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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4. 만재도의 칠말팔초 (七月 末~八月 初)

by 찌매듭 2016. 8. 17.

 

오늘은 어제보다 바다가 잔잔해졌다냐?

하루는 동쪽으로.............
다음날은 서쪽으로........

날 바꿈과 방향 바꿈을 하면서 하루하루 술래잡기, 고무줄놀이를 한다......
 

어제, 그제보다 바람과 너울이 줄었기에 어릴 적 아저씨의
추억이 담긴 작은 홈통에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

 

만재도 에서, 대략 70여 곳의 포인트에서 낚시를 해보았는데
언젠가 이 자리에서도 낚시를 한 기억이 있긴 하다만
뒤편에 있는 작고 좁은 홈통까지는 잘 생각이 안나니
썩, 좋은 조황을 보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남대문 골창의
절반에 절반도 안 되는 크기였으니 떼거리로 볼락이며 쏨뱅이, 열기들이
들어 앉아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보여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차라리 녹섬 안쪽의 손 타지 않은 홈통이 더 낫지가 않았을까?
 

언젠가 노선장이 회심의 미소를 띠면서 볼락을 잡을 준비를 하라며
데려다 준 곳이 다른 낚시꾼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았을 곳으로
발전소가 건너다보이는 안쪽 깊숙한 곳의 완만한 홈통 이었는데
마을에서 걸어 갈수도 있는 거리였지만 내려오기가 힘든 절벽으로 이루어져
맨손으로 암벽등반을 한답시고 쵸크백이나 차고 오면 내려올 수나 있으려나?
 

해가 지기가 무섭게 어마어마하게 큰 볼락이 한 마리 모습을 보였기에

'이것봐라야?'


촉각을 바짝 세우고 낚시를 했는데 35급의 볼락을 열 마리를 넘기면서 부터는
낚시 인생에서 두 번 다시없을 기회라는 생각에 잠이 멀리 도망갔고
밤도 잊고, 배고픔도 잊고, 목마름도 잊으면서 새벽을 맞았는데
어느 틈에 달려 온 노선장이 오동여로 가서 돌돔을 잡아야하니
배에 오르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긴 했지만
그 후로는 두 번 다시 그곳을 가자는 말을 안 하니 그 또한 참, 별일이다.....

 

 

 

 

 

 

 

오늘은 작은 아저씨가 추천을 한곳이니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기에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 준수한 씨알의
볼락을 한 마리 낚아 들어 올리면서 당신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인다는 듯이 번쩍 치켜들면서 어깨를 한번 으쓱했고
보기보다는 폭이 넓은 골창 안에서는 발밑까지 불러들이려는 고기가
놀라지 않고 미끼 달린 바늘을 물고 늘어지라고 손으로 ‘사부작~!’ 하니
뿌려주는 밑밥 흩어지는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늦도록
저녁 도시락을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즐겨 사용하는 7미터짜리 장대 한대를 넓은 바다가
펼쳐진 곳으로 향하여 뽑아놓고 받침대에 걸쳐 놓고 크릴 댓마리를
꿰어 두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미동조차 없었지만
바늘의 미끼가 녹아버린 맨 바늘 일 텐데 ‘설~렁’ 거리는 움직임이 보여서
달려 내려가 치켜 들어보면 빨간 고기가 달려 나오곤 했다......
  

“하, 이, 극성스런, 참돔들...... 도대체 발밑까지 들어와서 크릴껍질만 붙어있는

바늘을 물고 늘어지면 어쩌자는 거니?”
 

밤이 더 깊기 전에 장대를 걷어 버렸고, 받침대까지 뽑아 버리고
꼭, 필요한 짐만 놔두고는 당장에라도 철수 할 수 있을 정도로
꽁꽁 짐 보따리를 꾸려놓고, 작은 아저씨와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작은 홈통만을 공략하며 밤 이 깊어갔다......
 

