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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외연도+무창포

하늘이시여...3 (천사의 방문)

by 찌매듭 2008. 8. 15.

 

선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독선으로 예약을 한 점잖은 손님에게 양해를 구했으니 함께 승선을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연거푸 두 번의 빈작이 있다 보니 서 씨 아저씨에게까지 연락을 한다는 것이 좀, 그렇다....... 또 아침부터 가랑비는 왜 차창을 흐리게 하는지........ 물색이 흐린 외점도를 지나 화사도에 도착을 했지만 분명, 외연도에서 부터 이어졌을 거무튀튀한 물색이 암울하기만하다…….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시원한 입질한번이 없었고 독선을 청했다는 노조사만이 두어 번의 걸음이 있었는데 대의 휨새로 보아서는 참돔이 분명했지만 설걸렸는지 그만, 떨구고야 말았다. 조수아저씨가 발밑에 내린 우럭채비에도 노래미 한 마리 보이질 않으니 오늘은 또 어찌된 날일까? 서로가 말없이 도시락을 비웠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선장이 '외연도로 가면 농어 구경이라도 하지 않겠냐'니 자리이동을 결심한 모양이다……. 멀리 흘러간 채비에 견제를 한 순간, ‘후리릭~~~~~~!!!!’ 줄이 급격히 풀려나갔고 대를 세우고 어느 정도 감아들였나 했더니 갑작이 발밑으로 달려들더니 여밭으로 강하게 끌고 가는 것이 부시리 같았는데 얼마 안 되어 바로 줄이 끊기고 말았고 너덜너덜하니 쓸린 목줄만 올라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가 부러져라 조이고, 세우고, 당겨나 볼걸......) 매번 당하고 나면 또 해보는 후회를 남기고 횡견도를 돌아가며 몇 번 루어를 던져 보았지만 이 시커먼 물색에 나돌아 다닐 농어가 어디 있겠누? 설풍 여에서 몇 번 더 루어를 날려 보다간 채비를 거둬들였고 흰 여의 물골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저 너머의 홈통이 있는 야영하기 편한 자리에서는 수십 마리의 떼농어가 감격을 주었었고 홍합을 삶아 먹으며 뒹굴뒹굴 밤 시간을 보내기도 좋았건만 이제는 건너다만 보게 되다니……. 해마(海馬)자리 아래에도 두어 명이 편히 지낼 곳이 있지만 넘나다니기에는 너무나 힘든 곳이다. 빠른 물살에 닻을 내리고 갯바위에 앞줄을 걸었지만 고개를 갸웃하던 선장이 불안했던지 뱃머리에 커다란 칼을 갖다 놓았다. 행여나 물살을 견디지 못하고 뒷줄이 끊어져 배가 갯바위로 돌진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하여서다……. 앞줄이 끊어진다면 대처할 수가 있지만 뒷줄이 끊어진다면 배가 그대로 갯바위에 모로 부딪는 사고가 날정도로 물도 거세고 줄 굵기도 안심이 안 되다 보니 특단의 조치를 한 셈이다. -1호 잠수 찌에 봉돌을 있는 데로 주렁주렁 달아 보았지만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알 수도 없기에 8호찌에 돌돔장대에 쓰던 10호 봉돌도 물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어이구~~~!! 30호 찌를 만들어야 하는데......’ 조수아저씨가 낚시 입문의 턱을 훨씬 넘어섰는지 대물채비, 대물장비 타령을 한다....... 궁리 끝에 막대찌도 떼어놓고 10호 봉돌만 달아 짧은 목줄로 더듬거리다보니 용케도 바닥권에 닿았는지 제법 굵은 노래미가 먼저 물려 나왔고 씨알 굵은 우럭도 물려 나오기 시작했으니 정도가 없다는 낚시의 법칙은 존재하는가보다. 무창포 제일의 어부(漁夫)라는 ‘철호’는 농어바늘로 우럭을 잡고, 우럭바늘로 농어를 잡는데 줄 굵기나 바늘의 크기를 아예 무시해 버린다. 고기가 있는 곳에 미끼를 끼운 바늘을 내리면 되고 고기가 있다면 바늘이 크든 작든, 물리게 되어있다는데 무창포 권에서 우럭, 농어, 광어, 참돔, 감성돔을 잘도 잡아낸다. 