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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2014년 만재도에서의 3박4일 (뜨거운 첫날밤을 위하여~~~~)

by 찌매듭 2014. 8. 3.

답답한 가슴이 좀처럼 뚫리질 않다보니 2014년이 왔어도 그저, 아까운 세월만 또 맞이하는가보다, 시큰둥하기만 하다. 다른 해보다 이르다싶게 가거도 에서는 영등감성돔 소식이 들려왔기에 여름도 그만큼 빨리 올 것 같았는데 계절이 그리 쉽게 곁을 내줄 수가 없었는지 기복이 심한 날씨가 반복되면서 설날, 떡가래 썰듯, 한 달, 두 달이 휙~! 휙~! 바람소리를 내며 지나가는듯하더니 뜨거운 여름철이 되었다……. 지난 4월 초순에는 태평양을 건너온 누이가 노모 곁을 한 달간 지켜주기로 했기에 가거도로 볼락낚시를 사나흘 다녀올까 궁리도 해봤지만 연일, 파도가 높은 기상만 감지되기에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다. (왜 낚시를 안갈까?) 누이가 결국은, 궁금했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가 있을 때, 바다구경이라도 한 번 하고 오지 그래? 그러다 몸살 나겠네~!” 그렇지 않아도 어디로라도 나서볼까 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서 못가고 있다는 속내를 들키운듯, 움찔해서는 아직 이른 철이라 물색도 탁하여 먼 섬으로 갈 때도 아니고, 이런저런 미뤄두었던 일들이나 맘 편히 보고 다녀야겠다고 했지만 허한, 속이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다. 대물의 꿈을 놓지 못하는 서 씨 아저씨나 다른 일행에게 가거도로 볼락 잡이를 가자고 하면 아마, 대꾸도 안할게다만 다시, 계획을 세워보기도 전에 바로 ‘세월호’ 사건으로 온 나라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큰 슬픔 속에 빠지게 되었으니 낚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조차,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르는 듯한 느낌이었고, 음식점이며 백화점이며 마트에 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는 대사건이었으니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조용히 뉴스에만 귀를 기울이는 날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래도 명색이 꾼이고, 누이는 동생이 이 세상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줄 알고 있는데 냉동고에 단단히 얼어있는 해묵은 생선만을 먹여 보내서는 안 되겠기에 나만이 알고 있는 소양 댐이나 파로호에 있는 비밀의 정원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쏘가리 몇 마리쯤은 대접을 해 보내야하겠기에 날짜를 짚어 보기 시작했지만 5월1일 부터 시작되는 쏘가리 금어기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기에 시간이 얼마 없다....... 몇 일간 좋았던 날들이 갑자기 꾸물거리며 비까지 오기 시작했지만 기온이 많이 내려가지는 않았으니 수온까지 낮아지지는 않았겠기에 파로호의 수심 낮고 골 깊은 계곡 속을 내심 점찍어 놓고 달려가 보았지만 낱마리에 큰 씨알도 없기에 그저 날씨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예전같이 금어기가 5월10일 부터라면 얼마나 좋을꼬? ……,,-) 다음날도 아침 일찍, 달려가 보았지만 두 마리의 크지 않은 쏘가리를 낚아 물속으로 돌려보냈고, 그 다음날에는 네 마리를 낚았지만, 한마리만 커트라인을 통과할만한 크기였다. 세 마리는 20센티를 넘기는 크기로 쏘가리는 체포금지 크기가 18센티였지만 바다에서의 기준을 적용하여 25센티가 넘어야만 잡는다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적용하다보니 사흘 동안에 낚은 열 마리가 모두, 물속으로 돌려져갔다. 인정사정없는 흉측한 인간들을 만났다면 모두가 냄비 속에 들어가 물을 많이 붓고 양을 늘려 매운탕꺼리로 변했을지도 모르는데....... ^^;;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태껏, 낚인 쏘가리들, 대부분이 수컷이었고 암컷은 한 마리나 있었을까????? 