새벽이 되자 열대야에서 늦가을 날씨로 기온이 급변하여
선선한듯하다가 선뜻한 기운이 몰려왔고 춥기까지 했기에
몇 일간 가지고만 다녔지 건드려 보지도 않았던 웃옷을 꺼내어
덧입었지만 그래도 선선하기에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했다...... 

 

오래전에, 제헌절 연휴를 이용하여 안동댐에서 씨알 좋은 붕어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더운 낮의 해가 지면서부터는 갑작이 추워지기 시작했기에 텐트 안에서
후배 놈을 꼭, 끌어안고 덜덜 떨면서 밤을 새웠는데 다음날 밤에는
이상스런 모습을 또, 보이지 않으려고 어둡기 전에 땔감들을 그러모아 두었다가
해가 지면서부터는 또 추워지기에 준비해 두었던 모닥불 더미에 점화를 하여
한여름 복중에 화톳불을 쪼이면서 밤을 새웠던 별난 일이 있었긴 하다만
이곳 만재도 에서, 몇 일간 열대야속에서 땀을 흘렸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늦가을 밤이라니?
 

몇 일간 가지고 다니면서 꺼 내놨다, 도로 집어넣곤 했던 컵라면에
몸을 덥히기 위하여 더운물을 끓여 부었다.


너무 더운 날씨속에 밤도 짧다보니 더운 간식도 귀찮고 당기지 않아
간편한 비상식만으로도 충분했었고 잠을 쫓기 위한 냉냉한 커피는
벌써 여러 잔을 들이켰으니 뜨거운 커피를 한잔을 만들어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들고 다니는 가방안의 부피도 줄이려면 저것이 나을 것 같았다.
 

씩씩하고, 부지런한 제자를 두엇을 영입하여 같이 왔다면 눈짓 한번에
라면도 끓일게고 커피도 더운물 부어 갖다 줄 것 같은데 오늘은
작은 아저씨 뒷바라지를 하게 생겼으니 어눌한 제자라도 하나 데리고 올걸 그랬나?

 

 

 

 

함께 낚시를 다니던 서 씨 아저씨는 밀가루 종류는 즐기지를 않기에 라면이나
빵, 과자 종류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간식거리도 안가지고 다니나 이슬병 두어 개에
신통치도 않은 안주로 멸치꽁뎅이나 조금, 가지고 다니는 스타일이다 보니
별로 얻어먹을 것이 없는 동반자다.
 

그러니, 고기도 못 잡고 놀고 있어도 라면도 안 끓이고 커피도 안타고,
스프도 안 데우니 맹숭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데 제대로 고기를
잡아본적이 없어 체력방전의 기회가 없었나 보지? (헹~!!!!)
 

만재도로 낚시를 데려온 지 서너 번이나 되던 날 어느 해에,
서 씨 아저씨를 주 사장 자리라는 곳에 세워놓곤 낚시를 해보라고 하고는
멀리, 뒤쪽 너머로 가서 떨어져서 낚시를 하게 되었다.
 

어두워지도록 기척이 없기에 저녁 도시락이나 먹자고 소리를 쳐서 불렀는데
급히 밥을 먹고 가버리는 것이 고기가 제법 잡히나 보다......
 

물이 내려 있을 때에는 커다란 고인돌 위에 앉아 있는 듯,  더 없이 편한 자리였지만
만조시간에는 물이 넘쳐 올라와 잠시 피했다가 물돌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내려가
낚시를 하는 것이 정석인, 편하지만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하는 자리로
깊은 밤 시간대에 만조 시간이 걸린다면 멀찌감치 물러나서 한동안 쉬어야하는 곳이기에
서 씨 아저씨를 불러 올려야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 생각났기에 플래시를 켜들고 가보았는데,
물이 발밑까지 찰랑이는 벽에 붙어 서서는 연실, 무엇인가를 잡아 올리고 있었는데
쏠쏠한 크기의 우럭이며 쏨뱅이들이었다.
 

