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초에는 가을 물색이 남은 만재도로 돌돔이나 잡으러 갈 꿈을 꾸어봤다만 좀처럼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가 않기에 낚시를 가보려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하고 꾹, 참고 있자니 저녁 일찍부터 잠을 청해도 보았지만 당최, 머릿속이 개운하지가 않다. 동내 아저씨들이 이제는 연례행사가 되었다며 주꾸미 잡이를 가자고 졸라대고 있다. '그래……. 당일치기니까…….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거야......’ 오천, 자연낚시의 김 선장에게 연락을 하여 작은 배 하나를 구하라하곤 이른 새벽에 갈을 나섰다. 지난해에도 그랬지만 언제부터 오천 항이 이리도 시끄럽고 번화해졌을까? 외연 도를 가는 농어루어낚시 배가 있을까하여 구십년 대초에 처음 오천항을 찾아왔을 때는 집도 몇 채 없었고 마땅히, 한 끼 식사를 할 만한 곳도 없었는데 지금은 식당이 몇 개인지 셀 수가 없다. 외연 도를 가는 배를 구할 수가 없기에 가까운 곳에 있는 월도나 추도로라도 가서 만조시간을 맞추어 농어 잡이라도 해보려니 낚시꾼을 태운다는 것이 해경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건지 멀리, 동산너머에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으라기에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자니 어선배가 슬며시 다가와 연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빨리 타라기에 ‘별, 이상한 동내가 다 있구나......’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아마도 낚시꾼을 태우면 안 되는 불법 영업이었는가 보다……. 가까운 섬에 내려서 밤 시간을 보냈지만 만조시간이 지나면서 물이 ‘후~닥닥’ 빠져 버리면 다음날 만조시간이 될 때까지는 아무런 생명체가 없었기에 지루한 밤을 보내야했고 무엇이 그리 켕기는지 날이 밝자마자 배가 달려와서 빨리타라고 하더니 몰래 탈적과는 달리 선착장으로 제대로 내려주기에 이상한 동내의 이상하게 손님모시는 방법이 당최, 이상하기만 했는데 밥이라도 한 끼, 먹어볼까하여 식당을 찾았으나 제대로 된 식당 간판하나 없던 이상한 촌동내였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식당이라고 생각되는 작은 집 하나를 찾아서는 ‘식사가 되는가?’ 물어보니 회를 먹어야만 식사가 함께 나온다고 하여 뻘건 고무다라에 담겨 있던 작은 농어 한 마리를 달라하여 회 몇 점을 먹으니 매운탕에 밥을 내주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 오천 항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명물인 키조개보다는 우럭 회라도 한 접시 시키면 여러 가지 곁들이 찬과 함께 푸짐한 간재미 무침을 한 접시 내주는 소영식당이라는 곳 때문일 텐데 이 식당 때문에 관광버스를 탄 단체손님들까지 들르는 명소 아닌 명소가 되었을 게고 장사가 잘되는 눈치가 보이자 비슷한 식당이 여럿, 생겨나긴 했지만 낚시와는 상관이 없는 지나가는 관광객뿐이었는데 우럭낚시 손님이나 간간히 들르던 작은 포구가 오늘날, 명동이나 강남같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번화하게 된 것도 무창포구에서 제일낚시점을 운영하다가 고향인 오천으로 돌아와 새롭게 낚시점을 열고 참돔낚시의 포문을 연, 캡틴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서해안 참돔낚시의 포문을 정식으로 열게 되면서 주위의 낚시점이나 배를 가진 사람들에게 다운 셧이며, 타이라바며 참돔 찌낚시를 전하게 되면서 수없이 많은 낚시점과 낚싯배들이 생겨났고 자새로나 잡던 주꾸미를 릴 뭉치를 매단 작은 낚싯대로 잡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었기에 오늘날에는 선풍적으로 주꾸미 낚시꾼들이 몰려들며 오천 항이 복잡하게 되어버렸다. 