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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2011년 만재도의 여름 6. (다시 제자리로......)

by 찌매듭 2011. 8. 11.

 

  이제, 마지막 날의 밤낚시만 남겨 두었다. 여전히 바람이 거세니 오늘은 어디로 가야할까? 돌돔을 한 마리도 못 낚은 정군이 그제의 자리로 가기를 원했다. 어젯밤에 내가 낚시하는 방법을 눈여겨보았으니 그제의 자리로 간다면 돌돔인줄도 모르고 여러 번 놓쳤다던 입질을 이제는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제 보다는 이틀이 지난 물때이니 물방향이 달라지고 거세어 졌을 거라 걱정이 되었지만 물이 서는 시간도 걸릴 테니 선장에게 그리로 가자고 했지만 선장은 어제의 자리로 다시 가고 싶은 말투였다……. “거기도 거기지만, 오늘은 어제의 자리가 더 나을 듯도 싶소만 은......” “모두가 제복이지라, 아침에 일찍 갈 터이니 그리 아소……. 온지 며칠이 되었소만 진득하니 이야기 나눌 새도 없었는데……. 내일은 솔잎 주를 내놓을 테니 한잔 하십시다……. ^^ “ 어제보다, 그제 보다, 바람도 물도 거세었지만 그런 대로 내릴만한 곳이었기에 마지막 날의 밤을 보낼 장소가 되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내려서 낚시를 하지만 바다는 날마다 새롭다. 어제와 다른 날씨, 기온, 물때 물 방향……. 바다는, 날마다 새로워지리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첫 번째의 담금에 바로 입질이 나타났기에 너무 빠르다 싶어 챔질을 해보니 욱씬, 하다 떨어지는 것이 설 걸렸었나 보다……. 이어서 또 한 번의 떨굼……. 입질이 더 예민해졌나? 신중하게 세 번째의 입질을 읽으며 강하게 챔질을 했더니 잠시 힘을 쓰다 또 떨어져 나갔기에 어째 오늘은 먹성이 좋지 않은 날인가보다곤 더듬어 보니 바늘이 없어졌다. 목줄에 흠이 있었나 보지? -_-? 새 바늘을 묶었고 네 번째의 입질이 바로 들어왔는데 손잡이까지 들어간다 싶었더니 바로 튕겨 나오고 말았다. 또, 목줄이 끊어졌나 했더니 이번엔 바늘이 부러져 버렸다……. ‘불량 바늘이었던 게군? 보기엔 색깔도 푸르스름하니 예뻐 보였는데…….’ 바늘의 호수를 한품 더 올려 감성돔용 7호로 바꾸었고 다섯, 여섯 번째의 고기는 무난히 끌어내어 살림통에 넣고 기포기를 틀어 놓았다. 어째, 치솟아 오르는 물이 거세어 꿰미에 걸었다간 궤도, 구럭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에……. 너울이 심하여 자리를 옮겨야했기에 정군과는 불과 5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다시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입질 파악과 함께, 우선은 쓴 소리가 되겠지만 득이 될 소리도 쉽게 들릴만한 거리였다……. 정군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 보니 그제보다 물높이가 높아졌으니 공략을 할 장소도 그만큼 멀어졌기에 약간이라도 긴, 7미터 장대로 바꾸어서는 받침대를 설치하고 큼지막한 크릴을 끼워 던져놓고는 잠시 받침대에 걸어 놓자마자 그대로 시원하게 빨려 들더니 또, 돌돔이 물고 나왔다. 이제부터는 입질이 시원해 졌나 했더니 별난 놈이 물고 늘어졌던 것일 뿐, 계속하여 얄팍한 입질형태로 돌아섰기에 눈에 힘을 쏟아 부으며 잘 맞추어 낸 챔질에만 고기가 걸려 나왔는데 장대 한 대를 빌려가서 유심히 지켜보던 정군이 탄식을 해댔다……. “하~~!! 난, 입질이 그런 줄도 모르고……. 나도 그런 입질 수 없이, 봤어요! 돌돔이라면 후속 입질로 이어지겠거니 그러다간 망상어가 그러나보다 챔질을 안했었는데……. “ 그러고도 몇 번의 헛챔질을 하다간 도대체 챔질이 안된다며 옆으로 다가왔다. “아니, 주신 낚싯대, 그대로 사용하는데 왜, 난, 안 물리죠?” “목줄에 봉돌을 물려야지……. 바늘 바로 위에……. 돌돔이 힘이 세고 난폭하다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엄청 게으른 고기거든? 미끼도 나누어 먹고, 흔들려도 안 먹고, 감성돔이나, 참돔처럼 목줄이 길어 휘날리면 안문다고……. 원도 권까지 낚시를 오면서 G2, B, 2B 이따위 봉돌을 왜가지고 오누? 그저, 최소한 5B 이상이어야 콱콱, 채울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홍도만 제일로 알고 돌돔낚시를 가는 동내 후배들이 몇 있는데 오래도록 홍도로만 돌돔낚시를 
다녔다며 장대낚시 포인트를 주르륵, 꾀고 있다는 장 씨의 안내로 연중행사로 돌돔낚시를 간다.
