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1, 만재도의 특별한 여름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by 찌매듭 2012. 8. 25. 걸어서 더는 갈 수 없는 곳에 바다가 있었습니다. 날개로 더는 날 수 없는 곳에 하늘이 있었습니다. 꿈으로 더는 갈 수 없는 곳에 세월이 있었습니다. 아, 나의 세월로 다가갈 수 없는 곳에 내일이 있었습니다. <더는 갈 수 없는 세월. 趙炳華> 허허, 어쩌다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을까? 어제까지만 해도 점심밥, 잘 먹고 공원을 거닐고 있었는데 눈 밑에 무언가 희뿌연 한 것이 걸렸다……. '콘택트렌즈가 밑으로 흘렀나?' '아~? 참~! 난, 렌즈사용을 안하지????!!!!' ‘그러면, 관심도 없었던 백내장이나 녹내장의 증상일까??????’ 내일 아침에는 가까운 안과병원에나 가봐야겠다고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두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불투명한 렌즈 같은 것이 눈의 정중앙을 완전히 덮은 일식현상이 생겼다. 외눈박이가 되어 얼마 멀지않은 안과병원으로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의 최고속도로 달려가 예쁘장한 여의사 앞에 앉으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백내장이나 녹내장은 아닌 것 같고 망막에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전문의에게 가보란다....... 망막전문의라는 의사가 검진을 해보더니 망막이 떨어진 것 같다며 정밀검사를 해보더니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며 집에 가서 간단한 세면도구를 가지고 와서 입원준비를 하라니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얼떨떨하기만 하다. 별일은 아니겠지 싶어, 집사람에게도 뭐, 간단한 시술을 한다나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고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니 옷도 갈아입히고 병실로 안내하는 것이 어째, 간단한 일이 아닌 것 같다........ -_-??? 간호사에게 어떻게 진행이 되는 가고 물으니 의자에 앉혀놓고는 눈썹부터 깎겠다며 가위를 들이대기에 깜짝 놀라, 눈썹을 밀어대면 남자인 내가 문신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 겉눈썹이 아닌, 속눈썹에는 균이 많은지라 싹둑~! 잘라야하고 한 달 정도면 다시 자랄 테니 문신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수술시간이 2~3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남에 일이라고 무덤덤하니 말을 한다. ‘3시간?????? 그럼, 이거, 큰 수술아녀?????? -_-;; ’ 갑자기 숨이 막히고 진땀이 솟기 시작하는데 노련한 간호사였는지 머리에 비닐 모자까지 씌워놓고 돌아가다 다시 다가와서 손바닥을 만져보더니 “어머~~~!!! 긴장하셨나봐~~~~ 땀이 많이 나셨네? 진정제 좀 드릴께예~!!!!” 무슨 작은 알약을 하나 가져다 주는데 놀라서 숨이 턱에까지 올라온 판국이라 독약일지라도 상관없이 ‘꿀떡~!’ 삼키고 채, 진정도 되기 전에 수술을 담당할 의사가 나타나서는 교회를 다니는지? 다른 종교가 있는지를 물었는데 집안에는 독실한 신자도 있지만 특별한 날에만 성당구경을 가는 정도라고 참회가 섞인 투로 대답을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에 손을 얹더니 기도를 하겠단다. “하나님, 아버지, 이 어린양(?)이 수술이 잘되도록 도와줍소서~ 아멘~!!!” ‘아멘~!’ 소리가 함께, 절로 나왔는데 찔끔, 눈물이 한 방울 새 나오는 것 같은 건 웬일일까?! “무슨 특별한 소원이 있습니까?” “소원이 있으면 누가 들어준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실 겁니다. “......... 그럼, 다시 푸른 바다를 보는 것이 소원인데요?!” “바다???? 바다를 봐야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럼요?! 있구 말구요~! 꼭 갯바위에 올라 푸른바다를 봐야만합니다~~~~” ‘갯바위????? 