참돔과 광어 철에는 전문성을 갖춘 배들이 하나둘 늘어나며 제법 그 수도 만만치가 않았지만 주꾸미 잡이 배들도 백여 척이나 생겨난 것같았으니 그에 따라 식당이며 다른 업소들도 호황을 누리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캡틴의 낚시점에 찾아와 식사손님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던 음식점들이 손님이 늘어나자 예전과는 다른 너절한 서비스로 손님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반찬의 가짓수도 줄었고, 질도 나빠지고 맛도 없어졌으니 그냥, 컵라면이라 먹던지 길거리 손수레에서 파는 토스트를 한쪽 사먹던가 구멍가게에서 우유한통에 과자 몇 알을 먹는 것이 더 낫지 싶다……. 그나마, 계란 프라이라도 직접 만들어 먹으라는 식당이라도 간다면 아침요기라도 될게다만, 모두가 같은 생각들이었는지 계란 프라이 두 알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려는 손님들이 식당 밖까지 줄을 섰으니 그냥, 돌아설밖에……. 할 수 없이 자리가 있는 식당을 찾아 일행들의 아침식사를 시켰지만 멸치대가리라도 담갔다 꺼내기라도 했을까? 국물만 두어 수저 떠먹다가는 수저를 내팽개치고는 일어서고 말았는데 차를 세워둘만한 곳도 마땅치가 않다보니 멀리, 차를 세워놓고서야 서둘러 배에 오를 수가 있었는데 차를 세워두면 안 되는 곳에 주차가 된 자동차들도 있었다. 저곳에 다른 사람들이 차를 세워놓지 않을 때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얼씨구나, 주차를 했다가 나중에 차가 물에 잠겨서 낭패를 보려는 손님들은 또 누구일까? 오늘 함께할 선장은 기름이 20만원어치나 들어간다며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라며 중얼거렸는데 알고 보니 해마다 주꾸미를 잡던 가까운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멀리 연도가 보이는 홍원 항 근처의 남의 앞바다까지 가기에 그런가보다....... 근처에는 주꾸미가 들어오질 않았다지만 해마다 시즌이 되면 매일같이 백여 척의 배들이 주꾸미 잡이 손님을 실어 나르면서 점차 반경을 넓혀가며 잡아내다 보니 원산도 권까지 주꾸미 씨가 말라버린 모양이다. 날씨만 좋으면 하루에 천여 명의 손님이 몰려들어 적게는 몇 십 마리에서 많게는 몇백마리씩 잡아내다보니 그 많던 주꾸미들도 씨가 마른 모양인데 그물로는 씨를 못 말려도 낚시로는 씨를 말린다는 낚시속담대로 서서히 자원이 고갈되어 가는 것을 그네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광어나 참돔도 수년 내로 낚여 올라오는 것이 눈에 보이게 줄어 들 텐데 저렇게 많은 배들이 그때는 무엇을 할까? 그래도 내일의 걱정은 안하는지 새로 지은 배도 여러 척 보이네……. 예전에는 홍원항의 배들이 무창포구 근처까지 전어를 잡겠다고 대낮부터 몰려와서 줄을 지어 서있으면 무창포 ‘제일낚시’의 ‘조 선장’은 닻을 내리고 여러 척씩 묶여있는 홍원항 배에게 다가가서는 감성돔 찌흘림 낚시를 해야겠는데 거치적거리니 비켜주던지, 닻을 올려서 멀리 사라지던지 하라고 소리를 치면 험악한 생김새에 놀랐는지? 