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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담긴 조행기/만재-가거-추자-거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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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매듭 2015. 3. 21.



위치 : 
만재도(晩材島)는 동경 125°28′, 북위 34°12′에 위치하며, 목포 남동쪽 105㎞, 
흑산도 남쪽 55㎞ 지점에 있다. 태도와는 30km, 진도의 서망 항에서는 62km 거리이며
최남서단(最西南段)에 위치한 가거도와는 40km 정도 떨어져 있다.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리에 있는 유인도로 섬 주민들은 큰 산으로 부르는 
마구산(177m)을 중심으로 한 서쪽의 남북으로 뻗은 산지와 동쪽의 동서로 가로놓인 
산지 사이를 낮은 지협부(地峽部)가 이어주고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자갈길을 말함.)

면적(크기) : 
0.60㎢ (181.500평, 알기 쉽게 약 20만평으로 표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치만으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넓은 면적을 알기 쉽게 
표현할 때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말로 비교한다.    
윤중로 제방 안쪽의 여의도 면적은 2.9㎢(87만7천 평)인데, 한강시민공원 등 
한강 둔치까지 포함한 면적은 4.5㎢(13만6천 평), 한강 하천바닥까지 포함한 
행정구역상 여의도동 전체면적은 8.4㎢(254만1천 평)이다. 
국토교통부는 2012년에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고 표기할 때에는 
그 기준을 제방 안쪽의 여의도 면적인 '2.9㎢'로 통일해 쓰기로 하였다.

인구 : 
2015년 3월 현재, 실지 거주인구는 27명, 주민등록상의 등재 인구는 40명 정도,
대부분이 노약자로 남녀 비율이 3:7 정도……. 아줌마, 할머니들이 더, 많다, 
아이들....... 현재, 한 명도 없다........ 가끔, 육지에서 들어온 아이들을 볼 수가 있는데 
꼬맹이들이 긴 여정에 뱃멀미로 고생을 하니 섬에 있는 주민들이 육지로 나가는 편이다. 
이런 역귀성이 이곳에서는 진작부터 있었지만 최근에 섬 주민들의 선비가 저렴해진 것도 첫째 이유되시겠다.
뭍에 나가있는 자녀들이 방문을 한다면 십만 원 이상의 선비가 들지만 주민등록이 만재도로 등재가 되어 있다면 
만 원 정도의 선비만 내면 된다.(왕복 여객선비)
여객선에 물건과 우편물, 사람을 태워주고 내리며 협조하는 도선을 맡고 있는 유일한 
삼십대 후반의 고현진 어촌계장과 또 다른 삼십대 후반, 한명이 있고
그 외의 사십대 두 명이 섬에서는 가장 나이가 어리고, 오십대 아줌마 네 사람이,
젊은 축이며, 물일도 하고 홍합이며, 미역작업, 돌김채취, 거북손, 배말을 따는
오십대 후반~6~70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목포에 나가있는 마누라와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과 생이별을 하고 있는, 어촌계장 현진 이는 주말 부부다. 
아니, 월말 부부가 맞겠지……. 주말마다 찾아 올 수도 없는 것이,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 다시 
배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날씨가 크게 좌우되다 보니 방학 때나 오는 것이 편하겠고 어촌계장으로서의 
사명감이 있다 보니 가끔은, 도선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잠시 맡기고 자기가 목포를 다녀오는 것이 편하겠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는 불금이라는 말도 배부른 뭍사람들이나 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현진아.... 가끔씩 뜨거워지는 밤은 어찌 보내는고? ^^;;
그의 색시는 원래 흑산도 아가씨였다고 한다.
섬사람들 대부분이 지긋지긋한 섬 생활에서 벗어나고파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다는데 이 아가씨는 배를 타고 목포로 뛰쳐나가서 육지신랑을 구하러 나섰다가 틀림없이 
육지 남자겠거니, 젊은 총각하나를 사귀었고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뛰어 넘고서는 드디어 섬에서 
탈출하게 되었다고 기뻐했단다.
이제는 신랑이 될, 남자를 따라 시댁을 갈일만 남았는데 날을 잡아 선물도 한보따리 사들고 
따라나서 보니, 여객선터미널로 가더란다…….
“오빠,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응……. 우리 집…….”
