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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2017년 만재도의 여름 1. (네 차례의 미룸 끝에 출발~~~)

by 찌매듭 2017. 8. 26.

매해마다 삭막한 민낯을 보이던 겨울이 끝나면 나타나는 것이 봄이라는데

늘 그래왔듯이 왔는가싶으면 가버리는 것이 또 봄이었던가?

 

내려다보이는 아랫집 마당의 껑충한 목련나무에서 핀 흰 꽃도

이틀이나 본 것 같았는데 어느새 져버렸고 벚꽃도 스러져 버리고 말았다.

 

 

매일같이 만보 이상을 걸어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약속을 지키려고

무던히 애를 쓴 보람이 있던 달에는 하루도 빠짐이 없었음에 만족해했지만,

망막을 손질한 이후로는 신체의 자이로컴퍼스에 이상이 생겼는지

신발 바닥에 땅바닥이 치받는 감각이 부드럽지가 않은 것에 신경이 쓰인다.…….

 

가로수 길의 느티나무 잎사귀가 하루 만에 손톱만큼 커졌다고 생각하자마자

어린아이 손바닥만큼 커졌는데 어제까지, 무엇을 보고 다녔던 걸까?

 

멀리까지 꽃구경을 갈 필요가 없다며 가까운 곳에 있는

올림픽공원에서 모든 것을 만끽하는 귀차니즘에 젖어가며

혼란과 불면의 늪에 빠져 정신없이 두 달의 시간이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기를 어느 해보다 더 기다렸을까......  

 

바다구경을 하려면 또 얼마나 있어야할까?

 

백여 평쯤 되는 텃밭을 오가면서 체력단련을 위하여 하루에 만보이상을 걷기위해

집근처의 올림픽공원이라도 다녀오는 길이,

갯바위에서의 밤새 버팀을 무난하게 해내기 위함임을 모르는

마나님은 오늘도 보폭을 맞추어 따라 나선다…….

 

어서 겨울이 가고, 봄도 왔다가 가버리면, 온갖 고기가 난무하는

여름철의 밤낚시 시간이 올 것이기에 만보이상 걷기에 한 달, 두 달, 만근의 기록도 채워갔다.

 

4월에는 마땅히 볼 것도 없는 낚시쑈라지만 눈요깃거리라도 하려고

일산까지 가보았는데 누가 쏘가리 그림을 저렇게 멋지게 그려냈을까?

돌아가는 회전초밥접시에 올라앉은 각양각색의 루어가 입맛을 돋운다.

 

 

 

거동이 불편해진 노모를 집에서 십년을 모시다가 결국은 고집을 꺾기로 하고

집에서 멀지않은 요양원으로 모신지도 1년이 넘었는데 가끔,

큰 병원을 가야하는 일이 생기면 전문차량을 이용해보기도 하는데

사이렌을 울려대는 차를 보기만 하다가 직접타보니 또 이렇구먼?

 

노모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결심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줄 알았었는데

막상 가려고 하니 쉽게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백세 시대라고하니 그만큼 이용자도 늘었겠기에 장사가 되는지 관내(管內)에만도

백 곳도 넘게 생겼다는데 관계자의 말로는 1등급을 받은 곳은 불과

서너 곳에 불과하고, 2~3등급을 줄만한 곳도 열 곳이 채 안되고 대부분이

열악한 상태이니 직접 방문하여 살펴보고 결정하라는 조언을 받았기에

어느 곳을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문만 열어보고도 깜짝 놀라, 돌아 선 곳도 많았기에

시설을 이용해본 경험자나 전문가의 귀띔을 받아 꼼꼼하게 찾아보다가

어느 성당에서 운영하다는 새로 생긴 시설에 가보니 규모가 큰 곳이었으나

근무자가 한 명뿐이기에 의아했는데 빈자리가 없으니 접수만 해놓고

기약 없이 기다려야한다며 이미, 대기자가 많아 차례가 오려면 두어 해는 걸린다기에

실망을 하고 돌아 나오다가 또 새로 생긴 것 같은 요양원이 눈에 뜨였는데

이곳도 제법 규모가 크고 각층마다 간병인이며 간호조무사가 배치되어있기에

마음에 들었지만 여기도 대기자가 많아 무한정 기다려야한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곳은 백여 군데에서 서너 곳뿐이고 열악한 환경이

그대로 눈에 보이는 곳으로는 도저히 모실 수가 없기에

애를 태우고 있다가 사방으로 알아보며 애를 쓴 보람이 있었던지

갑작이 마음에 들어 했던 곳에서 연락이 왔기에 무사히 모실 수가 있었다.