발밑에 지렁이 토막을 달아서 내리우기만 하면 셋정도를 세기만 하면
벌써 물고 늘어졌다며 반은 정신이 나간 듯, 꼼짝을 안하고 있기에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잠시, 지켜보다가 이제 그만, 물이 올라 치니
쉬었다가 해도 충분하다며 올라오기를 권했지만 한마리만, 더, 를 외치면서
올라올 생각을 안 하기에 큰 소리를 질렀지만 한번 움찔할 뿐, 그래도
꼼짝을 안하고 있기에  험악한 육두문자까지 동원한 사자후(獅子吼)를 날리니
마지못해 올라왔는데, 육두문자의 내용인즉,
 

‘이 띠발너메 영감쟁이야? 그러다가 쓸려 나가서 뒤지면 당신 마나님이
나를 원망할게고 빈 관을 싣고 왔다가 시체도 찾지를 못해 빈 관을
그대로 들고 나가야 할 텐데 고기 몇 마리에 목숨을 걸 거여?
빨리 올라오지 못혀??????!!!!!‘
 

마지못한 듯이 올라왔을 서 씨 아저씨가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는가. 며
정색을 하고 얼굴을 붉히는 순간, 너울이 크게 올라와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고집을 부리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면 휩쓸려 나가지는 않았을지는 몰라도
짠물을 함빡, 뒤집어 써야했다는걸 알고는 얼굴색이 변하면서 고분고분하게
자세가 바뀌었지만 아직 바다 무서운 것을 알려면 한참, 시간이 더 지나야 할 텐데......


또 한 번은 밤낚시를 하기에는 불편하고 좁은 자리이기에 노선장도 내려 보기를
권하지를 못하는 자리였는데 선임자가 즐겨 내리던 자리였다는 말을 여러 번 하기에
서 씨 아저씨의 승부욕이 타올랐는지 내려 보겠다며 그 곳이 어디냐고 팔목을 걷어붙였다.
 

그런 대로 서 있을 만한 자리였고 위로 올라가면 누울 자리도 있어 밤 시간을 보낼 만 했지만
큰 고기를 걸었다면 끄집어내는 것이 문제였다.

물이 줄어든 시간대에 참돔과 농어가 달려들어 뜰채로 떠내기 위하여
미끄럼틀 같은 비좁은 홈이 파인 갯바위 사이로 어깨를 비비대며 다리를 부비적거리며
기어 내려가서 고기를 떠내어서 올라오면 비 오듯이 땀이 흘렀고 양쪽 어깨에
긁히움이 생겨서 나중에 피딱지가 붙은 것을 알고부터는 만조시간대의
잠간의 낮낚시라면 몰라도 밤 시간을 보내기에는 고생스러운 자리였다. 

 

물이 내려앉는 시간대이긴 했지만 이상한 너울기운이 있는 것을 감지하고
옆에 서있던 서 씨 아저씨에게 위쪽으로 올라가자고 했지만 괜찮다고 고집을 부려서
혼자서 먼저 올라왔지만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
 

순간, 또 큰 너울이 다가와서 머리위에서 부터 어마어마하게 큰 물 양동이로 퍼붓듯이
내리 쏟았기에 서 씨 아저씨는 물에 빠진 새앙 쥐가 돼 버렸다.

 

여름날이긴 하지만 갈아입을 여벌의 옷도 없다니 낚시를 포기하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물으니 고집스러운 아저씨였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기에 작은 아저씨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았다.


마침, 같이 온 일행도 있었기에 손님 핑계를 대고 아저씨가 생일날을 맞은 듯
술독에 빠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행도 그 술독에 같이 들어앉았을 것이니
자정전이긴 하지만 택택이 배가 나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대였다.
 

벌거벗은 맨몸이나 젖은 옷을 입은 채로 밤을 새울 수도 없기에
비옷이라도 걸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덥지는 않겠다며 입은 옷을 쥐어짜서
물기를 빼내 널어놓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밤을 새웠던 서 씨 아저씨가
근간에는 여벌옷을 한 벌식 챙겨 가지고 다니는 것 같던데,
모두가 경험에서 얻고 배우는 것 아니겠어?
(경험처럼 좋은 교훈은 없나니........)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었지?

