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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외연도+무창포

2. 쏘가리와 산나물, & 서해참돔 & 탐라갈치& 한치낚시...(금꽃게 은꽃게.....)

by 찌매듭 2016. 7. 6.

쾌청한 날이 이어지긴 하지만 일교차(日較差)가 심하니 안개라도 깔린다면

새벽 3시까지 오천 항에 도착하기가 어렵겠기에 일찍 집을 나선다는 것이 몇 시였기에

자정 전에 오천 항에 도착했을까?

 

선착장에서 무엇인가를 잡아보겠다는 놀이 객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기에

잠시, 미련하게 같이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안개가 깔리기에 시작했기에

선뜻한 기운에 놀라서 차안으로 몸을 숨겼지만, 선잠도 안 오기에

밀린 카톡 볼거리를 뒤적이면서 데이터만 잔뜩, 축내고는 일찍 문을 연

식당을 찾아가, 계란 프라이 두개와 반공기의 밥을 미적지근한 미역국에

말아 먹다 보니 주변의 낚시점에 하나둘씩 전등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오천 항을 처음 찾았던 구십 년대 초만 해도 밥 한 그릇 사 먹을 만한 곳이

한군데도 없었기에 낚시를 끝내고 늦은 점심밥이라도 한 그릇 청해 보려면

작은 농어, 우럭이라도 한 마리 회를 시켜야만 마지못해 상대를 해주곤 했던

허름한 밥집 두어 개나 있었던 곳이 언젠가부터 낚시점들이 즐비해지면서

이렇게 번화가가 되어버렸으니 신기한 일이다.

 

키조개의 산지로나 알려졌고 우럭 잡이 손님들이나 간간이 드나들던

외진 포구 같았던 오천 항이 오늘날 이렇게 번화하게 된 것에는

무창포구에서 낚시점을 하다가 고향인 오천으로 돌아온 김 선장이 한동안

오래도록 힘들여 개척한 참돔 포인트와 낚시기법을 고향사람들에게

숨김없이 알려 주었기에 오늘날의 오천 항이 있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오래도록 지켜본 서해바다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보니

오늘날의 오천 항이 번성해 지도록 참돔낚시와 주꾸미 낚시의 붐을 일으킨

김 선장의 공이 가장 크다고 보기에 공로비나 명예군수로 임명해야 당연한 건데.......

 

 

 

  

 김 선장의 낚시점에도 불이 켜졌다…….

 

2016년의 참돔시즌이 시작된 것을 어찌들 알고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배의 선실 한켠에서 모로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기에 포인트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잠에 취하였다가 깨우는 소리에 나가보니 앞, 뒤쪽으로 벌써 자리들을 잡았고

어정쩡한 자리에 끼어들게 되었는데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몇 미터 안 되는

배안의 낚시에서도 분명히 포인트가 존재하는 것 같으니 별일이다.

 

선상낚시라는 것이 쾌적하게 하자면 야, 외 닻줄을 놓고 물 방향에 따라

절로 방향을 잡아가며 두 명이 낚시를 하는 것이 좋겠지만,

경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여러 명을 태워야하고 한철장사를 멋들어지게 하자면

열 명, 스무 명까지도 태워야하니 앞뒤로 밧줄을 걸어 배를 묶어놓고

한쪽방향으로만 채비를 흘려야하는 요즘의 선상낚시는 약간, 복잡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채비를 운용하기에 편리한 위치에서부터 참돔이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지만

가장, 나쁠 자리를 잡은 사람에게는 초조한 시간이 시작됐는데

고정된 수심만 노리는 막대찌낚시는 서툴다며 앞자리의 낚시꾼 하나만

잠수찌 채비로 휘저어대다가 일곱 마리를 잡았다던가?

 

옆자리에서는 무거운 추로 열 번도 넘게 수심체크를 한다며 내 낚싯대를 두들겨 댔고

막대찌를 붙여대고 있더니만 물 흐름이 생겨서 흘러가기 시작하면 또, 바짝 붙여서

짜증이 나게 했던 양옆의 낚시꾼들은 알고 보니 처음 온 사람들이었다나?

 

전동 릴을 사용하기에 이상하다 생각했었던 한쪽 팔이 불편한 낚시꾼이 사용하는

이상한 도구는 바늘을 물려 놓고 미끼를 끼우기 위한 창작품이었다나 보다…….

 

 

민물낚시에 한창 심취하여 다녔던 안동댐에서는 어깨부분부터 팔이 없던

낚시꾼을 만났었는데 그가 한손으로 휘두르던 낚싯대의 운용은 양팔이 있는 사람보다

깔끔하였지만 도대체 미끼를 어찌 끼우는가가 궁금했다.......