배를 타고 흑산도를 지나, 가거도를 지나, 도착한 곳이 만재도였으니, 섬 생활을 청산하려고 뛰쳐나왔다가 
더, 먼 섬으로 가고 말았으니 흑산도 아가씨의 가슴속은 더욱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말았다…….
(믿거나 말거나...... -,,-  )


.
교통편(요금) : 
1-목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오전 8시 출발 하는 여객선을 이용하여
비금+도초도 09:10분-다물도 10:10분-흑산도 10:30분-상,중태도 11:20분-
하태도 11:40분-가거도 13:00-만재도 13:50분-하태도 14:30분-상,중태도 14:50분-
흑산도 15:30분-다물도 15:50분-비금,도초도 16:50분-목포항 도착 17:40분, 
목포에 도착했어도 짐이 있다면 18시30분 이후에나 여객선 터미널을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손수레 운반비는 1~2만 원 선에 사용가능.
비금, 도초, 흑산, 다물, 상중하태도에 잠시, 볼일이 있다면 몇 시간 지체했다가 되돌아 오는 배를 타고 
올수도 있지만 가거도와 만재도는 현지에서 일박을 한 후에야 다음날 되돌아 나올 수가 있다.
물론, 다음날 해상날씨가 좋아서 여객선 운항이 가능해야하겠는데 풍속이 14미터이상 불고  
파고가 3미터 이상이면 여객선과 관광선 낚시 선은 출항이 통제된다. 태풍과 풍랑주의보, 
해무주의보상태에서도 운항이 금지 되는데 날씨가 좋아도 안개가 짙다면, 이날도 운항이 금지된다.
파도라는 것이 바람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므로 맑은 날이라 할지라도 바람이 거세다면 주의보가 
발령될 확률이 높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여객선은 격일제로 운항되었는데 짝숫날은 운행을 하고
홀숫날은 점검을 하기위해 휴항을 했다. 워낙, 먼 곳이라 자칫 사고라도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정비를 철저히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지난번에 부임했었던  높은 나리께서 직접 배를 타고 신안군의 섬 지역 순찰에 나서보고는 
고생스럽고 불편한 것을 직접 체험을 해 보고나서야 섬 주민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매일 같이 
배를 운행하도록 지시를 하여 현재와 같이 매일같이 배가 다니도록 한 것이 불과 4년쯤 되었나보다. 
예전의 도지사 나리들은 섬 순시는커녕, 주지육림에 빠져 놀고만 먹었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예전에는 도서민에게는 20% 정도의 선비만을 감하여 주었다가 오천 원정도만 받도록 하는 파격적인 지원으로 
섬사람들의 육지 나들이가 수월해졌다. 그전에는 명절이나 되어야 육지 나들이를 했는데 설날이나 추석명절을 
육지에서 보내고 섬으로 돌아온 할머니, 아줌마들의 헤어스타일을 보면 짧고 빠글빠글한 파마스타일로 
똑같았는데 미용실도 한집이었겠지만 반년은 지나야 다시 머리를 손 볼 수 있을 테니까…….
추석이 지난 무렵, 만재도로 낚시를 가서 아줌마 얼굴을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오곤 했다.
‘어? 아줌마와 할머니들 파마들 하셨네?’
뒷모습을 보면 모두가 똑같아서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으니........
또, 예전에는 도서민은 20%의 할인만 있었으나 매일같이 여객선이 다니게 되면서는
섬주민들은 무조건 5천원만 받으라하여 4만원을 내고 다니던 육지 나들이가 큰 부담을 덜게 되었다.
갑자기 요금이 공짜가 된 기분이라 가거도나 만재도, 태도 사람들의 육지 나들이가 
부쩍 늘어 나긴했으나, 그들이 육지에 나오면 무얼 하겠나? 어차피 하루라도 자야만, 
다시 섬에 들어 갈 수가 있기에 불필요한 지출도 늘어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열기가 식는 것은 당연해졌고 
지금은 나들이도 예전같이 횟수가 불어버렸다.
(가거도나 만재도로 자주 낚시를 간다면 주민등록을 옮겨 놓고 오천 원에 다닐 수도 있겠다만…….쩝……. -_-;; )  
전출입 신고는 면소재지가 있는 흑산도에 가서 해야 하는데 만재도에 있는 이장에게 
확인을 받고 흑산 면사무소에서 신고하려면 교통편상, 꼬박 이틀이 걸린다. 