그게 뭐죠????? “ “............................... -_-;; ” 뜨끔, 눈 밑에 마취약이 담긴 주사바늘이 찔러졌지만, 갯바위에서 모기에게 물리는 것보다도, 덜 아픈 거라며 마음을 다독이며 꿈쩍도 안하니 속내를 알 리가 없는 의사는 “꿈쩍도 안하시는 것이 잘 참으시네요. ^^” (그래, 네가 나라면 안참을 수가 있겠니……. -_-;;) 수술을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눈에서 무언가 뜨끈한 것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고 알 수도 없는 시간이 끝없이 흘러갔고 지루해지기 시작했기에 예전의 즐겁고 숨가뻤던 기억을 꺼내어 생각하며 고통과 뒤틀림을 참다 보니 수술이 끝났다. 가스를 주입했기에 열흘정도는 엎어져서 생활을 해야 한다니 며칠간의 병원생활을 하고 퇴원해서도 집에서도 꼼짝을 할 수없는 사이에 겨울이 지나갔다. 정기적으로 눈의 상태를 점검하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다보니 봄의 문턱에 들어섰지만 예전같이 불편함이 없으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할까? 무창포의 조선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망설이던 중에 서경 피싱의 ‘김 총무’가 차량제공을 하겠다기에 함께 다녀올 수가 있었다. 열 살 때부터 봤었던 그의 아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는데 벌써, 아이아빠가 되어있었으니……. 무창포, 외연도권의 낚시를 최초로 개척, 개발하여 가까운 곳에서도 큰 감성돔과 많은 농어자원이 있음을 밝혀냈고 낚시의 불모지인 서해중부권의 선두주자로서의 역할을 했던 만큼 잊지 못할 명 선장중의 한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떼쟁이 막냇동생 같기도 하고, 제자 같기도 한 그의 청에 오랫동안 가슴속에 담고 있었던 외연도권의 참돔낚시의 장을 열게 되었고 서해중부권의 참돔선상낚시가 시작되며 수많은 참돔자원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도 조선장이 큰 몫을 했기 때문일 게다. 날이 점점 따뜻해지며 볼락을 낚았네, 벵에돔을 낚았네, 반찬거리 선상낚시도 다녀왔다며 한두 마리씩 맛보기를 보내왔기에 비린내를 맡을 수는 있었지만 내손에 염기 서린 물을 묻혀 볼 날이 언제올까나....... 북한강계의 댐으로 쏘가리 구경이라도 해봐야겠다고 나서고 보니 발을 헛딛어 옆에 있는 나무를 붙든 것이 하필이면 몸통에도 가시가 돋은 오래 묵은 두릅나무였기에 쏘가리가시에도 찔려보질 않은 손바닥에서 핏물을 보고야말았다. 편한 곳에서도 이럴 진데 갯바위에 오르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제법, 마릿수의 수확이 있었지만 가라앉은 기분이 오르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낚시의 즐거움이란 것이 무얼까? 좋은 경치도 보고, 맑은 공기를 폐부에 가득 들이키는 것도 좋지만 낚은 수확물이 있다면 가까운 이들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도 있는 것이니 쏘가리 쓸개 주에 회와 매운탕은 이슬 축내기에 한몫을 하고야말았다. 6월 초순에 동호회의 정기 출조를 서해중부권의 참돔선상낚시로 정했단다. 아직 갯바위에 오름은 불편하겠지만 배안에서의 움직임은 위험이 없겠다는 생각에 따라나섰지만 흔들리는 배위에서의 균형 잡기에는 불편이 따랐기에 신경이 쓰였고 널뛰기 조황에 스무 명이 탄 세척의 배에서는 몰 황을 면한 서너 마리의 참돔이 모습을 보였으니 자원이 고갈된 것인지, 들쑥날쑥한 수온 탓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운 좋게 한 마리를 낚아든 사람에게야 즐거운 날이 되었겠지만 이십년을 넘게 낚시를 다녔다는 사람이 조황이 좋은 날이라도 으쓱거려 젊은 후배들에게 빈축을 사기도 했는데 햇수만 많았지 제대로 된 낚시를 못해본 탓일 게다. 새벽 일찍부터 자리 비우기가 쉽지 않은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꼼짝을 못하는 중에 넉넉하니 늦게 도착하여도 된다는 오후반이 급하게 신설이 됐다기에 수온이 올랐다싶은 날을 골라 예약을 해두었지만 받아놓은 날이 좋을 리가 있나....... 바람과 높은 파도로 숨을 곳을 찾아다녀야했으니 고기 구경이 쉽지가 않은 날이다 만, 일행 하나가 연거푸 고기를 끌어내며 18미터권이라며 큰소리를 쳤다……. 아직 낚시 횟수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지 그에게만 고기가 걸려들었는데 그 수심대로 고정을 해보니 바닥에 닿는 것이 걸림만 생기고 채비만 뜯기었다. 