도 여유가 있는 분이 태도에서 오래도록 낚시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태도의 간여에서 서로 마주보고 사흘간 낚시를 하게 되었는데 누군가 했더니 집 근처에 있는 전 선생이었다. 낚시하는 모습을 간간히 건너다보면서 비슷한 스타일에 놀랐고 잡아도 그만, 못 잡아도 그만인 여유스러움에 약간, 껄끄러움을 느꼈는데 집근처의 사우나에서 마주친 날, 웃통을 벗어젖힌 툭 튀어 나온 가슴의 근육과 왕자가 새겨진 빨래판 같은 배를 보곤 주눅이 들어 버렸는데 숱이 없는 빛나는 머리를 보고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면 좀, 비겁한 거겠지??? ^^;; 하루는 전 선생이 태도의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시커먼 배가 한 척 다가와서는 가거도 에서 왔다며 짐을 꾸려 오르시어 가거도 구경을 가시자는 초대에 가거 도를 가게 되었는데 식사 대접을 하면서 입에 맞으시는가를 물어보곤, 큰방 하나와 밑밥이며 선비며 모든 편의 시설 등을 무료로 제공할 터이니 이곳에서 낚시인생을 열어보시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기에 선생이 쾌히 승낙을 하곤 가거도로 짐을 옮겨 갔는데 모든 제공이 무료라지만 선생의 성격상 공짜를 탐하는 분이 아니기에 그 이상의 베풂으로 존경을 받았다...... 전 선생과 만날 수 있었던 집 근처의 사우나가 헐리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기에 마지막 만남이 오래 되었는데 어디에 계신지 궁금하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의 남은 시간이 정리로 바쁜 날만 남았는데 불경기의 여파로 모임의 숫자도 절반 넘게 줄었고 사람들 연락도 뚝 끊기었다. 여수와 통영으로 갈치낚시를 다녔다는 정 사장이 탐라로의 갈치낚시 일정에 꼭 끼어달라는 사정을 여러 번 했었기에 집근처의 낚시점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채비와 방법에 대한 1차 만남이 있었는데 구십년 대부터 거문도와 추자도, 외연 도에서 낚시를 하면서 자주 보았지만 서너 살 위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가 십년이나 연상이라기에 깜짝 놀랐다. 앞으로라도 깍듯이 모시겠다며 후식으로 고급 진 커피를 대접하기로 하고 자리를 옮겨가선 전동 릴에 감아 놓은 8호 합사 줄은 좀 약한듯하니 12호 합사 줄을 감기를 권하니 깜짝 놀라시던데 단차며 목줄의 길이와 굵기도 통영 권과는 너무도 다르다며 의문을 갖는 것 같았고 건너편의 장갑공장에 들러서 백 켤레가 담긴 장갑보따리를 사주셨는데 다섯 번은 사용할 분량이 확보된 셈이다...... 역시 어른을 잘 모시기로 하니 자다가도 떡장갑이 생기는구나?! ^^;;;;;; 탐라의 바람 거셈이 이름이 난 것이 어제오늘에 생긴 것은 아니지만 풍랑주의보라도 또 떨어지려는지 게이트 문을 나서자마자 몸이 휘청일 정도의 바람이 달려들었다. 금년의 마지막이 될 이틀짜리 갈치낚시를 정 사장님과 가게 되었는데 일기예보와는 달리 높은 파도로 멀미기운이 새나왔고, 날틀의 연착으로 인한 점심식사시간이 부족했기에 김밥 몇 알을 먹었던 것이 또 얹쳤었나보다. 후배가 추첨을 잘했기에 1번 자리에 올랐지만 컨디션이 난조인 날에 바이킹을 탄 격이니 몇 번이나 던져보고는 선실 안으로 들어가 누워있다 나가 보기를 반복하다가 종내는 토악질과 현기증에 서른 마리나 잡아놓고는 지쳐서 쓰러지고 말았다. 사우나에서 더운물로 위장을 덥히고 약국에서 몇 가지 약을 사먹고, 멀미에 효과가 있다는 전복죽으로 다음날의 점심을 채우고 방파제를 벗어나니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장판이었지만 후배가 뽑아든 번호는 최악의 자리였다. 걸림이 심한 자리하나는 아예 비워두었기에 그 옆에 자리를 잡고는 혹시나 지나가는 한치 떼라도 만나볼까고 너울거리는 인터라인 대까지 한대를 더 펴놓았지만 손가락만한 두 마리에 애기들을 떼버리고 갈치채비를 덧달아서 두 대의 전동 릴을 불이 나도록 가동하여 두 박스를 채웠지만 정 사장님에게 양보한 앞자리에서였더라면 곱절도 더 잡았을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추자를 다녀온 것이 십오 년도 전이기에 추자에서 낚시꾼을 위한 민박집을 했었다는 갈치낚시배의 선주를 알 수는 없었지만 추자도의 하향세에 민박집을 정리하고 탐라로 나와서 갈치 배를 두 척 지어 운영하게 되었다는 과격한 운동이 필요할 선주에게 추자의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는데 추자의 야인은 어찌 지내고 있을까? 그도 내가 보고플지 모르겠고 나도 그가 보고프다……. 이제는 제법 갈치낚시에 익숙해졌는지 악연으로 만난 후배는 자작으로 채비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예전에 낚시를 해본 적이 있다지만 기초도 제대로 안되어 있던 엉망인 수준이었기에 만날 적마다 목이 쉬도록 혼자서만 떠들다가 지쳐서 포기를 한 적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또 저렇게도 되는구나........ 