요금은 거리에 따라 적용이 되는데 만재도는 지나가는 길목에 있지만 방향이 약간,
어긋나 있다 보니, 하태도에서 곧장 가거도로 향하였다가 되돌아오면서 만재도를 들르기에 
배를 탄, 시간과 거리가 더 멀어도 가도도보다 요금이 5천여원 더 싸다……. 
섬주민에게 적용되는 요금이 5천원과 6천원이 있는데 배가 직접 접안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 곳은 5천원, 물위에서 현지도선을 이용하게 되는 곳은 1천원을 더 내야하는 차이가 있다. 
(외지인에게도 1천 원씩 적용~!)
2-목포 북항에서 출발 하는 낚시전용선이 몇 척 있으나 낚시를 할 수 있는 계절의 날씨와 
물때에만 운행하고 새벽 2시경 출발하므로 사전에 알아보고 이용해야한다.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며 2015년 3월 기준, 왕복 14만 원 선으로 십여 명 이상이 있어야 운행가능~!)
현지인 출신이 운영하는 목포, 만재 이 선장 낚시점(010-9073-9820, 061-285-9820)
3-진도 서망 항에서 주로 가거도를 가는 낚시전용선을 이용할 수도 있으나 출발시간대가
새벽 3시경이다. (목포 북항에서의 출발거리보다 짧은 관계로 뱃삯은 12만 원대로 출발 인원이 
어느 정도 되어야만 운행 가능,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
4-대절선 이용방법, 여객선을 통째로 대절할 수도 있는데 비용이 부담되시겠다.            
몇 년 전에 낚시대회를 위하여 쉬는 여객선을 이용한 낚시점이 있었는데 약 4백만 원선이었다. 
지금은 7백만 원쯤???  진도 서망항이나 목포에서 작은 낚시선이나 어선을 대절하면 100~150만 원 선으로 
시간선택이 자유롭긴하다만 단체객이나 낚시점에서 운영하지 않는다면 개인 이용은 불가할 것이다.


숙박 및 편의시설 :
2005년 폐교가 되어버린 만재초등학교를 수리하여 마을공동으로 운영하는 펜션으로 만들어서
섬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외지인에게 빌려줄 수 있는 방을 한두 칸이라도 갖고 있는 집은 적은 수의 손님이라도 받곤 하지만
여러 명의 단체손님은 펜션을 이용하면된다.
시간이 나고 여분의 방이 없는 마을 아줌마+할머니들이 돌아가면서 밥도 해주고 관리도 하고 있는데 
방문경험이 없는 단발성 여행객이나 낚시꾼이 주 대상이다.
슈퍼? 말이 슈퍼지, 무엇이 있을까? 한정된 담배종류 약간과 오래두어도 상하지 않는 마른과자 몇 종류뿐, 
외부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들어가야 하는 곳으로 슈퍼주인을 만나려면 당대표 만나기보다 더 어려울껄? 
내가 낚시를 갈 적마다 이것저것 군것질 거리를 가져간 것을 늘어놓으면 만재슈퍼 몇 개는 차릴수 있을게다.

ps :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추자도, 거문도, 백령도, 울릉도를 다니는 쌍동선이라 불리는 공기 부양식의 
제트 분사식의 쾌속선이 하루에 한번 운항하며 풍속 13미터 이상, 파고가 3미터 이상,해무주의보나, 
풍랑주의보, 또는 오전에는 괜찮지만 오후에 날씨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거나 아침 안개가 안 걷히거나, 
목포의 날씨나 일기예보 상으로는 이상이 없지만 현지의 일기가 나쁘다는 연락이 있으면 무조건 결항한다.
목포에서 만재도로 바로 직항하는 것이 아니고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여 경유하는 섬들에서의 지체시간에 따라 만재도 도착 시간이 편차가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흑산도에서 1박을 해야만 했는데 흑산도에서 출발하는 가거도행 배편이
아침 10시경에 배편이 있기에 갈아타고 가야 했으나 94년경부터, 현재와 같은 쾌속선이 
목포항에서 짝숫날에만 격일제로 운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행기에 준하는 새 배라며 제복을 입은 여승무원들이 안내방송도 하며 머리를 
조아리며 구명복 사용방법을 일러 주었지만 낚시꾼들에게는 낚시용 신발을 벗어들고 타라고 행패를 부렸다. 