사실, 어부(漁夫) ‘철호’ 덕에 몇몇 포인트를 찾아내어 다보도에서 떼농어로 재미도 보았고 용섬에서 참돔과 농어 포인트도 알아내게 되었는데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스라소니’ 의 게슴츠레했다는 눈매가 저러하지 않았을까? 어부(漁夫) ‘철호’는 말수가 적어 여간해서는 말을 붙여보기가 힘들었는데 처음 보았을 때는 과묵한 성격 탓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무창포에서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인물이었나 보다. 여객선을 이용하여 외연도 나들이를 하고 있었는데 웅천에서 낚시점을 차린 J씨가 농어낚시손님을 모집하여 출조를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1998년 가을, 어느 낚시잡지에 외연도권 농어낚시의 대가라는 J씨의 기사가 실렸기에 얼씨구나~! 하고 연락을 넣어보았는데 그 해가 다가도록 연락이 없어 그냥, 객선이나 타고 다닐 팔자려니 잊고만 있었다. 1999년 6월의 어느날, 아침에 출근시간대에 '오늘 외연도를 갈테니 3시간만에 도착하라'는 연락이왔다. 얼마나 고명하신 분이기에 일년이 지나서야 연락을 주셨을까? 감개무량한 마음에 바로 가겠다며 숨소리를 높였고 간 크게도 출근 1시간만에 칼퇴근을 선언하고 초행길인 차주인의 목을 끄집어 당겨 핸들을 뺏곤 레드존을 넘나드는 속력으로 예당저수지를 지나 웅천이란 곳에 도착하고 보니 몇 명의 손님들이 모여 있었고 거창한 농어 잡이 경력을 들먹이며 거드럭 거리는 거무튀튀한 피부의 낚시점주가 큰소리를 치는 낚시점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오후 세시가 넘어서야 배 한척이 섭외가 되었다는 연락이 오고서야 무창포항으로 달려가니 작업 장비가 덕지덕지 달린 허름한 어선이었고 전 재산이라는 삼천만원짜리 배의 주인이 바로 ‘철호’라는 어부였다. 어느 정도 속도가 나올지 의문투성이인 낡은 어선의 꽁무니에 낚시점주의 색 바랜 인프라 콤비라는 벌그죽죽한 고무보트까지 달고 간다니 해지기전에나 도착할지도 걱정이었다. 열댓 명중에는 무창포에서 살롱을 한다며 제법, 목에 힘을 주는 M사장의 일행이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었는데 항을 빠져 나가자마자 이슬파티가 시작이 되었는데 종이컵으로 원~샷~!을 하는 품새가 저들이 과연 갯바위에서 오늘밤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눈이 마주친 생면부지의 거무튀튀한 피부의 낚시점주가 곁으로 다가와서 종이컵을 내밀었지만 안주 없는 술을 어찌 먹겠느냐고 거절을 하니 배의 주인이 물칸에 안줏거리가 한 마리 있다기에 뚜껑을 열어보니 광어보다는 미끼로 사용하다 남았다는 산새우가 눈에 번쩍 뜨였다. 특급미끼라 생각되어 수건에 바닷물을 적시어 몇 마리 두루루~~ 말아놓고 광어 살도 몇 점 올라왔으니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두어 컵을 들이키다 게슴츠레한 눈매의 배주인과 눈길이 마주치자 움찔했던 생각이 난다. (뭐야??? 저 시키.....??? 가물치 같은 눈빛은 또 뭐고........) 어부(漁夫) 철호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고 그 후로 무창포 항에서 마주치면 눈인사나 오가는 정도였는데 어느날 내만에서 감성돔 원투낚시를 하고 있는 그와 마주쳤다. J씨의 고무보트를 타고 여치기를 끝내고 지나가다가 그를 발견하자 아부성의 반가움이 분명한 제스춰를 드러내며 J가 가까이 다가가게 되자 훌쩍, 뛰어올라가 뱃전에 걸쳐놓은 놓은 어부의 채비를 보게 되었는데 굵은 낚싯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바늘이 너무, 너무 크다....... “아니....??? 지금 감성돔 낚시를 한다면서 이렇게 큰 바늘을???” 감성돔 바늘로 치자면 10호를 훌쩍 넘어 15호는 될 터인데 이렇게 큰 바늘로 도대체 무얼 잡으려는 걸까? “킁~! 뭘 모르시는가본데....... 사람이 땅콩을 먹을 때는 입을 조그맣게 벌리지만 김밥을 먹을 때는 입을 크게 벌리쥬?