이어령 교수 부부가 학기말 시험 평가를 마친 후 학생들의 실력이 형편없는 것을 보고, “우리가 정성 들여 가르친 결과가 이 정도라면 우리가 그동안 가르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인가?” 한탄했다고 한다. 교수 부부는 옆에서 듣고 있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한마디 하는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교수님, 그런 말씀 마세요. 콩나물을 길러보면 매일 물을 줘도 물이 밑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콩나물은 자라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마음은 씨 뿌리는 농부의 마음이지만 어느 계절에 꽃피우게 될지, 어떤 꽃을 피우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탐라라고 통영이나 여수와 비슷하겠지 별것이 있겠느냐며 건성스런 마음을 보이던 정 사장님과 그 일행이 얼굴에 불콰한 홍조를 올리면서 씨알이며 마릿수며 모든 것에 만족, 대만족을 한다며 감사함을 표시해왔고 내년부터는 귀찮도록 따라다니겠다고 하는데 (이거, 이거, 이거........ 귀신을 불러들이기는 쉬워도 내쫓기는 어렵다는 짝은 아니겠지???!!! ^^;;;;;) 집을 나서서 구름이 겹치는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다가, 잠간, 무료한 시간을 만나면 바다 끝을 보기도 하는데 그 멀리는 하늘과 물이 맞닿았을까? 그 곳을 가보면 그 곳도 하늘이 높고 또 다시 끝이 없는 바다가 펼쳐질 테니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이 바다와 하늘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곳이 있기를 바랐고 나 또한 그곳에 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지난해의 긴 겨울을 버텼었고 짧은 봄이 지루하다 느끼면서 여름이 오기를 기다렸고 가을이 가버렸고 또 새로운 겨울이 왔다. 과거는 쏜살같이 지나갔고 현재는 지나가고 있으며 미래는 주춤주춤 다가오고 있는 시간의 속도가 몇 겹이라더니 허울을 벗을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여행이란 것은 내가 가보았거나 아직 가보지 않은 곳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살피고 배우며 호기심을 채우는 지적활동인데 그 모든 것이 그 곳의 자연에 의해서 결정되기에 지형과 기후, 위치, 산물 같은걸 통 털어서 인문지리라고도 한다. 삶의 방식이 지리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인데 내년에는 또 새로운 시작되기를 갈망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울려 퍼지던 크리스마스 캐럴도 장식도 부쩍 줄어든 느낌이지만 한해를 정리하면서 이맘때면 꼭 해보는 것이 새해에는 꼭 어떠어떠한 것을 해보겠다는 맹세인데 대부분이 작심삼일로 끝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맹세나 다짐은 해볼 만한 것이다. 어려웠던 가운데, 모두가 최선을 다한 삶을 보낸 해였기에 서로를 위로하며 남은 시간 잘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2019년 새해에도 희망을 품고 서로가 함께 잘 살아가는 건강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Happy, New Year~!!!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낚시의 덫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사진이 담긴 조행기 > 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 이 여름이 가기전에 다녀온 만재도..... (0) 2019.09.15 1.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다녀온 만재도 (차가운 유혹에 걸려든 초행자와의 아름다운 동행…….) (0) 2019.09.14 아듀~ 2018년 만재도 2. (몇 번의 양보가 후회스러웠던 둘쨋날은 시린여에서....) (0) 2018.12.26 아듀~! 2018년 만재도1 (오랜만에 가본 진도길의 서망항에서) (0) 2018.12.26 3. 2018년 만재도의 가을 ( 7 미터의 기적 ) (0) 2018.10.30 관련글 2. 이 여름이 가기전에 다녀온 만재도..... 1.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다녀온 만재도 (차가운 유혹에 걸려든 초행자와의 아름다운 동행…….) 아듀~ 2018년 만재도 2. (몇 번의 양보가 후회스러웠던 둘쨋날은 시린여에서....) 아듀~! 2018년 만재도1 (오랜만에 가본 진도길의 서망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