성게 한주먹만 가지고 장대를 드리우고 무한정 기다리고 있으면 돌돔 몇 마리를 
낚을 수가 있다는데 돌돔 낚시에 있어 장대를 받침대에 걸어놓고 기다렸다간 
누구에게 운이 좋고 나쁜지는 몰라도 한두 서너 마리씩은 낚을 수도 있지만 
추자의 김 선장은 손님이 없는 날에는 돌돔낚시를 하면서 장대를 손에서 떼어 놓지를 않는다. 
돌돔이 있다면, 바로 입질을 시작하기에 던져놓고 무한정 기다리는 낚시는 특별한 대물 
한두 마리만을 노린다면 몰라도 그런 게으른 낚시로는 잡을 수가 없는 것인데 돌돔낚시의 
1인자인 박 씨 아저씨는 한나절 낚시에서만도 지렁이 2Kg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수없이 포인트를 향하여 던져보고, 바로 입질이 없으면 꺼내어 다시 던지고 하여도 돌돔을 잡을까말까 한 판국에 
 달랑, 성게 1Kg 을 갖고도 남는다니 여태껏 운이 좋았다면 몰라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장 씨의 안내로 후배들이 홍도로 낚시를 다녀왔다기에 미끼의 양도 적고, 사용하는 방법이 
이상하다고 지적을 해주어도 듣지를 않더니 근래에는 때늦게 철들이 났는지 공탕이 없는가 보다…….
갑자기 돌돔이 잘 나온다는 연락을 받고 대관탈도를 갔었을 때였다. 
낚시점 마당에는 성게를 가마니로 실어다 놓고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돌돔의 입질이 과격하여
잠간동안에도 5키로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돌돔이 모두 떠있다는 것이었다.
원투 대에 성게를 세 톨씩 끼어 던지면 바닥에 닿기도 전에 공중부양으로 깨먹기에 바닥에 
채비가 닿았다 싶으면 깜빡 하는 입질로 나머지 붙어있는 껍질까지 훑어먹는다고 했다.
“에이~~~ 거짓말~! 70호 봉돌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속도가 얼만데 돌돔이 번개도 아니고…….”
아무튼 간에 어찌 소문을 듣고 몰려왔는지도 모르는 군중심리에 내몰려 8키로 정도의 
성게를 받아 들고 관탈도로 향하였는데, ‘우드드득?’ 하면서 내려가는 채비가 바닥에 
닿았다 싶으면 한번 까딱, 하곤 움직이질 않기에 슬그머니 꺼내어 보면 빈 바늘만 있는 거라…….
선임자가 오늘이 십년 만에 한번쯤 있는 그날인 모양인데, 돌돔이 총알같이 내려가는 추에 
달린 성게를 번개같이 훑어 먹는 날이라고 했다.
채비가 내려가는 도중에도 끄떡하는 기미만 있으면 챔질을 해보라고 했다.
쏘가리도 튀는 날이 있기는 한데 이런 날을 만나면 웜이나 스픈, 단 한 개만을 갖고도
타작을 할 수 있는 날이 있기는 있다. 소양 댐에서 세 번의 그런 날을 만나 두 시간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쏘가리를 낚기는 했었지만 바다에서, 농어도 아닌 돌돔이 뛰는 날이라니?????
