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2. 만재도의 가을여행 by 찌매듭 2011. 11. 3. 자고 일어난 탓도 있겠지만 선뜻한 것이, 바람에서 느끼는 온도가 서늘하다. 두 달 전의 여름날에는 너무 더워서 담이 줄줄 흘러내렸는데 옷깃을 여며야하다니……. 또, 늦은 점심밥만 차려 놓고 아줌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 것이 다시마 손질로 정신이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이 집의 할머니가 차지하고 계셨던 방안에까지 말린 다시마로 가득했는데 꾸덕하니 말려만 놓으면 판로는 얼마든지 있기에 한철 다시마 농사로 만재도 전체가 분주하다. 만재도를 올적마다 방안에 앉아서 ‘왔느냐’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주시던 할머니를 목포의 요양원으로 모신지도 일 년이 넘었다나보다. 처음에는 그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게로만 알았었는데 어느 여름날 엄군과 밤낚시를 마치고 정신없이 낮잠을 자는 중에 요의(尿意)를 느끼고 밖으로 나갔는데 수돗가에서 할머니가 옷을 벗은 채 씻고 계셨는데 더운 날이다 보니 등목이라도 하시는가, 개의치 않고 지나가는데 할머니는 당황스러우셨던가 보다. “아이고, 이런, 늙은이가 추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요.......” 옷가지로 몸을 가리며 일어서지를 못하고 두 팔을 이용하여 땅바닥을 짚어가며 급히 방으로 향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거동을 못하시기에 10여 년 동안을 앉아서 맞이하였었구나......) 내 딴에는 내 부모, 같겠거니, 벌거벗은 것에 신경을 안 썼는데........-_-;; 형인 선장이 모시지를 못하고 동생인 민박집에서 모시는 것이 방이 부족하여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큰집 아줌마가 건강이 좋지 못하여 그러했던 모양이었다. 섬에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물일을 해야만 했기에 조금만 더 숨을 참을 수 있다면 물속에서 얻을 수 있는 해산물을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다 보니 무리를 했고 점점 나이가 들면서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잠수병이라는 것을 알 수도 없었고 알아도 어쩔 수가 없었으니 치료시기도 놓쳤을 게다. “젊었을 땐 총기가 대단했던 사람인데 안타까울 뿐이외다......” 2년에 한 번씩 잠수병 치료감압기가 설치되어있는 병원선이 들르면 잠시 사용을 하게 되는데 그때만 잠시 편안함을 느껴본다니 의료혜택이 아직도 먼 곳이 이곳 뿐만은 아닐 것이다. 겨울철에 낚시를 왔다가 추운날씨에 재채기를 몇 번했더니 민박집 아저씨가 감기약이 있다며 한 봉지, 먹어보라고 건네주었는데 일반 판매용이 아닌 조제용봉지에 담겨 있었다. 병원선이 들렀을 때 받아 놓은 것이라는데 체질이나 증상을 따질 필요도 없이 아무나 먹어도 되는 만능 감기약이라니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라는 건 이곳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나보다. 작년 여름철에는 낚시꾼은 아닌 못 보던 손님 둘이 방문을 했는데 옆에서 들어보니 의료보험공단에서 나온 사람들이었고 할머니의 등급을 논하기 위하여 방문을 한참이었다. 