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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2. 봄바람을 타고 간 가거도의 볼락낚시

by 찌매듭 2018. 5. 22.

 

 

 

 

 

 

 

 

 

 

 

 

 

 

잔인한 사월이 지나가고 신록의 계절인 오월로 들어서자마자 무료한 간을 달랠 겸해서

서해안 어느 쪽의 방파제를 찾아가선 이른 물속 뒤지기로 신발짝만한 갑오징어 세 마리를

구경할 수가 있었는데 유튜브(YouTube) 에서 갑오징어 애깅낚시의 달인이 지난 가을경에

연안에서 연거푸 큼지막한 갑오징어를 낚아 올리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테트라포트며 근처의 시멘트 구조물을 보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낯익은 장소였는데

해녀들이 전복을 따와서 팔기도 하는 태안권의 작은 항 부근 같았다.

 

 

아직 이른 시즌이었지만 그곳보다는 조금 더 아래쪽이라면 연안으로 다가올 곳이

있을 것 같기에 지금은 기억들도 못하는 엉뚱한 장소긴 하지만 예전에 무창포

제일낚시의 조 씨가 반찬을 하겠다며 작은 갈치를 낚던 곳으로 장소를 정하였다가

빗방울이 돋는 날씨로 더 가까운 곳으로 마음을 비우고 다가섰다가 횡재를 한 셈이었다.

 

당진 쪽의 꽈리고추가 품질이 좋다는 평이 있었기에 텃밭에 심을 모종도

근처에서 구해가기로 한 것이 해를 건너가며 모종도 심는 것이 병충해 방지에 좋다며

거리가 먼 곳의 다른 모종 상에서 구해다 심으라고 한 기억이 있었기에

늦은 점심도 해결할 겸 찾아 나선 곳이 삽교호 부근의 장터였는데 이곳에 맛집 방송에서

손님이 줄을 잇는다는 일만 오천 냥이나 한다는 소머리 국밥집이 있다고 했다.

 

마침 장날이었기에 점심도 먹고 고추모종이며 이것저것 구해가면 하루에

세 가지를 치러낸 셈일 텐데 어찌된 일인지 맛집 방송을 하는 백 씨가 극찬을 하고

네티즌들도 많은 평을 올렸다는 집은 외출중이라는 종이 장을 붙여놓고

귀신집이 된지가 오래된 형상이었다…….

 

근처에서 모종부터 사면서 물어보니 빗방울이 아침부터 보이기에 손님이 적을 것 같아

문을 안 연 것 같다는데 손님들이 몰려든다는 말은 만들어낸 소리였나 보다…….

 

역시 방송에 나온 건 대부분이 억지연출이 분명한데 낚시방송도 연출이더라고…….

언젠가 3세대 점주가 운영하는 무창포 제일낚시점에서 외연도로 농어루어낚시를 가는 날에는

인천의 출조전문 총무가 낚시방송 기자와 함께 왔었는데 그네들은 농어를 낚아 내지를 못했기에

내가 잡아놓은 농어를 빌려가서 몇 차례나 잡아내는 시늉을 해가면서 연출을 했는데

마주친 내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얼굴들을 붉혔다.

 

 

빠른 물골이 있는 외연도 부속 여인 붉은 수수팥뎅이의 골은 물살이 세차기에

농어가 깊이 내려가 있는 곳인데 무거운 루어를 멀리 던져놓고 제 무게로 내려가도록

견제를 하면서 붙들고 있다간 감촉이 느껴질 때 채보면 제대로 루어의 바늘이

농어입안에 박히곤 하는 곳인데 루어를 던지는 법과 다루는 법을 일러 주면서

견제를 해보라고 일러주면서 고집들이 센 건지 알량한 자존심을 때문인지 들어 먹지를 않았다.

그러려면 뭣 하러 낚시를 다닐까?

 

 

삽시도, 외점도, 화사도의 홍합여, 외연도 권의 초망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황도까지의 갯바위에서 오래도록 혼자서 즐겼던 참돔낚시였지만 선장들에게 하나 둘씩

방법을 일러 주게 되었고 한정된 갯바위의 포인트에서 선상낚시를 시작하면서

포인트 개척을 넓혀 가게 되었는데 배를 가진 선장들이 더 열성적이었고

매일 같이 물에서 지내는 선장들이다 보니 지금은 서해중부권 제일의 선상참돔낚시의

최고 명선장들이 되긴 했지만 참돔낚시를 알지 못했을 때는 농어낚시만을 다녔었는데

본격적으로 선상참돔낚시의 시동을 걸게 되면서 부터는 농어낚시를 그만 두었다.