갑자기 소양 댐의 어느 골짜기가 생각났기에 금어기 시작을 하루 남긴 마지막 날은 그곳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퍼떡~! 들었다. 훌륭한 산란 터가 있으니 수컷들의 치열한 다툼이 있을게고 어쩌면, 쏠쏠한 재미를 볼 수도 있을게다만……. 쏘가리 금어기 시작 하루 전인 4월30일……. 가랑비가 이어지던 날씨가 모처럼 맑게 개였다. 까짓것, 쏘가리를 잡지 못하면 산나물이라도 뜯으면 되겠지……. 수온이 조금이라도 오르라고 느지막이 도착하여 너무도 익숙하여 물속지형이 보일 듯 한 곳에 당도하여 채비를 던진 첫 번부터 쏘가리가 물고 늘어졌다……. 마치, 피어오르는 볼락 떼를 만난 듯, 정신없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기준으로 정해놓은 치수에 못 미치는 몇 마리를 물속으로 돌려보내놓고도 열댓 마리의 쏘가리를 물통에 담아 기포기를 틀어 놓고는 돌아 나오던 근처의 야산을 찾아 취나물까지 한 포대 쓸어 담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낫으로 썩, 썩, 베어낼 정도로 나물이 많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물까지 줄어드니 별일일세....... 여기까지 온 김에 근처에 있는 다른 골짜기를 한곳 더 찾아가서 다음번을 기약해두어야겠기에 자리를 옮겨보았는데 승용차로는 물가까지 다가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바닥이 패여 있었다. 저 멀리 어부 일도 하고 손님들을 배로 태워도 주는 낯익은 부자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기에 ‘손님은 오는가, 고기는 잡히는가? 물어 보니 ‘아직, 고기가 잡히지 않고 내일부터는 쏘가리 금어기가 시작되기에 그나마 루어 꾼도 당분간 오지를 않을 거라‘고 했다. 펄떡, 펄떡 튀는 싱싱한 쏘가리로 매운탕과 조림을 했고 뜯어온 나물을 데쳐서 좋은 나물과 함께 이번에도 실컷, 맛보고 간다며 남은 나물들을 말려서 가져가야겠다며 누이가 좋아했지만 ‘세월호’ 사태로 나들이도 자제하고 남은 날들을 기도 속에 보내다가 미국으로 돌아갈 날이 되었다. 어쩌면 이번이 노모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까지 생각했다는데 생각보다도 건강하시기에 다음번의 방문에도 뵐 수가 있을게라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서해중부권에서도 예년보다 조금 이르게 참돔선상낚시가 시작되었기에 한번 서해참돔 구경이라도 나서보아야겠다고 날을 잡은 것이 때가 지났었을까? 생각 같으면 야 마음대로 날을 골라서 욕심껏, 참돔을 잡기가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이런저런 눈치를 보아야하는 입장에다 생각지도 못한 병 구환의 날들이 자꾸만 생기다 보니 바다구경이 쉽지가 않기에 애를 태우다가 갑자기 편한 날이 생기면서 다시 소양댐 속의 깊은 곳을 뒤져서 한 번, 더, 쏘가리 구경으로 바다 구경을 대신해야했는데 산신령님이 금도끼, 은도끼를 한꺼번에 쥐어 주셨는지 제법 큰 손맛을 보게 되었다. 한번쯤은 소원을 들어주어야할 거래하는 은행의 낚시 초보자의 청으로 오천 항으로 참돔낚시를 가게된 것이 6월 중순경이었나 보다. 어제도, 그제도, 계속해서 좋은 조황으로 도배를 했으니 오늘도 좋은 조황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짙은 해무로 속력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배안에서도 아무 걱정이 없었다. 이상한 한민족들 중에서는 비행기나 배가 항구나 공항에 도착하여 문도 열지도 않았고 앞사람도 내리지 않아 꿈쩍을 할 수가 없는데도 짐까지 챙겨들고 미리, 주책을 떠는 무리들이 있는데 낚싯배에서도 마찬가지다……. 김 선장이 큰소리로 아직 닻도 내리지 않았으니 자리를 잡고 밑밥도 넣고 나면 그때쯤 천천히들 나오시라고 몇 번을 이야길 했지만 무엇이 그리 급한지 들어먹지를 않는다. 잠시, 눈이 감기었을까?! 날이 밝았을 기미에 눈을 떠보니 짙은 해무가 잔뜩 끼었다. 선장과 눈이 마주치자, 이제는 나와서 채비를 해도 되겠다고 하기에 크게 기지개를 켜고 선실 밖으로 나와 보니 그토록 서둘렀던 사람들은 전자 왕캐미까지 막대찌에 달아놓고도 한 번, 흘려 보지도 못하고 난간을 붙들고 있었는데 짙은 해무 속에서 무엇을 보려고 했었을까?!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서야 서서히 해무가 흩어지자 시작할 수 있었던 낚시놀음에서 크지 않은 참돔이 한두 마리씩 달려 나오기에 ‘오늘도 변함없이 재미는 보겠구나’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바늘에 달린 크릴미끼가 그대로 달려 나왔다. 