집의 노모(老母)도 이러하다보니 까다로운 등급놀이에 애를 태웠었는데 별도로 인사를 해야겠다는 선장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그만 열이 올라 “도대체 눈으로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을 뜸들이고 재고 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며 소리를 질러댔는데 어찌됐던 잘 해결이 되어 뭍의 시설로 모셨으니 잘되긴 했다. 그러고 보니 노모에게 어제부터 바쁜 고기잡이 놀음에 정신이 팔려 전화를 못했다는 생각에 방파제로 걸어가며 전화를 넣어봤다……. ‘그깟 고기 못 잡아도 좋고, 안 먹어도 좋으니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무사히만 돌아오라’는 말에 잠시 울먹해졌다……. 온 섬이 다시마로 도배를 했다. 여기도 다시마, 저기도 다시마, 뒤편에도 다시마……. 공간만 있다면 다시마가 있었고 어제 잡은 고기도 바람에 꾸득하니 물기가 걷혀가고 있었다. 아직도 물색도 맑은 것이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는듯한데 바람은 어째 멎지를 않을까……. 오늘은 서 씨 아저씨와 함께 내리게 되었다. 바람의 방향이 약간 바뀌었기에 건너편의 뚫린 자리로 자리를 잡았지만 가거도나, 추자도라면 이런 지형이 환영을 받겠다만 만재도에서는 탐탁치가 않은 곳인데 참돔이 나올 만하다며 선장이 강력하게 제안을 했다. “몇 일간 사람들이 내리지 못했었고 오늘 물때라면 양물을 볼 수 있을 것 같으니 대물 한번 해보소……. 농어도 제법 붙을듯하요…….” 도미, 도미, 도미……. 다른 물고기는 모두 제쳐놓고 오직 큰 참돔만 낚기를 고대하니 도미가……. 참돔이 그렇게나 대단할까나? 지난번 여름철에는 열기 그물 속에 참돔이 한 마리 걸렸기에 선물로 주려고 잘 손질하여 냉동해 두었다기에 얼마나 엄청나게 큰 참돔이었을까 궁금했었는데 60센티 정도 크기였었다. 참돔이라면 야 가까운 서해중부의 외연도 권에서 많이도 잡아 보았다는 걸 모르다보니 귀한 고기로 알고 있다. 선상낚시에서였지만 7~80급의 참돔은 걸핏하면 잡았고 마릿수로도 참돔을 수십 마리씩 낚아 보았다고 하면 민박집 아저씨는 믿기도 안 믿기도 애매한 표정을 지었는데 설마, 언젠가 다녀갔다는 어떤 뻥쟁이와 비교하는 건 아니겠지? 만재도 사람들의 만재도 사랑은 물고기에서까지 느낄 수가 있는데 민박집 아저씨의 참돔이나 돌돔 사랑은 도를 지나쳐서 극에 달할 지경이었다. 두어 해전에 유명한 낚시선생이 만재도를 왔다나 보다. 제법 큰 참돔을 낚아 나왔기에 ‘과연, 낚시학교 교장선생이라더니 솜씨가 대단하다’ 생각하고는 ‘어떤 채비로 낚았는가? 물어 보았더니 2.5호 목줄을 사용했단다. 열이 오를 데로 오른 민박집 아저씨는 “아니? 만재도 참돔을 뭐로 보고 2.5호 줄로 잡았다느냐?” 며 호주머니 속에는 4호 줄이나 5호 줄을 감춰놓고 거짓말을 한다며 순, 뻥쟁이라며 흥분을 했다는데 추자도나, 거문도 같이 걸림이 없는 곳이라면 멀리에서 고기를 걸어 그 한 마리로 하루의 낚시를 마감하자고 생각하고 하루 종일 풀었다 당겼다를 반복한다면 못 잡을 것도 없겠다만 발밑에서 덤벼드는 만재도산 참돔을 그런 가느다란 목줄로야 어찌 감당이 될까나……. 하기사, 뭐, 말벌도 거미줄에 걸려 죽는 세상이니....... 서 씨 아저씨가 얼마나 낚시를 하고 싶었으면 한창 일을 하는 도중에 작업진행을 일러놓고 살짝, 빠져 나왔을까만 낚시점의 배가 운항이 없는 날이었다. 진도에서 가거도를 운행하는 낚싯배를 찾아보려니 그마저도 손님이 없어 운항을 못하니 할 수 없이 여객선을 타고 가거도를 빙, 돌아서 왔을까. 