 

농어낚시를 하면서 소비하는 기름 값이나 루어 몇 개를 팔아서는 수지타산도 안 맞았겠기에

그만 두었지만 그 때문에 농어자원은 많이도 늘어났을 게다…….

 

 

 

 

 

 

 

 

 

 

 

 

  

꼬맹이의 날인 어린이날에는 호주머니를 털렸고 다음날은 선친의 기일이기에 아침 일찍

성당에서 연미사를 올렸고 다음날은 어버이날도 끼었기에 노모에게 한 번 더 들러보니

잠시 시간의 공간이 열렸다…….

 

작년부터 봄 볼락을 멀리도 가서 잡아보자며 가거도행을 제안했던 박 군이,

조용하고 친절한 집이 생겼다며 알아본 곳이 1구에 새로 생긴 민박집이라는데

오랜만에 찾아갈 가거 도에서 다섯 번째의 집이 되나보다.

 

1985년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알게 된 유 선생이란 분은 머리숱이 짙은

다부진 체격의 낚시인이었는데 그 분의 안내로 찾아간 곳이 그때로서는

들어보긴 했는지 ,흑산도까지 배를 타고 들어가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다른 배를 타고 또 몇 시간이 걸려서 간곳이 가거도 라는 섬이었는데

물위에서 택택이 목선위로 건너뛰어 자갈밭에 내려서 잠시 정신을 차리곤

또 어디론가 너울너울 한참이나 통통배를 타고 가서 위험스럽고 어렵게 갯바위에 내려서서는

팔뚝만한 굵기와 전봇대만한 길이의 글라스롯드 재질의 낚싯대를 움켜쥐고 에고고니,

땀을 흘리고 있으면 손바닥만 한 우럭이나 노래미가 걸려들었는데 초행자에 초보자니

얼빵한 자세와 반쯤 날아간 정신으로 달려드는 파도에 쓸려나가거나 신발이나 옷이

젖지 않을까 신경을 쓰노라 정작 제대로 된 낚시는 뒷전이었다…….

 

그 후로도 찬바람이 나는 가을까지 멀미를 견뎌가며 몇 차례

끌려 다녔다고 하는 것이 맞겠는데 제대로 된 고기를 잡아 보려면

이렇게나 먼 섬까지 와야만 하는가보다고만 생각했고 낚시를 하다보면

섬사람들이 양동이에 가득하게 멸치를 담아다 주었는데 멀쩡한 것은 미끼로 사용하라했고

배터지고 상처 난 멸치는 손으로 뚝~! 꺾어 밑밥으로 던져주라기에 따라서 흉내를 내보았지만

선생은 큼지막한 참돔도 여러 마리 끌어내는 것을 보았지만, 초보라고 우습게 보는지

제대로 된 고기는 내 낚싯대를 당겨 주지도 않았다.

 

 

겨울철에는 날씨를 고르기도 어려웠고 배편도 구하기가 어렵다며 비교적 가까운

진도 권을 몇 번 찾으면서 다음해의 여름까지 기다렸다간, 좋은 날을 골라서

몇 번 더 찾았지만 매번 우럭과 노래미 같은 시원치 않은(?) 고기뿐이었고,

볼락도 간혹 물렸겠지만 우럭이나 볼락이나 그 고기가 그 고기 같았으니

그저 걱정은 저 먼 길을 또 어찌해서 집으로 갈수 있을지 큰 걱정이었다.

 

 

칠십 년도에 가거 도를 찾아간 낚시꾼은 추자도에 있는 추자 야인이 최초였겠지만

제대로 개척을 해서 외지에 이런 섬이 있다고 알린 것은 유 선생님이었다고 하는데

낚시꾼과 관광객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소흑산도라고나 알려져 있던 최 남서 단에 있던

가거 도라는 섬이 제 이름도 찾고 외지로 알려지게 되어 오늘날, 가거도 사람들이

밥을 굶지 않게 된 것이 유 선생님의 덕분이라며 섬사람들은 고마워했는데

유 선생님이 가거 도를 찾는다고 알려오면 선생이 배를 타고 들어오는 날에는

가거도의 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진심으로 환영하며 맞이했다.

 

박수도 치고, 깊은 인사를 해오기에 처음에는 이 양반이 무슨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분인가?

 

헛 짐작을 하기도 했지만 순박한 섬사람들이 진정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이 약간은

이상스럽게도 보였던 풋내기 시절이었는데 그때, 선생과 함께 묵었던 집들이 2구와 3구의

어느 집이었는데 내 몸 간수하기에도 바쁘고 정신이 없었으니 그저 그림자였을 뿐이었다.

