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2011년 만재도의 여름 4. (소가 대를 겸한 돌돔잔치) by 찌매듭 2011. 8. 8. 또 한 번 얼른 씻고, 먹고, 자고……. 일을 이렇게 열심히 했다면 금자탑은 몰라도 은자 탑은 쌓았을 텐데……. ^^;; 한숨 자고 일어나니 민박집 내외는 다시마를 손질하고 있었다. 깨끗이 손질해서 뭍으로 내보내면 1KG당 만여 원을 받는다고 했다. 양식 다시마가 아닌 자연산이라며 으쓱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이 1박2일이란 방송에 나간 후부터는 찾는 이들도 늘어나며 시 섬만의 특산품이 있냐며 찾기 시작하니 그동안 각광을 받지 못했던 미역이나 다시마 외에도 만재도에서 나는 해산물이 동이 나는 현상이 생겨났단다. 모든 것의 가격이 작년보다 다소 올랐는데 거북손이나 배말 같은 것도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어쩐지, 냉동고 안에는 전년에도 없던 배말이 비닐봉지에 담겨 가득 들어 있었는데 목포에 있는 딸이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여 구입자를 찾아 주문을 한다는데 만재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끔씩 섬에 다녀가기도 하지만 그저, 금나오라고 뚝딱, 하면 금이 나오고, 은이 나오라면 나오는 줄 아는지 시도 때도 없이 주문을 해댄단다. “엄마? 배말 열 봉지하고, 거북손.......” “야~! 이것아~~~~~!!! 배말 열 봉지를 따려면 날도 좋아야하고, 거북손은 더, 날이 좋아야 하는데 말만 하면 배말, 거북손이 저절로 물속에서 나오는 줄 알아??? “ “엄마, 그래도 어떡해……. 주문을 그리 받았는데......” “에미를 물에 쳐 넣어 죽이려고 그러니?” 처음에야 반찬값이라도 되는가보다, 부지런히 이것저것 채취를 했다만 근처에 손닿는 곳에 있는 것부터 시작을 한 것이 점차 동이 나자 멀리 나가야만 딸 수 있다 보니 배말, 거북손의 주문을 맞추어 주기가 점점, 어렵게 되었단다……. 방송에 나간 후에는 자동차 타이어를 만드는 공장에서 육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고기 잡은 곳이 어디냐고 몰려 나갔다는데 거 참, 뭘 모르는 분들일세! 출연자들이 배말과 거북손을 따던, 아니, 따는척했던 녹섬이라는 곳은 배말이나 거북손이 많이 있는 곳이 아니니 어디선가 미리 따다 놓고 연출을 했을 테고 출연자가 연실 고기를 잡던 그곳은 낚시를 금한다고 써놓은 곳이었는데 밤 시간이다 보니 보고도 못 본척 한 건지, 한글을 몰라서인 진 알 수가 없지만 운 좋게 만조 시간도 걸렸기에 고기도 잡았을 텐데 무작정 만재도에만 가면 고기를 잡는 줄 알고들 오기에 치어들이 자라서 밖으로 나가는 양식장 구실을 하는 곳의 출입을 막고자 테트라포드를 높이 쌓았다고 했다. 그저 방송이라는 것이 연출에 연출이라는 건 모르고 그대로만 믿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순진한 건지, 어리숙한건지 알 수가 없다……. 하기야 오래도록 드나들던 낚시인들 대부분이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도 없이 고기잡이에만 열중하다 가버리곤 하니 만재도의 보배인 단 하나뿐인 우물이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떠나갔을 게다……. 늦은 점심 밥상에서 숟가락을 놀릴 적마다 서너 개씩 떠 담기는 배말 된장국이 오늘은 새로운 맛같이 느껴진다. 또 도시락을 싸들고 골목길을 나서는데 외지에서 온 것이 분명한 청춘남녀를 만났는데 1박2일 이라는 방송에 나왔던 할머니네 집을 찾는단다. “그 할머니네 집은 왜?” “방송에 나온 그 집에서 묵으려고요~~~~” “뭐, 그 집은 별나나? 