남의 앞바다니 당연히 비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아무 소리도 안하고 힘들게 큰닻을 다시 올려서 멀찌감치 비켜주었는데 이제는 오천항의 배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저네들의 앞바다에서 주꾸미 잡이를 해도 아무 소리를 안 하니 그네들이 더, 충청도 양반인 것같다~~~ 주꾸미를 잡으러 멀리 가지 않을 것 같았기에 멀미약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배가 달린지 30분 정도가 되자 일행 중 세 명이 멀미를 시작했는데 한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얼굴색이 변하며 혼절을 했고, 어느 정도 주꾸미를 잡아 가야만 엄처(嚴妻)에게 혼이 안 나겠는지 친구 놈 하나는 멀미를 이겨내며 할당량을 힘들게 채워놓곤, 주꾸미 라면도 못 먹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 쓰러져버렸다. 예전에는 선장이 함께 주꾸미를 잡아서 데쳐서 술안주도 하고 라면에 넣어서 몇 마리씩 건져먹기도 했는데 근자에 와서는 선장이 잡은 것은 제몫으로 따로 챙겨 넣기 시작했고 손님들이 잡은 주꾸미를 몇 마리씩 걷어서 라면에 넣고 끓였는데 급히 끓이다 보니 머리는 설익어 먹물 통은 익지도 않았고 다리는 질겨져서 먹기가 불편하기만하다. 손님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뭍에 있는 식당들과 함께 초기의 서비스는 실종이 되었고 손님들만 봉이 되어 어디론가 훨~ 훨~ 날아다니고 있다......... 일행들 대부분이 두어 번씩 주꾸미 잡이를 해봤었기에 백여 마리씩은 잡았기에 그런대로 기본은 했다며 돌아왔지만 멀미약도 준비했다며 한 번 더, 주꾸미 잡이를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오천 항에서는 40분 정도를 배를 타야하기에 좀 더 가까운 무창포구나 홍원 항에서 배를 타고 나가면 좋겠다기에 마침, 한가한 날이 있어 다른 약속도 생각났기에 대천 항을 찾아 가을 꽃게를 사서 낮 이슬 한잔과 점심식사를 하며 외연도의 선장을 만나서 전에 약속했던 만남의 시간을 보내고 무창포구까지 둘러보게 되었다. 외연 도를 향하여 마땅한 출발지를 찾다가 찾아 들게 된 무창포구……. 백여 번도 넘게 찾아들었었으니 이십년간 서서히 변하긴 했어도 너무도 친숙하고 익숙한 곳이다. 오늘날 서해중부권의 참돔낚시며 농어낚시가 무창포구에서 시작이 되었으니 또 이곳에서 막을 내리려나?...... 철 지난 해수욕장에는 손님도 별로 없을 텐데 간간히 찾아드는 늦은 손님들을 상대로 설탕을 녹여 만든 뽑기 장사가 판을 벌려놓고 있었고, 청춘남녀들과 놀이 객들이 무슨 고기를 잡으려는지 오가고 있었는데 마침 자연산 대하 철이 시작되었기에 구경을 하다가 오천 항에 비하면 야 몇 척 안 되는 낚싯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예전부터 안면이 있던 ‘킹피쉬’의 ‘금복’이 선장에게 예약을 해놓고는 동내아저씨들과 친구 두엇과 함께 다시, 주꾸미 잡이에 나서 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수십 차례, 식사를 했던 식당도 그대로 있었기에 아침식사도 복잡하지가 않았지만 우선, 주차가 편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터체인지가 가까운 곳이다 보니 새벽운전에도 불편한 줄을 몰랐다. 이번에는 배를 타고 나가는 시간도 얼마 안됐지만 멀미약도 단단히 준비들을 했기에 주꾸미 잡이에만 열중을 할 수가 있었고 수확도 만족스러웠다. 주꾸미 잡이야 두 번으로 족하고, 제대로 된 낚시를 해보려면 멀리 어딘가의 갯바위에서 손맛을 보아야만 제대로 낚시를 한 것 같을 텐데 좀처럼 빠져나갈 기회가 없으니 이를 어쩐담? 만재도 에서는 여름물색이 아직도 남아있다며 윗집에 온 누군가가 형제 섬에서 짧은 장대와 크릴미끼로만 오십 마리가 넘는 돌돔을 낚아왔다는데 결코 뺀찌급이 아닌, 돌돔 급의 씨알이 좋은 크기였다며 민박집 아저씨가 전화로 알려오면서 변죽을 울려댔다....... “누굴까? 