여러 번의 헛손질 끝에 원투대가 고꾸라지듯이 휘어지며 하복부에 닿은 손잡이가 뱃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엄청난 고통과 함께 물속의 어떤 놈이 타이탄이 달리는 듯한 괴력으로 부딪쳐 왔는데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크기의 돌돔이었다. 강한 원투 대였고 정확하게 바늘도 박혀 있었지만 뜰채를 사용하여 떠내어 
줄자로 재보니 58정도의 어마어마한 대물이었는데 60이 넘는 돌돔이라면 어떤 괴력을 선보일까?
돌돔이 떠올라서 성게를 깨먹는 날이 3일 정도, 이어졌다나 보다.......
구십년 대 중반까지는 홍도도 자주 가보았는데 운이 없었는지 대체적으로 씨알이 잔편이었고 
감성돔 시즌이나 돌돔시즌이 짧은 편이었다. 낮에 낚시를 하다가 잠시 용변을 보거나 
양물 바람 쐬기라도 할라치면 바위 옆에서 소리도 없이 유람선이 나타나서는 알록달록 
고운 옷을 입은 아줌마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단체로 ‘까르르~~~’ 웃어대다 보니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낚시에 집중을 할라치면 또 한바탕 와서는 휘젓고 가니 
정신이 사나워져 홍도를 잊은 지가 오래 되었다.
홍도의 돌돔 마니아라며 큰소리를 치는 장 씨의 낚시방법을 들어 보니 물이 거세어야만 
돌돔이 물어주기에 물의 속도에 따라 미리 끼워둔 봉돌튜브에 10호 정도의 봉돌 한 개를 
더 끼웠다, 빼었다를 반복한다는데 따로 따로 노는 봉돌이 절대로 20호 봉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젠가 건설현장에 가보니 16미리 철근이 조금 부족하다며 부족한 부분에 10미리 철근 두 대를 묶어 
배열해 놓은 것을 보았다. 두 대를 겹쳐 묶었으니 20미리의 강도가 나오지 않겠냐며…….
10미리 철근 세대를 묶는다고 16미리 철근 한 대의 힘이 나오지는 않는 것이라며 인부들을 
설득하여 다시 시공을 하라했는데 봉돌의 무게도 더하려면 이쑤시개용 나무를 이용해서라도 
튜브끼리 이으면 간단하지 않겠느냐고 하니 머리를 긁적이며 “이래서 고려장이 없어진 모양이라”며 혀를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저 장 씨를 오래전에 만재도에서 두어 번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고기 반, 물 반이었던 시절이었지만 한 마리도 고기를 못 낚고 배에 올라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입만 살아있는 허풍쟁이였나 보다.......
하긴, 가거도에서 보니 성게속이 다 빠져나간 것도 모르고 빈 껍질을 담가 놓고 있어 안타까워,
한마디 했더니 멀쩡한 성게가 바늘에 달려 있으니 입질만 기다리면 된다고 하기에 채비를 
거두어 보라해선, 갯바위에 태질을 하여 속빈 것을 확인시켜 주니 깜짝, 놀라더니만 언제 저렇게들 되셨을까? ^^;;


드디어 정군이 돌돔을 걸었다며 뜰채를 들고 움직였다.
“참으로 감격스럽네요……. 난 또, 돌돔입질이 삼단입질이라고만 생각하여 뒤이어 입질이 
올 줄 알았는데 미끼를 한 번에 훑어버리는 것도 몰랐으니 빈 바늘만 달고 있었군요? 
바늘위에 1호 봉돌이라……. 정말, 엄청스럽네요.......”
장르와 어종을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벵에돔 낚시를 즐겨 다니는 정군과는 달리 벵에돔 낚시를 
가장 즐기지 않는 편이다. 한손엔 주걱을 움켜쥐고 뿌리고, 던지고 채고의 급함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입질도 과격하고 당김도 세찬, 긴 꼬리 벵에돔이 아닌, 일반 벵에돔(속칭 똥벵에)을 낚지 
않게 된 이유는 거문도의 김 선장 때문이었다. 
거문도에서 목선 배로 낚시민박과 안내를 했던 김 선장은  벵에돔을 천시했다. 