여긴 어느 집이나 다 같다우~~~, 똑같은 반찬에 똑같은 물에 어느 집이나 빈방이 하나둘씩은 있을 건데 아무집이나 가지…….“ “그래도 기분이 그렇지 않잖아요?! ” “그거 순, 연출일걸? 이 집 반찬, 저 집 반찬, 그러모아다가 찍었나보지…….” “그래요????? -_-? ” 냉동고에서 얼음물도 챙기고 밑밥도 꺼내다 보니 청춘남녀가 방파제까지 따라왔다. “개그맨이 고기를 잡던데 는 어디래요?????” “지금 서있는 그자린데 원래 그 자리는 낚시금지구역이고 하도 사람들이 몰려와서 작은 고기까지 마구 잡아내기에 말렸지만 듣지를 않아 아예, 낚시를 못하도록 테트라포드를 쌓아 막아 버렸다우~~~~” 남쪽에서 부는 바람이 도대체 잠들지를 않으니 물 흐름도 마땅치 않은 후미진 곳을 찾아야했다. 건너편의 높은 곳에서는 볼락이 제법 나오는 곳이긴 하나 한참을 들어 올려야 하기에 다소 튼튼한 채비여야하고 팔이 제법 힘을 써야하는 고단한 곳인데 그 앞으로 내려가면 농어 떼가 곧잘 들어와 한밤중에도 루어를 던져 단시간에 승부를 걸어야하는 곳이다. 오늘내린 자리는 앞자리에서라면 돌돔을, 멀리 채비를 던진다면 볼락을 잡아 볼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한여름에 바람이 없는 날이라면 한증막 같은 곳이라 선뜻 멋모르고 내렸다간 낚시는 고사하고 바람 도는 꼭대기를 찾아서 열두 번쯤 후회를 하다간 철수를 해야 하는 곳으로 오늘같이 바람이 심한 날이라면 안쪽까지 바람이 들어와 낚시를 할 만한 곳이다. 짐을 내려놓고 땀부터 식힌 후에 낚시를 시작하려고 시원한 물병하나를 들고 그동안 확인하지 않았던 메시지들을 열어보니 고기를 많이 잡아 오라는 중압감이 실린 것부터 시작하여 자연산 미역이 필요하니 구해줄 수 있느냐는 친구 놈의 문자와 서울에는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엄청나게 비가 쏟아져 내려 많은 피해들이 있었다며 그쪽은 비가 안 오느냐는 문자도 있었기에 무슨 일인지 전화를 해봐야겠다. 후미진 자리다 보니 통화가 잘 안 되는 탓에 높은 곳으로 기어 올라가 몇몇 곳과 통화를 해보니 기상관측사상 최대의 비 폭탄이 쏟아졌다하고, 아파트가 무너지고, 잠기어 피해가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딸내미와의 통화 내용에서도 걱정스러운 내용들이 들려왔고 노모에게 전화를 하니 대뜸 하신다는 말이 “야. 큰일 났다~!!! 대한민국 망했어~!!!!” “전국이 잠기고 물난리가 났다는데 이거 어떡하니???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아니, 전국이 아니고 그쪽만 유독, 그런 모양인데 여기는 비 한 방울도 안와요........-__-;; “아무튼 큰일은 났는데 그쪽은 비가 안 온다니 다행일세~!!! 여기는 길들이 막혀 다니지도 못한다니 아예 그쪽에서 오래도록 있다가 길도 뚫리고 비가 완전히 그친 후에 올라오소~!” 반가워해야할지, 당장에 달려 올라가겠노라고 해야 할지? 알쏭달쏭하다보니 커피를 벌써 두어 잔이나 마셨는데 이런 걱정 저런 걱정에 더욱 잠이 안 올 판국이다. 마나님은 어차피 거기서 떠난 다해도 이곳이 쏟아진 비에 떠내려 간 후에나 올라올 텐데 수재민 대피소에서 만나는 것이 빠르지 않겠냐고 빗대어 말하는 품이 도대체 어느 정도의 비가 왔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연락이 되는 이웃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잘 살펴봐 달라고 부탁을 하고서야 물가로 슬금슬금 내려갔는데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그래도 어떻하나? 