 

찌낚시가 유행하면서 낚싯대도 가벼워졌고, 채비도 바뀌었고, 멀고 먼, 오가는 길이 지겨운

가거도 보다는 거문도나 추자도로 다니게 되면서 선생과도 연락이 뜸해졌고,

여수에서 거문도를 다니던 데모크라시라는 쾌속선은 낚시꾼이 늘어나자

추자도까지 연장해서 운행하기도 했는데 거문도에서 낚시를 하던 낚시꾼이

조과가 시원치 않으면 추자도로 옮겨가고 추자도에서도 거문도로 옮겨오고 하면

장사도 되고 서로 편하지 않겠느냐며 시작을 했지만 양쪽으로 옮겨 다니면서

오래도록 낚시를 할 수 있는 화려하거나 정신 나간 백수도 한정이 되어 있겠지만

어느 쪽 섬에서 조황이 시원치가 않다면 비슷한 라인에 있는 섬에서 무슨 좋은 조과가 있을까?

 

거문도나 열심히 다니던지 추자도까지 연결할 일이 아니었기에 거문도와 추자도를 연결하던 배편이 없어졌다.

 

한동안 자주 다니던 거문도 열풍이 가라앉으면서 거문도 유일의 목선을 운영하던 영길이 선장이

이제는 거문도에 고기가 없으니 자기도 그만 두겠다며 등을 돌렸기에 추자도 쪽으로만

다니게 되었는데 일찍 건강이 나빠진 유 선생님이  '낚시인의 집' 이라는 작은 가게를 열고

하추자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깊은골' 민박을 다닐때니 들러 보았는데 

병환이 깊어지고 기억이 흐려진 후였기에 잘 알아보지를 못하셨고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지금이라면 한창일 나이에 일찍도 가셨다…….

 

선생은 우리나라 낚시 사에 한 획을 그은 분으로 낚시 광으로 알려진 영화배우 최무룡씨와 함께

최초로 독도에서의 낚시를 시도했었고 남대문 시장이 있는 회현동 부근에 유일하게

코리아바다낚시회가 있었는데 제법 낚시를 오래한 낚시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천지회 창립멤버였다.

믿기지도 않겠지만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지렁이를 파는 낚시가게가 있던 시절이기도 했으니…….…….

 

 

해남에서 낚시점의 배를 타고 추자로 낚시를 간 것이 구십년 대 말경이었는데

배 손질이 늦어져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젊은 낚시꾼이 방파제에서 낚았다며

제법 많은 수확물을 정리하기에 갯바위에서 보다도 더 많이 잡았다며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조행기에 첨부한 사진을 본 다도민박의 아지매가 결국은, 여기에서 다 만난다는 이야기를

다음번에 찾아간 추자에서 하기에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사진속의 젊은 낚시꾼이

유 선생님의 자제라고 했다,

 

모르셨어요? 난 또 유 선생님 아들이라고 알기에 사진을 찍어줬나 했어요......”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가거 도에서 이 봄철에 볼락만을 낚아보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준비가 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개수로는 짐 덩어리가 네 개…….

 

뺄 수도 없는 물품과 혹시나 해서 넣은 물품이 하루 밤 낚시를 한다 해도,

나흘밤 낚시를 한 다해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저 부력의 전지 찌만 준비하려다간

불안한 마음에 결국엔, 3호찌며 4호 원줄에 목줄까지 챙겨들었고 볼락바늘도

13호까지 챙겨 넣었고, 결국엔 감성돔 바늘 8호까지 챙겨 넣고서도 무언가

빠진 듯한 기분이 드는 이 몹쓸 원도권의 대물병....... -_-;;

 

 

기다리면 지루하지만 곧 다가오면 바쁜 날이기에 어둡기 전에 나서서 목포로 향하였고

뜬 밤을 보내고 오랜만에 타본 여객선에서도 편히 쉬지를 못했나보다…….

 

최신형 여객선 터미널이 들어서고는 처음으로 오가는 편을 이용해 보게 된 것이

만재도만을 전문적으로 다니는 만재피싱점이 문을 후부터니 벌써 십년은 됐는가보다…….

 

오늘은 가거도 쪽을 다니는 여객선 세 척 중에서 가장 낡고 느리고 작은 파란 배를

타게 되었는데 만재도의 민박집에서 내려다보면 매일 같은 시간에 세 척의 배가

번갈아 다니는 것을 오래도 보았기에 여러 번 타본 것같이 친숙한 느낌이다…….