뱃바닥에 깔아 놓은 카펫이 긁힌다는 배부른 이유였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투자비용을 회수했겠고, 
낚시꾼 손님의 비중이 크다고 생각했는지 지금은 구박을 하지 않는다.
워낙, 멀고 험한 길이라 지금은 여승무원들도 없어지고 우락부락한 선원들로 바뀌었다.



개 요 :
해안은 암석해안이 많고, 서쪽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여 있다. 
1월 평균기온 3℃, 8월 평균기온 26℃, 연강수량은 984㎜, 연강설량 7㎜ 정도로 되어있는데
물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어느 섬에든 물이 있으면 사람이 들어가 살 수가 있기에 
민물이 솟는 우물이 있어 1700년경 평택 임씨가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하고 그 뒤 김 씨와 이 씨, 
최 씨, 고 씨가 들어왔다고 알려졌지만 현지인들은 조 씨가 먼저 들어왔었다며 또 하나의 쓰레기가 될 것이 
분명한 인공 석으로 만들어서 세운 만재도 표지석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이 엉터리라고 한다.
만재도가 분명한 이 곳에 필요도 없는 돌덩어리를 무엇 하러 헛돈을 들여 만들었는지도 부정스럽게 보고 있고……



기타 : 
만재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섬의 이름은 해가진 후에 고기가  더 많이 
잡힌다는 데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제주도 권에 속했다며 민박집 아저씨는 만재도나 가거도 주민들은 
호남사람이 아니고 제주도 사람이라고 하는데, 지구인이면 어떻고, 우주인이면 어떨까,
차라리, 한국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1983년부터 행정구역개편으로 신안군 흑산 면에 편입되지 않고 초기 때와 같이 진도군으로 속하였다면 
교통도 더 편하고 진도권의 발전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목포에서 출발하는 배편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진도의 서망 이나 팽목 항에서 출발을 한다면 지금의 
절반정도의 시간이면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태도, 만재도, 가거도만 운행하며 앞의 기항지를 줄이던가하는 방법도 있는데 
머리들이 보통이상으로 단단한 사람들이 행정을 하니....... 쩝…….
구십 년대 초부터 현재와 같이 목포 북항에서 운행하는 낚시전용선이 생기기전인 2005년 까지는 
진도의 팽목 항과 서망 항에서 출발하는 낚시전용선을 이용해야했었는데 수십 년간 이어지는 
목포, 진도간의 도로공사는 도대체 끝이 나질 않는다……. 정권이 바뀔때만 지원이 있는지 
잠시 가속도를 냈다가 곧, 흐지부지..... 앞으로도 십년은 더 지나야 마무리가 되려는지……. 
최장수 도로공사로 이름을 남길 것같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일반인들이라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 팽목 항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서망 항과 더불어 부동산 상승세, 전국1위를 기록하던 중이라 어떤 영향을 받을 진 모르겠다.
마땅한 부지가 많지 않은 곳인데다가 전국에서 가장 꽃게의 품질이 좋고 생산량도 많은 곳으로 
인천, 서산, 태안, 대천, 무창포 등지에서 행해지는 그물식이 아닌 통발식이라 선도가 좋고
스트레스가 적어 품질이 우수하다. 생산량의 대부분이 군산 권까지에서 전량 소비되기 때문에 
수도권까지 올 물량이 없다.
구십 년대 중반에 병풍도 에서 낚시를 끝내고 서망 항으로 돌아오니 때마침 꽃게잡이 배들이 들어와 
하역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말짜리 양철 기름통을 밑까지 뚫어내고 양파자루 같은 것을 집어넣고는 
꽃게를 퍼담곤, 가득차면 자루입구를 묶고는 통을 위로 쑥, 잡아 뽑으면 한 자루가 완성이 되었는데 
자세히 보니 나이론 망이 아닌 가느다란 철사로 짠 그물망이었다.
등딱지가 퍼렇다 못해 시꺼먼 것이 아주 싱싱해 보이기에 판매의사를 꺼냈지만 돌아보지도 않기에 
목청을 높였더니 소매는 하지를 않는다기에 10키로(Kg) 단위로 된 한망을 사겠다고 했지만 전량이 
계약이 되어있어 그마저도 안 된다고 했던가?!