짧고 긴, 여름밤을 지새워야 할 텐데....... 6미터자리 장대를 하나 뽑아 들었으니 그래도 받침대 하나는 설치해야겠는데 받침대를 박을 묵은 납덩이 하나도 안 보인다. 갈라진 틈새를 찾아 작은 받침대 하나를 설치했지만 워낙 짧은 장대다 보니 들고 있는 것이 더 편했다. 광도에 가면 10미터짜리 장대도 짧다며 12미터짜리 장대까지 사용하지만 만재도 에서는 힘 좋은 사람이라면 10미터나 9미터짜리를 사용하고 8미터짜리라도 충분한편이지만 해초와의 경계선만 읽을 줄 안다면 5미터짜리로도 가능하다고 보았기에 예전부터 팔 빠져 나갈, 무거운 장대는 제쳐놓고 가벼운 것을 찾다보니 자연히 길이도 짧아져 버렸다. 오래도록 사용하며 손에 익었던 7미터와 8미터짜리 장대를 억울하게도 너울 속에 수장 시켜 버린 후 부터는 더욱, 짧은 대를 사용하게 되었기에 크레인이라는 억센 향어 잡이 낚싯대를 들고 다니기도 했는데 그나마도 작년에는 수명이 다했는지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소양 댐에서 향어낚시가 한창이었을 때 옆자리에 있는 호리호리한 일행이 40마리가 넘는 큼지막한 향어들을 낚아놓고는 자리를 펴고 누워 이슬 잔을 기울이고 있기에 얄팍한 호승심이 올라와 밤을 새워 향어와 씨름을 하다 보니 손바닥이 그만 부르터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어지는 입질에 스펀지 쿠션이 있는 손잡이에 수건을 덧덮어서 까지 고통을 참아 가며 오십여 마리의 향어를 낚아내곤 기고만장한 순간, 저만치에 앉아있던 여조사가 드디어 팔십 마리를 넘겼다는 소리를 하여 무슨 소리를 들었나? 정신이 아득해졌다. 멍하니 서 있다가 구경을 가보니 생전 처음 보는 크기의 살림망에 커다란 향어를 그 숫자만큼 가득 채웠다는 소리였다. 함께 왔을 여조사의 남편도 이슬 잔을 기울이며 도저히 마나님의 솜씨를 따라잡지 못하겠다며 혀를 차고 있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날이 밝자, 힘들여 잡았을 고기를 살림망의 밑동을 풀어내어 물속으로 모두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원, 도대체……. 강호가 넓다하여 숨은 고수들이 있다지만 이렇게 고강한 백발마녀를 만날 줄을 어찌 알았을까? 가끔, 가지고간 쿨러가 넘쳐 담아올 수도 없는 고기는 놓아주기도 하였지만 몇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을지……. 이젠, 고기를 못 잡아도 할 수 없다싶어 9미터, 10미터짜리 돌돔 장대를 조각내어 길이를 대폭 줄인 짧은 장대를 만들어 갔고 다녔지만 밸런스가 좀 안 맞는지 앞으로 숙어지는 무게감이 있다 보니 약간 불편한 편이었지만 긴 장대에 비하면 야 여간 편한 것이 아니었다. 돌돔용 장대의 손잡이를 별도로 구입하여 줄일 수는 있었지만 길이가 한정이 된 것이, 가장 짧은 것이 8미터 이었다. 작년 가을에 집 근처에 있는 낚시점에 돌돔용 장대가 짧은 것이 있다 하여 들러 보니 이름도 멋들어진 ‘해금강’ 이라는 6미터짜리와 7미터짜리의 돌돔용 장대라는 것을 내놓았다. 현금이라면 특별히 가격도 저렴하게 맞추어 주겠다는데 원래 가격이 얼마짜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길이의 돌돔용 장대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어 두 대를 구입하여 날라리도 바꾸고, 케미 끼우게, 찌고리, 스토퍼, 찌매듭, 교환추 채비 등을 마음에 맞게 손질을 해가며 만재도의 여름을 기다려야했다. 돌돔이 전국적으로 남극의 크릴 맛을 알아버렸으니 굳이, 보관도 힘들고 가격도 비싼 지렁이나 성게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크릴 한줌에 청개비 한 움큼이면 돌돔이나 다른 고기를 구경할 수 있기에 대물만을 노리는 마음만 조금 비운다면 어려울 것이 없다. 