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의 만재도 라니.....
배의 방향이 바뀌고 얼마를 달렸을까?!
만재도에 거의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옆에 누워있는 경록이도 도착을 감지했는지 꼼짝도 않고 잠들어 있는 것 같더니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마트 폰에 전원을 넣으니 신호가 잡히고 있기에 바닷길과 위치를 알려준다는
앱을 열어보니 곧, 만재도에 도착하겠네.....
그새를 못 참고 작은 아저씨가 어디까지 왔는가고 전화가 왔기에
태도에 일곱 명의 손님을 내려주고 네 명만 타고 가는 중인데
이젠 한해가 또 지났다고 귀도 멀고 눈도 어두워졌는가. 며
모퉁이를 돌고 있는 것이 안 보이느냐고 놀려주니
어여, 손수레를 끌고 내려가야 쓰겠다고 통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분명히 1주일간의 날씨가 좋다는 예보를 또 한 번, 믿어보기로하고
신년 초하루의 오후에 노모에게 잠시 들렸다가 바로 고속도로에 몸을 얹었고
늦지 않은 밤 시간대에 목포에 도착하여 노선장의 아들과 저녁식사를 하고도
남은 시간이 있기에 근처, 사우나에서 더운 물속에 몸을 담가보기도 했기만,
겨울답지 않게 푸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으니 뜨끈한 물로 몸 풀기가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지난해에 만재도를 마지막으로 다녀온 것이 불과 열흘전이니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매년 십여 번씩 만재도를 자주 다니던 때에는 보름마다의 조금물때를 맞추어
한 달에 두 번씩도 다니곤 했지만 가장 단기간에 만재도를 다시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또 1월 달에 만재도를 찾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은데 갯바위에 접안을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종선의 형태를 갖춘 것이 불과 몇 년 안 되다 보니 경운기엔진을 얹은
택택이 배로는 파도와 바람에 밀려 늦겨울의 만재도 여행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
지금까지의 습성이었기에 세 번짼가의 1월 달 만재도 여행이 낯설기만 하다…….
어느 해의 1월에는 지금보다도 일기예보가 더 엉터리(?)였었기에
며칠간은 좋겠다는 일기예보만을 믿고 낚시를 왔었다간 하룻밤 만에 돌변한 날씨로
건너편의 시멘트덩이의 방파제가 왼편에만 있었던 짧디. 짧을 때였으니
경운기 엔진의 택택이 목선을 자갈밭으로 끌어 올려야했었다.
끌어 올리는 것이야 쇠말뚝이라도 박혀 있었으니 윈치를 이용하면 쉬운 일이었지만
목선을 다시 물위로 내리려면 지렛대를 이용하여 힘 좀 쓰는 섬주민 전부가
달려들어 내리곤 했다는데 그때는 밤이 지나고 나니 엉터리예보가 또 달리
맞기는 맞는지 갑자기 날씨가 좋아졌다.....
노선장이 낚시를 나가려면 배를 내려야하는데 힘들을 써서 내려 주면
갯바위로 데려다주겠노라 했기에 날이 밝지도 않은 어두운 시간에 몰려나가서
몽돌 밭에 드러누워 두발로 배의 배통을 있는 힘껏, 밀어서 물위로 내려놓고는,
사다리를 걸쳐놓고 배위로 기어 올라가 적당한 곳을 찾아가곤 했던 일이
이제는 까마득한 추억이 돼버렸다.
이십 여 년 전의 어느 해 연말이었나?!
강화도의 석모 도에 있는 어류정 저수지로 얼음낚시를 갔었는데
씨알 좋은 붕어들이 얼음구멍위로 찌를 힘차게 올리다가 끌고 들어가기를 쉴 새 없이 하기에
이런 호황의 날을 또 언제 맞이할지 모른다고 근처의 민박집에 방을 얻어 놓고는
하루 더하고 가야겠다고 집에 전화를 하니 그때만 해도 순박했던, 마나님이
‘집에 어른이 계신데 연말에 나가서 외박을 하고 새해에 돌아오려느냐? 고
걱정스런 말투로 답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었다.
(아~? 오늘이 31일 이지??????)
벗었던 신발을 다시 챙겨 신고 민박집 아줌마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곤,
다음에 오겠다며 일행을 재촉하여 석모도의 선착장으로 달려가니
마지막 배가 저만치 떠나가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5분쯤 남았는데 더 이상 손님이 없겠다 싶어서 출발을 한 모양이었다.