처남들에게 가을의 깊은 맛이 든 회맛을 보여주겠다고 큰소리를 쳐 놓고는 비싼 지렁이까지 한 박스를 사왔다니 농어 같은 고기는 뒷전이고 오로지 돌돔을 몇 마리 낚아야한다며 이 바람 속에 무겁고 긴 장대를 펼쳐들었는데 두어칸 옆으로 내렸다면 몰라도 이곳에서는 돌돔을 잡기가 어려운 날일게다……. 물방향이 바뀔 때까지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쉬지도 않고 자리를 지키는 서 씨 아저씨가 저러다가 돌부처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닐지……. 바쁜 아줌마가 반찬걱정을 하면서 한꺼번에 많이 장만해 두었던 동그랑땡전이 약간 이상하긴 했었다. 반절은 이미 목 고개를 넘어갔고 입안에 남았던 덩이에서 이상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것이 탈이 났는지 메슥해지면서 밤이 깊어서는 끝내 토악질로 내뱉어졌고 온 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속이 떨리는 것이 음식 탈이 난 모양이다. 평소에 빠트리지 않고 가지고 다니던 구급낭을 뒤져내어 마땅한 약을 꺼내어 입안에 털어 넣고 진정상태로 들어가 무탈하기를 위한 자기최면까지 걸어 보았는데 꼭, 필요할만한 구급약들을 오래도록 가지고 다녔었지만 매번 남을 위하여 쓰여졌을뿐, 내가 사용해 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노래미와 우럭 몇 마리를 낚은 것이 몇 시간의 수확이니 오늘 낚시는 글렀다는 생각에 모기가 적을 높고 편 한곳을 찾아 깔개를 깔고 침낭 속을 파고들고 말았는데 심한 증상이 아니었는지 비상약이 신묘한 효능을 발휘했을까, 정신력이 육신을 넘어섰을까, 짧은 잠에서 깨고 보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자정이 가까워졌고 달도 앞에 있는 섬의 뒤로 내려앉아 어두워졌다. 물돌이가 지났다는 생각과 물방향이 잡혔겠다. 는 생각에 침낭 속을 빠져나와 내려가 보니 잠을 잊고 자리를 지켜가며 낚시를 하고 있던 서 씨 아저씨가 불빛을 보았는지 소리를 쳤다. “어, 이~, 참돔 들어왔어~~~~~” “뭘, 잡았수?” “조금 전에 한 마리 잡고 지금 또 한 마리 잡았어.~~~~” 큼지막한 참돔 한 마리가 꿰미에 꿰어져 있는 것이 보였는데 줄을 짧게 주어 얼마나 파도에 시달렸는지 붉은빛도 없는 백미 돔이 되어있었다. “회꺼리로 사용하려면 차라리 쿨러에 넣지……. 비늘이 홀딱 벗겨져서 알비노 참돔이 된데다 가 뻣뻣한 것이 이미, 운명도 달리한 모양인데 조금 전에 낚은 것이 맞기는 맞는 거요?” “...............” 물돌이 시간이 지난지 두 시간은 되었을 텐데 아직도 물방향이 바뀌질 않았는지 반대방향으로 찌가 흘러가고 있기에 곧, 물이 뒤집힐 쪽으로 뜰채를 들고 옮겨가서는 미리 자리를 잡고 있으니 잠시 후에 원하는 방향으로 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농어가 몇 마리 들어왔는지 움직임이 느껴졌지만 수심을 조정하기도 귀찮아 참돔을 노려보기로 하고 몇 번째의 흘림 끝에 파도에 감춰지는 것이 아닌, 입질의 느낌을 보았고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당김을 느끼고 챔질을 하고 당겨 보니 무언가가 마주 당기는 느낌이 있었는데 썩, 크지 않은 참돔들이 연거푸 얼굴을 내밀었다. 몇 마리째의 건짐이 있었을까? 무언가가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날아서 지나가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달려 온 서 씨 아저씨가 채비를 넘겨 치고 있었지만 수심대를 모르니 입질을 받기가 쉽지가 않을게다……. 