알고 보니 찌매듭이 구슬을 통과하여 정처 없는 흘림낚시가 되었었으니 어디에서 어떤 고기가 물었는지도 모르겠고 잠수 찌를 쓴 건지, 전 유동을 한 건지 알 수가 없게 되었으니……. 원……. 머쓱하니 채비를 정리하여 제자리를 잡고부터는 입질이 끊기어서 더 이상의 수확이 없었고 이미 흥이 오를 대로 올라버려 이슬 병 두어개를 먼저 비우고는 만취한 주선조사가 되어서 팔을 휘젓고 있었으니 주위에서는 칭송의 소리가 높아져 갔다. (존경하옵니다. 문 프로님~~~~~~!!!!!!!) 프로낚시인이란 것이 따로 있을 것이 없다. 이미 자칭, 유명하다는 프로낚시꾼들과 낚시용품제조사의 필드스텝들이 건방을 떨며 참돔선상낚시에 도전했다가 망신을 당하고 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데 선장이 4호 이상의 목줄 사용을 권해도 3호 목줄이면 된다고 교만을 떨다가 나중에야 슬그머니 채비를 바꾸곤 했다는데 낯선 곳에서는 현지선장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90년대 초에 거문도에서 낚시를 하다 보니 분명히 초보라고 밝힌 사람에게만 연거푸 입질이 닿아 큼지막한 감성돔 몇 마리를 끌어내게 되었기에 상당한 무공이 있는 고수였는데 몸을 낮추고 있었구나, 이리저리 말을 돌리다, 캔 음료 하나를 건네곤 그의 채비를 보니, 좀, 의아스러웠다. 도래와 바늘사이에 수중 찌가 있었는데 좁쌀봉돌에 걸려있었고 결국은 목줄이 1미터 정도로 짧은 편이었기에 채비에 눈을 주며 바닥에 고기가 붙은 것을 알았었냐고 물으니 그리 채비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어 왔다....... 도래위에 수중 찌를 채운다는 것을 몰라 대충 끼운 것이 좁쌀 봉돌에 걸려 더 이상 내려가질 않았던 것에 입질이 닿았던 것이니…….원……. 주위에서는 박장대소가 터졌고, 영문을 몰라 하는 당사자의 당혹함, 이십년을 넘게 회자되어 내려오는 별난 일들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두 번의 선상낚시에서 공탕을 치고 말았고 칠월이 오기전의 어느 날 다시 일정을 잡은 오후반에서야 금년의 첫, 참돔구경을 하게 되었다. 마땅치도 않은 물색에 두 번째의 자리이동을 하게 되었는데 어선이 통발을 걷기를 기다렸다가 자리를 잡아 낚시를 시작한지가 한참이나 되었는데 이쪽도 물색이 마땅치가 않았지만 물살이 너무 빠른 것도 문제였다. 이 자리를 처음 찾아냈던 8년 전만 해도 그다지 멀리 채비를 흘리지 않고서도 고기구경을 할 수 있었지만 숫자도 알 수 없는 많은 고기가 잡혀나간 지금에야 몇 마리나 남아있을지 알 수가 없었고 굳이 잘 보이지도 않는 막대찌를 남들과 같이 뚫어져라 볼일도 없겠다싶어 어느 정도부터는 눈을 감고 계속 흘리다 보니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는 느낌이 있었고 스플에 감긴 줄은 150미터를 훌쩍, 넘었던 것 같았다. 차도를 보려면 2차 눈 수술을 하자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그 시기를 언제로 정해야할지를 생각하다가 무리를 해서라도 바다를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에 날이 선선해지는 9월경으로 정해놓고 만재도를 다녀오려는 일정을 잡아보았지만 장마피해로 인한 일들이 걸려 쉽게 날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연거푸 큰일을 만들어 미안해하던 집사람이 밑반찬준비를 시작했고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뒷담당으로 휴가를 사용하겠다는 딸내미 손에 스무나무장의 파란종이를 쥐어주고서야 일정을 잡을 수가 있었으니 왜 선임자 중에 하나둘씩 바다를 멀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겠고, 건강상의 문제가 있겠는데, 잘 알고 지내는 주사장님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만재도나 가거도 같은 원도권 마니아였기에 며칠씩, 낚시를 간다하면 부인과의 다툼이 대단하였다는데 큰 수술을 하고부터는 목줄을 놔주었다고 한다. 자칫했으면 잃어버렸을 서방님이 살아나 돌아온 셈이니 하고픈 것, 마음대로 하라고 자유를 부여했다는데 자유를 얻고 보니 같이 시간을 내어 갈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구리의 큰 가마솥이 걸린 식당으로 불러내어 점심으로 값비싼 꼬리곰탕을 시켜놓고 당신그릇속의 토막도 두어 개 더 건네주며 뜸을 들이다가는 본론을 꺼내곤 했다. “어때~?! 만재도나 가거도 한번 같이 가지?!” “어이구, 지금 내가……. 노모도 편찮으신데 그렇게 시간을 내기도 힘들고…….” “삼일만, 아니, 이틀이면 어때?” “그러질 말고 가까운 곳에 고기 잘 잡히는 곳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시면 당일로도 되요~~~!!! 