 

집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로, 네 정거장 거리에 있기에 교통도 편했고

내가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식구 중 누구라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고

잘 적응해 가시기에 더욱 다행이었다. 

 

  

4월에는 집안에 남아있는 어른 한분이 돌아가셨기에 몇 일간 자리를 비워야했는데

노모에겐 충격이 클까하여 알리지를 않았지만 손녀에게

몇 마디를 건네 보곤 단번에 눈치를 채신 것 같았다.

 

일제 강점기와, 6.25동란을 같이 겪었고 격동의 시대와 보릿고개며

지금세대들은 전혀 알 수 없을, 각별한 정을 나눈 가까운 친척이다 보니

충격이 크겠기에 쉬쉬 넘어갔는데 어떻게 느낌으로 알았는지 갑작이 근황을 물으며

나를 찾기에 대신 자리를 지키던 딸아이가 얼떨결에 이야기를 했다는데

그리됐는가고 묻고는 아무 소리도 안하시며 담담해 하시기에 오히려 이상했다던가?!

 

 

삼오일 까지 지내놓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고종동생이 밤늦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이제는 형과 자기만 남았다며 눈물을 쏟아내며 고기를 잡아오면 혼자만 먹지 말고

가끔 좀 보내달라며, 잊지 않고 자주 연락하마고 전화를 끊었는데

 

날 태운 완행은 이제 겨우 역() 하나 지나왔다고만 생각했는데…….

저 놈이, 갑작이 내 정신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5월 중순으로 들어서니 갈치낚시라도 갈수 있게끔 하늘과 바닷길이

푸르고 편안하게 열렸고, 어제그제 연일 씨알 좋은 갈치들이 마릿수로 낚였다며

목청을 높인 선주가 오늘은 대갈치를 찾아서 우도 골창 속으로 들어가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자정이 되도록 한 마리를 구경했고 앞자리를 보아도 갈치의 흔적도 보기가 어려웠으니

그 많던 갈치가 다 어디로 갔다는 걸까?

 

갈치대신 고등어살점이 양념을 뒤집어쓰고 간식으로 나왔고,

닻을 뽑아 이동을 하지 않고 그대로 버틴 것이 잘못되었나본데 어제와 그제,

호황을 보인 자리로 가보기에는 이미 시간이 늦어 버렸기에 할 수 없이 버티다가

새벽 세시가 되어서야 낱마리의 갈치가 줄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갈치낚시에 빠져서 전동 릴이며 장비일체를 장만한 친구 놈에게

가끔씩 던져주어 이십 여 마리를 채워 주었고, 삼십 마리의 갈치를 집에 가져가니

별난 일이라며 이제는 낚시도 접어야하는 것 아니냐며 못된 마나님이

혀를 쏙, 내밀었지만 씨알은 제법 굵었기에 손녀의 입맛을 다셔줄 생각에

손을 빨리 놀리는 것을 보다가 안마 의자 속에 들어앉아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낼모레면 쏘가리 금어기가 시작되는 날이구나?

날씨도 좋으니 강원도 산길을 안 넘어 가볼 수가 없다.

 

배는 있지만 두 구비를 돌아선 물속의 돌덩이들이 들어앉아있는 곳으로 태워다줄 사람이 안 보인다.

여러 번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는데 무슨 일이 생겼을까?

 

물가근처를 돌아보다가 옆 골짜기에도 배를 가진 어부가 있다는 생각이 나서

넘어가 보았지만 가로막아 놓은 차단봉은 그렇다 해도 이쪽도 배만 있고 주인은 어디를 갔을까?

 

이럴 줄 알았다면 건너편으로 가서 모터보트를 타고 골짜기 깊숙이 들어가 볼 건데......

 

다시 산을 넘어 건너편으로 가자면 세 시간은 족히 걸릴 멀리 돌아가야 하는

먼 길이기에 안쪽 골짜기로 가서 두릅이나 한 움큼 꺾고, 취나물이나 먹을 만큼 취해얄라나보다…….

