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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반가워~, 만재도~! 3. (Happiness

by 찌매듭 2009. 8. 13.

 

마지막 하룻밤을 남겨 두었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었다. 만재도를 빠져 나가기 위하여 여객선을 타려는 사람들이 급히 달려 나가는 소리였나 보다. 몇 일전까지만 해도 혼탁한 도시의 소음과 공기에 몸이 담겼었는데 바닷가의 싱그러운 공기가 몸 안으로 스며들자 혼탁했던 정신이 깨어나고 지쳐서 피곤했던 몸을 일으켜 세워주니 바다가 지닌 마력은 정말 대단했다.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이렇게 모든 것이 다르다니……. 다시금 정신을 차리니 곧 돌아갈 일상이 문득 두렵게 느껴진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남은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개념이 아니라 삶에 견주어 시가 되는 삶이기도 하다. 또 하루가 누적되어 내 인생이 되고 두고두고 기억해둘 생각의 이미지가 되어 뇌리에 각인될 것이다.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러다가 가끔씩이라도 이렇게 바다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다. 살았기에 살 수 있는 또 하루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 아니겠나……. 목포로 가는 여객선이 떠나고 애써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느니 방을 나서 마당에 나가 앉아 골목 사이로 숨어들어 오는 바람을 맞고 보니 구름사이로 빠져 나온 밝은 햇살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한 자락 다가온다. 시원한 옷차림이 어울릴 기온, 팔에 닿았다가 스쳐가는 바람이 때로는 시원하게, 때로는 차갑게 느껴지는 한낮의 계절이 어떤지 잊게 해준다. 오늘은 뭍에 있다가, 고향을 찾아온 선장님의 작은 아들 ‘경록’ 君도 함께 하기로 했으니 고기가 안 낚인다 하여도 심심치가 않을 것이다……. 서른을 훨씬 넘긴 청년을 처음 본 것이 학생때로 기억되는데 소년이 청년으로 변하도록 만재도를 넘나든 셈이다........ 오동 여를 지나며 금년에는 아직 손을 타지 않았으니 돌돔이 제법 들었음직 하다고 선장이 낮은 목소리를 냈지만 이번에는 장대를 갖고 오지도 않았고 여건도 맞지를 않는 것 같다. 구름이 끼었으니 어제의 반대편 자리를 골랐고 가거도 방향으로 떨어지는 뜨거운 해 구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니 가지고 간 선크림이 남아돌 판이다. 섬사람이라고 구석구석을 알고 있지는 못하는지 포석정을 연상케 하는 아담한 연못이 무척이나 신기한 모양이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직이 떨어져 자리를 잡고는 수심을 체크하는 것이 처음 내려 보았는가 본데, 나도 몇 번 내려 본 곳이긴 하지만 겨울철에는 별재미를 못 보았었고 여름철에는 마주 보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보통 고생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엄두도 못내는 곳이다. 조금 늦어서야 두 척의 배가 근처를 맴돌았는데 조금 서두르다 보니 우리가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 자리도 보통 험한 자리가 아니다보니 어떤 맹추가 편안하긴 하지만 너무 높은 윗자리에서 밑밥을 뿌리다가 자리를 더럽혀 놨을꼬? (고기를 걸었다해도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을꺼얌~!!!) 작년에 내려 보았다가 서 씨 아저씨가 너울파도를 뒤집어쓴 ‘이 종 철’ 님의 험악한 단골자리는 오늘도 비어있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천덕꾸러기 명당으로 두 번쯤은 내려 보아야 만재도를 다녀갔다는 소리를 들을법한 곳이긴 하지만 흐린 날을 골라 간단한 짐만 들고 내렸다가 한물만 보고 빠져나와야지 하룻밤을 꼬박 지새웠다가는 온몸에 성한 구석이 남아나질 않을 험한 곳이다 보니 어떤 미운 놈에게 추천을 하여 한번 골탕을 먹여볼까? ^^;; 처음 보는 연못이 신기했던지 유심히 내려다보던 만재도를 사랑하는 청년이 보라성게를 발견하곤 몇 마리 떠내와서 서 씨 아저씨에게 보이자 성게만 끼워 드리우면 백리밖에 있는 돌돔도 달려와 물어주는 줄 알았는지 10미터짜리 장대를 펼쳐들었는데 아저씨, 마음을 비우시지요......... ^^;; 금년부터는 갑자기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 무언가를 한꺼번에 깨우쳤는지 서 씨 아저씨는 고기를 잘도 잡아내었다. 