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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쏘가리와 산나물

쏘가리와 산나물 9. (파서탕의 추억)

by 찌매듭 2009. 6. 1.

 

5월 20일부터 쏘가리 금어기가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5월10일부터였는데 몇 해 전부터는 20일로 바뀌었는데
기온이 따뜻한 남쪽에서라면 몰라도 북쪽에서는 너무 이른 감이 있다.
수온도 올라가지 않은 강원도 산속날씨에서라면 아직도 
얼음이 어는 날이 있으니 5월10일전이라면 어지간히 좋은날이 
걸려들지 않고서는 쏘가리 낚시를 세 번쯤 다녀오기도 어렵기만하다.
5월8일은 어버이날.
노모에게 맛난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재빨리 험한 산 고개를 
몇 개씩 넘어 양구를 거쳐 파로호의 상류 쪽을 돌아내려와 
물가에 도착하니 아직, 붕어 낚시 철이 이르지만 좌대의 주인은
땅위의 풀밭에 올라앉아 있는 좌대의 주변 풀들을 수위가 불어 
올라오는 시즌을 대비해 제초기를 이용하여 베어내고 있었다.
배편을 이용해 상류 쪽으로 올라가 밤에는 쏘가리가 접근할 지형을 골라 
먼저 붕어 잡이를 위한 낚싯대부터 펼쳐놓고 텐트도 설치했지만 
오늘은 산나물담당인 권 씨도 빠졌으니 장에 들러 고사리라도 
한 봉지 사가는 걸로 대신하기로 했는데 해지기전부터 손바닥만 한 붕어가 
심심치 않게 물려주어 붕어낚시에 몰두하다 보니 어두워진 한밤중에도 
붕어입질이 끊기지를 안았다.
밤이 깊어지자 붉은 황토밭의 얕은 수심대의, 완만한 굴곡의 골짜기 안에서 
무슨 물고기인가가 ‘후다닥~!’ 튀는 소리를 내는 것이 역시 밤에는 
피라미 같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하여 쏘가리나 메기 같은 
육식성 어종들이 접근을 하는구나, 불도 켜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가 
‘라이징’을 확인하며 조용히, 가장 가벼운 무게의 웜을 사용하여 
고만고만한 크기의 쏘가리와 메기를 몇 마리 낚았지만 40센티가 넘는 
큼지막한 쏘가리는 구경도 못하였다. 
단둘이 왔으니 입맛도 솟지를 않는지 소주 한 병만을 비우고
한밤이 되면서 기온이 급강하하여 두툼한 파커를 입고 침낭 속으로 
파고들어 항상 준비하여 다니는 ‘핫 팩’ 몇 개를 침낭 속의 발 부분에
두었기에 추운 줄도 모르고 잠이 들었나 보다.

강원도 산속의 날이 밝아오는 것을 느꼈지만 코끝이 시릴 정도로 
찬 기운을 느끼다 보니 움직일 생각도 않다가는 날이 완전히 밝아서야 
일행이 먼저 텐트 밖으로 나가더니 놀란 소리가 냈다.
“빨리 나와봐~! 얼음이 얼었어!?”
이곳에서는 5, 6월이라도 살얼음이 얼고 서리가 내리는 것이 예사다보니
별나게 호들갑을 떤다고 잠시 더 뒹굴 거리다가 나가보니
물의 수면이 장판같이 윤기가 나는 것이  바람이 없어 잔잔한가. 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것이 아니다.
호수의 물이 얼어 한마디 나와 있던 찌가 그대로 얼어 붙어있었다.
당겨보니 힘을 약간만 주어도 줄이 끊기어 나갈 판국이니 이를 어쩐다니?
뒤쪽에서 돌들을 주워서 얼어붙은 찌 주변에 던지기를 수 십 번 만에 
찌와 낚시 줄을 무사히 회수할 수 있었고 물속 바닥이 황토밭 이였는지 
물색이 온통 붉게 변하였다.
이래저래 아무런 낚시도 글렀다 싶었지만 빈 바늘을 담가둘 수도 없으니
지렁이를 여러 마리라도 꾀어놓으면 그 움직임에 순진한 쏘가리라도 
물려주지 않을까 는 허망한 기대감을 갖고 통 안에 남은 지렁이를 털어 
낚싯대마다 끼워 던져두었다.
‘어럽쇼?’ 
찌가 들어가야 하는데 솟구쳐 올라왔고 챔질을 해보면 
손바닥만 한 누런빛의 붕어들이었는데 탁했던 물색이 가라앉고 
햇살이 완전히 퍼지자 그나마도 입질이 끊기고 말았다.
어제 저녁에 고기가 튀었던 골짜기 안에 가보니 
얕은 흙바닥이 훤히 보이도록 맑기만 하니 허기가 몹시 졌던  
몇 마리가 들어왔었던가 보다.