 

세월 호를 일으켜 세우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화면과 물방울로 가려져서 흐리게 보이는 창밖을

번갈아 보면서 다시는 저런 불행한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저 가엾은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나라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전복 양식장이 가득한 다물 도를 지나면서

완도로 팔려 나가서 탈바꿈을 한다는 소리를 하던데 여기서는 왜 제목소리를 못 낼까?

 

낚시꾼이라면 누구나 해보는 이런 좋은 날은 평생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할 정도로

좋은 날씨며 잔잔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는데 흑산도를 지나 태도에 도착하니 더 날씨가 좋다.

 

여객선의 창문으로 태도의 간여가 보였는데 잠시 머뭇거리면서 껑충 건너뛰려면,

저절로 발바닥이 간지러워지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널판 같은 편한 바위가 있는

태도의 간여에서 세 번의 밤을 보내면서 건너편의 칼바위에 있던 식량과 마실 물조차 떨어져서

살려달라고 울고 있던 낚시꾼 둘에게 과일이며 음료수와 얼음물을 자루에 담아 건네주어

살려준 일이 있었는데 낚시를 하는 동안에도 눈만 마주치면 구십 도로 절을 해오면서

인사를 해오던 꾼들은 육지로 나가면 근사한 점심대접에 이슬을 말로 대접해서 인사를

하겠다며 소리를 쳤는데 한라2호라는 대절 배를 타고 팽목항의 땅을 밟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덤덤해하기에 머리 검은 짐승은 살려주면 안 된다는 옛말이 틀린 것이 없더구나…….

어찌됐던 태도의 간여도 꼬깔여와 함께 특급 포인트가 틀림이 없는 곳이다…….

 

 

 

 

 

 

 

 

 

 

 

 

 

가거 도에 도착했다. 무려 십년만의 재방문이군?!

무엇이 달라졌을까?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을 곳이지만 못 보던 건물들도 늘었지만,

건물외부의 페인트칠조차 십 년 전의 그대로였기에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약속했던 민박집에서 마중을 나왔고 물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집에서 짐을 풀었는데

비용이 가장 핫하다는 소문에 맞게 방마다 에어컨이며 선풍기, 냉장고, 내부 화장실겸 욕실,

칫솔과 면도기에 샴푸, 몸 비누까지 잘 완비가 돼 있었고 육지보다, 약간 비싸긴 하지만

작은 슈퍼며 음식점도 있으니 꾸리는 짐 보따리가 한결 가벼워질 판이다.

 

젊은 선장이 가거도 에서는 만재도보다 이르게 채취하는 미역작업으로 늦게 들어왔기에

점심밥을 먹고도 한참을 기다려야했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나갈 수가 있었는데

못 보던 첨성대 같은 조형물이 여럿, 눈에 띈다.

초입에도 간여의 더 떨어진 여에도, 성건 여에도…….

12해리의 영역을 주장하는 영해기점의 조형물이 낯설 긴하다.

 

 

등대가 건너다보이는 검은 여 건너편의 홈통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어둡기 전에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고, 전자 찌의 불을 밝히기 전에 입질이 있어서

노래미를 시작으로 볼락이 얼굴을 보였기에 안심이 됐다.

또 모기가 덤벼들기 시작하는 것이 낚시가 제대로 된다는 신호 아니겠어?!

어둡기 전에 모기약도 꺼내 두어야겠다고 가방을 뒤져서 꺼내드니 갑작이

모기들이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어두워지면서 건너편의 등대불이 번뜩이기 시작했는데

두개였던 것 같은 불빛이 사방으로 뚫린 네 개가 되어 번쩍이며 쉼 없이 돌아대니

은근히 신경이 쓰였는데 그러고 보니 등대가 있는 부근에서는

밤낚시를 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언젠가 했던 것 같은데 고기가 안 잡히는 것을

등대불빛 탓으로 돌린 적이 있긴 있었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밝은 불빛이 탓에 고기가 숨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점점 더, 고기가 안 잡히는 것 같고.……. 이탓, 저탓, 어느 탓으로 돌려볼까?

 

뒤편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일행은 너무 집어등을 바짝 들이댔다…….

좁디좁은 홈통 안에 불빛으로 길을 막은 형국이니 불 조정을 하면 좋겠다고 일러 주었지만

그래도 별로 신통한 것 같지가 않으니 수온이 급격히 변한 것에 핑계를 댈밖에…….

 

홈통을 올려치는 소리가 잠시 잔잔하게 변한 순간순간에 한두 마리씩

낚아 올리기는 했지만 이리도 지루하게 밤을 새우자면 길지 않은 시간이 더 지겹겠네만

딱히 방법이 없으니……. …….