참돔~!!! 부시리~~!!! 농어~~!!! 우럭~~~!!!” “그런 곳이 어디있노??????” 나도 먼 곳으로만 다니기가 힘들다보니 이런 날을 대비하여 진작 개척해 둔 곳으로 외연도권의 갯바위낚시는 당일로는 안 되겠지만 선상낚시로는 그날 갔다 그날올수가 있고 이미, 포인트와 낚시방법을 선장에게 일러주고 가르쳐 주었으니 날씨만 좋으면 아무 때나 원하는 때 가시면 공탕이 없을 것이라고 일러드렸는데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얼마 후에 참돔선상낚시를 가게 되어 날이 밝아오기에 선실에서 나와 채비를 흘리다보니 옆 사람의 릴 뭉치가 시원치 않은 것이었는지 ‘삐거덕’ 거리며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기에 돌아보니 스플에도 절반이나 줄이 감겼을까 원시적인 채비로 보였다. ‘초보자인가 보군, 만재도에서나 사용함직한 흠집투성이의 릴 뭉치와 반이나 감겼을 7호줄은 될법 싶은 원줄이며…….’ 날이 밝아 옆 사람의 얼굴을 보니 주사장님이 아닌가? “헐~~~?! 만재도나 가시지 여긴 또 웬일이래요? 릴 뭉치며, 원줄하고……. 여기가 만재도인줄 아셨나보죠???? ^^;;” 잡히는 고기를 확인하고는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는데 다음 만남에서는 얄팍한 릴과 매끄러운 5호 원줄로 채비가 바뀌었고 워낙, 원도 권에서부터 지긋하니 한자리를 지키던 습관이 몸에 밴 탓인지 남이 잘 차지하지 않는 외진 구석자리에서도 출중한 조과를 올리기를 거듭하면서 가방 꾸림도 간단하게 하면서도 매번 조과는 허접한 프로들의 몇 배를 올리니 오랜 조력이 손쉬운 선상낚시에서 빛을 못 볼 리가 없는 것이다. 급한 일을 끝냈다 싶었더니 연이어 비가 오시고, 태풍이 딴죽을 걸어오니 일정을 정확히 잡을 수가 없었는데 억지로 날을 잡아놓고 보니 낚시를 언제 가느냐고 안달을 하던 일행이 되레 늦게 달려왔기에 집을 나선 것이 오후세시가 넘어서였다 평소에는 떠났는지를 알려고 하지도 않던 만재도의 노인이 집을 나섰는가를 확인하는 전화가 왔기에 고속도로에 들어섰다고 대답을 하였는데 잠시 말을 끊으며 조심해서 천천히 내려오라는 말이 헛 인사가 아님은 나중에야 알았으니 미조에서 세존도를 가려했던 예전일이 생각난다. 목포에 도착하여 선장의 작은 아들이 운영하는 만재도의 식재료만을 사용하는 ‘만재도’ 라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기위하여 매번 다니던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낯선 길을 잠시 헤맸지만 크지 않은 도시에서 쉽게 찾을 수가 있었는데 얼마 후에 만재도에 도착하면 싫도록 먹어볼 수 있을 열기 구이와 해물 찜을 미리 내어왔다 정성껏, 차려 놓은 음식과 가볍게 이슬을 흩뿌리며 몇 개월만의 만남에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졌지만 별다른 이야기가 있을 리가 있나. 그저, 바다 이야기, 물고기 이야기, 섬 이야기가 줄줄이 풀려 나올밖에……. 만재도가 고향이지만 늦게 사 낚시재미에 푹, 빠진 아들은 시간이 나면 만재도로 자연산 식재료를 가지러 간다는 핑계를 대곤, 곧잘 제 누이에게 가게를 맡겨놓고 만재도 나들이에 나선다는데 절반의 일정은 갯바위에서 낚싯대를 펼쳐 놓고 찌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데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이것저것 묻는 것이 많아졌다. 아비의 물일을 거들 때와는 달리, 갯바위에서의 낚시에서는 궁금한 것이 자꾸만 생기는가보다. 만재도로 가기 위하여 목포 북항에 도착하여 배가 떠날 시간을 기다리며 새벽의 시간을 열어줄 밤바다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몇 시간 뒤에는 만재도에 도착할 것이다. 그 섬에서 몇 일간 머물면서 피로와 공해에 찌들어 지친 내 육신이 치유되기를 기대한다.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낚시의 덫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사진이 담긴 조행기 > 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3.만재도의 특별한 여름.(마음을 비우고 탁족(濯足)을 즐긴 하룻 밤의 꿈) (0) 2012.08.27 2. 만재도의 특별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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