운에도 없을 육자배기에 대한 욕심만 버린다면 쏠쏠한 크기의 돌돔은 마릿수로 낚을 수도 있는데 벌써 큰 돌돔들은 우리나라 최고의 돌돔 낚시인이 분명할 이시다이 박(돌돔 박 선생을 이름)이 다 잡아 내어 버렸을 테니 더 이상 차례도 오지 않을게다. 돌돔의 신으로까지 추앙받을 것이 분명한 박 선생 같은 돌돔 꾼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등 뒤의 갯바위가 가거도 방향으로 떨어질 태양을 막고 있어 그늘도 졌고 통화를 하느라고 조용한 시간이 한동안 있었으니 짐정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들어와 있을지도 모르는 고기가 있을 테니 첫 번째의 미끼를 끼워 6미터짜리 장대를 던져 보았는데 무게 중심 감이 잡히다 보니 여태껏 써왔던 개조했던 것들보다 가볍고 편한 것 같다. 물 방향에 따라 끄덕이던 낚싯대의 끝이 물 흐름 때문이 아닌 덧 숙임이 보였기에 꺼내 보니 크릴미끼가 없어져 버렸으니 어떤 고기가 얇은 입질을 한 것 같다. 다시 한 번 정성껏 미끼를 끼워 넣고는 집중, 또 집중....... 욱씬, 하는 순간에 챔질을 해보니 제대로 걸렸는지 당찬 당김 새의 싱갱이 끝에 뺀찌급을 넘긴 돌돔이 끌려 나왔는데 한번 입질을 파악했으니 가끔씩 설채여지기도 했지만 절반 이상의 성공으로 마릿수를 채워나가는 중에 갑자기 더욱 당겨가는 놈이 있었는데 손잡이 부분만 남기고 낚싯대의 전부가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거, 돌돔 대 맞아????? 그대로 어디서 토막이 빠져 버리거나 부러지는 건 아닐까?) 낚시점 주인이 재고처분을 하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닐까 ?불안한 순간을 넘기자 47센티 정도의 돌돔이 무사히 뜰채 안으로 들어왔다. 부근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군이, “허, 낚싯대가 손잡이까지 들어가기에 부러지거나, 낚싯대를 놔버리거나 할 줄 알았는데 짧은 것이 대단하네요?…….” 정군도 가장 짧은 돌돔 대라며 9미터 자리를 뽑아 들었는데 좌사리, 갈도에서 주위의 꾼들에게 눈길 꽤나 끌었을 치장도 별난 장대였는데 남쪽돌돔꾼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알록달록한 구슬도 몇 개씩 달려 있어 고기가 걸리지 않은 빈 채비를 거두어들이는 순간에도 ‘절그럭~!’ 거리며 소리를 내기에 옆자리의 일행들이 꼭, 한마디씩 한단다. “거, 정신 사납고 심란해서 낚시하겠는교????” 입질이 없어도……. 고기를 못 낚아도……. 알록달록하니 매달린 구슬만 쳐다보고 있어도 마음에 평화를 얻는다니 더 큰 평화를 얻도록 성당에도 한번 나가 보면 어떨까? ^^ 바람이 거센 편이라 들고 있기도 버거운 긴장대로는 순간적인 미세한 입질을 파악하여 때맞춘 챔질이 쉽지가 않을 텐데 아직, 남아도는 것이 힘뿐이라며 정군이 버티고 있었지만 열다섯 번째의 돌돔을 뜰채 안에 담자 녀석의 입 밖으로는 자조적인 욕이 뿜어져 나왔다……. “이런, 니미럴, 왜 나에게는 입질이 없는 거야? 성질나 죽겠네. 쑤벌~!!!” 바람에 휘둘리는 장대를 접어 넣고 찌낚싯대를 집어 들고 참돔 몇 마리를 낚아들었지만 잠시 후에는 돌돔 욕심이 나는지 또 다시 장대를 펴들었다……. 녀석의 낚싯대 끝을 보니 분명히 비슷한 입질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지만 챔질을 맞추지 못하니 미끼만 없어졌을 텐데, 크릴을 몇 마리 끼워보라니 던지는 순간에 떨어져 버리고 바람에 흔들려서 힘들다며 계속 지렁이만 끼워 넣었다. 