목줄을 짧게 쓰기로는 우리나라에서는 1인자가 되어버렸는데, 고집 센 소귀신에 빙의되었는지 아무리 일러 주어도 들어 먹지를 않으니 독수리타법같이 굳어 버린 습관을 고치기는 아예 틀려 버린 것 같다. 원래, 목줄을 가장 짧게 사용하는 1인자는 따로 있었다. 추자도나 거문도에서 30센티 정도 길이의 목줄로 감성돔을 낚아 보았던 어느 1인자는 주위에서 어쩌다 죽을 고기가 걸려들긴 했었지만 그렇게 짧은 목줄로는 고기를 잡기가 힘들다는 충고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고집을 부렸다는데 언젠가 추자의 섬생이에서 함께 낚시를 할 기회가 있었기에 유심히 지켜보았더니 그 짧은 목줄에 목줄찌 까지 달고 있어 기함(氣陷)을 할 지경이었다. 몇 년간 이상한 기법을 고집하며 빈손을 털고 다니더니만 거제 홍도에서 부시리 선상낚시를 접하게 되면서 부터, 목줄길이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고 남보다 고기를 더 잡기도 하면서는 외연도와 어청도까지 넘나들게 되었는데 결국, 목줄의 길이도 낚시에서는 제법 중요하다는 부분을 터득하게 되자, 매번 쿨러를 가득 채워갔다. (목줄의 길이를 6미터까지도 사용한다는 그 아저씨 맞아? ^^;;) 이제는 서 씨 아저씨가 짧은 목줄 사용자의 국내 1인자로 승격된 셈이다. 만재도를 가면 3B 이하의 봉돌은 필요가 없으니 큼지막한 봉돌만을 봉지째 들고 다니라했지만 동그란 봉돌 통을 오늘도, 이리 저리 돌리며 큐빅놀이에 열중하고 있으니 그런, 좁쌀 봉돌이 눈에 보일 리가 없는 시력 좋은 선장 아들이 목줄에 봉돌을 채우지도 않고 낚시를 한다고 안달을 하며 내일도 혀를 찰것이다……. 서 씨 아저씨 같이 민물낚시를 잘 하고 있는 사람을 꼬드겨 바다낚시를 하게 만들었으니 내가 알고 있는 이런저런 상식과 기법과, 속설까지 들춰가며 목이 아프게 반복하여 악을 써보지만 제대로 듣지도 않는지 자기방식만을 고집하니 나도 그만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켜야겠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기초적인 지식과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낚시 책이나 인터넷상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도 있는데 책이나 컴퓨터만 켜면 잠이 오고 승부욕이 달라지는지 호주머니에 담아 올수도 없는 거액의 배팅에만 눈독을 들이다 보니 별다른 진전이 없는 모양이고 대단하게 큰 이슬 잔으로 판을 벌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알짜 정보를 내게서 빼낼 수도 있겠건만 자기만의 기법과 고집으로 버티고 있으니 서 씨 아저씨가 낚시를 갈만한 곳은 만재도와 가거도 밖에 없을게다. 가거도 라고 아무나 매번 가서 고기구경을 할까마는 서 씨 아저씨는 가거도 구경 두 번 만에도 대박의 조짐을 보았다. 뻘물이 들었던 날, 낚시가 글렀다고 생각하고 모두가 빈손으로 돌아서야만했는데 서 씨 아저씨는 무얼 낚았는지 살림망을 띄워놓고 있었기에 숭어라도 들었는가, 했더니만 땡글땡글한 감성돔을 여섯 마리나 담아놓았다. 흙탕물속에서는 고기가 안 잡힌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기에 놀아도 찌 구경이나 하며 놀아야겠다고 발밑에 던져놓고 있었다는데 노안(老眼)이 든 감성돔들이 몰려왔다가는 직벽지대에 붙어 있는 깐새우 미끼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물어제꼈는지 연거푸 쾌재를 불렀다지 뭐냐........ 그 다음해에는 엄군과 이틀을 먼저 갔기에 내려가는 여객선 안으로 낭보(朗報)도 전해왔다. 