 

……. 내가 쏘가리를 못 잡고 넘어가는 봄날이 다 있다니..... -_-::

 

 

 

 

 

 

가거 도며 추자도며 함께 갯바위를 누볐던 후배가 병풍도 에서의 낚시를 마지막으로

모습을 안보인지 십년 만에 몇 년 전에 갈치 배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1년이면 갈치낚시를

70번이나 간다니 갈치낚시배들을 훤히 꿰뚫어보는가 보다....

 

좋은 선장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기에 그 배를 타보기 한 것이 5월 하순경이었다.

 

우도골창으로 향하는 배의 선장은 유순하고 점잖았으나 새로 왔다는 사무장은

게으르고 눈치만 보는 꾀보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기에 초보손님들은 오늘은

별로 도움을 못 받고 스스로 줄엉킴을 해결을 해야 할 날일게다.....

 

밤이 깊기도 전에 쿨러를 채워놓고, 미끼를 훑어대는 빈 바늘이 몇 번 있었기에

한치 채비를 내려 보기로 했는데 게으른 사무장이 지나가면서 유월도 안됐는데

무슨 한치를 잡겠는가고 코웃음을 쳤다.

 

 

예민한 인터라인대의 끝이 갈치입질과는 달리 시원하게 빨려 들어갔고

두 마리, 세 마리씩의 한치가 걸려 올라와 삼십 여 마리를 잡아 놓으니

모두들 몰려와서 한치가 벌써 나온다며 부러워했는데 별다른 일이 없기에

하루 더 해보기로 하고 다음날 또 배에 오르니 한치 채비를

두 틀이나 벌려놓고 있는 것은 게을렀던 사무장이었다......

 

어디서 흘러왔는지 해초덩이가 밀려들어와 어제보다 낚시가 힘들었지만

한치가 본격적으로 붙었는지 마릿수도 어제의 곱절이었기에 밤에는

더운물을 뒤집어쓴 한치가 먹물에 버무려져 통째썰기로 접시에 올라왔는데

게으른 사무장이 오랜만에 제할 일을 한 셈이겠지?!

 

 

개인적인 일에 큰 도움을 준. 세무사에게도 한 박스, 한의사에게도 한 박스를 보내고도

두 박스의 갈치상자가 남았기에 주변에 골고루 나누어 주고 한치 만큼은 잘 손질하여

냉동고에 넣었으니 딸아이가 두고두고 생각날 적마다 꺼내먹을게다.....

 

 

둥둥 떠다니는 해초덩이를 피하여 후배는 백령도로 우럭 잡이를 떠났고

전 현직 은행지점장들의 독촉에 또 한 번 갈치낚시를 다녀오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한치 만을 잔뜩 낚아봐야겠군?

 

이미 한치가 붙었다는 소문이 퍼졌기에 전날 왔다는 심사장은 어제도

수백 마리를 올렸다며 오늘도 한치 채비만을 벌려 놨는데 채비 한 벌에

달아맨 애기가 스무 개라나?????

 

소리 없이 몰려오는 해초덩이에 몇 번이나 채비가 걸려서 밀려 나갔는데

물위까지 올라온 채비에 한치가 달렸다가 우두둑하니 떨어져 나가니

속이 상했는데 그래도 이것저것 건져 올리다 보니 한 쿨러씩은 채웠기에

만족해하는 모습들에 안심이 되었다.

 

그나저나 낚시만 다녀오면 왜, 포동이가 혼자 집을 보고 있는걸까?

 

 

 

 

 

 

 

 

 

만재도를 다녀오기전에 오래전에 약속했었던 외연도를 먼저 다녀와야했다.

농어를 담아 오려니 큰 쿨러를 꺼내어 말끔하게 씻어 말려봤고 다녀오기전에 급히, 텃밭에 심은 감자도 캐냈다.

 

외연도를 다녀오니 만재도의 민박집 아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줌마가 물일을 하다가 큰 홍합 밭을 만났기에 통채로 한 박스를 보냈으니

숯불을 피워서 이슬 한잔 시원하게 하라는데, 만재도 시즌이 열릴 때가 되었구나?!

 

노선장의 아들이 첫 그물을 내렸다며 열기 한 박스를 보내온 것이 그 다음 주였다.

 

 

금년부터는 복중(伏中)을 피하여 만재도를 일찍 다녀와야겠다.

6월 중순이면 어떨까?

 

노선장과 통화를 해보니 금년에는 윤달이 들어서 다른 해보다 수온이

더디 오른다며 7월 달이나 돼야 하지 않겠냐며 말끝을 흐렸는데

7월 초순의 통화에서는 수온도 오르지를 않았고, 물색이 흐리다며

좀 더, 기다렸다가 연락을 하면 오라며 말렸다.