~~~ 김밥의 김이 잘 안 잘려서 두 개, 세 개가 붙어 있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 김밥을 강제로 떼려고 하면 그 김밥, 옆구리 터져 다 흘려유....... 그냥 입을 더 크게 벌려서 먹어버리는거유......... 고기도 마찬가지유....... 큰 고기나 작은 고기나 미끼 작으면 작게 벌리고……. 미끼 크면 아가리 크게 벌리면 해결되유~~~~~~~ 한번 볼려유????~~~~~“ 미끼로 쓰기는 아까울 정도의 펄펄뛰는 대하(大蝦) 새우를 물칸에서 꺼내어 뚝~! 머리를 한입 베어버리곤 몸통만 끼워 던져 넣는데 아마도 그렇게나 큰 깐 새우는 앞으로도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 배의 물칸에는 30cm정도의 감성돔 두 마리와 우럭이 몇 마리 담겨있었는데 건져 먹어도 되겠다 싶어 솜씨 있게 회나 썰어보라고 뜰채로 떠내어 J씨 앞으로 내밀었는데 어째 뜨악한 표정이 이상하다……. 이상한 눈길이 뒤통수에 닿는 것 같아 뒤 돌아보았고 게슴츠레한 눈빛의 어부와 눈길이 맞닿았지만 바로 눈길을 돌려버리기에 별다른 생각도 못했었는데……. “뭐해??? 빨리 회 안 썰고????” 잠시 우물거리던 J가 회를 떠내자마자 뒤로 물러나 앉았고 주위의 이들도 젓가락을 들 생각을 않는다……. “바닷가에서 매일 같이 보는 것이 우럭이라 생각들이 없는 겨? 맛만 좋구먼.~~ 자아~~ 이슬도 한잔~!!!! “ 비린내가 곁들여진 트림을 하며 많이 잡으라는 말을 놓고 어부(漁夫) 철호의 배와 멀어져 갔는데 J 가 한숨을 쉰다....... “난 조마조마해서 혼났슈......... 그 철호가 보통 깡다구 거시기가 아닌데 그 배에 올라타고……. 물칸 뒤져 고기 꺼내먹고…….간도 크시지........“ “아니? 왜? 먼일이 있는 겨??????” “................................” (무창포 양반들……. 어부(漁夫) 철호한테 무언가가 있나보다........ ) 건축친목회의 나들이로 우럭낚시를 가게 되었다. 당연히, 약간이라도 바다를 안답시고 껍썩거렸던 인정을 받다보니 날짜를 잡고 장소선정도 위임을 받았으니 무창포로 가보자꾸나……. 어부(漁夫) 철호의 배는 낚시객을 태울 수는 있지만 색시와 둘이서 고기를 잡아 파는 것이 더 수익이 크다보니 좀처럼 손님을 받는 일이 없다고 한다. J씨를 윽박질러 철호의 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고 그 엄포가 먹혔는지 배를 태워 주겠단다. 모월모일, 약속된 날 무창포 항에 도착하니 어부(漁夫) ‘철호’는 검은 양복에 목줄까지 건 이상한 차림새로 집안에 초상이 생겼다며 곤란한 표정이었고 물때와 날씨가 좋은날이다 보니 손님들이 몰려들어 대체할 만한 배도 없는 상황이니 어찌해야할까? 잠시 망설이던 어부(漁夫) ‘철호’가 결심이 섰는지 고개를 들었다. “12시까지유~~~~~~!!! 어찌됐던 고기만 잡으면 돼쥬?” 검은 양복 윗도리를 벗어던지곤 남에게는 허름하달지 몰라도 그에게는 전 재산이 분명한 배는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는 엔진소리를 울리며 무창포 항을 빠져나갔고 비장의 포인트라며 도착 곳에서 어부(漁夫) ‘철호’는 먼저 벽돌 몇 장을 묶은 밧줄을 던져 넣었고 부표를 매달아 물위에 띄워 놓고는 그 주위를 맴돌며 올리시고~~~~~ 내리시고~~~를 외치다간 밧줄을 거둬들이더니만 또 어디 론가로 달려가선 예의 그 짓을 반복했다....... 배를 몰면서 간간이 그가 채비를 내리면 네 마리씩 우럭이 물려 올라와 물칸을 채웠고 멀미 환자 발생으로 12시도 안되어 뱃머리를 돌렸는데 그 신기의 비법이 무어냐고 어찌 아니 물어볼 수가 있을까? 무창포 권은 어초나 암초가 작아 탐지기로 찾자면 시간이 제법 걸리기에 처음에는 귀찮아도 먼저 암초 대를 찾으면 벽돌로 만든 부표를 던져 놓고 눈으로 보면서 그 부근을 맴돌며 채비를 내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니 그 언젠가 탐지기로 포인트를 찾는다며 시간만 보냈던 선장을 생각하니 뒤통수를 맞은 듯한 멍함은 또 다른 깨우침의 울림이었다. 수고했다며 디스 담배를 몇 갑 건네니 “담배야 껍데기만 다를 뿐 연기는 똑같지 않나요? 나는 솔 담배 외에는 피우질 않으니 거두시지요........“ 다른 어부(漁夫)들은 빈손으로 돌아와도 어부(漁夫) 철호 부부(夫婦)의 배만은 항상 물칸을 채운다니 빨간 ‘솔’ 담배만 고집하는 그의 뚝심이 이상하지가 않다. 