멀리, 간출 여인지, 숨은 여인지 거무스름한 것이 보였기에 밑밥을 아무리 던져도 닿지 않는 거리였지만 채비만은 던져 넣을 수가 있었다고 했다. 첫 번째 채비가 떨어지자마자 입질이 있었고 손을 떨어가며 서른 번도 넘게 감성돔을 걸었고 스무 마리나 되는 감성돔을 끌어 올릴 수가 있었다는데 파도에 몇 마리가 쓸려 들어가기도 했고 또 그만큼 채워 내기도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데 선장이 도시락을 갖고 다가오더란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이 하던 선장과의 간단한 수화놀음을 눈여겨보지 않았었기에 제발, 오지맙소사고 급한 손짓을 한다는 것이 선장의 눈에는 배가 고파죽겠으니 빨리 도시락을 달라는 것으로 보였기에 급히 배를 들이 밀었고 서 씨 아저씨 딴에는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갈 터이니 빨리 올라타라고 재촉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었다는데 선장과 한바탕 입씨름 끝에 이미, 고기가 흩어진 것 같으니 다시 내릴 수도 없고, 이만하면 왕대박이란 생각에 민박집으로 들어와서 연락을 하는 터이니 빨리 와서 싱싱한 회 한 점을 맛보라는 것이었다. 회감으로 가져 갈만한 몇 마리를 빼놓고는 소금을 듬뿍 뿌려 지붕에 걸어 놓았는데 정작, 기가 막힌 것은 고기를 낚았던 장소가 동쪽인지 서쪽인지 조차 모른다는 것이었다. 짧은 목줄에 밑밥을 한 주걱도 사용하지 않고 떼 고기를 잡았으니 자기만의 낚시방법을 고집하여도 누가 무어라할 사람이 없었지만 낚시에야 정도가 없다지만 그래도 정석만은 있는것인디……. 어찌됐던 서 씨 아저씨의 독수리 타법이 고치려야 고칠 수도 없게 된 셈이기에 1미터 남짓의 짧은 목줄과 5호 줄의 굵은 목줄, 유속에 전혀 상관도 없는 좁쌀봉돌 채우기는 흉내만 내기로 굳어버린채 서 씨 아저씨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렸다. 서너 번 재미도 보았겠다....... 이런저런 기법이나 방법을 일러 주어본들 소귀에 경읽기가 되어버렸으니 서 씨 아저씨는 가거도와 만재도 외에는 가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 곳에 가서는 고기를 낚어 본적이 없게 되었는데 추자도와 거문도 같은 곳은 열댓 번을 갔어도 입질 한번을 볼 수가 없다보니 추자도나 거문도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게 되었으니 영원히 가거도, 만재도 마니아로 남게 되었다. 찌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기법이 발달하다보니 무거운 장대낚시의 시대가 끝나게 되었는데 갈대같이 한들한 낚싯대로 어찌 큰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알록달록한 도토리 만한 찌로는 콩알만할 봉돌밖에는 매달수가 없었으니 험한 물살속에서 어찌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보냐...... 날이 밝아온다는 멋진 이름이 붙은 찌낚시대는 그렇다쳐도 한들한들하고 가녀리기에 난초 난(蘭)이라는 이름을 붙인 낚싯대로는 붕어도 제대로 낚아내기도 힘들어 보였다. 카본 낚싯대의 시대가 열리면서 85년도에는 2칸남짓의 붕어용 낚싯대의 가격이 7만원이나 했으니 3만원짜리 쌀 한가마니보다 비쌌고 장대용으로 나온 가벼운 카본 낚싯대는 여태껏 사용해오던 글라스롯드 낚싯대의 열배에 가까운 가격이었으니 질보다는 가격에 시비를 걸기가 일수였다. 