아직 약속했던 시간이 남았는데 배한척이 다가오더니
부근에 서너 명의 사람을 내려놓곤 약속한 시간에 오겠다며 가버렸는데
저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던질 릴대를 이용하여 잉어를 잡으러 온 사람들 같은데 
아직 이른 철에 온 걸 보면 완전 초보자들이거나 놀이삼아 온 
행락객일수밖에 없겠는데 이런 곳까지 초보자나 행락객이 올 리가 없으니 
기인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경을 가보았다.
커다란 천가방안에서 거무죽죽한 고무보트를 꺼내어 열심히 
바람을 넣고 있었는데 저 것으로 무엇을 하려는 걸까?
잠시 옆에서 지켜보니 작은 모터라도 달아야할 크기의 보트였지만
노를 꺼내어 부착을 했고 낚싯대와 릴 같은 것은 보이질 않고  
낚시점에서 파는 싸구려 방울낚시용 실패가 수십 개 보였다.
예당저수지 같은 곳에서라면 큼지막하게 자른 깻묵덩어리를 매달아
노 젓는 배를 이용하여 백 미터, 이 백 미터 떨어져 있는 물골을 찾아 
그곳에 던져놓고 돌아와 기다리다 보면 미터 급 잉어들이 물고 늘어졌는데
이 사람들도 그런 방식으로 잉어낚시를 하려나보다.......
무슨 해괴한 무공비법이라도 한 토막 건져낸다면 손해 볼 것이 없으니
우선 손에 잡힌 담배 한 대를 권해가며 몇 마디 은혜로운 
축복의 말도 건네다가 궁금함에 대한 말을 꺼내니 이상한 말을 한다.
지난번에 이곳으로 잉어낚시를 왔다가 발밑을 보니 새우가 많이 있기에
매운탕이라도 끊여먹으려고 잔뜩 잡아 두었는데 물 건너편을 보니 
이어진 돌밭이 보이기에 배를 저어 건너가 새우를 끼운 채비를 던져 놓고
다시 되돌아와 방울 틀에 걸쳐 두었는데 잠시 후에 떨렁거리며 방울이 울더란다.
메기나 장어 같은 것이라도 걸렸는가보다고 당겨보니 큼지막한 
쏘가리가 달려 나왔고 잉어낚시는 제쳐놓고 노를 저어 오가기를 
반복하여 한가마니정도의 쏘가리를 낚았기에
오늘은 아예 작정을 하고 쏘가리 낚시를 왔다는 것이다.
금어기가 이틀 남았으니 시간은 충분하겠지만 문제는 새우가 없다보니
미꾸라지도 잘 물어준다는 말을 듣고는  한양동이의 분량을 가져왔다는 
이야기고 보니 바다로 우럭낚시를 온 것도 아닌데 한 양동이씩이나.......
건너편의 돌밭이 이어져 있는 곳이야 가뭄에도 물이 있어 
더 몰려드는 지형이니 쏘가리가 서식하기에 더 없는 좋은 조건이지만
배가 없으면 접근을 할 수가 없고 무너져 내리는 험한 지형이니 
텐트를 쳐놓고 밤을 지새울 곳도 아니기에 침만 흘리고 있는 터에
어쩌다 저 초보들이 그런 대박을 만났었을까?
배도 있으니 차라리 어찌 하라고 다른 방법을 가르쳐 줄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물속에 있는 쏘가리를 몽땅 잡아가고야 말게다.
허허로운 웃음을 남기고 그곳을 떠나왔지만 궁금하기 며칠 만에 
전화를 해보니 몇 마리 못 낚아간 것 같다는 뱃사공의 말을 듣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니 낚시꾼의 이기심은 아무도 못 말린다니까? ^^;;;;;