내가 하는 방식으로 낚시를 한 사람이??? 아니지, 누가 윗집에 가서 내가 하는 방식을 알려 준거여?????? 큰아들이 그랬겠지????” “뭐……. 그럴래 서 그런 것이 아니고, 어쩌다가 말끝에 그런 이야기가 나와서 시험 삼아 해본다고 갔다는데…….” “그러니까 누가 그런 소리를 일러주었냐는 말이외다!?” “글쎄…….그것이........” 따로, 낚시방법을 특허를 낸 것도 아니고, 섬도 나만의 것이 아니다 보니 어쩔 방법이 없다……. 얼마 후에는 아침 일찍, 무창포에서 문자가 한통 왔는데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기에 출항을 늦게 시키는 날이라나 보다. 낮 열한시쯤에야 출항을 시킨다니 내려오시라는 문자였는데 출근시간대가 걸리다 보니 꽉 막힌 고속도로를 억지로 뚫고 달리다 보니 열두시가 다되어서야 도착을 했는데 서두르다 보니 낚싯대를 놓고 왔다……. 선장의 낚싯대를 빌려 오후시간을 보냈는데 시간은 적었지만 주꾸미와 갑오징어의 크기가 며칠사이에 부쩍, 커졌기에 마릿수는 적었어도 부피나 중량은 더 무거운 날이었다. 또 나흘 후에는 2차 미사일 시험이 있기에 또 늦게 나간다기에 이번에는 갑오징어를 몇 마리 낚아서 기포기를 틀어 살려온다면 노모가 잡숫고 싶다는 갑오징어 회를 싱싱하게 드릴수가 있을게다. 십여 마리의 큼지막한 갑오징어를 살려와 얇게 썰어 노모에게 드렸지만, 입안에 담아 물고는 ‘오래도록 씹어도 씹히지는 않지만 단맛은 난다’며 두어 점을 잡숫고는 그만, 접시를 물려내고야 말았다. 지난여름에 만재도로 낚시를 다녀와서는 오래도록 집을 비우지 않겠다고 딸내미와 한 약속이 마음에 걸려 좀처럼 낚시를 가보겠다는 말을 못 꺼내다보니 잠간씩 물을 보고 오는 시간이 성에 찰리가 없다만, 어쩔 도리가 없다……. 가을이 다 가도록 늦도록 여름물색이 남아 있던 만재도도 물 건너갔고 큰물이 차올라 몇 차례 오름 쏘가리가 난리를 쳤을 소양 댐이며 화천댐의 쏘가리 낚시도 그대로 잊어버리고 말았기에 몸살을 떨며 자숙의 시간을 보내다가 동내 선배들에게 맛난 점심을 얻어먹다가 얼떨결에 한 약속에 덜미를 잡혀서 갈치 낚시를 가게 되었기에 바다물위에서 하룻밤을 새워보게 되었다. 함께 갈치낚시를 가게 된 백 사장님과 친구 분은 민물낚시와 우럭낚시정도는 해보았다며 안내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언젠가 거문도로 갈치낚시를 갔을 때, 닻을 내린지 30분도 안되어 멀미로 쓰러져서 다시는 배를 안탄다던 분이 갑자기 갈치바람이 불었으니 웬일일까? 지난번에 갔었던 주꾸미 잡이에서도 멀미로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가 그 다음번 주꾸미 잡잇날에는 멀미약을 준비했었는데 약을 준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잔잔하니 좋은날이었다. 아마, 이번 갈치낚시도 날이 좋을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너무 믿는가본데 바다라는 곳이 일기예보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곳은 아니질 않는가?……. 밤을 새워 배를 타야하니 두 번쯤 먹을 멀미약도 준비 시키고 구름을 뚫고 바다를 건너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승합차가 마중을 나왔고, 배가 정박해 있는 도두 항에 내려 주면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시면 오후4시경에 출항을 하겠다며 다음 손님들을 데리러 쌩~, 하고 사라졌다. 88년경에 김포공항에서 이상한 상자를 카트에 싣고 나오는 것을 발견했는데 기다란 것이 마치 관같이 생겼기에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한쪽 모퉁이가 부서진 것이 건축현장에서 단열재로 사용하던 50mm 두께의 스치로폼을 두 장을 덧대어 테이프로 붙여 만든 것이었는데 어디에 부딪쳤는지 깨어진 틈새로 살짝, 내용물이 보였는데 물고기의 꼬리가 분명했다. 