선장이 무슨 일인가 묻기에 노모(老母)께서 꽃게를 좋아하시기에 드리려 한다니 한망을 내주겠다고 했지만 
갑자기 꽃게 수송차가 나타나자 없던 일로 하자며 입을 다물었다. 할 수 없이 수송차량의 운전기사에게 
가락시장이나 용산으로 간다면 서울에서 구입을 하겠다고 하니 진도에서 나오는 꽃게의 전체물량은 
군산까지만 간다고 했다. 그만큼 시장도 크고 구입을 원하는 업체도 많으니 굳이 서울까지 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구십 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교통편이 불편하여 단체로 관광버스를 이용하여야만 가거도나 만재도, 태도로 
낚시를 갈수가 있었기에 대절 선을 수배해 놓은 진도의 팽목 항에 새벽에 도착하여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20명이 이른 아침식사를 했었는데 반찬으로 나온 양념한 꽃게반찬에 사람들이 반하고 말았다. 
생 꽃게에 거부반응이 있던 사람들도 그 맛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낚시를 마친 오후 저녁식사에도 
양념게장 반찬을 해달라고 미리 선 돈을 주고 갔었다.
출항시간이 엄격했던 때라 오전 6시에 출항을 하여 만재도에 도착하면 오전 9시경이었고 
청소비조로 1인당 5천원의 입도료를 내고 경운기 엔진이 달린 목선(木船) 택택이 배로 나누어 타고
갯바위에 내리면 오전 10시나 되었으니 몇 번 낚시채비를 드리우다 보면 서너 시간의 감질 나는 낚시시간에 
도시락을 먹는 시간도 아까워했고 오후 2시경에는 아쉬움을 달래며 철수를 해야 했던 당일치기의 짧은 낚시를 마치고
다시 팽목 항으로 오후6시까지는 돌아와야 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에 들어가 새벽 식사 때보다 푸짐하게 나온 양념게장에 밥을 두 그릇씩 비웠었던가?
가격이 비싼 큼지막한 크기의 꽃게는 아니었고 가격이 저렴할 작은 크기의 꽃게 였지만 도대체 서울사람들이 왜, 
양념꽃게에 환장을 하는지 밥집 할머니는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으니…….
서울에서 전날 밤 열 시경에 출발을 하여 진도에 새벽에 도착하여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았던 
힘든 낚시여정이 95년경, 쾌속 여객선이 생기고 찾는 낚시꾼도 제법 늘어나, 대절선의 수배도 쉬워졌는데 
배들의 성능이 좋아진 새 배들의 건조도 늘었기 때문이다.

흑산 초등학교 만재분교가 있었으나 2005년 마지막 남아있던 2명의 학생이 
졸업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현재는 폐교가 된 상태이다. 
가장 만재도가 흥성했을 때는 학생 수가 백 명에 달한 적도 있어 선생님의 수도
여럿이었지만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부터는 단, 한분의 선생님이
두 명의 학생을 위하여 여러 가지 과목을 가르쳤다.
학교 숙직실에서 잠을 잘 수는 있었지만 남자 선생이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 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하여 학생의 집을 하루에 세 차례씩 방문할 수밖에 없었는데 
학부모와의 대화가 매일 같이 있는 국내 최고의 환상의 교육환경이 있었던 셈이다.
내가 다니는 민박 아저씨가 만재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가 1964년이었다.
그때 멀리서 흠모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1학년짜리 여학생이 지금의 아줌마가 되리라곤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가라지로 알려져 있는  큰 전갱이(아지) 가 많이 잡히던 시절에는 큰돈을 벌었기에
흑산도의 어민들도 같이 고기를 잡겠다고 마구 몰려와 건너편에 천막촌을 형성하고 
고기잡이를 하며 유흥가를 벌려놓고 못나게 굴기 시작했기에 순진했던 만재도 사람들까지
오염이 될까 걱정이 되어 중간 부분에 금줄을 치고 경계선을 만들어 왕래를 금하였는데 
고기떼가 사라지며 어장이 없어지자 흑산도 어부들도 떠나 가버렸지만 수십 년 전 만들어 놓았던 
만리장성의 축소판 같은 콘크리트 계단길이 지금도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갱이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고기를 전량 사갔고 6.25 동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곳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났는지? 내막도 몰랐고 간 큰, 일본 배들이 직접 와서 식량과 바꾸어 갔다고 한다. 