재작년에 서 씨 아저씨가 주 사장 포인트에서 다시 낚시를 해볼 기회가 있었다.
 

예전에, 우럭을 잡다가 나에게 심한 욕을 들었던 곳이 아니었는가 하니
전혀 기억을 못하는 눈치였다.


한밤중의 만조시간에는 조심을 해야 하고 꼭, 짐을 올려다 놓으라고 충분히
알아듣도록 당부를 하고 정 군과 함께 셋이서 각자, 자리를 잡고 낚시를 시작했다.
 

만조시간이 자정 경에 걸렸었는데 다른 때보다 치올라 오는 높이가 높기에
잠시 낚시를 쉬고 있었는데 서 씨 아저씨가 있는 곳도 너울이 치올라 가는 것이 보였고
내려가는 물속에 케미라이트며 몇 가지가 떠내려가는 것이 보였기에 넘겨다보니
미리 짐도 올려다 두고 사람도 올라와 있었는지 높은 곳에서 움직임이 있기에
괜찮겠구나 생각했었다.
 

정 군과 늦은 저녁 도시락을 먹은 것이 이때쯤이었을 게다.

근처까지 다가와 내려다보던 서 씨 아저씨가 되돌아가는 것을 보았는데
무엇들을 하는지, 고기가 잡히는지를 확인하려했을까?
 

새벽에는 작은 텐트 안에 들어가 1시간 정도의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정 군이 와서는 곁에 누우며, 서 씨 아저씨가 좀 전에 또 와서는
잠시 내려다보다가 돌아갔다는데 그쪽은 고기가 계속 잡히는 모양이라고 했다. 

 

다음날 철수를 하여 서로, 잡은 고기 손질을 하고 냉동고의 박스에 담아 두었는데
서 씨 아저씨가 잡은 참돔 한마리가 몸체가 약간 이상했다.


뒤집어 보니 한쪽 살점이 없어졌기에 홀쭉하니 이상하게 보였던 건데
아저씨가 이슬을 한잔 하면서 안주삼아 회를 떠먹었나 보지??????
 

낚시를 하다가 회가 그렇게 먹고 싶었었느냐고 하니 우물거리다가 말하기를
어젯밤에 짐을 미리 올려놓고 낚시를 하라고 했는데 그냥 버티다가 너울을 맞았고
우산이며 몇 가지 물품들이 너울에 쓸려 나갔고 도시락도 쓸려 보냈기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밥이라도 나누어 달라던 지 다른 먹을 것이 있으면 얻을까 하여 갔었는데
저녁도시락을 먹어 치우고 열심히 낚시를 하고 있는 것 같기에 그냥 넘어 갔었고
나중에 다시 넘어가 보니 텐트 안에 들어가자고 있기에 다시 되 돌아가서는
배가 고파 못 견디겠기에 참돔의 생살을 뜯어 먹었다는데, 초장이나 간장도 없이
다니다 보니 바닷물을 바른 맨살점이 먹을 만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기에 안 먹더라도 약간의 간식과 마실 물 정도는 낚시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 올 때까지
지녀야한다고 몇 번이나 일러 주었지만 번번히 건성으로 듣고 있다가 후회를 반복한다.
 

작년부터는 제법 무엇인가를 담아 갖고 다니던데 남은 것이 있다면
만재 도에 남겨주고 오면 더욱 좋으련만 모두 끌어안고 돌아가는 것 같으니......... 쩝.........

 

또 가끔씩 따라붙는 정 군도, 코펠이나 버너 같은 것은 가지고 다니지도 않고
말로만 다이어트를 부르짖으며 몸을 만든다는 해괴한 소리만 입에 달고 다니는데,
들고 다니는 쿨러속을 들여다보면 콜라나 두어 개 담겼고, 샌드라는 이상한
과자부스러기나 담겨 있던데 모래로 만든 건지 한두 개 건네주기에 받아서 먹어보니
입이 껄끌하고 목이 메어 마땅치가 않았는데 그래도 컵라면 두개에 물을 부어 놓으면
집어다가 처먹기는 매번 잘도 먹어댄다...... 