성게나 홍무시를 사용했던 케블라 목줄이 달렸을 바람속의 긴대로는 향어입질 같은 예민한 입질을 파악하기도 어렵겠고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자리인데 저쪽에만 고기가 안돌아 다닐 리는 없었을 텐데 결국, 스무 마리가 넘는 돌돔잔치를 끝내고 물이 차올라와 자리를 옮겨야 했기에 짐들을 안전한 곳으로 더 높이 올려놓고 늦은 저녁 도시락을 펼쳐들었다. “왜 나한테만 돌돔 입질이 없을까요?” “돌돔은 어디에나 있단다……. 회를 먹을 때 보니 알이 아직 성숙하지도 않았던데 예민한 탓일 게야……. 나하고는 몇 미터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네 자리에서도 내게 닿는 입질들이 보였을 게고, 어느 순간 챔질에 들어가는지도 볼 수가 있었을 텐데 너무, 네 낚시에만 열중하여 남의 것은 눈여겨보지도 않더구나……. 아마도 구멍 찌로는 입질을 보기가 힘든 날일게다......” 오래전에 관탈도에서 나이든 탐라인과 함께 돌돔을 낚으려고 밤낚시를 하는데 탐라인 에게는 연실 돌돔이 올라왔으나 나에게는 잡히지 않는 날이었다. 탐라인 이 들어서 보여준 구멍 찌 밑에는 치아에 낀 음식찌꺼기를 파내는데 사용하는 나무 쑤시게 가 꼽혀 있었는데 입질이 예민한 날이다 보니 찌매듭만 슬쩍~! 떨어졌다 달라붙는 예민한 입질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했다. 날틀을 타고 가서, 호기롭게 많은 밑밥과 소고기보다 비싼 지렁이를 사들고 가는 외지인들과는 달리, 약간만 마음을 비워, 고기의 크기욕심만 버린다면 크릴만으로도 얼마든지 돌돔을 낚을 수 있다 하였고 미끼가 떨어지지 않도록 연속하여 눌러 끼우기를 하면 오래도록 붙어 있어 욕심 많은 돌돔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었다. 탐라를 통하여 관탈도를 가려니 현지의 낚시점을 들러야 했는데 밑밥 통으로 가득, 크릴을 담아가면 절반도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버리고 나오기가 여러 번이었다. 장사수완 좋은 탐라 낚시점의 주인아줌마는 밑밥을 많이 가져가야만 돌돔을 잡을 수 있다고 외지인들을 부추겼는데 당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 많은 밑밥을 들고 다니기도 힘들거니와 그대로 퍼붓기 전에는 주걱만으로는 절반도 사용할 수 없는 양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강매 받기가 약이 올랐다. (가만있어봐라……. 방법이 생각이 났다…….) 밑밥 통을 가장 적은 것으로 들고 가서는 ‘아줌마, 이리 가득~!!!’ 평소의 절반밖에 담기지 않았으니 이 아줌마, 약간 당황한 기색이다……. “꽉꽉, 눌러보라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밑밥 통이거든?” 크릴 8장만 갖고도 돌돔낚시에서는 밤을 새우고도 남는다. 남아........ 정군에게 낚싯대의 길이를 대폭 줄여보라 일러 주었지만 짧은 낚싯대가 없다고 했다. “손잡이 부분을 한두 마디 접어 넣고 테이프로 감던지? 두 토막을 뽑아내면 되겠지~!” “매어 놓은 줄이 아깝니? 그러면 고기를 잡지 말던가......” 한참을 망설이던 정군은 귀찮다며 장대를 접어 넣고 찌낚시를 하여 크지도 않은 참돔 몇 마리를 더 잡는 것이었다. 낚시프로를 하고도 남을 실력을 갖춘 정군이 틈만 나면 거제도로 달려가 마릿수의 벵에돔을 낚아내며 녹슬지 않는 솜씨를 다듬었다고는 하나, 낚시는 잘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잘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추자에서 낚시를 하던 어느 날, 저만치에 내린 추자의 천둥벌거숭이는 벌써 채비를 끝내고 무슨 고긴가를 끌어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제야 수중 찌나 제대로 달고나 있었는지 원……. 