미끼도 선행 시키고 수심파악도 한 번에 척척 하는 것이 요 며칠 사이에는 목청이 아프도록 잔소리를 퍼부을 일도 없었고 첫 고기부터 혼자서 뜰채 질까지 척척, 해내는 것이 이제는 안개도 깔고 구름도 부르려나보다. 해가 지기 전에 도시락을 갖고 온 배가 돌아가지를 않고 주위를 한동안 머물었는데 집으로 돌아간 선장님이 궁금함을 못 참겠는지 조과가 있었는가고 물어 온 초저녁까지는 서 씨 아저씨 혼자서만 낚아낸 고기밖에 없었는데 오늘도 초저녁에 첫 고기를 걸더니만 떨어뜨리지도 않고 모조리 끄집어내어 몇 마리째인지 덜그럭 거리며 꾀미를 매만졌고 찌 하나 잃어버리지 않는 경제적인 낚시를 펼쳐 갔으니 불경기의 여파일까? 생강도 알맞게 익은 것일까? ^^;; 밤이 깊어서는 제법 큼지막한 참돔을 걸어 도움도 없이 건져 내더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한밤중에는 버너에 불을 당겨 사발면도 한 그릇씩 돌렸고 자정이 넘어서는 피곤함을 못 참겠던지 모기약을 듬뿍, 뿌리고는 잠이 들어 버렸다. 좀 더 넓은 공간이 차지가 왔고 좀처럼 잠이 안 오다 보니 밑으로 기어 내려가 밑밥을 몇 주걱 넣고는 좌우로 수시로 변하는 물살에 찌를 흘리다 보니 크지 않은 상사리급 참돔들을 몇 마리 낚을 수 있었고 곧 이어 억센 당김에 벌떡~! 일어섰는데 워밍업, 서해 참돔보다는 더 큰 놈이 분명했다. ‘짜르르~~~~~~~~~’ 넉넉히 스풀을 열어, 줄을 풀어 주다가 조이고 당기다 보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고 숨이 가빠지는 것이 예전에 만나보았던 대물이 틀림없었다...... 끝 간여와 외마도의 계단 발밑에서 들어 온 벼락치기 입질에 스플이 바닥이 나도록 달렸던 놈과 한 종족일 것이다. 팔뚝의 털들이 올올이 일어섰고 코끝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고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견디었기에 끄집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한발, 한발 수면을 향해 발을 옮겼다. 뜰채가 어디에 있나 확인을 하고 여차하면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주위를 둘러본 순간 , 약간 헐렁한 느낌이 왔고 허망한 마음으로 채비를 거두어 보니 집어용 케미라이트가 달려 있는 것이 그 아래쪽 어딘가가 쓸렸나 보다......... (정말, 큰 놈이었는데....... 아깝다……. 쩝........) 잠시 후둘 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고서는 바뀐 물 방향 쪽에서도 가끔씩 큰놈이 나타나곤 했으니 그쪽이라면 지형이 넓어 편하겠다 싶어 자리를 옮겼고 물방향이 맞다보니 고만고만한 놈들을 두어 마리 낚았으나 언제 갑자기 만재스러운 놈이 덤빌지 모르니 신경을 잔뜩 ‘레드 존’ 까지 올리고 있다 보니 ‘후드득~!!!’ 낚싯대를 당기는 우악스런 입질이 닿았다. 이번 한 마리로 일정을 끝낼 작정으로 헤드랜턴도 밝게 켰고 여차하면 대자로 편히 자고 있는 서 씨 아저씨의 아직, 쓸 만한 소중한 부분을 뜰채의 끝으로 두들겨 깨울 작정으로 뒤돌아 봐 두었는데 어째, 아까 보다는 당김 새가 덜한 것 같은데 천천히 힘을 쓰려나? 만재도를 대표할 만한 큰 참돔이라면 나중의 스퍼트에 머리털이 곤두설테니 잔뜩, 긴장하다 마른침을 한 번 더 삼켰고, 강하고 신중하게 릴링을 하게 되었는데 ‘아니다.............’ 얼마 만에 불빛에 모습을 드러낸 놈은 그저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 시대급 참돔이었다. 농어 떼가 들어 왔는지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 곁눈에 들어왔고 가끔씩 청개비가 싹뚝하니 잘라지는 것이 수심 층을 달리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내일 아침녘에 농어 낚시를 잠간하기로 하였으니 참돔낚시에나 주력하자고 욕심을 눌렀으나 더 이상, 이어지는 입질을 못 건져내곤, 여명이 밝아 오는 것을 보며 채비를 거두었다. 약속한대로 선장과 농어 루어낚시를 하게 되었지만 이미 중썰물 시간이다 보니 이 시간의 물때에 어느 특정한 포인트를 가기에 농어를 낚을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예전에 태도에서 해 본 것과 같은 형식이었지만 그때는 아침의 만조시간대였었고 지금은 외연도 권에 비교한다면 이미 깊고 깊은 은신처로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 의외로 가까운 곳으로 향하여 포말이 있는 곳으로 루어를 던지라 했지만 평시에도 그리 했는지 너무 갯바위 가까이 배를 붙였다. 