‘우리를 안 싣고 가면 어찌 하냐’고 매표소 직원에게 큰소리를 치니
연락이 닿았는지 차량을 싣고 다니는 큰 배가 다시 돌아와 철판다리를 다시 내려 주기에
차를 싣고 바다를 건너 집으로 돌아 올 수가 있었지만, 그 배를 놓쳤으면
그날로 돌아 올수가 없었다는 것을 모르는 마나님은 밤늦게 돌아 온 서방님이
그저 잠시 철이 없었을 뿐, 대견하기는 했던 걸로 생각했을 게다.…….
1월 초순에는 노(老)할머니의 연미사가 성당에서 있기에 그 날이 지나야만 움직일 수가 있었지만
노모가 요양원으로 가게 되시면서 년 초면 빠짐없이 찾아드는 강추위 속에서
참석하려 애쓰는 여럿을 생각하여 오래된 묵은 미사나 제사는 당신 손에서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이 강했었기에 이번의 만재도 여행이 가능했다.
2016년 12월 20일에 갑작이 변한 날씨로 철수하기로 결정을 하고
모든 짐을 그대로 놓고 왔었기에 비교적 손쉽게 다시 만재도로 오긴 했지만
서울에서 목포까지, 차로 걸린 시간만큼, 목포에서 만재 도까지 뱃시간을
또 그만큼 걸려야만 올수가 있었으니 또 한 번의 공간이동인 워프를 한 셈이다.
우주로의 긴 여행을 하자면 눈 깜짝할 사이에 아공간(亞空間)을 이동할 수 있다는
타임워프(TIME WARP)가 과학적으로도 가능하다는 이론이 있던데 그런 복잡하고
공상적인 일이 이곳에서는 백번도 넘게 있었으니 참, 놀랍다면 놀라울 일이겠지......
갑작스런 방문이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은지 아줌마는 “왔~쏘~!!!!!” 한마디를 하고
아침밥상을 맛깔나게 차려냈는데 엊그제 작은 아저씨가 산을 넘어가 낚아온
하루말린 꼬들한 감성돔이 반찬으로 올라왔다.....
손님들이 몇 있는지 어디론가 첫 번째 탕을 다녀온 젊은 선장의 배를 타고
‘어디로 갈거나 ’하니 비어 있는 자리로 가야 한다며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마침 비어있는 자리가 보이기에 내가 먼저 내렸고 따라 나온 경록이가
왼쪽으로 자리를 잡고 뒤쪽의 홈통까지 넘어 다니기로 했다.
고기가 안 잡히는 곳은 아니지만 썰물이 시작되는 시간에는 두어 마리의
감성돔을 낚아 볼 수도 있는 자리였고, 여름철의 들물 시간이라면 돌돔이 곧잘 물어주는 곳으로
4물때라면 삼십 마리도 낚아 낼 수 있는 곳이지만 참돔이 들어오는 자리는 옆자리까지 만인 곳이다......
며칠 전에 남대문 포인트 근처에서 스무 마리의 감성돔을 낚았다는 사람은
파도가 높은 날이었기에 구멍 찌를 빼버리고 무거운 채비로 만들어 잡았다는데
움직임이 덜한 채비가 만재도 에서는 곧잘 먹히곤 했기에 궁리 끝에 시도한 방법의 혜택을 보았다나 보다.
언젠가 소관탈도에서 돌돔낚시를 하게 되었는데 묵직한 찌낚시 채비에 두어 마리의 돌돔이 물렸을 뿐,
당최 입질이 없었다.
탐라의 낚시꾼들은 2호대 미만의 찌낚시에 크릴미끼로 돌돔낚시를 하던 때였는데
외지인들이 낚시를 끝내고 뒷정리를 하면 케이스에 담긴 쫀득한 미끼용 크릴 미끼를
버리지 말고 달라고 했었는데 밑밥용에서 골라내어 서너 마리씩 끼워서 사용하고 있었기에
오래 붙어 있는 쫀득이 크릴을 미끼로 사용하는 것이 좋기는 했지만 비싼 값에 적은양이다 보니
사용하고 싶어도 못쓰고 있다기에 남은 것을 모아서 주면 고마워했다.
마침, 함께 내린 중곡동에서 가구점을 한다는 낚시꾼이 입질이 없다며
10미터짜리 돌돔 장대를 펼쳐 들었는데 탐라의 도남낚시점주가
건너편에서 보고는 관탈도에서는 장대낚시가 안된다며 소용없는 짓이라고 했지만
돌돔이 발밑의 바닥으로 붙은 것 같다며 삭아서 너덜너덜한 지렁이를 끼워 담그자마자
연속적으로 몇 마리를 끌어내면서 고기가 있다면 장대가 빠르다며 큰소리를 쳤는데
장대로는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들을 하던 곳이다 보니 구경만 하고 있었다.