참치를 어디서 사오는 가보다? 아니? 제주에서 온 비행기 같은데??? 손님마중은 제쳐놓고, 슬며시 다가가서는 생선 같은데 어디에서 사오는 것이냐고 물으니 서귀포에서 어느 어부가 관광을 겸한 패키지형의 부시리 낚시를 안내한다기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몸만 가면 마중을 나와서는 차에 태워가, 장비도 주고 먹여도 주고, 알아서 해주니까 종이(?) 뭉치만 가지고 가면 된다기에 연락처를 받아 적었었던가?! 연락을 해보곤 바로, 날을 정했고, 한 시간여를 날아가 그의 차를 타고 별로 크지도 않은 어선에 오르기 전에 선장이 물어왔다. 배는 타보았는지, 멀미는 안하는지? 오늘은 파도가 제법 있는 날이라며 호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건네주면서 입안에 넣고 살살 씹어 보라고 했는데, 너무 오래되어 거무튀튀하고 딱딱하게 마른, 육포 같은 이상한 조각이었다. “이것저것 다 해봐도 그것이 가장 뱃멀미에는 낫더라” 는데 전복을 말린 것이라 했다. 팔뚝만한 굵기의 그라스롯드로 된 투박한 낚싯대와 호박만한 크기의 릴에는 기타줄 굵기의 낚싯줄이 감겨 있었는데 손가락만한 크기의 살아있는 물고기를 통째로 끼워 던져놓고 얼마를 기다리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부시리라는 물고기가 잡혀 올라왔기에 모두들 멀미도 잊고 신들이 나서 몇 마리씩을 잡고는 지쳐서 주저앉았다. 근처에는 다른 어선 배들도 몇 척 있었는데 파도에 묻혀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하니 슬그머니 겁이 나기 시작했고 힘이 부쳐 얼마 더 버티지를 못하고 항으로 돌아와야 했는데 모두가 미터 급이 넘는 물고기들이다 보니 마땅히 담을 만한 상자도 없기에 적당한 것을 골라 한두 마리씩을 예의 그 방법으로 포장하여 가져온 적이 있었는데 타산이 맞질 않았는지, 한번 온 손님들이 두 번, 다시 오질 않던지, 흐지부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기에 전복죽으로 점심식사를 하면 두 어르신들 뒷바라지가 편하겠다는 생각이 났기에 근처의 식당으로 달려가 세 그릇의 전복죽을 바닥이 나도록 싹, 싹, 비웠다. 배가 묶여있는 물가에는 동내 꾼이 보였기에 다가가 보니 전갱이 새끼가 심심치 않게 잡혔는데 손바닥 안으로 쏙, 들어가는 크기의 것들만 잡히기에 볼거리가 생기질 않았다……. 밤 시간대라면 몰라도 이 시간대에 무슨 고기가 잡힐까? 그래도 이렇게 물이 가까운 곳에 산다면 자주 올수가 있을 테니 가끔씩은 별스런 일을 내기도 하겠지……. 옆편에도 갈치낚시 전용배가 출항준비를 하고 있었고 어선 배들은 먼저, 하나 둘씩, 서너 명의 어부들을 싣고 방파제를 빠져 나가고 있었다. IMF때는 인력난이 겹쳐 출항을 못하는 어선들이 항에 가득 서있었는데 제주를 거쳐서 추자를 한창 다닐 때였기에 시원치 않은 조과로 제주로 돌아온 날에는 낚시점 주인이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으니 갈치낚시를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유혹을 해오기도 했는데 바늘에 미끼만 끼우고 갈치 입에서 바늘을 빼낼 수만 있다면 아무나 선원으로 태우고 나갈 때니 좋은 조건으로 갈치 배를 탈수가 있다고 했다. 솜씨나 실력에 따라, 3:7, 또는 4:6제로 배분을 할 수도 있고 잡은 갈치를 모두 갖고 가고 싶다면 기름 값으로 몇 만원만 주면 된다기에 추자 감생이는 공탕을 친 판이니 갈치로 대신해보자며 어선에 올라 멀지않은 바다로 나가보게 되었는데 배의 크기라야 5톤 남짓했고 대나무 장대를 걸어놓고 갈치를 잡는 형식이었으니 지금 같은 장비를 갖추었다면 얼마나 많이 잡을 수가 있었을까? 저기, 출항하는 어선들도 지금은 모두 전동 릴로 갈치 잡이를 할게다..... 