거문도 사람들은 하수구가 있는 곳에서 먹이활동을 하며 몰려다니는 그 때만 해도 지천이었던 
벵에돔을 더러운 고기로 취급하여 낚시로는 잡을 수 없는 하급 고기로 여겼고 고기를 잡아 
나오면 감성돔이나 우럭 같은 것은 손질을 하여 주면서도 벵에돔이 들어 있으면 구석으로
집어 던져 버렸다. 구십년 대 중반이 넘어서며 고기자원도 줄고 낚시꾼만 급증하자 
천대하던 벵에돔도 귀한 고기가 되다 보니 감성돔이고, 벵에돔이고 가리지 않게 되었는데 
어느 날은 무심코, ‘벵에돔 잘나오는데 내려 주겠다! 기에 ”당신이 그렇게나 똥고기라며 천대를 하더니 
이제는 똥인지 된장인지 가리지 않게 되었다“ 고 되새겨주니 무안했던지 다른 곳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거문도 시대가 끝이 난 것 같아 추자도나 더 먼 섬으로만 다니게 되었다간 10년 만에 
거문도로 갈치 낚시를 가게 되었기에 젊은 선장에게 김 선장의 근황을 물어 보았다.
”대가께서는 낚시를 접으셨습니다…….“
“대가라니? 김 선장이 쭝국으로 진출을 했소?”
“아뇨, 이제는 고기도 없다며 낚시를 접으셨죠……. 우리들에게는 대가로 통하십니다!!”
그제와 달리 물때도 다르고 속물까지 뒤집어 졌는지 너울이 심해졌다.
물높이가 올라왔으니 해초의 일어섬도 더, 뻣뻣해 졌을 테니 장대의 길이를 
1미터만이라도 길게 해야 하는데 8미터자리 장대가 없으니.......
콸콸, 소리가 나도록 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낚싯대의 숙어짐이 한계를 넘어섰기에 낚시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 도시락이나 먹고는 모기가 적을, 높은 곳을 찾아 잠시, 눕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짐정리를 해놓고는 위로, 더 위로 편편한 자리를 찾아 올라갔다.
여기까지는 도깨비가 안 오겠지만 혹시 모르니 예방 삼아 묵주와 성수 통을 꺼내 놓고는
작은 불도 하나 켜 두었다.
바다는 밤으로 더 가까이 오면서 길잡이 바람만 되돌아가 구름으로 솔면 으레껏 
선잠에 들며 늘 그렇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달빛이 뚫어지고 별이 새어나오면 
어둠을 얼비추며 너울춤이 칠칠하던 바다가, 갈잎에 이술이 잘게 열리는 밤이면
깬 꿈을 한결같이 다시 잇던 것이다. 바다의 꿈결은 언제나 뒤숭숭하니 어지럽고 길어 
무야(戊夜)로 이울며 샛별이 보이도록 그치지 않았고, 꿈자리가 사나운 탓인지 
썰물 때까지는 뒤치락거리는 몸부림으로 천둥과 지동을 비벼 무겁게 신음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갯둑을 넘보며 넘실대던 사리 썰물이 여러 날 동안 소식이 없는 
조금에 이르면, 겨우 해거름만 가신 초저녁부터 그런 꿈자리가 벌어지며 거참, 
도깨비들의 놀이터가 되던 것이다. 