 

머리를 들어 밤하늘을 보니 우주의 별들이 가거도의 하늘에 모여 있는지

또롱한 별빛들이 빈틈이 없이 가득차 있는 맑은 날씨였지만 찬기운의

높새바람이 점점 세차지기에 옷을 더 껴입었다.

 

자정이 넘어가면서 물이 줄었고 점점 바람도 거세졌는데 수온까지 싸늘해졌다.

큰 활동을 할 수도 없는 넓지 않은 자리였고 침낭을 꺼내어 누울만한 자리도 없으니

꼬박 밤을 새워야 할 텐데 싸늘할 새벽이 또 걱정되기에 내복을 더 꺼내 입었고

핫팩을 양쪽 허벅지, 양 팔뚝, 등짝에 단전부분까지 여섯 장이나 붙여댔다. ^^;;

 

 

바늘에 끼운 지렁이가 축~! 쳐지면 크릴로 바꾸어 끼우고 몇 마리 잡히면

활성도가 좋아졌다 싶어, 큰놈이 걸려나오라고 또 지렁이를 푸짐하게

꿰어 보기를 반복하다가 자정이 넘어가니 이도저도 모두 끊기었다.

그렇다고 고기가 없을 리가 없겠기에 좀 더 예민한 채비로 바꾸어 본다는 것이

막대찌채비였는데 손에 잡히는 것이 3, 4, 5…….

여기는 까탄스러울 고기가 별로 없는 원도권이 아니겠는가?!

 

 

 

 

 

 

 

 

 

 

 

 

 

 

 

 

 

 

오래전에 서울에 있던 새까만 후배하나가 삼천포로 자리를 잡았다는 연락이 왔다.

커다란 아파트를 하나 장만하고 삼천포에 수없이 많은 낚시점 중에서 가장 터프한 꾼들이

모인다는 한곳을 골라 안면도 트곤, 매일같이 낚시를 다니다 보니 볼락낚시며

그 지방낚시에 익숙해졌기에 한번 내려오시면 제대로 안내를 하겠다고 했다.

 

삼천포라?!

한참, 무창포에서 출발한 외연도의 농어루어낚시가 절정을 치닫고 있던 구십년 대 말이었나 보다.

하루는 웅천 제일낚시의 점주인 조 씨와 농어루어낚시 약속이 있었기에 내려가 보니

낚시점 마당에 수조차가 한대 서있었는데 지방에서 온 차였고, 그 차를 몰고 온 낚시꾼은

삼천포와 사천 중간 어디쯤에서 회집을 운영하는 주인이라고 했다.

 

우연히 웅천 읍을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가 조 씨와 외연도로 농어낚시를 가서

셀 수도 없이 많은 농어를 잡았기에 이번에는 잡은 농어를 몽땅 살려 싣고 가려고

수조차를 끌고 올라왔다고 했다.

 

그러니 나에게도 낚은 농어를 저 사람에게 몽땅 도매가로 넘겨줘버리면,

다음번 경비까지 벌어가지 않겠냐고 조 씨가 부채질을 했다.

 

잡기도 전에 엉뚱한 생각부터 하려고 하니 오늘의 낚시가 제대로 될지 의아하긴 했으나

날씨 좋고, 물때 좋고, 수온도 좋은 날이었으니 안 잡으려고 해도 고기가

물려 올라오는 날이었는데 고기를 많이 잡으면 무얼 하나?

 

조 씨의 뻘건 인프라콤비형의 보트 물칸은 한정된 작은 크기였고 비좁게

한켠에 몰아둔 길쭉한 쿨러에 담아서는 고기를 살릴 수도 없다보니

욕심을 부려서 억지로 채워 넣고는 나와서 물칸을 열어보니

대부분의 농어가 배를 내보이고 있었으니 수조 차에 실은들 그 먼 길을

제대로 살아 갈수도 없을 것이다.

그저 우매한 인간의 욕심만을 앞세웠을 뿐이니....... …….

 

 

삼천포는 예전에도 여러 번 다녀본 곳이기에 익숙한 곳이었는데 그곳의 꾼들이

외연도 까지 농어를 낚으러 왔기에 여러 차례 만나본 적이 있었는데

안면을 튼 낚시꾼과 갯바위에서 시간을 보낼 기회가 생겼기에 이야기를 나누어 보게 되었다.

 

그곳도 넓은 바다가 있는데 이리 먼 곳까지 농어를 낚으러 오는가, 물으니

그곳에는 농어가 없다고 했다…….

농어가 없다니? 물이 있으면 농어가 있을 텐데?

