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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1. 만재도의 6박7일.(지루한 기다림끝에 출발)

by 찌매듭 2013. 8. 12.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2013년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이었기에 봄도 쉽게 오질 않았었고 
여름도 늦장을 부리다가 갑자기 시작되었지만 장마철만큼은 
정확하게 시작되었다.
가끔씩, 당일치기 낚시를 남쪽바다로 가겠다며 아는 이들이 연락을 해왔지만 
그 멍청한 여행에 합류하기에는 워낙, 바다가 먼 동네에 살다보니 잠간 
콧바람이나 쐬보려고 섣불리 먼 길을 나서기도 억울했다.
(나도 철없는 저 나이 때에는 먼 길을 달려가고 또 달려가질 않았던가…….)
해마다 5월1일 부터는 쏘가리를 잡지 말라는 금어기(禁漁期)가 시작되기에 
서둘러 소양 댐이며 화천댐 등지로 잠시 시간을 내어 쏘가리낚시를 갔었지만  
차디찬 수온에 화들짝 놀라, 막국수 한 그릇을 뱃속에 들여 넣고 돌아서야했던
강원도 나들이길이 두어 번 있었나보다…….
금어기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예년과 같이 쉽게 쏘가리 구경을 
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었지만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늦도록 이어졌기에 
꾸려놓은 짐 가방을 그대로 밀쳐 두어야했다.
5월 중순이 되어서야 제법 따뜻한 햇살이 퍼지기에 산으로 달려가
두릅도 꺾고, 더덕도 캐고 산나물도 뜯어가며 금어기가 풀리면 바로 
달려갈 곳이 어디일까, 점쳐 보다가 어느 물가에서는 헛 채비도 
던져보았다가 스픈의 뒤를 따라 나오던 물고기의 형체를 보았는데 
쓰잘머리 없는 베스였겠지만 내게는 육자배기 쏘가리가 아닐까?
허망한 기대에 급히 루어를 재차, 던져 보다가 너무, 서둘렀던지 
스풀 속에 줄들이 ‘오로로~~~’ 한 번에 풀려나와 엉키고 말았기에
그대로 줄을 끊어내야 했다.......
다른 루어 대를 집어 들었지만 멀리서 기침소리가 들려왔기에 
제풀에 놀랐다만, 내가 아직 금어기에 고기를 잡은 것도 아니고
베스를 잡는다면 멀리 뒤쪽으로 던져 두었다가 필요한 사람이 생각나면 
가져오면 될 것이고, 만약에 쏘가리를 잡았다면 다시 방생하면 될 것이다 만,
혹시나 방생하기가 아까운 크기의 쏘가리가 걸려든다면 갈등 또한 크겠기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느니 마음 편하게 채비를 접고 나물이나 뜯는 것이 낫지 싶었다........
어느 해인가의 금어기 때에, 한 무리의 인원이 몰려와서 쏘가리회를 뜨고 
매운탕을 끓여먹으면서 한바탕 소동을 피우다가 가는 것을 보았는데
뒷정리를 하던 어부가 하는 말에 기겁을 하고 말았었다.
“저것들이 근처지역의 나리와 공무원들인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식솔들까지 데리고 몰려와서 처먹고 간다고.......”




오월의 중반부터 갑자기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여 나물들이 웃자라며 
억세 지기 시작했기에 서둘러 겨우네 먹을 산나물을 장만해갔지만
바다와 호수의 수온은 좀처럼 따뜻해지질 않아 서해중부권의 
선상참돔낚시도 신통한 조황이 보이질 않았는데 수온 탓인지……. 
몇 년간 수도 없이 낚아낸 탓에 씨가 마른건지, 알 수가 없다.
박 씨가 6월8일에 선상낚시를 예약해 두었다며 함께 가자는 연락이 있었는데
막상 당일이 되어서는 아무연락이 없기에 일정을 취소했나 했더니 
인원이 넘쳐서 연락을 안했다나보다…….
다음날, 인터넷에 올라온 조황을 보니 배한 척에 열 명씩 올라타고 낚시를 했으니
채비가 얽히고설키는 복잡한 날이었지만 스무 마리에 가까운 참돔구경을 
했다며 대박의 날이라고 거품을 물었는데 스무 명이 스무 마리면 대박이라니 
언제부터 욕심을 버렸기에 이리도 검소해졌을까? ^^;;
꼭, 한 마리를 갖다 주겠다고 큰소리를 치던 기특한 후배조차도 
아무 연락이 없었던걸. 보면 빵빵한 자기배도 채울 만큼은 안 되었나 보다…….
하기야, 가거도며, 추자도며 원도 권으로 달려가 며칠씩 낚시를 해도 
고기구경을 못하고 올 적도 있는 판국에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포구로 달려가서 1시간도 안 되는 바닷길에 나서서 붉은 바다의 여왕을 
한 마리씩이라도 안고 올수가 있으니 대부분이 먼 바다를 구경 못한 
동네꾼들에게는 대박이라면 큰, 대박이다.