루어를 던지기에는 편하지만 의아하고 믿음이 가질 않았지만 지난해에 해본 경험이 있는 서 씨 아저씨는 그때와 똑 같다며 염려 말고 갯바위의 포말 지는 곳만 골라 루어를 던져 보란다. 낚시 중에 가장 자신 있는 것이 농어낚시이고 루어낚시이다 보니 경험에 따른 불신이 앞을 섰지만 몇 번 던짐에 올라가는 포말사이로 희끗하니 농어의 몸체가 보였고 몇 번 던져 본 후에는 제법 타이밍을 맞추다 보니 연거푸 농어를 걸긴 했으나 심한파도에 배가 흔들려서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몇 마리의 농어를 쉽게도 끌어내어 쿨러 채우기 참, 쉽겠구나. 했더니만 배에 무슨 이상이 생겼는지 엔진이 쿨럭 거리며 감기에 걸린 것이 오늘의 운세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눈치를 보는 선장에게 돌아가자는 손짓을 보내니 금방 얼굴에 웃음이 오르는 것이 퍽이나 마음을 졸였던가 보다……. 민박집에서 편히 지내던 일행들이 기어코 마지막 농어회까지 맛보겠다며 방파제에서 기다리고 있다간, 가장 크고 싱싱한 놈을 골라들더니 옆구리에 꿰차고 민박집을 향하여 달음질을 쳤고 간밤의 수확물인 참돔과 몇 마리의 농어를 급히 손질하여 짐정리를 해놓고 집에 올라 가서 깍뚝, 하니 썰어 놓은 농어회 한 점을 곁들여 이번 여행에서의 마지막 식사에 끝까지 이슬을 곁들이고 죽은 듯이 짧고 단 두 시간의 잠을 즐기고 나니 목포로의 철수를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울려왔다. 낚시꾼은 몇 명 되지를 않았고 섬을 다녀가는 섬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태풍소식을 들으며 섬의 배들까지 피항길에 나서게 되었다. ‘쿠당탕~!’ 거리는 물길을 건너도록 멀미도 하지 않고 보채지도 않는 어린 것이 용하기만 하다……. 섬마다 다리로 잇겠다는 공사가 펼쳐져 있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듯한데 이러다간 어느 섬까지 다리로 이어질까? 내려올 적보다 더 늘어난 산더미 같은 짐들을 억지로 차속에다 밀어 넣고 뒤를 돌아보니 태풍이 온다지만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있고 바다가 있고 바람이 있고 시원한 파도소리가 있었다. 잠시나마 정지된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고기잡이에만 급급했던 조급함을 이제야 내려놓고 결코 좁지 않은 면적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기에 좁게만 느껴지는 도회생활로 되돌아가야한다. 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의 일들이 어깨를 누르는 팍팍한 삶이 몸의 어디를 조여 오는 숨 막힘이 가득한 그 곳에서 언제고 다시 시간을 내어 찾을 때까지 그 섬과 바다는 그대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좀 더 맑고 투명한 바다를 찾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 바다에는 아주 유혹적인 색깔이 숨어 있습니다. 미명과 새벽 바다 사이, 박명과 저녁 바다 사이 바다는 잠시 자신의 색깔을 바꿉니다. 우리는 흔히 쪽빛 바다라 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바다는 쪽빛은 아닙니다. 영어로 블루(blue)라고 하기에도 설명이 부족한 색깔입니다. 바다가 가진 원색, 옷을 갈아입는 바다가 잠시 보여주는 속살 같은. 그 색을 찾아 고민하다 이런 색깔을 얻었습니다. 셀루리언 블루(cerulean blue)와 색스 블루(saxe blue) 사이. 그 사이에 바다의 가장 섹시한 색깔이 있습니다.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지만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자궁 속이었을까요. 시카고의 시인 샌드버그는 시인은 바다 속에서 살다 뭍으로 나온 바다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색스 블루에 가까운 바다의 색깔.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그 색깔의 유혹에 눈이 멀었을 것입니다. 바다가 쪽빛 스란치마를 벗는 소리. 하늘이 숨을 죽이는 그 황홀한 시간. -정일근의 색스 블루의 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