어찌됐던 세상은 변하고 있었고 팔이 빠지도록 무거운 팔뚝굵기의 낚싯대에서 해방될수가 있었기에 새롭게 등장한 찌낚시에 호기심이 쏠리기 시작했고 한정된 거리에서 벗어나 음침한 곳에 숨어 있는 고기까지 낚아 낼수 있다기에 찌낚시의 붐이 일기 시작은 한 모양이다. 유 선생님과 선임자들은 장대낚시만을 주로 했기에 점차 찌낚시로 변해가는 것을 거부하기도했기에 마땅한 사람이 없을까 궁금할 때였는데 부산이나 탐라 쪽의 낚시인이 일본 쪽의 구멍찌낚시 기법도입이 빨랐을 테니 그쪽 사람을 만나 보는 것이 좋겠지만 수도권에서는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낚시용품을 취급하던 친구 놈에게 최신식 낚시를 잘한다는 가이드를 하나 소개받았지만 함께 낚시를 해보니 물이 이리 흐르면 밑밥을 이리 던지고 저리 물이 흐르면 저리 밑밥을 던지라는 초등학생 구구단 외우기 같은 기초적인 말뿐이었다. 그 정도는 장대낚시에다가도 포항 찌를 달아 쓰면서도 알만한 내용이었고 몇 번을 지켜보아도 변변한 고기 한 마리 못낚아내는 무늬만 가이드였다. 다시 친구 놈을 닦달을 하여 소개를 받는 것이 김 씨 성을 가진 후배였고 함께 낚시를 간 곳이 고흥 쪽에 있는 무학도였는데 어쩌다, 한마디를 내뱉고는 말을 아끼는 것이 실어증 증세가 있는 것이 아닐까 궁금하였는데 몇 마리의 감성돔을 낚아내는 것을 보고는 실력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나중에 생각을 해보면 이해를 못하거나 배우려고 하지 않으려는 자에게는 목이 쉬도록 설명을 해 보았자 자기 목만 아프기 때문이었을 게다.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있기에 남보다도 고기를 잘 잡았다. 일본으로 광고쪽 일을 배우러갔다가 찌낚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일찍 찌낚시를 시작하게 되었다는데 유명한 프로낚시인으로 알려진 박 군과도 비등한 낚시실력으로 거문도나 추자도를 잘 알고 있다기에 친구 놈의 소개로 알게 된 후배였다. 추자도로 낚시를 함께 갔을 때는 국내에는 없는 이상한 찌로 폭포같이 흐르는 물속에서 대물을 끌어내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했었고 거문도에서는 아무도 고기 한 마리 낚아 오지 못한 민박집에서도 그만이 고기를 낚아내어 신통하기도 했는데 저놈머릿속에 담긴 뇌하수체를 필히 뒤져보아야겠다는 열망에 혈안이 되었다. 그때로서는 전유동같은 기법을 알지도 못했거니와 할 수 있는 용품도 없었기에 물 건너에 있는 소품을 들여와 사용했었고 1호찌 이상의 고부력찌도 없었을 때였으니 막대찌의 납 부분을 깎아내어 부력을 높이는 김 씨의 모습을 보고는 무언가 얻어낼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마주치면 매번, 평범하지 않은 점심밥으로만 사먹였고, 커피도 펄펄 끓는 원두로만 퍼 먹이면서 김 가의 주둥이 열기에 열을 올렸다. 가래가 덜 생기기에 일본산 담배만을 즐겨 핀다는 놈을 위해서 거문도의 다방으로 곱빼기로 커피를 시키면 시중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담배가 보루로 치마폭에 담겨 왔기에 놈에게 보루채 넘겨주곤 혼자서 한라산을 뻑뻑 빨았고, 꼬죄죄한 거문도의 민박집을 밀쳐놓고 하얀 장의 욕실 달린 방을 구하여 먼저 씻고 나오면 놈이 씻는 사이에 자리까지 펼쳐 주어가며 놈의 환심을 사기에 정성을 쏟았는데 다행스럽게도 놈이 술을 안 마시는 체질이었기에 그나마도 밑밥절감은 되었을 게다……. ^^;; 함께 낚시를 다닌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몸의 물기를 씻고 나오니 무슨 일인지 자리를 먼저 펼쳐 잠자리를 만들어 놓고 다방에서 커피까지 시켜 놓고서는 무릎까지 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낚시도 사랑하시고 저를 항상 진정으로 대해주시니 제 모든 아는 바를 알려드리고 또,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얼마 후에는 미국으로 가게 될 것 같다며 옆에 붙어 앉아 아리송했던 부분도 짚어갔지만 전유동같은 기법은 시간이 지나면 절로 알게 된다고 했었던가? 