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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외연도+무창포

하늘이시여 2. (黎 明)

by 찌매듭 2008. 8. 5.

 

노모(老母)의 병원생활도 넉 달이 지나갔다. 강도(强度) 높은 재활치료가 효과를 보는지 휠체어를 제쳐놓고 보조기구를 이용하여 한두 걸음씩 발걸음을 떼어놓게 되자 한걱정, 놓게 되었고 병원에 들르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다보니 업도 업이고 집안에 또 다른 신경성 환자도 생겼으니 가중되는 이 스트레스를 어디에다 방출해야 할까? 낮술이라도 한 잔, 거~하게 마셔볼까? 가까운 산에 올라 허접한 사자후(獅子吼)라도 터트려볼까? 그래도 명색이 꾼이다 보니 끝없는 수평선을 보며 파도 속에 묻혀 버릴 작은 고함이라도 질러 보는 것이 가장 낫지 않겠어? 며칠씩 걸리는 원도 권이야 감히, 생각도 못하겠다만 가까운 곳의 바닷바람이라도 쐬어야만 수그러질 이 불치(不治)에 가까운 고질병을 어이할까나....... 바다를 잊고 있어야 할 내 사정을 하늘이 알아줄 리 없지만 오래도록 바다에는 좋은 날이 없었다는 말에 위안을 느끼다니 놀부 심보가 따로 없다......... ^^;;;;;;;;;;;;; 평소 같으면 생활 속의 날씨조차도 해상의 일기예보부터 찾아 1주일 후의 바다날씨까지 모니터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며 물때표와 둘러보곤 했는데 인터넷 접속도 언제 했는지 모르겠다. 8월 초순경에 익산에 볼일이 생겼기에 다녀오는 길의 오후에 무창포의 낚시점에 들러 보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점포의 마당에 배가 올라와 있었고 선장은 꺼칠한 얼굴에 목소리까지 잠긴 지친 모습이었다. 한참 여름어종으로 바쁠 시기에 어찌된 일일까? 좋은 날씨가 이어지지 않아 애만 태우다가 어쩌다 좋은 날씨를 만나 바다에 나가보면 새로 바꾸어 얹은 엔진이 계속 말썽을 부렸기에 과다한 지출과 쥐꼬리만 한 수입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단다. 배수리가 끝나고 자리를 잡게 되면 연락을 하겠다는 선장의 풀죽은 목소리를 들으며 여기까지 왔으니 바다구경이라도 한답시고 무창포 항을 둘러봤지만 늦은 시간대여서 그런지 횟집들에는 변변한 손님도 없었는데 야채라도 다듬고 있었는지 도마에 손을 얹은 늙수그레한 할머니가 얼굴을 알아보곤 구부러진 허리를 일으키며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올렸는데 손에든 녹슨 식칼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낚시 왔어? 고기는 잡았고?” “낚시는 무슨 낚시? 할미보고 싶어 왔지……. ^^” “지랄한다............” 9월이 되어서야 배 수리를 끝냈고 조황도 제법이라는 연락이 왔기에 2007년의 추석(秋夕)전에야 또 한 번 바다구경을 가게 되었다. 이른 아침의 가랑비가 걸리기는 했지만 서 씨 아저씨는 걱정도 안 되나 보다........ 큰 기대를 품지도 않았기에 배안에서 얼핏 잠이 들었을까? 배의 엔진소리가 줄어들기에 화사도쯤 왔겠구나했더니만 외연도의 충무도(석도)에 도착했다. “화사도가 아니네???!!!” “물색이 괜찮기에 그냥 외연도까지 나와 봤어요……. 이 섬, 좋아하시잖아요?!” “이제는 내려 보지도 못할 섬인걸……." 李 室長이 무서워하던 고양이 크기의 하얀 쥐와 노란 쥐는 지금도 잘 있을까? 초기에 객선을 이용하여 외연도를 찾았던 어느 날, 어민들이 큼지막한 새우미끼로 손 시울질을 하여 농어를 곧잘 잡아낸다는 이장님의 말을 듣곤 농어 포인트로 점찍고 내려 보았다. 