궁리 끝에 사용하고 있던 3호낚싯대에서 5호 막대찌를 떼어내고 봉돌만 단채로
지렁이를 끼워 던져서 바닥에 내리니 연거푸 돌돔 입질이 닿았고
공략거리가 제한적인 장대보다 더 많은 수확을 얻게 되었는데
장대낚시를 하던 사람이 유심히 보고 있다가는 낚시점의 주인에게 이야기를 하였기에
다음번부터는 같은 방법으로 낚시를 하여 큰 재미를 보게 되었다는데
낚시잡지에는 반쳐넣기 맥낚시방법을 점주가 직접 개발하였다며 소개가 된
기사를 보곤 쓴웃음을 지었었는데 그 방법이 훗날 만재도에서도 한여름에
가장 편하고 잘 듣곤 했는데 그때의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만재도의 남대문에 내린 손님이 큰 재미를 봤다나보다.....
11시쯤 되어서 젊은 선장의 배가 다가오기에 점심 도시락이 오는가보다곤,
낚싯대를 잡시 옆으로 세워놓고 뜰채로 도시락을 받으려고 집어 들었는데
아줌마가 어디를 갔는지 도시락을 안 보냈다며 그냥 점심밥을 굶으라며
큰소리를 치다 가버렸는데 아줌마가 어디를 갔담?
아마, 홍합이며 돌김채취를 하려고 물일을 갔다가 돌아오지를 않았나본데
이런 일이 처음이다......
간단한 간식거리와 목마름을 면하려고 귤도 두어 개 있으니 짧은 겨울날의 낮 시간을
못 견딜 일은 아니지만 건너편에 있는 경록이는 과자부스러기 하나도 없다며
배가 고프다고 울부짖었는데 간간히 볼락도 잡고 우럭이며 노래미도 낚는 것을 봤는데
날생선이라도 뜯어먹어보지 그려???!!!
오래전에 거문도를 가기 위하여 배를 탔는데 대부분이 역만도의 당일치기 손님들이었기에
손님들을 내려주곤, 한참 만에 거문도로 방향을 돌렸는데 갑작이 날씨가 사나워졌다.
결국, 역만도의 물골을 헤쳐 나가지를 못하고 다시 배를 돌려 역만도로 돌아 왔는데
울렁거리는 배에 타고 있는 것보다는 갯바위에 내려 있는 것이 낫겠다 싶어
갯바위에 내려서 잠시 울렁거렸던 속을 진정시키면서 거문도 쪽을 지켜보니
마침 나오던 아침여객선이 갑작이 변한 바다상황에 놀라서 회황을 하는 것이 보였다.
자칫하면 많은 사람들이 역만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까지
바뀌어갔기에 경험이 있는 낚시꾼 중에는 도시락과 물병을 챙겨들면서 혹시 모를
굶주림에 대비하여 학공치며 노래미며 잡고기 한마리라도 비상식량으로 챙겨야한다며
난리를 떨기도 했는데 더 이상, 날씨가 나빠지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하고
갯바위를 돌며 당일치기 낚시손님들을 다시 태우기로 했는데 대부분이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는 초보들이었는지, 무모한 바보들이었는지 꼼지락거리며
늦장을 부렸기에 모든 낚시꾼을 태우고 역만도를 출발하려하니 벌써 바다는 험악한 상태로 바뀌었다.
그때만 해도 무법천지였던 시절이다 보니 정원의 곱을 훨씬 넘게 실은 상태였었고
자기네들끼리도 위험수위를 넘은 상태였다고 인지를 했었기에 빈 배, 한척을 더 불러와서
나누어 싣고는 역만도를 출발했지만 이미 바다는 흰 발톱을 있는 데로 세우고 달려들었다.
담력을 키우겠다고 선장은 연실, 페트병에 담긴 소주를 물마시듯이 뱃속에 퍼부으며
음주운전을 하면서 게거품을 물고 있었는데 다른 사무장이나 선원이
플라스틱 통속의 물을 쏟아 버리고 양손으로 역기 들듯이 ‘웃샤샤’ 하면서
부력을 가늠하기도 했고 거추장스러운 두터운 겉옷을 벗어 던지고 간편한
속옷 바람으로 있기에 뱃놈들은 추위도 모르나보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차하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갈 만약의 사태까지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실 안에 있던 재떨이로 사용하던 깡통속이 게워낸 뱃속의 오물들로 넘쳐났고
눈물 콧물범벅이 되는 흉한 모습들이 연출됐지만 모두가 공포에 질린 채
아무 소리도 없는 길고도 긴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평상시 같으면 시간 반이면 충분한 거리를 세 시간도 넘게 걸려서야 내만 권에 들어왔고
넋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선장이 긴장의 끈을 놓았는지, 그제야 말술의 취기가
한꺼번에 몰려 왔는지, 속도를 안 줄이고 부서져라고 접안을 했기에 배의 밑창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서로 부딪쳤지만 크게 다친 사람이 없었는지,
그저 살아서 나온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는지, 아무 소리들이 없었다....