돌아오는 시간도 많이 안 걸리니 빨리 돌아와서 식구들에게 회한 점씩이라도 돌리면
다음번 나들이가 좀 수월하기도 할 테니..........
이틀이 지나자 갑자기 수온이 올라갔는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참돔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스마트폰을 울려대기 시작했으니 
이참에 호수의 물도 따뜻해지지 않았을까?
다음날은 더 많은 참돔들이 낚였다는 소식이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왔기에 
한밤중에 급히 짐을 꾸려 자동차의 트렁크에 실어 두었다가 새벽 일찍,
소양 댐으로 달려간 것이 쏘가리의 금어기가 해제 된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두어 번 던져본 스픈 루어에 무언가가 ‘덜컥~!’ 물어대는 가벼운 감촉이 있었는데
원래 쏘가리란 것이 특별한 대물이 아니라면 크게 저항하여 손맛을 주는 낚시 대상어가 
아니다보니 가까이 끌려 나와서와 크기를 가늠해 보며 눈에 보이는 황홀한 얼룩무늬가 주는 
만족감과 회와 매운탕으로 변신하여 혀끝에 녹아나는 맛으로서의 감동뿐이다 보니 
크게 빠져들 일도 아니겠건만 민물루어꾼들에게는 쏘가리가 가장 선망의 대상어이다.




언젠가 미사리근처에 있는 매운탕 촌으로 점심약속이 잡혀서 간적이 있었는데 
민물 매운탕, 큰 냄비 하나에 15만원이라기에 깜작 놀랐다.
달랑, 매운탕만 한 냄비 주는 것이 아니고 한정식같이 큰 상에 여러 가지 
반찬을 곁들여서 내주는 것이라기에 ‘그러면, 그렇겠지,’ 했었는데 점심을 
내겠다는 사람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추가로 시킬 것이 없을까, 
둘러보다가 물간에 35센티 정도크기의 쏘가리가 한 마리 있는 것을 발견하곤 
같이 넣어 끓이면 더 맛있고 푸짐하겠다기에 얼마나 더 받는 가고 물어보니 
30만원을 달라고 하여 잘못들은 것이 아닌가? 귀를 의심하고 말았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오는 다급한 마음에 원래의 매운탕 값에 15만원이 더해진 30만원인지? 
쏘가리 한 마리 값으로만 30만원을 더 달라는 것인지는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원래대로의 매운탕만 주고, 쏘가리는 더 살도록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어디서 구해온 쏘가리인지도 모르겠거니와 평소에 남보다 쏘가리를 쉽게 접하다보니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같아 어안이 벙벙하기만했었다.
매운탕 냄비 속에는 한눈에 보아도 양식한 메기 두어 마리와 
큼지막한 눈치 몇 토막이 보였고 동자개와 피라미 종류도 보였는데 
언젠가 아는 사람의 비닐하우스에서 기른 동자개를 사러온 중개인이 
‘이정도의 크기면 자연산이라고 속여도 아무도 모른다. 며 거품을 물고 
가져갔던 그 동자개로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
이십 여 마리의 쏘가리를 낚아 민물에서 적용하는 18센티보다는 훨씬 후한, 
바다에서의 방생크기를 적용하여 25센티 아래의 쏘가리를 모두 놓아주고
열두어 마리를 쿨러에 담아 기포기를 힘차게 틀고 트렁크를 닫으려는데 
누군가가 곁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많이 잡으셨지요? 아까 멀리서 봤지요~~~~~
  어제는 62센티 짜리가 나왔더라고요……. “
“어디서요????????”
“저기, 저기, 글씨.......”
“그 안쪽 홈통 밑에서 나왔단말이지욧~!!!!!!!!”
“어떻게 거긴줄........”
“거기가 가끔씩 이 수위 때면 사고치는 곳 아뇻????!!!!”
어쩐지, 하루 전에 달려오고 싶더라니........
꼭, 그 고기가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고, 내 고기가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흔들리는 마음이 감지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수양이 덜 됐겠거니...........
이후로도 두어 차례, 짧은 일정의 쏘가리 낚시를 다녀왔기에 눈 맛과 입맛은 
어느 정도 충족이 됐지만 잔잔한 호수에서는 넘실대는 파도도 없었고, 
쫍쪼름하니 염기서린 바람도 없었고, 탁 트인, 수평선도 볼 수가 없다보니 
좀처럼 가슴속에 응어리진 알 수 없는 덩어리를 떨어뜨려낼 수가 없다보니 
더욱 답답함에 진땀만 맺힐 뿐이었다.
