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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외연도+무창포

외연 도를 향하여……. 그, 시놉시스(synopsis)

by 찌매듭 2017. 7. 3.

 

 

 

 

, 내가 사는 서울에서는 바다가 이리도 멀까?

 

여수, 통영, 완도, 진도, 해남의 땅 끝에서 여서도, 추자도, 거문도,

더 먼 가거도 까지…….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이 없을까?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매번, 진도나 완도, 여수까지는 가야만 바다구경을 할 수 있는

바다가 먼, 서울하늘아래의 불쌍한 낚시꾼 신세를 면할 수 없을까 궁리 끝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영광 쪽의 송이도 나 안마군도를 뒤져보다가

위도를 찾아가 정붙일만한 선장 하나를 알게 되었고,

 

손쉬운 농어낚시를 시작으로 크지 않은 돌돔구경도 하게 되었기에

좋구나 싶어 다니는 횟수를 늘려가던 다음해에 위도페리호 침몰사건으로

많은 희생자가 생겼는데 부력재로 사용할 수 있는 쿨러와 구명조끼를

갖추었을 텐데도 낚시꾼의 희생이 많았다는 것이 의아했었는데

너무도 당황하여 천정에 달라붙기에 차라리 구명 복을 벗어 던지고

무거운 갯바위 신발도 벗었어야했다나 보다…….

안전을 위한 것이 오히려 화가 되었다니…….

 

세상을 떠난, 아는 사람들의 명단이 보일 것이 두려웠고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에 그쪽으로의 발걸음도 절로 끊기었다.

 

 

 

 

다음해 여름이 되어서는 비응도며, 십이 동 파도며 군산권의 개야 도를

찾아다니면서 마땅한 곳이 있을까 둘러보다가

돌돔이 있다는 어청 도를 찾아갔고 히프커버가 찢기어 나가는

날카로운 포인트를 다듬어 보려고 힘든 망치질에 지쳐 있을 때

건너편에 어렴풋이 보이는 외연도 라는 섬이 눈에 뜨였었고

 

판자때기로 막은 엉성한 대천 항 매표소에서 철선으로 된

외연페리라는 배를 타면서 막연한 불안감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 무궁무진한 어자원이 있는 외연 도에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철갑 여객선의 강력한 에어컨의 위력을 몰랐기에 처음엔 외연도 사람들이

정신 줄을 놓은 줄 알았다. 한여름에 두툼한 겉옷들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더라니....

 

 

 

갯바위에 가려니 무자비한 선비를 요구하는 외연도의 배를 이용하면서의 다툼,

 

외연 도를 가는 다른 방법이 또 없을까 ?

 

처음 찾아본 오천 항에는 낚시점이 하나 있기에 들러보니

고가(高價)의 루어라며 플로팅 계열의 루어를 열 댓 개를 걸어놓고

신주 모시듯 하고 있었는데 인사치례로 세 개를 집어 드니 놀라워했었다.

 

이미 가방 안에는 수십 개의 루어가 들어 있었는데 한남동의 베스샵이며

태평양 건너에 있는 누이에게 이러저러한 루어 몇 개를 사서

보내달라고 했지만 누이가 사는 시카고에서 베스샵이 있는 곳까지는

부산가기의 거리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고 양놈들 욕을 또 얼마나 했을까?

 

큼지막한 모터보트를 가지고 있는 낚시점이었기에 외연 도까지의

루어낚시 출조를 한, 최초의 낚시점이었을 게다만,

구십 년대 중반에 3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기에 대절을 하려면

손발을 맞출 사람을 모으거나 동행자를 데리고 가야했다.

 

어디선가 쏜살같이 달려온 총알택시 같은 배가 외연도의 동쪽에 번쩍,

서쪽에 번쩍이는 홍길동 행각으로 어선들을 앞질러 가서

농어를 잡아내는 것을 처음에는 멍하니 쳐다보던 어민들이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고 들리지는 않지만 어림잡아 짐작컨대

왜 남의 동내에 와서 고기를 잡아가느냐고 욕을 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느려터진 배로는 고속모터보트를 따라 잡을 수가 없다보니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하며 물위로의 비상(飛上)이 이어졌지만

얼마 후에는 낚시점주가 외연 도를 가자면 꺼리는 눈치였다…….

 

기름 값이 어쩌고, 엔진 마모가 어쩌고…….

선비를 더 주겠다고 했지만 말꼬리를 흐리는 것이 누군가가 찾아와서

행패를 부렸다는 소문이었고, 건강상의 문제도 있다며 낚시점을 닫아 버렸다.

 

오천에도 다른 낚시점이 생겼고 연락 끝에 근처의 부속 섬에 내려줄 수 있다하여

이상한 도둑승선…….

 

지금과 같이 밥 먹을 식당도 없어, 작은 농어 한 마리를 사먹어 주면 밥을 주겠다는

이상한 상술에 놀아나기도 했고.

오천의 촌구석은 영원히 잊을 것 같았는데 그리고 십오 년이 지난후의 오천은

명동의 휘황찬란한 조명이 밝혀진 밤거리가 무색해졌다.