 

떡밥미끼를 사용할 수는 없기에 오로지 지렁이만 미끼를 사용한다고 했는데

꿈틀대는 지렁이를 어떻게 바늘에 끼울 수 있을까?

 

작은 나무판에 홈을 몇 개 내놓고는 통에서 꺼낸 지렁이를 홈에 대고 문지르면

그 홈에 지렁이가 낑겨졌고, 그 순간에 바늘을 두 손 가락으로 잡고 지렁이를 끼워냈다.

 

그 방법에 감탄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자작된 공구에 바늘귀를 물려 놓고

크릴을 끼우는 신공을 목격하다니........ 

 

 

 

      

무창포 제일의 어부(漁夫)인 철호가 가끔, 자기 키만 한 농어를

낚아낸다는 곳이기에 철호가 개척한 곳이라며 다른 어부들은

접근을 삼가기도 했던 용섬 포인트가 오늘의 잔치판이 벌어진 장소가 되었지만

무창포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에 무창포 낚싯배들이 먼저 와서 차지를 하고

연실 고기를 잡아내고 있었다.

 

 

아홉시를 넘기면서 이른 점심을 먹자고 점심밥 보따리를 펼쳐 놓는 것이

낚시 시간도 끝이 나는가. 본데 수온까지 내려갔으니 늦게까지 버텨 보았자

별다른 수확도 없을 것 같아 채비를 걷기로 했다…….

 

 

어쩌면, 최초로 무창포에서 외연 도까지의 서해참돔낚시터를 남보다 먼저 발견하여

오래도록 호젓하게 즐겼던 지난 이십년간의 추억을 되새기자면 오늘날의 이런

북새통 낚시는 하고 싶지도 않긴 하지만, 짧은 시간에 편하게 참돔구경을

할 만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예전에야 참돔을 낚아보려면 멀리는 가거 도는 가야했고, 가깝다고 하면 추자도나 거문도를

가야 구경할 수 있는 귀한 물고기였다.

 

같이 낚시를 즐기는 탁() 소장이란 후배는 거문도의 갯바위를 찾아가서

청갯지렁이를 듬뿍, 끼운 채비를 물에 던져 놓고 반쯤 누운 자세로 낚싯대를 붙들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상사리급 참돔이 물어주기라도 하면 감사한 일이라고 했었는데

참돔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서해 중부권에서 오늘날, 이렇게 많은 참돔이 출몰할 줄이야

어찌 알았을까?!

 

더군다나, 도시인들이 점심 식사 후에 간단하게 당구나 한 게임 치는 것같이

편하고 가까운 곳에서.......

물론, 비용이야 당구장을 통째로 전세 낸 것보다도 더 많이 들긴 한다만 서도.......

 

 

 

 

  

구십 년대 중반쯤의 어느 여름에 후배와 가족들을 무창포 해수욕장에 데려다 놓고는

모래장난을 하면서 잘 놀고들 있으면 맛있고 싱싱한 농어회를 맛보여주겠노라며

인프라보트를 타고 외연 도를 다녀오기로 했다.

 

위도의 선장을 만나서 안면을 뚫어놓고 다니다가 페리호 사건의 충격으로

다른 섬을 찾아 나선 곳이 외연 도였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곳이었다.

 

잘 달려 나가던 보트가 화사도 근처에서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불안한 마음에 세워놓고 메뉴얼을 찾아 들여다보았지만, 어디가 아픈 건지,

무엇을 원하는지 당최, 알 수가 있나?! -,,-

 

어물어물대다가 그만, 만조 시간까지 놓쳤으니 외연도 까지는 갈 필요가 없었고

화사도 근처에서 맥없이 루어나 몇 번 던져 보다가 돌아갈밖에…….

 

돌아간다고 하니 엔진소리는 왜 다시, 쌩쌩해졌는지.......

 

 

바다물위에 어선 몇 척이 떠 있는 것이 보였는데 잡은 고기가 있다면

한두 마리라도 사 가야할 판이다

농어가 있다면 좋고, 없다면 흔해빠진 광어나 우럭이라도 사가야겠지?????

 

삽시도 부근에서 그물손질을 하고 있는 어선을 한척 발견했기에 다가가서

잡아놓은 펄펄뛰는 싱싱한 농어가 있는가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 하나가 건너가 고기를 고른다며 물칸을 들여다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농어 큰 것을 한두 번 보나? 호들갑을 떨기는?)

 

아무래도 건너와 보셔야겠는데요? 놀라운 것이 있어요…….”