 대명(大明)을 피하여 그것들이 낮잠 자러 모이던 소굴은 어디였을까. 어디로 들어가 
해동갑하며 잠자다가 하늘의 푸른 기운만 땅에 드리우면 쏟아져 나와 그 북새를 
피운 거였을까. 그 많은 도깨비들이 저녁마다 논다니패의 난장을 이루던 왕 대뫼 
곱은탱이의 먹탕곶 개펄과 무젖지를 자주 뒤져먹던 사람들도, 결삭은 몽당비 한 자루, 
부러진 작대기 한 토막 주웠다는 소문이 없었으니, 그것들은 한 놈도 축나지 않은 채 
떼를 이루어 영락없이 먹탕곶 언저리에 숨어 살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건만, 
죄 그것들을 꺼려 아무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날이 새면 누구도 도깨비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땅거미가 어리기 시작하면 
마실 마당마다 반드시 쑥 냄새 짙은 모깃불에 비껴 앉아 바다 건너 불을 먼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도깨비들은 우리들이 정월 대보름께 쥐불싸움을 즐겨하듯 
밤마다 불놀이를 했으며, 달무리가 짙거나 비거스렁이 끝이면 더욱 별쭝맞게 
극성을 떨었다. 도깨비불은 무등 타기와 팔매질로 시작하여 곧 숨바꼭질로 
들어가기 일쑤였고. 도리깨 고무머리 메치듯 태질 하여 메어꽂고 흘레를 하다가도, 
이리 몰리고 저리 쫓기는 패싸움으로 밤을 새우곤 하였다. 그것들은 성질이 급하고 
거칠되 벙어리들인 것 같았고, 우리가 쥐불놀이할 때 어레미처럼 몽글게 구멍 뚫은 
깡통에 관솔불을 담아 돌리듯이 그것들이 불방망이로 상모를 돌릴 적이면, 웬 사내가 
무디게 두런거리는 틈을 여투어 앳된 목통으로 짜글짜글 다툼질하는 소리도 자우룩한 
골안개에 빠진 참새들 마냥 멀리서 들려오곤 하였다. 그것은 말할  나위 없이 신작로가의 
송방 앞 마실 꾼이나 서낭당 쪽의 도린 결에 외로이 서 있던 왕 소나무 밑의 마실 마당이었다. 
조무래기들은 도깨비불만 보면 네 그르니 내 옳으니 하며 자그락거리기 일쑤였고, 
그러면 나이 좀 있는 사람이 얼른 쉬쉬하면서, 도깨비가 듣겠다고 나무라주게 
마련이었던 것이다. 도깨비가 들으면 무엇이 어떻다고 불똥 끄듯 서두르며 
말리려 들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시늉을 해보이려 했지만, 그네들도 어려서부터 가르쳐준 이가 없어 이렇다 하게 
내놓지 못하는 눈치가 역연하던 것이다. 그것은 바지랑대에 등을 매달고 멍석에 
둘러앉아 삼을 삼거나 태모시를 톺던 늘그막의 아낙네들도 마찬가지로 가늠을 못해, 
도깨비불에 손가락질하면 도깨비가 쫓아온다는 것밖에 다른 말은 할 줄 모르고 있었다. 
그네들은 낮춘 말로, 도깨비들이 벌거벗고 산다더라고 귀띔 해주었으며, 그것은 그것들이 
여름내 왕대뫼 자드락이나 갯가에 나와 불놀이를 하다가도, 기러기 그림자에 논두렁 
콩노굿이 지고 오려논에 자마구가 일며 부터는 아무도 모르게 간 곳 없이 사라지던 것을 
보아 믿을 만한 말이라고 우길 따름이었다. 
된내기 빛에 두엄이 허옇게 쇤 위로 난초 치던 붓끝 같은 마늘 싹이 솟고, 
보리밭머리에 장끼가 내리기 시작하여 이듬해 구렁찰 논배미에서 뜸- 뜸- 
뜸부기 짝 찾는 소리로 개구리 논두렁 넘기 바쁘던 여름까지는 도깨비들이 
가뭇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직 학령기에도 이르지 않았던 나는 정말 알지 못했다. 
차지던 바람이 메져지고 개펄에 성에 엉기듯 허옇게 소금기가 끼는 철이 되면, 
음습하던 바람이 맴돌아야 난동하던 인화(燐火)가 전혀 일지 않던 것을……. 
어른들이 눈을 꿈적이며 먹탕곶 갯벌께를 그만 보라고 타이른 밤이면 담 밑에 
반딧불만 자주 날아도, 촛불 붙이려  혼자 사당 문을 열 때처럼 뒷덜미가 선뜩하고 
떨떠름하여 담 밑에도 가지 못할 만큼이나 그 도깨비불은 여간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런 날은 아무리 무더워도 모기가 떠메어간다는 핑계로 마실 마당에서는 
일찍 물러나곤 하였다. 뿐더러 홑이불 한 장으로 대청에서 베개 없이 자던 것도 잊고 
이내 방에 들어가 초저녁잠을 부르곤 했다. 그 무렵에도 해가 길면 새벽에는 잠귀가 
얕아져 으레 무슨 소리에 놀라 문득 잠을 깨었다. 그 귓결에 스친 것이 무슨 소리였는가? 