 

 

 

 

 

 

 

다시 외연도행 철선에 올라야 했고 새로운 선장을 찾으면서

부속 섬들을 자세하게 파헤쳐가기 시작했다.

꼬깔 여의 반란,

변여의 돌돔 사건,

황도에 깔린 백여 마리의 농어는 살육의 현장이었고

야단을 치던 김 선장이 멋져 보였다…….

 

갑작이 급변한 날씨에 선외기를 타고 무사히 본섬으로 갈수가 있을까

걱정을 태산 같이 했는데

 

~!!!!’

 

하고 나타난 큰 배와 작은 배.

정말 현명한 선장이었다.

 

그러다가 정해진 시간대의 여객선을 이용하는 불편함에 지쳤기에

한번은 어청 도를 다녀오다 길옆에 새로 생긴 웅천제일낚시점이란

간판이 눈에 뜨였고 낚시점의 마당에는 옆구리에 고무튜브를 두른

모터보트가 트레일러에 얹혀 있었기에 지나쳤던 차를 돌려 들어가 보니

어느 조폭파의 부서장쯤은 했었을 거무튀튀한 피부에 눈망울이 띠룩띠룩한

허벅지만한 개우럭 같은 강한 인상을 주는 낚시점주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조 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해 가을의 어느 낚시잡지의 표지에 커다란 농어를 든, 조 씨의 사진이 실렸는데

웅천+무창포+외연도 권의 농어루어낚시 전문가라는 기사가 함께 실렸기에

제대로 된 선장을 찾았는가보다곤, 연락을 했더니 두 달 전 기사라며

외연도 쪽으로 농어낚시를 가면 연락을 해주겠다며 전화번호를

받아 적는 것 같았는데 그해가 다가도록 연락이 없기에 까맣게 잊고 말았다.

 

다음해 6월에 연락이 왔던가?

그날은 친구 놈과 남당에서 이상한 우럭 잡이를 하고 있었기에

가득 후려 온(?) 고기 손질을 서둘러 끝내고 정해준 시간에 맞추려고

친구 놈의 무쏘는 게거품을 물었었지?

 

 

 

무창포구에서 어선을 이용한 외연도로의 첫 농어루어낚시,

초망 여를 양보하고 횡견도 자락을 차지하고 한밤중에 친구 놈의 실종으로

어찌 할지를 모르고 당황하여 찾아다녔고,

갯바위에 내려준 사람들을 그러모으던 중에 외연도의 어선이 달려들어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며 협박하기에 격분하여 옷소매를 걷어 올리며

마주 나섰다가, 한바탕 제대로 결판을 내려고 몇 일후에 외연도 까지 달려갔던

철없던 시절도 흘러갔고, 그때의 과격한 어민이 지금의 어촌계장이 되다니........

 

 

 

 

1999716, 제헌절 휴일전날은 어느 은행의 지점장후배와

다른 동생 둘과 함께 외연도의 초망 여를 차지한 날이었다.

물론 무창포의 어선을 이용한 출조였고, 어민들과의 마찰을 겁낸 낚시점주가

미리 일러두었는지 제 속력도 못내는 것 같은 속이 터질 것 같은 느린 속도였기에

외연도의 어선이 모두 작업을 끝내고 돌아간 시간이었을 게다…….

 

공처가 동생 하나가 새벽에 집으로 왜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통화를 끝내자마자 달려와서 호들갑을 떨었는데

신창원이 잡혔데요~~~!!!!!!”

 

신창원이 누고?????”

 

, ……. 도둑…….”

 

됐다. 고기 잡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이 보이는 큰 저수지에서

깻묵을 먹다가 재채기를 한 붕어를 양껏 잡은 선배가

회를 사주겠다고 데려 간 곳이 대천의 어항이었는데

팔십 년대의 어항횟집 골목을 지금과는 달리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고

손님이 나타나면 버선발로 맞이할 때였다.

 

 

남포저수지에서 또 한 번의 큰 재미를 본 선배가 이번에는

무창포라는 작은 포구로 데려가서 또 한 번 회를 사주었는데

5월 달의 허름한 포구의 횟집에는 나무로 틀을 만들어 유리를 끼워

만든 작은 어항에는 감성돔이라는 눈알이 흐리멍덩한 큰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

적당히 값을 흥정하려하면 언제 손님이 찾아와서 팔릴지를 모르는 처지다 보니

다니시면서 회를 드셔보셨다면 값도 대충 아실 터이니 알아서

적당히 주시면 된다는 싯가는, 잘하면 거저라도 주겠다는 저자세였기에

이슬기운이 올라 얼굴이 불콰해진 선배가 넉넉히 값을 치러주니

주인은 감사해하며 집에 가져갈 해산물을 이것저것 담아 주었다.