 

귀찮은 걸음을 떼어 어선으로 건너가 시큰둥하게 물칸을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칠십 년대의 어느 겨울철에 광나루 다리 근처의 견지 배터에서

매생이배를 타고 나가 워커힐 밑의 물속 움푹한 곳에 몰려 있을 잉어를

바늘 세 개가 달린 슈퍼 견짓대로 챔질을 하여 잡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가보니 선임자 한분이 불콰한 얼굴로 난로 불을 쬐고 있기에

고기도 잡기 전에 이슬부터 붙들었나했더니 좀 전에 엄청나게 큰 잉어를 잡았다고 한다.

 

별도의 물칸에 담아 두었다기에 달려 나가 물칸의 뚜껑을 열었지만

고기가 보이질 않았기에 어디에 있는 가고 물어보니

바닥, 자체가, 고기라고 했던가?

 

손전등을 비추며 들여다보니 물칸 바닥 자체가 옆으로 누워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황금색이 나는 잉어는 미터를 훨씬 넘는 크기였는데 너무나도 큰 잉어다 보니

놔주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고 했다.

 

그때의 그 잉어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배의 물칸 자체가 뻘건 것이 이것 또한 미터가 훨씬 넘는 참돔이 분명했다…….

 

주낚에 걸려들었다는 참돔 곁에는 그보다는 작게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참돔과

농어와 광어들이 있었고 어부에게 어디에서 잡은 것이냐고 물으니 당연히

이 바다에서 잡지 않았겠냐는 시큰둥한 대답뿐…….

 

저기 얼만큼을 가면 깊은 물골이 있고, 때가 되면 그 물골을 타고 다니던

참돔 떼가 올라와 붙는다고 했던가?

 

머릿속이 하얗게 흐려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정신이 돌아온 순간,

대천 어항의 경매장에 가끔씩 쏟아져 나오던 크고 작은 참돔들의 실체를 알 것 같았다…….

 

한동안 오염소동이 일었던 검은깨점이 박힌 이 저수지의 붕어가

특이한 체형이라며 민물낚시를 즐기던 선임자 한분이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는 어느 봄날에 청라저수지에서의 낚시를 함께 즐겼던 날,

끓이려던 붕어 매운탕을 제쳐놓으라더니 이 좋은 봄날에 맛있는 회를

한 접시 사겠다며 대천의 어항으로 가자고 했다.

 

그때만 해도 볼 것도 없고 찾는 사람도 없었던 대천 어항의 횟집 촌이란 곳이

허름한 단층집 서너 집뿐이었는데 장난꾸러기 일행하나가 회가 나오기 전에

소쿠리에 담겨있는 해삼을 발견하곤 몇 마리째를 손바닥으로 궁굴려

자기 손바닥 안의 땅콩알 인양 먹어대고 있었지만 분명히 보았을법한 주인이 아무 말도

없었던 것이 신기했다…….

그때만 해도 해삼 몇 알 건져 먹어봤자, 몇 푼 안했을 때였겠지?

 

 

남쪽의 먼 바다에서만 구경할 수 있던 고기로만 여겨졌던

에메랄드빛이 번뜩이는 바다의 여왕 참돔이었기에 충청도 사람들도

귀한 고기는 알아, 남쪽의 어느 경매장에서 옮겨와 파는가보다고만 생각했었는데

홍원항 수족관에 있던 참돔도 대천어장의 경매장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참돔도

원래 고향이 여기였다는 것 아니겠어?

 

무창포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기다리고 있던 식솔들에게 사가지고 온 농어를

떠먹이면서도 머릿속에는 어떻게 참돔을 잡아야할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결국, 그 주일이 가기도 전에 다시 내려가 어부에게 부탁을 하여,

외점도 라는 섬의 갯바위 한 귀퉁이에 내려 이리저리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몇 마리씩의 참돔구경을 하게 되었지만 억 시로 많은 모기떼 때문에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고생 끝에 다른 방법을 찾아본 것이

화사도 앞의 들어나는 작은 암초에 줄을 걸어 놓고 선상낚시를 해보게 되었는데

이름 없는 암초의 이름이 있을 리가 있나…….

 

홍합이 많이 붙어있다는 어부의 말을 듣고 홍합초라고 불렀는데

거의 십년이나 지나서는 화사도 부근에 있다하여 화참여라고 부른다나?

,? 좋아한다들.......

 

 

 

 

 

 

그나저나, 늦게 선실에서 나왔기에 남은 자리가 없어 자리하게 된,

좁은 자리에서의 불편한 낚시는 처음부터 낚시를 하고픈 열기가 식어버린

무덤덤한 포기상태였기에 입질이 없었어도 당연하다 싶었고,

어디에서 딸내미에게 꽃게를 사다가 입맛을 다스려 줘야할까?