그때 성남공단낚시팀의 낚시손님이 스무 명 정도가 왔었다던데 단 두 명만이
낚시 가방을 챙겨서 배에서 내렸고 나머지는 파도에 쓸려서 후드득, 후드득, 날아가
바다 속에 수장을 시켰는데 오래도록 이야깃거리로 남을 역만도 사건이다.
낚시점의 버스가 출발한다고 사람들을 불러들였는데 한 사람이 돌담 벽에 등을 붙이곤
길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이고 있었기에 맛있게도 담배를 오래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차가 출발하려나본데 안타는 가고 하니 깜짝 놀라서는 살아서 돌아오긴 했지만
낚시를 계속 다녀야할지를 생각 중이었기에 정신이 없었다고 했던가?!
과역의 갈비탕 집에서 식사를 하려고 들었었지만 국물만 두어 술, 넘겼을 뿐,
밥한 술 넘기기가 힘들 정도로 토악질에 속이 부어있었다.
여러 날 만에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던 마나님은 갑자기 하루 만에 돌아온 것이
의아했었나? 본데, 이러저러해서 용궁구경을 할뻔 했다고 바른 데로 이야기를 했다가는
낚시가방이 도끼질에 남아나지를 않을 것이 뻔했기에 배가 고장이 나서 할 수 없이 돌아왔다고 했었던가?!
몇 일후에 마나님이 친구들과 철학원엘 갔었다고 했다.
“이 양반, 사자머리 속을 들락인다‘고 했다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속으로 뜨끔하며 어느 철학원, 원장인지 참, 용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만 서도.....
산을 걸어서 넘어가 낚시를 하고 있다던 작은 아저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는 두어 마리를 낚았는데 이쪽은 어떤 수확이 있냐고.......
노래미도 잡고, 볼락도 잡고, 우럭도 잡았다고 했지만 자잘하기에 손이 시리다고 하니
좀 더 열심히 해보다가 집에서 만나자고 통화를 끝내더니 얼마 만에 다시 연락이 왔다.
통화를 끝내자마자 폭풍 같은 입질이 몰아쳐서 열 마리 정도를 잡았고 잡은 숫자만큼의
실수를 하여 갯바위의 자연물칸이 그득하게 됐다며 오후 네 시면 젊은 선장이 갈 터인데
자기는 물통이 무거우니 힘이 부쳐 들고 가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누가 와야겠다고 했다.
빈손으로 첫날의 낚시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대충, 고양이 얼굴 씻듯하고 나오니
여섯시도 안됐다.
짐을 받아온 경록이가 내려놓은 밑밥통속에는 오짜급을 비롯하여 십여 마리의 고기가 담겨져 있었다.
작은 아저씨가 한껏, 거만을 떨면서 큼지막한 감성돔 한 마리를 썰었는데 왜 콧구멍이 더 커졌을까?
지난 가을날에 만재도를 다녀갔던 젊은 베서 들이 놓고 간, 양주 한 병을
잘 숨겨 두었었다며 힘차게 병뚜껑을 땄는데 물을 탔는지, 영, 맹맹한 맛이었다.
내일은 배를 타고 나가지를 말고, 자기와 함께, 산을 넘어가자고 했지만
경록이는 낚싯짐을 메고 들고 산을 넘어 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그래도
만재도에 오셨는데 배를 타고 나가서 마음에 드는 포인트에 내려서 낚시를 해야
제 맛이 아니겠는 가며 내일은 간 여 쪽으로 가보자며 고개를 흔들었는데
작은 아저씨는 좀, 힘들어도 고기를 잡는 것이 우선이라며 옥신각신,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결정하기로 하고 밥상을 물리고 방으로 왔지만
집에서라면 자정이나 돼야 잠이 들던 습관 때문만은 아니기에
쉽게 잠이 오지를 않는다.
하긴, 정월초하룻날부터 집 아닌 곳에서 잠을 청해보기가 처음이기 때문이겠지?
'사진이 담긴 조행기 > 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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