 

 

 

무창포 앞에서 잡았다는 큰 감성돔의 기억이 오래 남았었기에

십 년 후에는 본격적으로 외연 도를 향한 전초기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농어와 대물 감성돔이 득시글한 처녀지로 백번도 넘게 드나들던 단골 터가 되었다

 

무창포구를 이용하여 외연도로의 드나듦이 시작되었고 또

새로운 인연들도 생겨나며, 웅천이 배출했다는 개그맨 남희석 군의 아버지

남 사장과의 만남도 그때였고 무창포 제일의 어부, 철호의 눈빛은 시라 소니 같았었지?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이 되기 전에는 천안, 온양, 홍성, 예당, 광시, 갈림길을 만나면

오늘은 어느 쪽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한길을 택하여 무창포를 가곤했는데

이리가나, 저리가나, 어쩜 거리가 그리도 똑 같을까?

 

광시의 붉은 조명 불빛을 보곤 충청도 양반들이기에 홍등가를

산속 으슥한 곳에 만들어 두었구나. 감탄을 하던 오해도 있었고…….ㅎㅎㅎ

 

 

 

무창포 앞바다에 농어 자원이 그리 많았을 줄이야…….

예쁜이 루어를 좋아했던 조 선장과의 지나간 시간들…….

다보도의 반란은 용섬의 꿩대신 닭이었고…….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오래도록 머릿속에 맴돌았다…….

 

고개를 넘기 전에 있는 가림 막의 포도는 방송을 타면서 가짜가 범람했나?

 

농어 잡이를 갈 수없는 날에는 부속 섬의 물 흐름이 약한 곳에서

남정바리나 잡던 낚시의 불모지인 무창포에 감성돔 낚시를 함께 전파하기 위해서는

전봇대만한 1호찌가 필요했었다.

 

숨어있던 감성돔들이 쏟아져 나왔고 1호찌를 어디에 쓰겠냐며

가고 3호 막대찌를 꺼내든 건망증 심한 조 선장이 대물 감성돔 덕에

새 배를 장만했지만 제, 딸아이와 아줌마에게 야단을 맞았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아니, 모르쇠였나???

 

어쨌든, 외연도 나들이는 좀 더, 수월해 졌다.

 

 

 

 

매일을 바다에서 사는 그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낚시솜씨가 늘어났고

낚시대회를 휩쓸면서 프로라는 허울만 좋은 개살구를 입에 물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내리막길로 치닫기 시작했을 게다…….

그깟 놈의 프로는……. 깍두기도 못 먹고 사는 것이 프론디…….”

선임자가 담배꽁초를 내뱉으며 늘, 하던 말이었다.

 

15년 동안 얼굴을 보면서 미운 정 고운정이 들었던,

철없는 동생이나 제자 같았던 그의 이른 죽음…….

 

조 선장의 검은 손재주 탓에 제일낚시의 주인이 바뀌면서

무창포 제일낚시의 2대 점주인 김 선장이 등장했고

그에게 하나 둘씩 외연도의 농어 포인트와 참돔낚시의 기법과

포인트를 몇 곳을 일러 주게 되었지만 하나를 가르쳐 주면

둘을 안다는 신동이었는지 열심히 바다 속을 연구하고

새로운 포인트를 개발하며 서해 중부권 선상낚시의 제왕이 되었는데

워낙 부지런한데다가 손님들의 속마음을 잘 헤아려주기에

단골손님들이 많게 되었다.

 

2대 점주였던 김 선장이 고향인 오천으로 돌아가서

기껏해야 우럭이나 잡고, 손님도 없는 낙후된 오천 항에서

참돔찌낚시와 지깅, 타이라바와 장구통릴을 이용한 주꾸미 낚시의

새바람을 일으키면서 오늘날, 오천 항에 명동의 불빛이 밝혀지도록 한

주역이 되었는데 오천 항에서는 김 선장에게 공덕비라도 세워줘야

충청도 양반이 아니겠어?

 

 

 

한동안 비어있던 무창포의 제일낚시점을 인수한 것이

만재도 단체 출조 붐을 일으켰던 강남낚시의 이() 총무였는데

3대 제일낚시점주가 되어 낚시점을 꾸려 보았지만 작은 배였지만 직접

운행할 수가 없었기에 고용선장을 써야했고 잦은 배 고장으로 수리비 지출이 심했고

점포 터의 임대기간의 종료로 결국엔 문을 닫고야 말았다.

 

무창포의 제일낚시의 초대 점주였던 조 선장이 천수만 쪽에서 출조를 해보겠다는

연락이 왔기에 가보았는데 외연도 진입의 배시간이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농어와 우럭이나 잡고 오렸는데 동행한 후배가 참돔이 꼭 필요하다기에

방법을 일러주어 큰 참돔 한 마리를 낚아 쿨러에 담았는데

아침에 공탕을 친 손님들을 모아 온 조 선장과 인천 쪽에서

출조를 전문으로 하는 김 총무가 쿨러를 떠들어 보곤 분명히

참돔이 있는 바다라고 쑥덕였기에 저절로 알려 주었던

참돔낚시의 기법과 포인트, 그 실체들…….

 

지난 이십년의 추억들을 기억이 나는 대로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