그래서 노선장이 참돔을 선호하는지 지금도 낚시를 가면 참돔을 잡으라고 안달을 하며, 응원+성원을 하지만 
이미, 새로운 낚시터를 찾아다니다가 직접 개척했던 외연도 권에서 수도 없이 많은 참돔을 잡아보았기에 
참돔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 먼 곳에서 부터 커다란 참돔을 싱싱하게 가지고 오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고기가 크면 클수록 냉장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필요하니 얼음이 많아야 했기에
목포의 얼음공장에서 덩어리 얼음을 쿨러 크기에 맞추어 전기톱으로 재단을 하여 
얼음이 녹지 않도록 뚜껑도 열어보지 않고 만재도에서 잘 간수해 두었다가 3박4일의 일정을 마치고 
철수하는날, 쿨러를 열어보면 절반정도 얼음이 남아 있었는데, 이 귀한 얼음을 잘게 부수어서 잘 얼지도 않는
민박집 냉동고에 넣어두었던 고기들과 마지막날 잡은 생고기를 가져 오기 위하여 사용해야했는데 현지에는 
얼음도 없거니와 냉장+냉동고라는 것이 육지구멍가게의 유리뚜껑을 밀어 올리는 쇼케이스 형태였다......)
지금과 같이 공익요원이나 우편으로 입대통지서를 전달하지 않았을 때니 목포의 파출소 순경이 
직접 전달했다는데 배편이 지금보다 좋지 않았을 때니 좋은날을 택하여서 간 다해도 하루 종일 
걸려서야 만재도에 도착하면 뱃멀미로 초죽음이 된 순경나리에게 은밀한 거래를 하여 나이든 
사람 중에는 군대를 간 사람이 없다고 했던가?
점차 온난화 영향으로 가라지(전갱이/아지). 도 사라지고 고등어도 2003년 이후로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다른 어족의 회유가 많아 연중 어로를 할 수 있는 좋은 어장으로 어업이 성하긴 하지만 장비가 소홀한 
섬의 주민들은 1월부터 5월까지는 마땅한 조업을 못하고 긴 방학에 들어간다.
가거도와 홍도를 제외한 신안군, 대부분의 섬들이 물색이 탁해지고 수온이 떨어지는 탓도 있지만
북서풍이 강해지는 계절로 높은 파도로 작은 배로는 조업이 힘든 탓도 있다.
농산물로는 고구마와 콩 등이 소량으로 생산되는데 굶주린 시절에는 이 작은 섬에서 생산된 고구마를 식량삼아서 
겨울을 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배가 부를 정도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두 개로 떼워야 했겠지만....
집집마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가 있어 약간의 야채와 파, 들깨를 심어 잎사귀를 
뜯어 먹기도 하는데 어느 섬에선들 야채가 귀하지 않을까.
풍성하게 자란 상추 한 덩어리가 있기에 왜 저렇게 놔두는가? 했더니 뭍에서 사위가 온다기에 
아끼어 남겨 둔 것이라 했으니 정말, 야채가 귀하긴 귀한 곳이다.
어느 해 여름날에는 민박집 아줌마가 두 되박 정도의 콩 수확을 했던데 집에 가져가 
노모에게 드리라며 싸주려 하기에 결사적으로 사양하기도 했다. 
뭍에는 얼마든지 있으니 마음만 받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
2014년 12월에는 고구마를 한 봉지 싸주었는데 그것이 전부라고 했다…….
지금이야 작물의 모종을 몇 개씩 사다가 심는 세상이다 보니 매운 것을 즐기는 
우리 일행을 위하여 청양고추를 두어 개 사다 심기까지 했다니 원,
마을이 있는 만재도 본 섬외에 동쪽의 국도(菊島), 남쪽의 녹도(鹿島), 북동쪽의 흑도(黑島)/검은 여, 
제서(濟嶼)/형제섬&시린 여, 간서(間嶼)/큰 간여, 중간 간여, 끝 간여, 백서(白嶼)/흰여 등과 함께 
내, 외마도, 수면이 여 등의 소중간군도(小中間群島)를 형성한다.
부근 해상은 참조기의 월동구역으로 되어있으나 큰 어선이 접안할 수 있는 시설도 없고
인구도 40여명에 불과해 그물에서 조기를 떼어내 손질을 할 수 있는 일손도 전혀 없다 보니 
가거도에 몇 척, 추자도에서 몇 척이 작업을 하곤, 대부분의 어선들이 목포에서 작업을 한다.