다음번 손님까지 항에 모였기에 총무아줌마에게 선비를 계산하면서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가? 물으니 그때그때 나가는 항의 널찍하고 평평한 콘크리트 바닥이 사무실이라고 했다. 조황에 따라 배를 이동 시키면서 출항하기에 그날의 출항지가 사무실이라 고하니 무슨 소리일까? 먼저 배에 타고 있던 백 사장님은 어제에 이어서 이틀째 연속으로 갈치낚시를 한다는 손님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어제 밤의 조황이 좋았었으니 오늘밤도 당연히 조황이 좋을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한 은혜스러운 말과 함께, 좋은 물 때, 좋은 날씨……. 모든 것이 좋고 또 좋다는 말에 황홀하셨는가, 입이 잔뜩 벌어져 있었다.……. 어젯밤에도 삼백 마리가 넘게 갈치를 잡았다는 이틀박이 손님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예전에는 추자도며 거문도며 섬이란 섬을 다 돌아다니며 갯바위낚시를 했다면서 소흑산도까지 들먹여댔다……. 그 섬을 가기 위해서는 대흑산도에서 하룻밤을 보내야만 다음날 아침에 소흑산도를 가는 배를 탈수가 있었다면서 열을 올렸는데 ‘저 사람이 가거도를 말하는구나?…….’ 그때의 교통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혹시, 알 수도 있겠다 싶어 돌아보니 나이로 보아서는 그 시절의 가거도를 말할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눈매며 목소리며 어디서 본 듯한 것같다..... “혹시, 우리,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수?????” “글쎄요? 그러고 보니 뵌 것도 같고....... -_-? ” “내 기억이 맞는다면 12년 전 병풍도 갯바위에서 함께, 하룻밤 낚시를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 아, 맞네요?!!!!” 이 씨라고 기억되는 사람은 이제는 갯바위낚시를 갈만한 곳도 마땅치가 않고 먼 곳으로 갈만한 시간이나 노력도 부족하기에 갈치낚시만 일 년에 50회 정도를 다니고 있단다……. 통영이나 여수 쪽에서 다니는 것보다 여러모로 편리하고 조황도 좋은 편이기에 이 배만 이용하고 있다며 갈치가 잡히는 장소에 따라 도두항-종달리항-성산포-서귀포-한림 항을 따라 한 바퀴 돌기에 5월부터 2월까지 갈치낚시를 다닌다고 했다........ 갯바위 낚시는 그만 두었다니 나이에 비해 너무, 은퇴가(?) 빠른 것이 아닐까? 가끔, 통영이나 여수에서 갈치 낚싯배를 타보면, 각지에서 모여든 이 십여 명과 함께 밤을 새우다 보면 예전에는 가거도 같은 원도 권으로 갯바위 낚시를 다녔다는 노조사도 있었는데 팔십이 넘었다고 한다. 힘이 부치는지 자주 쉬어가며 마릿수보다는 하룻밤의 주어진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하던데, 과연, 나도 저 나이까지 바다구경을 할 수 있을는지 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만……. 자리 배정을 위한 빨간 딱지가 국방색 담요 위에 펼쳐졌고 단골을 위한 배려가 따로 있었는가는 모르겠다만, 뭍에서와는 달리 잡은 갈치들을 담을 큰 쿨러들이 십여 개나 실려 있었기에 하나를 골라 내 자리로 가져왔고 혹시나 멀미에 시달릴지도 모를 백 사장님을 가장 흔들림이 적을 자리로 앉혀 놓으니 끝에서 두 번째가 내자리가 되었다……. 추자에서 오는 것이 분명한 쾌속선을 바라보며 지그재그로 달리다, 서다를 복잡하게 반복하던 배가 어느 지점에서 풍닻을 내리고는 낚시준비를 시작했다.