광어가 한 마리 손님고기로 달려 나올 때까지는 조급한 마음도 없었는데 한두 시간이 지나자 점점 더, 수온이 내려가면서 바늘에 달린 미끼가 점점 더, 꼿꼿해졌다……. 아쉽지만 할 수 없이 자리를 옮기기로 했고. 옮겨간 자리에서는 노래미나 감팽이가 몇 마리, 달려 나오기에 수온확보가 됐는가. 했지만 그 흔하다는 금붕어 한 마리도 꼼짝을 안했으니 큰 기대를 갖고 따라온 초보자 보기가 부끄럽게 됐다……. 채비들이 얽키고 설 키워야 했을 열 명이 함께한 선상 낚시 팀의 모든 조과가 크지 않은 상사리급 참돔 열 마리에 광어 몇 마리였으니 낚시란 것이 다니다 보면 이런 날도 다반사로 있긴 하다만....... 바닷물위에의 시원한 수박 한 조각으로 일정을 마무리 하고 항구로 돌아와 근처에 있는 횟집에서 우럭과 갑오징어회 한 접시와 그 고장의 이슬로 뒷마무리를 하고 일어서니 캡틴 선장의 마나님이 오천항의 명물인 손질한 키조개와 갑오징어, 송이버섯 박스를 차에 실어주며 오랜만에 오셨는데 참돔이 이것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며 맛있게 드시라며 ‘오늘날, 이렇게 자리를 잡게 된 것도 큰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며‘ 대천에 볼일이 있다고 인사를 하고 갔다. 장마철이지만 비 소식은 들리지도 않으니 마른장마가 분명 하렸다?! 비도 없었다는 만재도 선장과의 통화가 몇 번 있었으니 이번 태풍만 지나가면 제대로 재미를 볼 수도 있겠다싶으니 더, 덥기 전에 한번 다녀와야겠네.……. 마침 시간이 된다는 딸내미에게 노모와 또 한 여인을 열심히 돌보고 지켜보라고 이르곤, 그 대가로 파란종이 수십 장이 건너가는 이상한 거래가 있었기에 짐을 꾸릴 수가 있었다. 집을 비우는 것이 미워서 잔소리를 하면서도 이것, 저것, 반찬까지 챙겨주는 마나님의 심보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

평소보다 이르다싶게 집을 나섰으니 남다른 여유가 있었지만 무엇이 그리들 바쁜지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고속도로위에 올라서자 내가 정말, 먼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동안 나를 옥죄고 억누르고 구속했던 답답함 속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점점 호흡이 가라앉았고 일찌감치 목포 북항에 있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벌써 8월이라는 새달이 다가오는데 설날 가래떡 썰듯이 세월이 금세 지나간다는 말도 있다만 내가 대체 뭘 하다가 여덟 달째를 맞이해 보는 걸까~?! 정말, 시간은 기다려주지를 않는다. 이렇게 세월이 빨리 지나갈 수도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또 한 번의 일탈을 위하여 먼 바다에 있는 섬으로의 탈출을 꿈꾸어 왔는데 어쩌면 낚시를 가기위한 그 바다로의 여행은 내내, 바람과의 동행일지도 모르겠다. 바다에서는 하루라도, 아니, 잠시라도 바람이 없는 날을 생각할 수가 없다보니 이번에도 일정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바람이 살랑살랑 가볍게 등을 밀어주면 수월하게 이번 여행을 보낼 수가 있을 텐데……. 그렇다고 바다구경이 어찌 그리 수월할 수가 있을까 일기예보를 몇 번이고 잘 살펴보고 물때도 맞춰보고 현지로도 연락을 하여 물색이며 수온이 어떠한지를 묻고 또 물어보며 먼, 바다로의 여행을 준비해왔지만 미약한 인간의 대자연에 대한 도전은 작은 저항에 지나지 않을 진데…….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는 ‘여행은 질러가는 길이 아니고 둘러서 가는 길이며 옆길이나 샛길로 가는 유혹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에서의 유혹, 저 멀리 맞은편에서 나를 기다릴지도 모를 그 어떤 아름다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제 발로 영원한 미로를 만들어서 찾아 가는 것‘ 이라고 하질 않았던가?! ‘헤세’는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했으니 잠시뿐일지라도 또, 벗어나보자 시간이 빚은 태초의 자연 속에서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벗 삼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뜰하게 보내고자 길을 나서보질 안았던가.