고기를 잡은 어선들이 수시로 들어오는 데로 열리는 삼천포 경매장에서 보면

뻥치기로 낚아왔을 감성돔이 득시글했고 온갖 고기가 들어 있는 물그릇들 속에는

분명 농어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삼천포의 꾼은 농어가 없다고 했다.

 

그 다음번에 삼천포 꾼의 초청으로 수우 도에서 밤낚시를 하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인광을 흘리며 재빠르게 돌아다니는 농어들을 발견했기에 손가락으로 가르쳐가며

생미끼를 이용한 흘림낚시로 낚았기에 낮에는 있을만한 장소를 찾아가면 루어로도

낚을 수 있을 거라고 하니 다음부터는 외연도 까지 올라오지를 않았다.

 

삼천포의 난전에서 적당한 안줏감을 찾아 서울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저렴한 비용으로

이슬 맞이를 하려는 진주의 술꾼들이 좌석버스를 타고 삼천포에 와서 포석정잔치를 즐기고는

다시 좌석버스를 타고 진주로 돌아가는 음주문화를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삼천포의 명물이라는 두툼한 쥐포는 맥주잔을 움켜쥐고 놓지를 못하게 하는 애물단지임이 분명했다.

 

 

물때를 잘 맞추어 돌돔 장대 두 대를 움켜쥐고 사천의 비행장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달려간 부산낚시점인가에서는 갈도의 돌돔 포인트까지

데려다 주는 낚시 배와 운행과 함께 쿨러를 빌려주었기에

얼음덩이와 음료수를 담아들고 들어가 몇 마리를 낚으면, 얼음채운

스치로폼박스에 옮겨 담고 오후 날틀을 타고 올라와 돌돔회 파티를 열기도 했는데

너무 타이트한 일정이 쉽지가 않았다.

 

후배 하나를 데리고 두미도로 볼락낚시며 감성돔 낚시도 여러 번 다녀보았기에

삼천포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 두미도 에서 공탕을 치고 나온 어느 날,

옆자리에 있었던 동내 꾼은 큼지막한 감성돔을 세 마리나 낚았는데 낚시점의 아줌마가

멀리 서울에서 날틀을 타고 온 손님을 빈손으로 보낼 수가 없다면서

한 마리를 빼앗아서 스치로폼박스에 담고는 장에서 소라나 다른 해산물을 사오면

같이 담아가라고 했기에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 후배가 광어며 소라를 사들고 돌아오니

사온 값을 물어 보더니 어디서 샀느냐며 후배를 몰고 그곳을 찾아가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고 바가지를 씌우면 되겠는가고 야단을 치니

우물거리던 할머니는 얼마를 되 내주었고 후배는 멍하니 받아들었다.

그때의 광경이 별났었기에 낚시점의 주인아저씨가 갑진 씨라 했던

삼일낚시점의 상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가보다.

 

 

삼천포에 둥지를 튼 후배의 초청으로 이틀정도의 일정을 잡고 내려갔다가

엄청나게 큰 아파트의 가격이 서울이라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저렴하기에 놀랐고,

한걸음마다 있는 낚시점의 숫자에 또 놀랐고, 그 낚시점들이 인맥에 의해서

운영이 된다는데 또 놀랐다.

 

딱히 정한 낚시 배도 없이 그날그날, 물가에 가서 눈에 뜨이는 데로 적당한 배를

골라서 타면 된다며 어떤 배를 탈까? 눈으로 고르다가, 낯익은 배가 안쪽 깊숙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는 왜 출항 할 생각을 안 하고 깊숙이 넣어 두었을까 곤,

점포에 들어가 보더니 어제부터 손님이 없어서 출항을 못하고 있다는 대답에

여러 곳으로 전화를 돌려서는 어느 낚시점의 형님이 손님이 없어서 어제부터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니 누구누구들아~~~ 오늘들 낚시나 가자고 연락이 되는 데로

모두 불러 모으라고 하니 뚝딱하고, 열두어 명이 모여들어 그 지역의 깊은 우정에 또 한 번 놀랐다…….

 

 

거리에 따라서 선비가 만원도 하고, 만 오천 원도 한다는데 가까운 곳은 너무 파먹어서

고기가 적으니 멀리 서울에서 오셨으니 우리 둘은 가장 먼, 이만 오천 원짜리 코스로

가자고 정하고 배가 움직였는데 가까운 거리에 내린다는 낚시꾼은 내리지를 않고

가장 먼 곳으로 가겠다는 우리 둘을 졸졸 따라 다니다가 부근에 같이 내리게 됐는데

어차피 멀리 가는 손님이 있기에 거기까지 배가 움직이니 만 원짜리 손님도

이만 오천 원짜리 코스에 만원에 따라붙는 이상한 운행법이 적용되는 정말,

이상한 곳이라고 후배는 혀를 찼다…….