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갓지은 저녁밥이 차려졌지만 모두가 국에 말아 김치 두어 쪽으로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갔는데 내게는 누룽지가 섞인 밥그릇이 차례로 돌아왔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오멘 일까???? 빌려 쓰기로 한 전동 릴 세 개 중에 내가 사용하기로 한 것이 말썽을 피워 제법 시간을 허비했는데 두들기기도 하고 다독여 보기도 하고, 한참을 핸드메이드로 씨름을 하다간 늦게부터야 억지로 작동이 되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는데 그래도 갈치는 쉴 틈이 없이 물고 늘어졌다. 이리도 잔잔한 바다였지만 일행 한분이 멀미약발이 잘 안 듣는지 잠시 선실에 들어가 쉬기도 했지만 연실 갈치가 물고 올라온다는 소리를 듣고는 선실 안에서 뛰쳐나와 한 번 더 멀미약을 먹고는 제자리에 서서 밤을 새웠다……. 무한정으로 제공한다는 꽁치미끼가 아직 많이 남았지만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작은 갈치를 포를 떠서 미끼로 몇 십 마리씩 사용하기도 했는데 꽁칫살 보다 더 반응이 빨랐고 마릿수도 많아 초행자들도 따라서 흉내를 냈기에 뜯지도 않은 꽁치상자가 남아돌았다. 갈치 회 무침과 비빔밥을 만들겠다며 조수가 갈치를 두 마리씩 걷어 갔는데 토막을 내어서 손질을 하기에 굽는가? 했더니 무슨 기계 속에 밀어 넣어 채를 썰어내고 있었다. (아항~~~ 손으로 썰어내는 것이 아니라 국수틀 같은 것을 사용하는군?) 시간이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달린지도 한참이 지나 네 시가 넘었다. 뭍쪽에서 나왔다면 철수를 준비할 시간이었지만, 3시간씩 달려서 회항을 할 거리도 아니다 보니 상당히 시간여유가 있는 편이다. 바다가 가까운 곳이다 보니 아무리 멀리 달려간다고 해도 관탈도나 절명 여를 벗어날 이유도 없고 백도 쪽으로 올라갈 일도 없고 30분 정도의 거리면 충분히 포인트가 형성이 된다니 멀리까지 배를 타고 나가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환영 받을 만한 곳이네....... 몇 번 더 내려 보고는 마감을 하겠다는 선장의 멘트가 들려 왔기에 쿨러도 가득 찼으니 더 이상 미련을 떨 이유가 없었다. 빌린 장비니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치가 않기에 반납 후, 바로 선실 안으로 들어가 편히 누웠는데 잠시 눈을 감았는가했더니 벌써 항안으로 들어왔는지 배의 엔진소리가 잦아들었다……. 갈치를 옮겨 담을 스치로폼 박스가 한 사람당 두 개, 세 개씩 필요했고 최소한의 얼음만을 채워서 배 밖으로 들어 내놓으니 영화, ‘설국열차’에서 본 듯한 총무 아줌마가 매직펜과 테이프 박스를 통째로 내놓고 허리에 손을 얹고는 서두르라고 호령을 했다. 포장박스 뚜껑에 이슬기운이 내려앉았는지 잘 써지지 않는 것을 보곤, 크레용을 내주며 대충 쓰면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는 있도록 써보려니까 혀를 차며, “ 아따, 주소는 그만두고 이름하고 전화번호나 쓰던지 말든지 자기만 알아볼수있게 표시만 하라니까~? 됐으면 빨리들 싣고들 타이소~~~ 출발~~~~~~~~!!!!! ” (택배로 부치려는가본데 날도 안 밝아 컴컴하니 문을 연 곳도 없을 텐데 왜이리 서두르는걸까?) 숨이 가쁘게 좁은 길을 달려가던 몇 대의 승합차들이 빛의 속도로 달려간 곳이 화물을 취급하는 곳이었고 첫 손님으로 박스 하나에 대략 7천 원 정도의 운임을 지불했더니 나중에 찾아 가라며 ‘철퍼덕~!’ 스티커를 붙이더니 어디론가 가져가버렸다. 꽃이 나오기 시작한 철이라 화물을 조금만 늦게 부치면 오후에나 찾게 되기에 서둘러야했다는 설명을 들었고 타고 온 차에 다시 타고 그제야 훤하니 밝은 길의 옅은 안개를 헤치고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이번엔 아침식사를 하란다…… 다른 것으로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오늘은 소머리 국밥, 땅을 밟았으니 목을 축여야 한다며 백 사장님과 함께 아침 이슬도 세잔……. 