어림할 동안에 잠이 나가면 고개를 돌려 가로닫이 높은 영창을 쳐다봄으로써 바깥의 기미를
살피는 것이 버릇이었다. 그러면 새벽 어슴이 영창을 비추고 있었으며 의걸이 말코지에 
허옇게 서 있는 것이 얼핏 띄었는데, 나는 그 순간 가슴이 후끈해져서 엉겁결에 
홑이불을 도로 뒤집어쓰며 사지가 움츠러들었다. 
이문구 선생의 관촌일기를 보면 선생도 도깨비에게 희롱을 당한 적이 있었나 보다.


여름밤이었지만 이상기온이 이어지는지 선선한 느낌의 밤이었기에 더운 줄도 모르고 깜빡, 
잠이 들었나 본데 찾아 올라온 정군이 과자 부스러기와 음료를 건네어 왔다.
“왜? 낚시가 안 되던? 네 자리는 버틸 만하던데?”
“입질이 간사하더라고요, 갑자기 입질이 시원하다 싶으면 참돔만 물려 나오고
 돌돔은 그나마 아까 그, 한 마리로 끝이네요.......“
“그러기에 그럴 때는 장대 찌낚시를 해야 하는데.......”
“장대로 찌낚시라뇨??????”
“내가 빌려준 6.5미터짜리 장대를 보면 찌매듭도 두어 개 묶여있고 찌구슬이며 찌고리며
 릴낚시에 사용하는 채비가 덧달려 있단다. 입질이 약할 때는 짤막한 막대찌를 달아놓곤
 살포시 들어가는 입질이 나타날 때 챔질을 해보면 또, 영락없이 돌돔이 물고 나타날게야…….
 이곳의 돌돔이 워낙, 겁이 없다 보니 밤에는 2~3미터까지 떠오르니 짧다할 장대에도 
 그런 채비를 해볼 만 한 거지.......“
“그래서 낚싯대에 이상스럽고 복잡한 것들이 주렁주렁 있었구먼요? 난, 또 무언가 했었는데
 참……. 별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통하니 할 말이 없네요....... 패장이 무슨 말을......“
미련이 남은 정군이 다시 내려가 남은 시간동안 열공을 펼쳤지만 이미, 날씨가 이상해 졌으니
별다른 수확이 없었나 보다.......
다른 날보다 일찍 온 선장이 건너편의 후미진 곳으로 가서 농어 낚시를 잠간 해보겠느냐고 한다.
뱃삯이 아까웠는지 배를 타지 않고 산등을 넘어온 낯선 객들이 이틀째 후미진 곳에서 
농어낚시를 하여 많이 잡았다는데 벌써 여러날 째 농어 떼가 들어와서는 나가질 않는다고 했다.
정말 배를 타고 나가면서 산등성이를 보니 걸어 넘어 오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농어를 더 잡아서 무엇을 할까? 먹을 만큼의 농어로도 넘쳐 나누어 줄만큼도 한데…….
짐을 받아주려고 나왔던 민박집 아저씨가 큰일이 났다고 한다?
“무슨 큰일????? 뭍에 비가 또 많이 와서 난리가 났데?”
“서울 가져 간다고 물칸에 넣어둔 돌돔이 모두 사망을.......“
“모두 죽었단 말여? 딸내미에게 먹이려고 했던 것들이????”
“아니, 끝까지 들어 보시라고~~~~ 사망을 한줄 알고 물칸을 열어 보니 씽씽하더라고……. ^^;;
“헐~~~~ 농담도 많이 늘었구려.~~~! ^^ ”
이틀 동안 안 들어왔던 낚시점의 배로 새롭게 들어온 손님이 열댓 명은 된다고 했다. 
짐정리를 하고 솔잎주도 하고 한숨 잘만한 시간이 있겠다 싶었는데 우리만 나가는 
손님이다 보니 눈치가 보였는데 마침 빈 배에 목포로 미역과 다시마를 가득 실어 놓고 
떠날 기색이었기에 선장과 민박집 아저씨와 솔잎 주를 나눌 시간이 없어져 버렸다.