첫 번째의 루어던짐부터 농어가 물고 늘어졌는데 물이 빠지기 전이었고 처음이다 보니 물속으로 길게 이어진 여 줄기를 몰랐기에 낚싯줄이 끊어져 내달리는 농어 입에 비싼 루어를 매달아 보냈고 연 거푸 두어 개를 헌납하고서야 지형파악을 하게되어 여러 마리의 농어를 끄집어낼 수가 있게 되었다. 매번 밤낚시를 겸하다보니 계절에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물방향도 알게 되었고 한밤중에는 유성이 흐르듯 농어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장관도 몇 번 목격했고 참돔, 농어, 노래미, 우럭과 굵직한 학공치는 매번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6년 전쯤이었을게다. 그날도 석도에서 하룻밤의 야영낚시를 끝내고 아침의 농어타임도 지났기에 주섬주섬 늘어놓은 짐을 꾸리고 있었는데 평소에 외연도권 참돔의 실체가 궁금했던 낚시 점주와 인천에서 농어 루어 출조를 전문으로 하던 총무가 대절 배를 타고 지나가다가 얼굴을 알아보곤 다가왔다. 별 수확이 없었다는 말과 음료수를 하나 건네겠다며 접안을 하더니 슬그머니 쿨러 하나를 열어 간밤에 낚은 우럭, 농어……. 아침에 갓 낚아 올린 큼지막한 참돔도 보게 되었다……. “크네……. ” “봐……. 틀림없이 있다니까........” 만만해 보이는 엄 君에게 다가가 어떻게 잡았는지……. 몇 시쯤에 잡았는지 이것저것 꼼꼼히도 물어본다........ 이때부터 서해 중부권에서 생소했었던 참돔낚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남당, 영목, 무창포, 대천, 홍원……. 심지어는 군산에서까지 달려온 배가 하나, 둘……. 늘어나더니 외연도권의 갯바위는 참돔을 낚으려는 꾼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외연열도의 몇 안 되는 부속 섬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물때에 따라 점찍어둔 포인트를 골라 내리기는 고사하고 적당한 갯바위에 내려 보기도 힘들게 됐었고 그 많던 홍합도 점점 줄어만 갔다……. 이제는 다소, 비용이 더 들어가는 선상낚시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은 충무도 부근에 닻줄을 걸고 배낚시를 하다 보니 무창포 항에서 나온 J씨가 떨어진 여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함께한 꾼이 연실 참돔을 끌어내고 있었다. 몇 마리나 구경을 했는가 물어보니 벌써 스무 마리를 넘게 잡았다는데 한 무공(武功)하는 모양이다……. 추자도에서 왔다는 전유동의 달인(達人)이란다……. 지형상 발밑에는 수심이 낮고 어느 정도 흘려보내어 뚝~! 떨어지는 수심 대를 공략해야하는 곳인데 역시, 낚시의 고장에서 온 고수(高手)라 지형파악도 빠른가보다……. 어찌 추자에서까지 소문을 듣고 왔을까? 추자에서는 조황이 좋지 않은 한가한 시기였기에 J씨가 참돔낚시와 전유동을 배워보려고 초청을 했다고 한다. “가까운 서해에서 이렇게 참돔이 나오니 누가 멀리, 추자까지 오것소........” “정말, 고기 많네.~~~~~~~~~” 희어도 되미~! 검어도 되미~! 붉어도 되미~! 감성돔, 돌돔, 참돔...... 구분 없이 모두 되미~! 로 불러왔던 외연도의 어민들은 참돔을 찾아 몰려온 외지인들을 보자 그만 얼떨떨해진 모양이다. 갯바위주변에 흘리는 밑밥이 보기가 싫었는지 그 밑밥이 자기네 텃밭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는지 갯바위에서의 낚시를 금하며 단속을 시작했고 벌금까지 부과하기에 이르자 외연도권의 갯바위는 조용해졌고 선상낚시를 하기 위한 배들만 드나들게 되었다. 