반강제적인 약속으로 친구 놈들에게 쏘가리회와 매운탕을 한번 
푸짐하게 내놓겠다고 한 기억이 있었기에 열댓 마리를 낚은 날이 있어
돌아오면서 강촌휴게소에서 얼음덩이도 더 넣어주고 기포기의 배터리를 
교체하는데 가까운 친척이 세상을 떠났다고 연락이 왔다.
낚아온 쏘가리들을 그대로 쿨러속에 처박아놓고 짬짬이 들여다보면서 
물도 갈아주고 기포기도 확인하며 이틀간을 잘 살려두었지만 마지막 날의 일정을 
치르고 돌아오니 좁은 공간에서 서로간의 다툼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으니 
귀한 쏘가리가 빛도 못보고 급한 손질 끝에 냉동고에 처박혀선 
매운탕거리로 변하고 말았네 그려.......






쉽게 자리를 비울수가 없는 처지인 것을 알고 있는 오천의 김 선장이 
오후반을 준비 할 테니 큰 손맛을 볼 준비를 하시라고 문자를 보내왔지만 
오후가 되면 수온이 내려가는 이맘때에는 오전조과만 좋다보니 
쉬, 일정이 안 잡힌다고 하기에 참돔구경도 쉽지가 않다며 잊어버리고 있었다간
갑자기 연락이 왔기에 막대찌 하나와 낚싯대 한 대만 덜렁 들고서 
내려간 날은 태풍 끝의 너울이 남은 날이었는데 오래간만에 파도에게 희롱을 
당하다보니 크지도 않은 참돔 세 마리를 간신히 낚아놓곤
멀미로 몸이 흔들리다보니 토악질끝에 선실안에 쓰러진 날이 되고 말았다......
딸아이가, 아빠에게 특별한 날도 있었으니 선심을 쓰겠다며 자기의 휴가기간에
집안일을 며칠간 맡아볼 테니 제대로 된 큰 낚시를 한번 다녀오라며
일정을 잡아보라기에 틈틈이 짐을 꾸리게 되었다.
만재도의 민박집 아저씨에게서 6월 중순경쯤 부터, 더워지기 전에 
한번 다녀가라며 전화가 왔었지만 노(老)선장은 음력 6월이 되어야만 물색도 나오고 
고기가 제대로 갯가로 붙지 않더냐며 이십년간이나 만재도를 다녔으니 
알아서 선택을 하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목포에서 ‘만재도’라는 식당을 하는 선장의 작은아들이 자리를 옮기게 되어
잠시 시간이 났기에 7월 초순에 만재도의 갯바위에 올라 이틀간 밤낚시를 했다는데 
물색이며 수온이며 모두가 마땅치가 않으니 한 물때쯤 미루어 오심이 어떻겠냐고 연락이 왔는데, 
낚시를 즐기기에 다녀왔다지만 노선장의 또 다른 권유가 있었기에 탐색차 다녀온 모양이었다.
초복(初伏) 날에는 노모(老母)에게 오골계(烏骨鷄)라도 한 그릇, 올려드리고 
집을 나서려고 했는데 멀리 지나가는 태풍의 여파가 닿았는지 
이번에는 하늘에서 길을 내주질 않아 또 물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틀간 물색이 좋고 날씨도 좋았기에 돌돔이 모습을 비췄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늦은 밤에 전화를 걸어온 노선장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직 내려올때가 아니라고 또 길을 막았다…….
매번 조금 물때를 택하여서만 만재도를 찾던 것이 오랜 습성이 되었다.
만재도를 처음 가게 되었던 구십 년대 초기에는 마땅한 배편도 없었기에
날을 정하여 인원을 모아야했고 인원을 모았다 해도 예약했던 배를
또 급변하는 날씨에 따라 몇 번이나 미루고 연기해야했기에 보통 인내심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던 것이, 워낙, 물이 거센 곳으로 알려진 곳이었고 
만재도라는 섬에 가보았다는 배의 선주나 선장도 별로 없었던 때였을 게다.......
요즘 와서는 무엇이 그리도 변했는지 사리 때도 공략할 수 있다는 겁 없는 
천둥벌거숭이도 나타났지만 그래도, 만재도에는 나름대로 만재도 다운 공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30톤에 가까운 느려터진 배에 올라타고는 진도의 팽목항을 출발하여 
몇 시간을 정처 없이 가다가는 제풀에 지쳐, 쓰러질만해서야 곧 도착한다는 
소리에 우르르 몰려나가 해무에 가리어져 흐릿하게 보이던 만재도를 보곤 
모두가 기진맥진해진 몸을 다시 추스르며 얼굴에 생기를 돋우웠는데 대체, 
낚시가 무엇이관데 저 모양들일까?




짐을 꾸려 놓은 지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움질일 수가 있었는데
벌써 8월이 되었다.......