 

저 많은 짐을 싣다보면 땀을 흠뻑, 흘리게 될게다……. 지난 겨울시즌의 만재도행은 목포의 북항에서 운행하던 배가 연락이 안 되었기에 마땅한 배편을 찾다가 진도의 서망 항에서 가거도를 가는 배를 이용하였었기에 진도에 있는 낚시점으로 연락을 해보니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움직이는 낚싯배가 없다고 했다. 8월이나 되면 휴가철이라 어찌 운용해볼 배편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속상하는 내색도 못하고 개점휴업상태가 오래되었다며 한숨소리를 크게 전해왔다……. 여객선을 이용하여 흑산도, 태도, 가거도를 돌고 돌아 만재도 까지 가려면 6시간도 더 걸릴게다……. 차라리, 가거도를 가볼까? 임 선장이 얼마나 반가워할까? 원망을 할까?! 망설이던 참에 만재도 부근으로 선상낚시배가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심기일전하여 다시 일에만 열중하겠다는 점주와의 통화 끝에 아무 날이고 간에 나오는 날에도 철수 배를 넣어주겠다는 친절한 답에 목포의 북항을 다시 찾을 수밖에……. 대부분의 손님들이 선상낚시 팀이었기에 그 속에 얹혀가는 격이라 맨 마지막으로 먼저 내려야할 짐들을 실어놓고서 뒷부분의 선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모두가 대자로 누워있기에 한 두 사람이 더, 함께 누워갈 수 있도록 조금씩만 당겨보면 어떻겠냐고 하니 감때도 사납게 생긴 선상꾼 하나가 앞 선실로 가든지 말든지, 귀찮다는 말투를 던지곤 돌아누우며 자리를 좁혀 주질 않는다. 갯바위 꾼이었다면 일부러라도 당겨서 좁혀가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이것이 꼭, 선상 꾼과 갯바위 꾼의 격상의 차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으나 왠지 그런, 보이지 않는 격이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찾는 꾼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싶은 보이지 않는 모습이 생각나는 건 웬일일까?! 옅은 해무 탓에 그다지 속력을 내지 않았기에 뒷문을 열고 나가 선상 팀들이 깔아놓은 쿨러를 하나 골라 앉아서 진도 권을 벗어날 때까지 먼, 불빛들을 바라보다가 선뜻하여 선실에 들어오니 잠버릇이 사나운 선상 꾼이었는지 옆의 비어있는 공간까지 굴러갔기에 널찍하게 자리가 생겼다. (쨔샤~! 넌, 오늘부터 빈 쿨러 인생이 시작되는 거야~~!!!!) 속 좁은 저주를 퍼부으며 충분히 누울만한 공간에서 잠간, 눈을 부칠 시간이 생겼다가 전화벨 소리에 깨어났다. 벌써 시간상으로도 만재도에 도착했어야 했기에 만재도의 노선장이 ‘오는 건지 안 오는 건지’ 모르겠기에 전화를 했다는데 밖이 훤히 밝아왔고 도착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어찌된 일일까? 점점 더 짙어 지는 해무 탓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데 모니터 상에는 만재도가 코앞에 있었는데 육안으로는 십 미터 정도밖에 보이질 않았으니 이십년 전에 나침반에만 의존한 ‘조성스타’호를 타고 만재도를 찾았을 때도 이러했었을 게다....... 선상꾼들은 벌써 짙은 해무 속에서도 모든 채비를 마치고 당장이라도 채비를 내릴 준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오징어 미끼 같은 생미끼는 아예 준비하지도 않았고 털바늘에 특이한 모양의 비싼 웜들을 덧붙여서 주렁주렁 달고 있었으니 두어 해만에 선상채비도 완전히 다른 변화로 바뀌었으니 점점 물속에서도 고기가 살아남기가 힘들게 되는구나....... 짐을 내려 주자마자 선상낚시배가 물러가며 곧바로 진도 쪽에서 온 대절선 에는 열댓 명의 갯바위낚시인들이 타고 있었다. 만재도의 섬사람들과 해가 바뀌어서야 만나는 반가움의 손잡음과 아직도 섬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건네 가며 일단, 민박집으로 짐을 옮겨놓고 정리를 한 후에 오후쯤에 갯바위의 한곳을 골라 나가기로 했기에 아침밥 한술을 먹고 잠시 이야기를 하며 휴식을 하고 있는데 노선장이 제법, 맛이 든 부시리를 방금 전에 손낚시로 낚아왔으니 몇 점씩, 맛을 보라며 한 마리를 가져왔다. 