수십 번도 넘게 내려 보았을 초망여와 석도, 수도, 붉은 여, 물 빠진 한밤중에 겁 없이 전복을 주워 먹던 수심 얕은 오도, 잘못짚어 내린 탓에 손가락만한 우럭밖에 낚질 못했었던 대청도, 광어만 사는가 보다 생각했던 무마도와 불안도, 얼마나 깨끗했던지 담배꽁초, 쓰레기 한 점 없었던 이름과는 다른 변도 에서는 돌돔 포인트까지 덤으로 얻었었고 오십 마리도 넘는 떼 농어의 감격을 안겨 주었던 준 흰여, 눈앞에서 모기가 오가기 시작하면 그저 손만 한번 휘~! 저으면 수십 마리씩 움켜쥘 수 있었던 횡견도, 가장, 멀리 있지만 충격적인 경험을 주었던 황도는 가까운 서해 권에도 이렇게 별난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언제나 다시 낚시객들이 내려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날까지 홍합만큼은 무럭무럭 자라게 될게다....... 사람도 없으니 선장도, 조수 아저씨도 낚싯대를 들었는데 선장이 크지 않은 참돔을 먼저 낚아들어 열공을 펼치게 하였지만 바로 물색이 검은빛으로 바뀌었는데 이러다간 그 흔한 부시리 한 마리 구경 못하게 생겼다. 또 한 번 조수아저씨가 우럭채비를 꺼내들었지만 알량한 노래미 너댓마리뿐……. 오늘은 맛볼 횟점도 몇 점 안되니 이슬도 내리다 말라버렸으니 도시락으로 배를 채워야 하려나보다……. “이게 뭐여~????? 이러려고 낚시 다니나????” “저기 홍합 보이는데 저거라도 따서 삶아먹자고~~~~!” “갯바위에 배 못대유~~~!” “내가 책임은 못 지겠지만 일단 배를 대봐~!!! 단속하겠다는 배가 오면 잽싸게 도망가면 되지~! “ (누가 고집 센 서 씨 아저씨 좀 말려줘요~~~~~~~) 어차피 닻줄을 거두어야겠기에 갯바위에 다가서게되자 냉큼 뛰어내린 서 씨 아저씨가 홍합을 보자 싱글벙글거리며 두 손가락 브이 자까지 그려낸다. 서너 명이 손아귀에 힘 좀 주었던 작업시간 몇 분 만에 먹을 만큼의 홍합이 배위로 올라왔고 대한 국민의 표준 조리 기구였던 노란 양은냄비 속에서는 군침을 넘어가게 하는 냄새가 풍겨났고 닫아 두었던 이슬 병을 비워내게 만들었다. 남은 홍합을 쿨러에 가득 담아 주는 선장을 보니 오후에 해보려는 농어낚시가 틀려 버렸는가보다……. 붉은 여 쪽으로 방향을 잡고 보니 못 보던 등대가 눈에 띈다. “저게 뭐고????” “새로 하나 세웠어요!” “좋네. 닻줄걸기 좋고 포인트 찾기 좋고…….” “고기가 놀라서 금년엔 틀렸고요……. 내년에나 봐야겠죠......” “작년에 찾아놨던 거시기에도 등대가 섰는데 가을이 되면 가보시자구요…….” 썰물에 내려 앉아 쉬고 있는 농어라도 낚아볼까 했던 기대는 몇 번 루어를 던져보게되자 허름하니 무너져 버렸고 깔려있던 구름이 벗겨지며 파란 하늘로 바뀌었으니 마음 편히 하늘구경, 구름구경이나 해야겠다....... 심통이 밀려나왔는지 편히 쉬고 있던 애궂은 염소 떼들에게 소리를 질러 겁을 주어 쫓으며 재미있어했으니 아직도 수양이 덜 됐나보다……. 비워져 가는 것이 비움이 아니고 채우는 것이 채움이 아니듯, 삶은 늘, 그렇게 비우고 채워가며 흐른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것도 없고 채우지 않으면 비워낼 것도 없는 삶. 비움과 채움은 서로의 잔해를 지우며 하나의 삶이 된다니 오늘은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울까?! 소유하고 채워가는 것에 익숙한 우리네 일상. 조금씩 비우고 버리면 정리가 될 법도 하건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잘 비우는 것은 결국 잘 채우기 위함이려니……. 우리에게 바다는 항상, 닫힘 없이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