다른 집같이 좋은 배로 안내를 못했다 보니 뱃삯을 못 받겠다며 선장이 도망을 가버렸기에 
어정쩡하니 서있다간 시동을 걸고 재촉하는 배에 올라탔는데 멀리서 선장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휑한 선실에 두 팔을 벌리고 누워서 보니 손톱도 많이 자랐고 때가 끼어 꼬죄죄하다.
두어 시간쯤 달게 잤는가. 본데 목포 북항에 가까워졌는지 공사현장 모습이 보였다.
상량만을 남겨놓은 다리공사는 곧 끝날 테고 섬들마다 다리로 이어져 예전의 섬 모습은 
사라지겠지만 주민들은 한결 나은 삶을 누릴 것이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추억 속에 남겨야 하나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가야하는 삶,
오늘은 어제와의 이별이고 내일은 오늘과의 이별이리니.
가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던 곳을 가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곤 
몰랐던 세계를 찾아가 호기심을 채우게 된지도 오래되었다.
인간은 소박하고 원만한 관계 속에서 이웃들과 기쁨을 나누고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그런데 우리는 이기적이고 나 중심적이기 때문에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을 느끼며 
불행하고 외로운 삶을 살 때가있다.
수많은 생명체가 넘쳐나는 바다와 견주려고 맞서보던 이 빈약한 인간의 견줌은
끝이 없이 항상 무모한도전이 행해지고 있으니 조물주가 보기에는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수평선을 눈높이에 두고 바다를 바라보면 누구나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육지에서의 바람과 바다에서의 바람이 서로 다르듯이 이제, 
버리고 정리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손을 비워야 다른 것을 잡을 수가 있는데 
세상에 보이는 것은 다변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 중에서도 무언가가 가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epilogue : 만재도에서 출발을 서두르다 보니 물통에 물도 부족하였고 배의 흔들림에 
             기포기의 호스가 빠졌었는가 보다. 결국, 딸내미의 입맛을 맞춰주지 못하였으나 
             신선도는 훌륭하여 소금 간을 하지 않은 채 보관을 하였다가 요리공부에 사용하겠다는데 
             그런 최고급 식재료가 어디 있겠나?! ^^;;
많은 비가 왔다지만 다행히도 내가 사는 동내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선장과 아줌마가 정성껏 손질을 하고 소금 간을 하여 냉동고에 넣어 온 고기들이 종류별로 
잘 분류를 하여 스치로폼 박스에 담아 주었다. 돌돔, 한 상자, 볼락, 한 상자, 다른 고기가 
또 한 상자, 두 개의 쿨러에는 전날과 마지막 날 잡은 고기가 담겨 있었는데 마나님이 
절반을 들고 나가 친구들과 집안 식구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이웃의 할머니들과 안부를 
궁금해 하던 이웃들에게 몇 마리씩 나누어 주었다. 
참돔을 가장 맛있다 시는 노모를 위하여 먹기 좋은 크기를 골라 잘 포장하여 냉동고에 
넣어 드렸고, 바쁜 일이 있어 함께 하지 못했던 서 씨 아저씨에게 큼지막한 돌돔과 
농어를 건네주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언제 또 갈꺼냐’ 단내를 뿜어댔는데 
‘아저씨, 9월에 천사가 오신다는 연락이 있었는데 진득하니 기다려 보시우~~~’ 비싼 척도 해보았다. 
나누어 주고도 남은 고기가 냉장고 안에 가득했는데 마나님이 들여다보면서 나누어 주지 
않은 이웃을 기억해내며 또 몇 마리씩 싸들고 나갔는데 ‘얼른, 나누어 주시구려~~~ ’
‘냉장고가 비어야 탈출의 기회가 또 생길 테니…….  ^^;; 
피로가 풀렸냐며 정군이 찾아왔기에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무거운 장대를 던져 버리고 
똑같은 낚싯대를 구입해야겠다며 낚시점을 알려달라며 같은 채비를 해달라고 했다. 
 글쎄……. 운이 닿아야 고기도 잡는 것이지, 장비가 좋다고 고기를 잡을까마는.......
작년과 변함없이 엿새 밤을 꼬박 세우다시피한 건강이 고맙고, 
이렇게 무사히 제자리에 돌아온 것이 더, 고마운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