 

 

작은 아저씨도 해마다 이맘때면 마을공동으로 미역채취를 하는 바쁜 기간이니

끝나면 오는 것이 어떨 까고 했는데, , 끝난다는 작업은 흐린 날씨와 너울로

쉽게 끝이 안 난다며 며칠만 더, 며칠만 더, 끌다가 7월도 가버리고 말았는데

이 영감탱이가 자기 생일이 8월초순경이니 핑계 김에 거하게 술판을 벌려보려고 하는 건 아닐까?

손님핑계를 대면 아줌마도 너그럽게 넘어가긴 하겠지?

 

 

오래전부터 섬마을에서는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보다 더 발전된 부양책을

슬기롭게 행하고 있었는데, 미역 철이 되면 집집마다 한사람씩 나와서

마을공동으로 미역 채취 작업을 해왔었다.

 

한사람씩이라지만 대부분의 집에 한 두 사람만 있다 보니 두 사람이 있는 집은

교대로 한 사람씩 나와서 거들기만 하면 말린 미역을 똑같이 나누었고, 좀 더

일을 많이 한 사람이나 배를 제공한 사람은 조금 더 차례가 가기도 하는데

열뭍 정도씩 차례가 가면 한 집 당, 삼백만원 정도의 수입이 생기는 셈이니

섬 생활이라는 것이 소금과 약간의 기름과 쌀만 있으면 최소한 굶는 사람이 없겠기에

오래전부터 행해진 사람 살리는 방법이었다.

 

 

7월 하순경이 되어서야 미역작업이 끝이 났다며 와도 되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일기예보와는 전혀 맞지 않는 현지날씨로 또 미루다보니 8월 초순도 지나갔는데

태풍의 여파로 작은 아저씨는 쓸쓸하게 혼자만의 생일상을 받기나 했을 런지?!

 

 

본격적인 짐꾸리기에 돌입했으나 태풍의 진로가 이상하다. 

일찍도 생겼으나 게을러터진 태풍이 제자리를 맴돌면서

정신을 빼놓다간, 늦게야 움직이기 시작했기에 아무래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

또 눌러 앉았고, 예상치도 못한 너울이 연일 있다며 오지 말라는 연락에

꾸려놓은 짐 보따리를 네 번이나 풀었다가 꾸리기를 반복하면서,

상할 물건이 있을까 골라내고 추려내다 보니 점점 짐 덩이는 커지고 늘어났다.

 

노선장의 아들이 평소에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쿨러 백이 낡았다며 부탁했기에

빈주머니로 가져갈 수가 없으니 또 채워가면서 무어라도 하나 더 가져가보려고

쑤셔 넣다 보니 짐의 개수도 자꾸만 늘어났고 무거워졌다.

 

 

 

 

 

 

 

 

 

 

 

 

 

작년 가을에 우연히 만났던 애잔한 눈빛의 서울 꾼이 이번에는 일찍 일정이 맞는다며

같이 가기를 청하며 자기차로 함께 움직이자고 했지만 갈 적에야 어찌저찌

짐 덩이들을 한 차에 실어본다지만, 고기를 잡으면 늘어날 스치로폼박스는

어디에 싣고 오려고 하는가하니 그도 그렀다며 물러나는 눈치였다.

 

각자의 차량으로 움직이기로 했기에 드디어 몇 번이나 미루었던 출발이

말복(末伏)도 지나서였다.

 

말복 지나 열흘이면 찬바람이 난다했는데 만재도로 여름철 낚시를

이리도 늦게 가보는 것이 이십년도 넘게 다닌 이래 처음인 셈이다

 

 

아침부터 거센 빗줄기가 그치지를 않았기에 마나님이 밑반찬을 챙기다가 결국 한소리를 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다음에 가지 그래도 갈 거유?”

 

만재도는 해가 쨍쨍 이라는데?!”

 

말려도 듣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것저것 담은 통들과 제때 챙겨먹으라고

영양제까지 한 뭉텅이를 더 얹었는데  햇볕을 쬐면 자연히 생기는 비타민C

피부로 흡수가 절로 될텐데도 너무 지나치게 챙겨주는데, 안 가져가면 후환이 있을까봐

공손하게 받아들고 뒤돌아서다간, 피자며 며칠간의 간식 비를 내놓고

가야할 것 아니냐는 호통에 흠칫 놀라, 주머니를 뒤져야했다.