 

배의 한켠쪽으로 한 줄로 늘어선 열 명중에 잠수 찌를 사용했다는 앞쪽의 꾼이

일곱 마리를 잡았다했고, 세 마리, 두 마리, 한 마리씩의 참돔구경을 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와 어떤 사람만 구경을 못했다니 참, 세상 공평치 않네…….

 

배 한척에서 삼십 마리 정도의 참돔이 골고루 낚여 준다면 열 명의 삶들에게

세 마리씩은 돌아 갈 테니 한나절 낚시에 삼십만 원이나 하는 경비를 쏟아 부은

출혈지출에 위안도 될 텐데…….

 

많이 잡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구경도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

 

또 그중에 내가 끼었다는 슬픈 현실.......

 

 

이제, 3~4년이면, 이 자원도 바닥이 날 테니 몇 년간 빡쌔게 벌고는

전업을 해야 한다는 선장의 말을 듣고 보니, 그물로는 씨를 말리지 못해도

낚시로는 씨를 말린다는 낚시속담이 생각난다…….

 

우럭도, 광어도, 주꾸미도 언젠가는 바닥이 날 텐데 백 척도 넘게 늘어난

저 배들은 어찌할 것이고 또 새롭게 터를 닦아 민박 촌을 짓고 있는 저곳은

또 언제쯤 잡초가 우거지는 폐촌으로 변해갈지, 걱정스럽다…….

 

몇 백 마리씩 잡아내던 주꾸미가 줄고 줄어, 열댓 마리씩이나 잡는다면

누가 이곳을 찾을 것이고, 열 명씩이나 타고 나가 참돔선상낚시를 하던 사람들에게

서너 마리의 수확만 있다면 점차 흥미를 잃을 터…….

결국, 모든 것이 사람 손에 달렸을지니…….

 

이른 철수였으니 대천어항으로 가봐야겠다…….

연평도 쪽에서는 중국 어선들이 마구잡이 싹쓸이로 어자원이 고갈된다는데

시원한 해결책이 없으니 속이 터진다…….

저놈들이 넘어오는 해역, 바다 속에 쇠말뚝을 주르륵~!’ 박아놓으면 그물이 망가지지 않을까?

오죽 답답하면 어민들이 직접 중국어선을 잡아왔을까?

 

 

태안이나 대천 쪽도 금년에는 꽃게가 적어 금꽃게가 됐다 고한다.

제철에 1킬로에 3만원 정도했던 것 같은데 5만원이라니 금값을 쫓아가겠다는 건지…….

 

봄이 제 철인 암꽃게는 5만원, 숫꽃게는 3만원, 금로 만들었나? 은으로 만들었나?

 

 

횟감이라도 잡아오려나보다 기다리고 있을 딸내미에게 참돔회 대신,

꽃게를 열 마리도 넘게 사왔다면 더, 좋아라하지 않을까?

 

대천어항에는 살아 있는 돌돔도 여러 마리가 있었지만 별로 사먹는 사람이 없는가보다.

격비의 돌돔은 농구공 같이 동글동글한 것이 체형이 얼마나 큰지 탐스러울 정도고

외연 도나 어청도 에서도 돌돔자원이 많지만 전문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다. 

 

 

 

 

 

 만재도의 민박집 아저씨가 피홍합을 한 박스 보내왔다.

 

이번에는 겨울철에 채취한 돌김과 깐 홍합 알을 한 봉지도 보내지 않았기에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 여파로 잠간, 알려진 만재도의 인기몰이로

미역과 다시마는 완판을 했다지만, 겨우내 채취한, 얼마 되지 않는 돌김과

홍합도 생판 떼기 안면도 없는 사람들이 연락해오면 그쪽에다 먼저 팔아 치웠을 게다…….

못된 아저씨 같으니라고…….

양은냄비에서 급히 끓다가 식듯이 곧, 김이 빠져 버릴 것을 모르는구먼??????

 

노선장이 며칠 말려 꼬득해진 햇열기를 두 박스 보내왔으니

가을 찬바람이 날 때까지 맛있는 반찬이 돼 줄 것이고…….

 

 

사온 금꽃게를, 쪄내기도 하고, 양념을 해서 찜을 해서 내놓으니 맛있다며

콧구멍을 벌렁이며 열심히 먹어주는 딸내미에게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가 안보이면 강원도로 호랑이 잡으러 간줄 알라하곤

쏘가리 루어채비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선 것이 새벽도 전이었다.......

 

이렇게 좋은 날씨가 이어지는데 공탕도 쳤겠다. 허접하게 보낼 수는 없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