 

 

 

 

 


작은 아저씨는 태어난 연도(年度) 부터가 나보다 앞서있으니 어른을 공경하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말도 있으니 물을 끓여 부어다 바쳐야겠지?
 

내용물이 적당하게 익었다며 호로록하니 면발을 빨아 당기던 아저씨가 무엇인가 오도독~!
씹히는 것이 있다며 누룽지 같은 것을 넣었는가고 묻기에 비상식으로 가지고 다니던
스낵형 누룽지를 한웅쿰 넣었다고 하니 식감도 좋고 간도 딱, 맞는다며
국물 한 방울, 안남기고 완컵을 했다......

물이 많이 줄었고 밤기운이 서늘하니 바람이 닿지 않는 곳에 앉아서
옛이야기 시간이 잠간 있었는데 만재도 에서 빠질 수없는
귀신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아저씨가 어렸을 적에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나타나서는
갖고 놀던 연을 낚아채서 나무가 우거진 산속으로 들고 가버렸기에
울며불며 따라 가다가 중간에 돌아서서 집으로 와서 어른들에게 일렀더니
따라가지 않기를 잘했다고 했다는데 이, 이야기는 노 선장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때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시방, 형제 간에 짜고
같은 레퍼토리로 서울 촌놈을 웃기겠다는 거여?????

 

또 한 번은 어떤 소복 입은 여자가 나타나서는 매끄러운 걸음으로
이산에서 저산으로 건너가다가 한번 뒤를 돌아보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만재도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이야기였다.

하긴, 내가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이상한 오멘, 현상이 몇 번 있었다보니
북을 쳐야할지, 장구를 쳐야할지 헛갈리긴 하지만 그때, 같이 보고 겪었던,
서울하고도 강동구 명일 동에 있는 커다란 교회를 다니던 권 집사라는 놈은
왜, 아무 소리도 안하고 있는 걸까?

그때 이야기가 나오는 자리에서는 명색이 신자라는 놈이
부정도 긍정도 못하며 우물쭈물 거리기만 하니 나이롱 신자인지,
사업상 다니는 교회인지, 알 수가 없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노선장의 택택이가 왔는데 어찌 이리도 일찍 오는가 했더니
오래전부터의 습관대로 날이 밝기 전에 농어를 낚으려고 닭털루어를 던져보다 오는 것이라고
작은 아저씨가 설명했는데 꼭, 날이 밝기 전에만 갯가에 농어가 붙는 것이 아니고
묵직한 가마우지형의 루어를 사용하면 한낮에도 농어를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했지만
그들의 오랜 습관상, 들어먹지를 않았다...... 

(에이....... 내가 루어 대를 쥐고 나서면 밤이고 낮이고 얼마든지 농어를 잡아낼 텐데.....쩝......) 

 

오늘은 물가에서 고기 손질을 하는 사람이 우리 둘뿐이다......

어제 구십 할머니를 구하여 고기 손질을 했던 사람은 가버렸을 게고
또 다른 여객선을 타고 왔다는 사람이 다가와서는 이것저것 물으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가거도 쪽으로만 낚시를 다니다가 이곳에는 처음 왔다는데, 편의시설이 열악한 환경이고
모든 것이 불편하기 그지없는데 그래도 고기는 많은가 보다며 고기 손질을 하는 동안,
쉴 새 없이 떠들어대다가 어느 틈에 가버렸다.

 

간밤에는 추워서 옷을 껴입는 날씨였기에 땀도 흘리지 않았고 선선한 이른 아침에
고기 손질도 마쳤고 한자리에서 조용히 반찬고기를 잡는답시고 큰 움직임도 적었기에
체력 손실도 별로 없었다.
 

모기도 없다시피 했었고 자리도 편하니 잠간 눈도 붙여가며 편한 낚시를 했었으니
아침밥을 먹고 눈을 붙였지만 일찍 잠이 깨었는데 오후 1시나 됐나보다.


또 잠시 후에는 만재도 에서의 마지막 밤도깨비 놀음을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