파로호의 상류에는 ‘파서탕’이라는 곳이 있는데 지금은 
길이 많이 나아졌겠지만 예전에는 갤로퍼를 부셔먹을 
각오를 갖지 않고는 갈수도 없는 곳이었다.
가는 도중에도 그만 돌아갈까 몇 번씩 후회를 하던 곳이었지만
일단 도착하기만하면 사람의 손길이 전혀 타지 않은 절경에 감탄을 하고 
깊고 맑은 물속에는 있는 온갖 고기를 낚았는데 쏘가리며, 잉어며, 
메기와 몸체색이 아름다운 불거지는 꽁치만큼씩 했다.  
큰비라도 왔다면  파로호에서 온갖 고기들이 올라와 
빈자리를 계속 채워 주었기에 빈 수확이 없는 보물단지였지만 
큰비가 오면 올수록 바닥이 패여 나가 큰 바위가 드러나서
곡괭이와 삽까지 싣고 가지 않으면 가볼 엄두도 못 내던 곳이었지만 
항상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제일로 손꼽히는 고기창고였다.
매번, 차가 망가지다 보니 갤로퍼 같은 종류의 차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 황홀한 유혹으로 꼬드겨서 한두 번씩은 다녀왔지만 
워낙 험한 길이다보니 차주인 들이 슬슬 꼬리를 내리면서 
나서지를 않게 되어 두어 해를 건너뛰다간 화전민이 배 한척을 
장만했다는 정보를 듣고는 그 배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옥수숫대 같은 
허우대만 커다란 무게 나가지 않는 농사물이나 가득 실으려고 만든 배는 
체구만 컸지 엔진의 힘이 약하다 보니 물의 거리로도 얼마 되지 않는 
곳이었지만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다음날에는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부탁한 점심 식사가 하도 부실하여 두 숟갈을 넘기기도
힘들다보니 라면이나 빵으로 대신하다가 가는 길에 식당을 찾아 
끼니를 때우기로 했었지만 허기진 일행들의 뱃가죽이 달라붙다 보니 
부실한 식사도 꿀맛이었다. 
시꺼먼 고추장에 들기름 한 방울을 떨구어 썩, 썩 비비지도 않고 
대충들 비벼서는 입안이 터지도록 밀어 넣는 모습을 보고 
도회지에서는 밥도 못 먹고 다니나보다고 화전민 할머니는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했을까?

파서탕을 간다면 식사와 옷 준비도 철저히 하고 시간도 넉넉히 갖고
여러 해를 드나들었지만 어느 해인가 큰 비가 내려 흙이 밀리며
지뢰가 마을근처 물가에 까지 흘러들어 화전민이 기르던 소가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났다는 소리를 들었고 지뢰가 회수가 될 때까지 
출입을 금한다는 군부대의 발표도 있었는데 작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발목만 부러트린다는 소형지뢰의 수거가 어렵다보니 쏘가리가 아무리 
그립다 해도 파서탕을 찾아가기도 힘들게 되었다.
평화의 댐이 생기며 접근할 수 있는 길의 입구가 
한결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인적이 드문 그곳까지 
길을 터낼 때가 그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