 

형님, 제가 이곳에 와서 참 이상하게 느낀 건데, 매번 저래요…….

나만 병신 되는 것 같고……. 오늘은 나도 만원만 내고 버텨볼참이야요.......”

 

타지에 와서 괜스레 분쟁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며 선비를 선장에게 뒤로

먼저 건네주고 말았지만 내가 정말 놀란 것은 손가락만한 볼락까지 낚아와서는

(작은 고기는 잡지도 말고 잡으면 놓아주자) 라는 현수막이 걸린 아스팔트 길 위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입 주둥아리가 시꺼메지도록 구워먹는 것을 보곤, 더 놀랐었다.......

 

그곳에서 후배 때문에 알게 된, ‘돌뽈래기라는 꾼은 볼락낚시의 명인이라고 했는데

그도 그런 작은 볼락을 사정없이 잡아먹는 매정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몇 년 후에

전화가 왔을 때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큰 볼락이 많다는 신안 권으로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가보고 싶기에 연락을 드렸다며

만재도나 태도, 가거도의 포인트와 민박집이며 배편에 대한 문의 전화였기에

어디로 정해주어야할지 잠시 고민을 했는데, 태도의 볼락크기가 전국제일이긴 하지만

상태도의 김 선장 집에 묵는다 해도 한 달 정도의 일정이라니 불편한 점이 있겠고,

만재도의 포인트는 정해져 있고 시즌도 가장 짧기도 하지만 저 볼락귀신이

한 달간 들쑤신다면 남아날 볼락이 없을 테니 이것저것 편할 것 같은

가거도의 포인트와 임 선장을 소개해줬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볼락을 낚아선, 삼천포로 고기상자를 보냈다고 하는데

어업인지, 어떤 포장마차와 비지니스를 터놓고 들어간 건지 몇 해를 이어간

그의 행보에 가거도의 볼락자원이 홀쭉해 지긴 했을 게다.

 

 

 

 

 

 

 

 

 

 

 

 

 

 

 

 

 

 

커피도 두잔 마셨으니 잠도 달아났겠다, 밤새 낚싯대나 붙들고 있을 수밖에…….

앞에서 들어서는 바람에 막대찌 채비로는 홈통 안에서도 원하는 곳까지 채비가

던져지지가 않았고 홈통바깥으로 흐르는 물골까지 던져 보려면 구멍 찌로 바꿔야겠기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꿈지럭거리게 됐는데, 볼락만을 목적으로 했기에 비교적

가벼운 채비로 준비를 하다간, 그래도 원도권인데 불안한 마음에 4호찌며 4호 원줄까지

담아 왔었기에 이왕이면 마음이라도 편하자고 든든하게 투박한 채비를 했는데

목줄도 4호는 해야겠지? 물론, 낚싯대는 2호대로 약하게 쓰지만........^^;;;;;;;;

 

튼실하게 감성돔 6호 바늘을 묶어대고서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이 놈의 원도병……. -_-;;

 

멀리 홈통 밖으로 던져보니 아래위쪽으로 물길이 갈라지는 곳이 있었고 잠시

물 흐름이 멎는 곳에서 갸웃한 입질을 느꼈는데 살그머니 거두워보니 지렁이를

싹뚝하니 잘라간 흔적이 농어 짓이 분명했다.

 

둘이서 이틀밤낚시에 쓰려고 가져온 청지렁이 1KG 중에서 절반을 넘게 가지고 들어 왔는데

남겨 나가면 무얼 할까?

 

맞바람에 한두 마리가 떨어져 나가더라도 끼우고 더 끼워서

바늘에 더 끼울 수가 없도록 푸짐하게 끼워서는 최대한 멀리 던져서

좀 전에 이상스런 움직임이 있었던 곳으로 끌어다 놓고는 좀 전의 그 고기가

그대로의 모습으로 기다려 있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눈의 초점을 모아봤는데

슬금슬금 끌고 들어가는 전지 찌의 불빛을 보면서 좀 더 깊숙이 목젖까지 삼키도록

기다리는 초초한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졌고, 살그머니 늘어진 줄을 감으면서

끌어주니 농어가 목젖을 움직이는 느낌이 있기에 낚싯대를 세웠다.

 

여태껏 낚아 올렸던 볼락이나 열기나 우럭이 아닌, 큰 물체의 당김이 전해져 왔고

박 군의 도움으로 첫 농어가 뜰채 안에 담겨졌다.