아무리 보아도 그를 멀리하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데 왜 어부(漁夫) ‘철호’를 J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지 알 수가 없다. 몇 일전 새벽에 만났던 어부(漁夫) ‘철호’도 몇 년 못 본 사이에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만은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로 알지만 조금씩 멀어져가는걸 모르나보다. 아니, 멀어져 가는걸.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멀어져 가는 꿈같은 젊음을 어디를 가든지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인생이 한바탕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치열해지기보다는 넉넉해지고 비판의 칼날을 세우기보다는 이해의 품이 된다. 나에게 좋고 나쁨과는 관계없이 와전되고 각색되면서 증폭되고 있는 냉소와 미움도 밀어낼 수 있다면 지나가는 인생과 깊어가는 인생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굳이 나이로 논한다면 나이는 여러 가지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나이 마흔을 흔히, 불혹(不惑)이라하는데 이 말의 의미가 마흔에는 유혹을 당하지 않는다. 는 것이 아니라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하는데 마흔이 넘어서도 유혹에 넘어가니 부끄러워야하는 나이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이게 되니 나이 마흔이 되면서 부터는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생겼나보다. 타고난 관상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사람을 온화하게 만들고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본인의 삶이 비추어 놓은 흔적일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거울에 비추어지는 화려함보다는 내 모습에 담긴 깊이를 생각해야하는 것이다. 지천명이 되는 오십 줄이 되다보면 일반적으로는 자녀가 직장에 다니겠고 이른 사람은 결혼도 시켰겠으니 아이들을 키우면서 삶에 시달리며 느꼈을 그 삶의 무게가 무겁게 어깨에 그대로 내려앉아 있을 것이다. 떡국이 농간이라는 옛말대로 하자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 더 크게 자라기 위함이라지만 어느 순간부터 육체적으로는 자라지 않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매년 나이를 먹는다. 그러면서 매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하는데 나이를 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말도 정신적으로 자라지 못한 사람을 꾸짖는 말이 아닐까 싶다. 사람 나이가 25살이 되면 육체가 성장을 멈춘다니 노화는 그때부터 시작된다는 말인 가보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두 번 자리를 비우다 보니 세 번까지 자리를 비우게 되었지만 그것도 불효라 여겼는지 하늘은 좋은 결과를 주시지 않았다. 에그……. 언제는 좋은 결과가 있었어???? 태평양 건너에 있는 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이~~~~! 동생~~~~~!!! 수고가 많네.” “이번에 달포정도의 시간으로 가게 되었으니 기다리소. 내가 엄마 뒷바라지를 할 터이니 그때 한 달 정도 진하게 낚시한번 가소~! “ “말만이라도 고맙소.~~!! ^^;;” (천사여~~~~ 어서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