선임자들에게서 부터 복(伏)낚시는 피해야한다고 누차 일러들었었는데
이번에도 또 복낚시를 하게 되었으니 고생을 각오해야할 모양이다.
내일은 들어가는 배편이 없으니 하루를 늦추어 내려오라고 
낚시점 아가씨가 엄포를 놓더니 다음날은 출발을 했는지 안했는지 
물어 오기에 벌써 출발을하여 천안을 지나고 있다니 한숨을 쉬면서 
조심히 내려오라고 하는 품이 손님이 많지 않은가보다. 
노선장의 아들과 딸이 운영하는 식당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애피타이저로 등장한 홍합무침의 알맹이가 왜 이렇게 큰 걸까?
한입에 먹기가 버거운 크기로 두 번에 나누어 먹어야할 크기의 홍합알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알갱이가 작은 것은 현지에서 국이나 반찬용으로 사용하고 알이 큰 것만을 
골라 보내준다는데 민박집의 아줌마는 선장의 아들에게는 
작은 엄마가 되기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나보다…….
분당에 있던 블루힐 백화점이 L백화점으로 넘어가며 세일을 한다기에
마나님에게 덜미를 잡혀 구경을 가게 되었는데 큼지막한 홍합 세알을 까서
지푸라기에 엮어놓고 돈만원의 가격표를 붙여놓았기에 기겁을 하고 
들여다보았는데 깐 홍합 한 알에 3천원이 넘는 값이었다.
십여 년전이었다지만 지금 가격으로도 비싼값이 분명할텐데 원산지 표시에는 
만재도산이라고 붙어 있어 벌린 입을 그냥 다물어야하질 않았더냐…….
그때만 해도 방파제의 길이는 몇 걸음 안 되는 짧은 길이였는데 물속에 
매달아 놓은 망태기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홍합이 80키로 정도씩 담겨서 
묶여져 있었는데 일일이 저울에 달아서 담아둔 것이 아니고 대충 세어서 
280개 정도면 그 무게가 나간다며 십만 원에 거래가 되고 있었다……. 
한 알에 오백 원이 못되는 가격이었지만 드나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사가는 사람들이 생기자 20만원, 30만원……. 점차 가격이 오르다간, 
큰 홍합도 고갈이 되었는지 점점 보기가 힘들어졌다.......
만재도에 도착하면 가장 가까워 보이는 검은 여에서도 잘 영근 옥수수 알같이 
빼곡하니 들어찬 홍합이 지천이었기에 쉬는 참에 갯바위 망치를 들고 잠시만 
손을 움직이면 밑밥통 두 개를 채우기는 일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작은 홍합이 그 자리를 메우려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할까?




식사를 하는 중에 낚시점의 아가씨에게서 전화가 와서는 현지의 
청갯지렁이가 굵기도 가늘고 품절이니 눈에 띄는 아무 낚시점에서라도 구해보란다.......
작은아들이 아는 낚시점마다 전화를 해보다가 어느 집에서 나누어주겠다. 하여 
원했던 분량보다 적은 양이긴했다만 휴가철에는 지렁이도 귀하신 몸이니고맙고말고.......
산더미 같은 짐을 배가 출발하는 북항의 방파제 바닥에 내려놓고 
한쪽 날개의 불이 꺼진 풍차를 보고, 전어 잡이 배도 보고서야
비로소 내가 집을 떠나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을게다.
꿈이란 것이 꼭 크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또, 꿈이란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인데
욕심꾸러기처럼 생각될 진 모르겠지만 꿈을 
여러 개나 품고 있다면 건강하다는 증거란다. 
건강하지 못하면 꿈도 품을 수가 없을 테니까....... 
실현이 불가능한 엉뚱한 꿈일지라도 
내게나, 또 누구에게나 모두가 소중한 꿈들일 게다
어제의 이루지 못한 꿈도 소중하고, 
오늘 실현해 보려는 꿈, 다가올 내일의 꿈과, 
계속해서 이어지는 거듭될 꿈이 있다면, 힘들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그래도 설렘으로 이어지며 누구에게나 
또 다른 활력을 주질 않겠는가...........
자주 바다를 보고 싶었지만 내가 살아가며 머무는 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먼 곳까지 찾아가야만하기에 
바다구경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터이다
가끔씩 그 바다를 보려고 몇 번이고 길을 나서려다가 
중도에서 포기하고, 또 포기하고, 
포기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결국, 제자리에서만 맴돌면서
그 바다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불평만 잔뜩 늘어놓으며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뿐이었던 내 앞에,  
드디어 그 바다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제 잠시 후에는 눈앞에 보이는 바다를 건너서 
내가 가고자 하는 섬으로 찾아가 그곳에서 또,
다른 바다를 보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지치고 피곤했던 내육신이 
활력을 되찾도록 노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