또 차에 오르라는 독촉이 있었고 이번엔 사우나를 하라며 어느 목욕탕 앞에 내려놓았다……. 예전에 관탈도를 한참 다닐 때에 단돈 오백 원을 내고 노천 삼다수 목욕을 하던 곳에 번듯한 건물을 지어놓았는데 갈치낚시를 오는 손님들에게 식사와 함께 제공되는 코스란다……. 인낚의 조황 란에서 보았던 화물실어 보내기, 아침식사와 사우나가 제공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군??? 어제, 도착했던 자리로 되 실려 온 시간이 오전 8시30분, 이른 시간대의 출발 편을 준비했다는 이틀박이 손님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먼저 떠나자, 화물이 도착해 있으니 찾아가라는 문자가 도착했는데 사람보다 물건이 먼저 도착해 있네. 그래~~~ 11시에 출발하면 12시가 넘어서 서울에 도착을 하여 물건을 찾을 수가 있을 테니 두어 시간 동안 기다려야하기에 사람들이 없는 멀찍이 떨어진 곳의 의자에 앉아서 두 어르신들이 단잠을 자기 시작했으니 졸지도 못하고 손가방을 지키다가 출발을 할 수가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숨 가쁘게 차는 찾았지만 이번에는 화물을 찾는 곳이 어디고? 멀리, 맨 끝 쪽에 있는 화물청사의 바닥에 주인을 잃고 내던져진 채 뒹굴고 있는 일곱덩이의 상자가 눈에 뜨였기에 재빨리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니 꼭, 24시간이 걸렸다. 도대체 낚시의 변화가 어디까지 일까? 그물로나 잡기에 시장에서 사 먹을 수만 있는 줄 알았던 호래기 같은 것도 낚시로도 잡기 시작하여 새로운 낚시장르로 등장한지도 한참이 되었고 거문도 선착장 부근에서는 대낮에도 간간히 오징어를 보기는 했었지만 무심하게 쳐다보기만 했었는데 무늬오징어를 낚시로도 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시간만 된다면 그것도 당장에 해보고 싶다만 마음으로만 벼르고 있을 뿐, 그저, 바다와 먼 거리에 살고 있음을 원망할밖에……. 또 자새로나 잡던 우럭 같은 것도 장구통 릴로 잡다가는 오래전부터 전동 릴로 바뀌었는데 이제는 광어나 참돔을 찌낚시가 아닌, 다운 셧, 타이라바 같은 기법으로 잡아내기에 이르렀고 자새로나 잡던 주꾸미도 릴을 사용하기 시작하더니 그것조차도 전동 릴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물로는 못 말릴 씨 말리기가 이미 시작되었기에 위기를 감지한 김 선장이 탄식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제 주꾸미나 참돔, 광어도 몇 년 안 남았을껍니다......’ 2백 마리도 넘게 갈치를 잡아왔기에 나누어 주기도 바쁘다……. 그중에는 갈치의 씨알이 잘다며 시장에서도 몇 푼 안한다며 한번에 조림을 해 먹었다하고, 누구는 갈치의 크기가 썩, 크지는 않지만 싱싱한 것이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 오기도 했는데 도대체 욕심이 얼마나 파도를 치기에 씨알이 잘다고 할까? 한배에 이십 명 정도가 타서 잡은 갈치의 숫자가 몇 천 마리가 넘지만 욕심껏 생각하는 4지며 5지며 하는 굵은 갈치는 불과 몇 마리에 불과했다……. 잠실 경기장에 몇 만 명의 관객이 들어왔다면 그중에 최홍만 같은 거인이 몇 명이나 있을까? 손질을 끝낸 갈치 중에서 2~3번째의 실한 토막만을 골라낸 마나님이 어딘가로 보내야겠다며 따로 추려내기에 뒤 토막만 차례가 온다며 갈치를 좋아하는 딸내미의 입이 튀어나왔다……. (뭘, 그러니? 한 번 더 다녀오면 될 것을~~~~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