 

혼자 돌아다닐 고기가 아니기에 부지런히 지렁이를 꿰었고 연거푸 농어를 떠 올렸는데

다섯 번째로 끊고 묶은 바늘의 호수는 저절로 커지면서 7호에서 8호로 바뀌었고

그 다음번의 농어를 떠 달래려고 뒤돌아보니 뒤편의 홈통에서도 입질이 시작됐는지

집중을 하고 있었기에 직접 떠올리려고 뜰채를 쥐어보니 대물용의 뻣뻣한 뜰채가 아니었기에

낭창거려서 사용이 불편했는데 내 것을 펼쳐 놓았었으면 한결 떠내기가 쉬웠을 것을…….

이래서 고기를 떠내는데 한참을 더듬거렸었고 만? -,,-

 

점점 바람이 거세어지면서 강한 돌풍에 받침대에 걸어 놓은 낚싯대가 벌떡, 벌떡, 일어섰고

조임 쇠로 잔득 조여 놓았는데도 받침대가 돌아가기에 더 이상의 낚시가 불가능했는데

처음부터 고부력 채비를 해두었더라면 쿨러 두개 채우기는 쉬웠을 텐데……. 또 욕심......

 

이 봄날에 멀리 가거도 까지 온 이유가 볼락만을 목적으로 했던 건데 엉뚱하게

이른 농어에 손을 댄 것이 여객선 안에서의 약속 때문이었을까?

 

어쪄? 고기를 낚으면 똑같이 나눌까? 자기가 잡은 건 자기가 가져가는걸로할까?”

 

, 서 씨 아저씨하고 라면 이런 딜을(deal) 내걸 필요가 없는 것이

그 아저씨보다는 당연히 내가 몇 곱이나 많이 잡으니 그렇다 쳐도,

박 군은 한참 독이 오른 열혈낚시꾼이니 힘도 좋고 열정의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려고 에너지 드링크를 손에서 움켜쥐고 놓지를 않으니

볼락마릿수를 많이도 채울 것 같았다.

 

이제는 손 느리고 눈 어둡고 의심이 많아져서 조금만 입질이 없으면 수온 탓이며

바람 탓으로 돌려세워놓곤, 고기가 입 다문 날이라 낚시가 안 된다는 핑계로

침낭 속으로 들어가 누워 버릴 판이었기에 나눔의 미학이 좋은 것이라고 강조를 했었으니

가만히 놀아도 절반의 성공은 거저 생길 판이었지만 신경 쓰이게도 뒤편에서는

연실 작은 고기라도 잡아내고 있었으니, 눈치가 보였었다.

 

내가 자리한 골창은 만재도의 남대문 골창의 오른편과 같이 지형이 뜨는 것이

고기가 들어올 길목이 아니었다.......

 

발밑으로만 고기가 들어올 형국이었지만 물이 빠져버린 이시간대에는

탐탁치가 않았기에 농어를 낚아보려고 했던 건데 서둘러 바꾼 채비가 먹혀들어

몇 마리만으로도 무게와 부피가 나가다 보니 쪽 수많은 볼락보다 많아져서 다행이었다.

 

날이 밝으면서 곁눈질로도 보이던 농어들이 멀리 물러났는지 휑한 느낌이 들었고

방향을 바꾸어 채비를 던져 봤지만 뒤엉킨 물골과 떠내려 오는 해초덩이에 자꾸만 바늘이 걸렸다.

 

 

 

 

 

 

 

 

 

 

 

 

물돌이 시간까지 봤으면 좋을 아쉬운 아침시간,

성건여 쪽을 보니 젊은 선장이 정확하게 7시에 나타났고 하루에 일을 시작하려는

작업선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항에는 활기가 넘쳐났다.

 

아직도 뜨끈한 열기가 있는 핫팩들을 떼어내고 씻고 나오니 볼락 몇 마리가

아침반찬으로 올라왔고 어제 미역작업 중에 정신없이 붙어있다 딸려 나온 전복 몇 개와

매운탕, 미역 데침이 있었는데 만재도보다 두 달이나 이르게 시작한 미역이 부드러운 촉감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오니 민박집과 전속계약이 된 듯 한 손질 도우미가

어디선가 달려와서 고기 손질을 하고 있었다.

 

만재도 같이 고기 손질을 직접 할 필요가 없어졌기에 잠을 잘 시간이

한 시간이라도 더 생겼으니 얼마나 마음이 푸근한지…….

 

젊은 선장이 창문의 커튼을 내려서 어둡게 만들어 주고 바닥 난방까지 한껏 올렸으니

뜨끈하게 허리를 지져가며 밤샘의 피로를 덜어내면 두 번째 밤을 지새우기가 한결 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