마릿수로는 어쩔 수가 없었지만 굼벵이 기법으로 버티다 보니 씨알 큰 놈 몇 마리를 낚을 수 있었는데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없이 쳐다보던 벌거숭이도 지금은 한껏 성숙해졌을 게다……. 도덕경 한 구절에서는 말하는 자 알지 못하고, 아는 자 말하지 않는다했는데 저렇게 관심이 없는 자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줄 수가 있을까? 날이 밝으면 배가 바로 달려오는 것이 형제간에 그물작업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물작업을 끝내고 오면 너무 철수 시간이 늦어 갯바위에서 뜨거울까봐 먼저 철수를 시켜 주려나 본데 줄줄이 달려 있는 꿰미에 달린 돌돔을 보고 반가운 기색을 하며 물칸을 열어주었다. 휴가였지만 나대신, 노모 곁을 지키는 것으로 대신 하겠다는 딸내미에게 돌돔 회라도 맛을 보여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몇 마리를 살려가기로 했다. 차려놓은 밥상을 물리고 창밖으로 바다를 내려다본다. 떠나오기 전의 뭍에서는 수많은 사람 속에 묻혀있으면서도 오히려 고독을 느끼고 메아리 없는 외침이라도 한번 제대로 외쳐보려고 바다를 찾아왔다. 누구나 꿈이 있겠지만 그 꿈이란 것이 실현이 불가능한 황당한 것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이렇게나마 소박한 꿈이라면 실현의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이 섬의 대부분의 집들이 트여진 앞을 보고 지어져 있기에 창을 열고 내다보거나 마당에서 조금만 발돋움을 하면 바로 바다가 보인다. 창을 열면 바람이 달려들어 방안을 휘젓고 다니니 굳이 선풍기도 필요가 없다. 복잡하고 후지근한 도시를 벗어나 바다 깊숙이 있는 이런 먼 섬을 찾아와 누리는 이런 색다른 호사라니…….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지 않은가……. 예전에는 수없이 섬을 찾아서도 이런 느낌을 느끼질 못했는데 점점 어렵게 시간을 낼 수 있는 지금에서야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감정도 우리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알게 모르게 변하여 가겠지만 바다와 섬은 늘, 같은 모습으로 서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바다에 와서야 바다가 나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 하늘을 향해 열린 그 거대한 눈에 내 눈을 맞췄다 눈을 보면 그 속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바다는 읽을 수 없는 푸른 책이었다 쉼없이 일렁이는 바다의 가슴에 엎드려 숨을 맞췄다 바다를 떠나고 나서야 눈이 바다를 향해 열린 창임을 알았다.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낚시의 덫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사진이 담긴 조행기 > 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년 만재도의 여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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