 

다녀오면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싹이 튼 고구마 두 알을 그릇에 담아 물을 부어놓고 떠나는데 다녀오면 얼마나 자라있을까?

 

 

비가 잠시 그쳤던 어젯밤에 대부분의 짐들을 차에 미리 실어 놓았지만

남은 두어 개를 싣는 동안에도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제법 옷을 적셨는데 대낮부터 막히는 고속도로에 들어서서부터는

와이퍼가 숨 가쁘게 작동을 해야만 앞이 보일 정도였는데

천안을 지나고 군산도 지났지만도 그치지를 않아 휴게소에 들르지도 못하고 달려가다가

함평휴게소에 도착해서야 가랑비로 바뀌었기에 오그렸던 신체도 펴보고

방광도 비울수가 있었는데 노선장과의 통화에서는 예보 상에는 풍속이

13미터이지만 만재도 에서 느끼는 풍속은 6미터정도로 좋은 날씨와

쨍하는 따가운 햇볕과 푸른 하늘이 보인다며 조심해서

천천히 내려오라는 당부가 귀를 즐겁게 했다.

 

 

 

 

평소보다 목포에 일찍 도착해보기로 한 것이 신안군청에서 근무한다는

낚시꾼이 만남을 애타게 기다린다고 했기 때문인데 언젠가부터

내 개인 블로그에 인사를 해오다가 만재도에 대한 항공사진이 있다고 보내오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게 되었는데 얼마 전에 좋은 날에 휴가일이 걸렸기에

짧은 일정으로 만재 도로 달려간 그가, 어느 포인트에 내려서는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오며 자문을 구했기에 원격조정으로 이리저리 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더니 제법 재미를 보았다며 고마움을 표하더니 다음번의 출조를 위하여

지도까지 출력해 가지고 나와서 짧은 시간에 등골을 뽑아먹으려고 한다나 보다... ^^;;

 

이제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낚시취미로 1년에 하룻밤치기의 일정 서너 번으로

7~80곳의 포인트가 산재해 있는 만재 도를 알아가려면 십년도 더 걸릴 판이다 보니

다급한 마음에 용기를 내어 개인 블로그의 문을 두드렸다는데

가끔, 인사를 해오던 '네오' 라는 그 청년이었나?

 

 

일찍 도착한 낚시점에서 필요한 물품과 생미끼만을 챙겼는데

밑밥 세 짝은 이미 보름 전에 미리 넣어두었기에 노선장의 냉동 창고에서 찾으면 될 일이었다.

 

 

잠시 후에 체격이 건장한 카톡에서 본 낯익은 꾼이 낚시점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했고

시원한 커피 집으로 자리를 옮겨 출력해온 몇 장의 지도를 보면서 포인트와

낚시방법에 대한 설명의 시간이 있었지만 며칠 밤을 지샌다 해도 해결 될 일이 아니었다.

몇몇곳에는 수에즈 운하처럼 깊은 골이 파여져서 이어져 있다는 설명을 어떻게 해야할까?

 

미리 예약해 두었다는 장소로 옮겨가 민어횟점에 이슬을 곁들여가며 이어진 시간도

자정이 넘었기에 끝을 내야했는데 시간이 되면 하룻밤이라도 만재도까지 쫓아 들어와

옆자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자정시간을 넘겨서야 늦게 출발한 서울 꾼이 일행과 함께 낚시점에 도착했는데

약간의 낚시경험이 있는 장인어른을 모시고 왔다니, 확실한 알리바이가 성립되는

외박이 시작되겠지?

 

혹시라도 빠트린 물품이 있으면 챙겨보라며 뒤에서 지켜보니 어지간한 건

준비를 했다며 목줄에 달 봉돌 몇 봉과 전지 찌용 배터리 몇 알만을 집어 들었는데

이미 사전준비가 제대로 된 모양이다....

 

너무도 익숙한 목포 북항에서 돈키호테가 덤벼들었다가 혼쭐이 났을,

오늘도 돌아가는 풍차 앞으로 낚시점의 배가 다가왔고 많은 짐을 싣노라

잠시 땀을 흘리곤, 새벽 두시에 힘차게 엔진소리를 높이며 북항을 빠져 나갔는데

세 시간쯤 후에는 만재도에 도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