참치인지 새치인지 알 수도 없는 흔해빠진 참치횟집에서 내주는 뭉텅한 살점과 맛에 비하면 야 숟가락 점수 다섯 개를 주고도 하나를 더, 주어도 될 싱싱하고 고소한 회맛에 깜짝들 놀랐다……. “부시리가 원래, 이런 맛이었나? 천대시하고 물려주지 않기를 바랐던 어종 아니었어?” 일행인 ‘정 군’이 가져갈 수만 있다면 부시리를 잡아도 되겠다고 했다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다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간단하게 낮 이슬을 들이켰으니 약간, 취기가 올랐으나 오랜만에 만재도에 와서 갯바위에 오른다는 감흥에 눌려서인지 곧 사라져버렸다. 오늘은 저기 보이는 저 섬에서 뜨거운 첫날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정 군’을 앞쪽에 내려주고 뒤쪽으로 돌아서 내리게 되었는데 서로가 필요하거나 돌아볼 일이 생길 때마다 용이 되지 못하고 이무기가 되었다는 굵은 갯장어가 그대로 굳어버린 화석의 등줄기를 타고 넘어 다니다 보면 땀 좀, 흘리게 생겼다. 발밑까지 쓰레기들이 밀려 왔고 물빛까지 탁하게 변했으니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멀리 간여에는 진도 쪽에서 들어온 꾼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쪽의 맑은 물이 천천히 밀려들어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이런 저런 채비를 해봐야겠다. 채비를 마치고나니 쓰레기더미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물색도 좀 더 맑아졌다. ‘정 군’ 이 먼저, 한차례 넘어와서는 망치를 빌려갔기에, 해가 지기 전에 어떤 조과가 있었는가? 구경을 가보니 크지 않은 농어 떼가 몰려들어와 채비를 던지기가 귀찮다고 했다. 무게가 나가는 루어나, 좀 더 깊은 수심 대를 공략하면 농어의 크기가 나아질 거라고 소리를 쳐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어두워지기 전에 상사리급 참돔들을 몇 마리 낚았고 간사한 입질 속에 또 생각지도 않은 크기의 망상어가 낚여 올라와 깜짝 놀라기도 했다가 이상한 손맛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 보니 때 아닌, 여름 감생이가 너댓마리나 올라왔고 뺀찌급을 넘긴 돌돔도 얼굴을 보였기에 오늘밤엔 심심치 않은 밤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후끈했던 바람 속에 간간히 서늘한 바람이 섞여 불어오면서 입질의 빈도가 오락가락하더니 크지 않은 너울들이 덮쳐 올라오기 시작하여 발을 딛고 있는 곳마다 몹시, 미끄러웠기에 허벅지에 힘이 절로 들어갔고, 한 걸음 한걸음마다 조심스럽고 위험하기까지 했다. 도시락이 담긴 봉지를 갖고 내렸던 ‘정 군’이 뒷골을 다시 넘어와서는 작은 농어로만 쿨러를 넘기겠다며 투덜거리며 온기가 가시지 않은 밥덩이를 꾸역꾸역 먹어치웠고 잠시 두런두런 이야기 끝에 다른 고기가 없으면 안쪽 골에서 볼락이라도 잡아보겠다며 다시 넘어갔기에 비교적 가벼운 채비의 2호대와 2호찌로 안통까지 원투를 하여봤지만 지렁이의 꼬리를 물고 들어가는 입질에 챔질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물방향도 이상하여 원하는 곳으로 흘러가지를 않기에 볼락잡기를 포기하고 발밑낚시에 주력하다 보니 갯쏨뱅이와 우럭종류는 가끔씩 물려나왔는데 이러다가 언제 쿨러를 채울는지 알 수가 없다……. 물 흐름이 간 여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에 흔한 농어라도 몇 마리 낚아보면 쿨러가 그득해질 수도 있겠기에 지렁이 두 마리를 끼워 내려 보니 고등어만한 크기의 농어새끼가 연실 물고 올라왔다. 이러다간 지렁이 한통이 바닥이 날판이니 한번만 더 던져 보고 발밑에만 주력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더 멀고 깊은 곳을 공략해 보기로 하고 수심도 2미터 정도를 깊이 하여 멀리 던져봤다……. 