체력이 약한 편이라, 돌돔원투낚시나 참돔, 농어루어, 밤을 꼬박 새우는 낚시는 하려고 하지를 않았는데 새벽 일찍, 갯바위에 내리는 날이면 날이 샐 때까지 거금을 주고 왜국(倭國)에서 사왔다는 뻘건 띠가 둘러쳐진 낚싯대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어깨에 걸쳐놓고 꼼짝도 않다가 날이 완전히 밝아서야 움직이니 고가의 낚싯대에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별나기는 했다만……. 구십 년대 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그 후배가 95년도에 잠간 고국방문을 왔기에 개척을 해두었던 무창포와 외연도 권으로 데려가 감성돔 낚시와 농어낚시를 잠간 해보게 해주었다. 변함없는 솜씨로 짧은 시간에 두어 마리의 감성돔과 미터 급의 농어 몇 마리를 낚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의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았는데 자전거를 탈줄 알게 되었다면 오랜 후에도 다시 자전거를 바로 탈 수 있게 되듯이 특히, 자기가 원하여 배우고 알게 된 것이라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를 않고, 잊을 수도 없는 것이다....... 날이 밝았지만 밤보다도 물색이 더 탁해졌다. 하루먼저 나가야하기에 횟거리 장만에 초조해진 서 씨 아저씨가 짐정리를 하면서 장대를 걷으면서 지렁이 통을 내던졌고, 제대로 된 참돔 한 마리를 원하며 밑밥 통을 옮겨갔는데 팽개쳐진 지렁이 통에는 빨간 지렁이, 파란지렁이가 반키로도 넘게 남아있었다. (밑밥도 남았고, 지렁이도 더 생겼으니 하룻밤을 더 해볼까?) 컨디션 난조로 어젯밤은 제대로 낚시를 못했으니 날이 더 좋을 듯한 오늘밤에는 기대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먼저 짐을 꾸려 본섬으로 들어왔는데 잡아왔을 고기 손질을 해주겠다며 아줌마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몇 마리 안 되니 내일이나 부탁을 해보련다하곤 아침식사도 필요 없으니 늦은 점심상이나 부탁한다며 달고 깊은 꿈속으로 빠져 들었다. 민박집 아저씨가 식사를 하자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낚시의 덫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사진이 담긴 조행기 > 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롤로그/prologue) 아듀~! 2011년 만재도 (0) 2011.12.26 3, 만재도의 가을여행 (0) 2011.11.04 1. 만재도의 가을여행 (0) 2011.10.25 만재도 外傳 6. ( 그 분이 오셨어요........ ) (0) 2011.10.03 만재도 外傳 5. ( 공무원과 두부, 그리고 천적 天敵 ) (0) 2011.09.29 관련글 (프롤로그/prologue) 아듀~! 2011년 만재도 3, 만재도의 가을여행 1. 만재도의 가을여행 만재도 外傳 6. ( 그 분이 오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