바로, 채비가 정렬이 되었겠고 찌가 흐르는 방향이 생각대로 되었다고 생각하자 가벼운 입질이 바로 보였기에 제발 큰놈이나 한 마리 물려주기를 갈망하며 좀, 더 깊이 삼키도록 두어 번의 견제 끝에 물속 깊이 사라져 가는 붉은빛의 전지 찌를 보면서 힘차게 챔질을 하니 어째 힘쓰는 품새가 좀, 다르다……. (아? 볼락을 잡겠다던 2호대에, 4호 원줄, 4호 목줄 채비로 바늘만 바꾸어 던졌었지? 요즘은 서해중부권의 참돔 선상낚시에서도 2호대에 4호 목줄로 한 단계 예민하게 줄여서 사용한다던데…….) 만재도나 가거도 에서는 볼락의 씨알도 큰데다 마릿수도 많고 목줄이나 바늘크기에 예민하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보니 그대로 들어올리기라도 편하게 이렇게 투박한 채비를 쓰기도 하는데 선상에서가 아닌, 갯바위에서는 가끔씩 출몰하는 다른 종류의 큰 고기를 언제 만날지 모르다 보니 채비를 약간이라도 약하게 쓰다보면 불안하기도 하다. 큰 고기를 걸어보기라도 하고 수차례 터트려 보기라도 했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겠다만 서도……. 쩝……. 한참을 늦춰주고 당겨주는 짜릿한 밀당이 한동안 있다가 농어가 물위로 벌렁~!!!!! 드러눕는 것을 보고야 뜰채를 들고 내려가서 조심스러운 몸짓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려 움직이기가 꿉꿉해졌다. 얼마 후에는 물방향도 바뀌면서 서늘한 바람까지 불며 짙은 해무가 깔리기 시작했기에 농어 입질마저도 끊기었다. 물돌이 시간도 한참이나 지났고 찬바람에 수온까지 내려갔으니 모기약만 들고 누울만한 곳을 찾아 억지로 등을 내려놓았지만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정신이 말똥말똥하니 잠이 오지를 않는다. ‘정 군’이 있는 곳으로 넘어 가보니 불빛도 보이지 않는 것이 어디에선가 잠을 자는가본데 내려가서 괜스레 잠을 깨울 수도 없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다리를 꼬고서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그믐달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낮게 깔린 해무위로의 맑은 밤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도는 저 멀리 진도 쪽의 불빛이 느껴졌다. 지난번에 발생한 ‘세월호’의 침몰사건으로 너무나 많은 어린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고 전 국민이 함께 크나큰 슬픔에 빠졌다. 여전히 수습되지 못한 실종자들이 많다는 사실 역시,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고 있다. 친구나 가족을 잃은 슬픔이란 것이 너무도 참기 힘든 고통인데, 더구나 채 피어보지도 못한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괴로움일 것이다. 수백 명의 희생자 가족들이 사랑하는 아들, 딸, 부모와 배우자 없이 남은 삶을 살아가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했으니 이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차마 말로는 헤아릴 수가 없으니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삼가 애도의 뜻을 마음속으로나마 전해보면서 남겨진 가족들의 마음에 어서 평안이 깃들기만을 진심으로 기원할밖에....... 새벽이 물러날 시간이 되었기에 다시 자리로 내려왔지만 너울이 있었는지 갯바위 주변이 온통 젖어서 걸어 다니기조차 힘들었고 날이 밝으면서는 ‘간간히 있던 입질마저 끊기었기에 짐정리를 시작했는데 ’정 군‘도 일찌감치 짐을 챙겨버렸다며 잠시 넘어와서 있다가는 배가 올 시간이 되었다며 다시 넘어갔고 오전 일곱 시가 되자 젊은 선장이 정확하게 달려왔다. 이렇게 만재도 에서의 첫날밤을 심심치 않게 보냈으니 둘째 날 밤은 어디에서 보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