현재는 마을 주민 몇몇만 좋은 날씨에만 그물을 몇 틀 놓아 우럭이나 열기, 농어를 주로잡고 
주낙채비에 장어 같은 것을 잡고 있는데 미끼로 사용하는 냉동멸치를 잡은 고기를 팔러 나갔다가 
진도의 서망 항이나 팽목 항에서 구입해 쓰기도하고 상고선이 운반해주기도 한다.


미역과 다시마는 한철 수입원이 되기도 하고. 약간의 돌김과 섭(홍합), 전복도 채취하고 있다. 
섬주민만의 먹을거리와 반찬이나 하던 거북손이나 배말은 하찮은 것이었지만 TV 프로그램이 
방송되어 이 오지의 섬이 외부에 알려지자 외지인들이 몰려들어 한동안 
홍역을 치르기도 했는데 연출된 방송을 보고 철없이 찾아드는 관광객들이 방송에 나온 
할머니 집을 찾아오기도 했지만 촬영을 하기 위하여 바다가 보이는 빈 집에서 
이집 저집에서 반찬 한가지씩을 모아다가 내온 줄은 모르는가 보다.
잠시 고향을 찾아왔다 방송을 하게 된 할머니는 자식이 있는 육지로 가버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휑그렁한 빈집으로 남아 있다.
그때의 방송연출자가 만재도라는 섬이 기억이 남았는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섬주민들은 만재도가 널리 알려지기를 원하기도 하지만 낚시인들이야 원할 리가 없다. 
당분간 외지인들의 방문이 늘어나면 생기는 건 쓰레기뿐이고 마땅히 볼 것도 없고 생산품도 없는 척박한 섬일 뿐이다. 
태울 수 있는 쓰레기는 소각장에서 대충 태우기도 하지만 타다 남은 재나 환경쓰레기로 변하여 태풍에 휩쓸려 
바다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니 겉으로만 깨끗한척 할뿐이다.
불에 타지 않는 그릇이나 술병 같은 것은 섬 한쪽의 물속에 그대로 가져다 버린다.
언젠가 멋진 포장박스와 예쁜 술잔도 별도로 두개가 담긴 전통(傳統)주(酒)를 섬사람들과 같이 먹으려고 
가져간 적이 있었는데 딴에는 술잔을 두고 쓸 줄 알았는데 아줌마는 술을 다 마셨으니 쓸모없는 물건으로 
간주하여 함지박에 모아놓은 별도의 쓰레기들과 함께 머리에 이어가선  물가에 쏟아 버려두었다……. 
다음날 지나가다 그것을 발견하곤, 다시는 섬에서는 필요 없는 물건들은 가져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섬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모두가 쓰레기더라고...... 그것이 고려청자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1985년 가거도로 낚시를 다니면서 알게 되었던 만재도란 섬을 구십 년대 초에처음 찾았었는데 벌써, 
이십삼 년이나 됐다. 해마다 2~3번에서 많게는 12번까지, 초기에는 숙박시설도 없어 당일치기를 하기도 했지만 
곧, 만재도라는 섬에 익숙해지면서 2박, 3박, 5박, 6박까지 했으니 백이십 번의 방문에 만재도에서 보낸 날이 
삼백일이 넘었나 보다. 어느 시인은 단, 몇 번을 찾고는 만재도에 대한 시를 읊조렸다는데 그 시인의 몇십 배를 더,
찾아 들고서도 시 한구가 안 떠오르니 시인이 되기는 그렀고, 그저, 만재도를 잘 알고, 많이 다닌 외지인중의 한 사람 일게다.
초기에는 배가 접안할 시설도 없었다가 2천 년대에 들어서서야 짧은 콘크리트 방조제가 생겨났고 해마다 
지원금이 조달되면 몇 미터씩 콘크리트 덩어리가 늘어나 2014년에야 제법 그럴싸한 시설물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도 여객선이 직접 접안하지 못하여 도선을 이용하는 섭중에 하나일 뿐이다. 
1997년에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화력발전소가 생겼기에 전기는 충분히 사용하게 되었는데 
프로판용기에 담긴 취사용 가스의 운반비가 비싸기도 하고 좁은 골목길로 집까지 가져 오려면 
운반도 힘들기에 인덕션렌지를 사용해보고픈지 민박집 아저씨가 알아봐달라고 하지만 전기콘센트를 
별도로 설치하지 않으면 사용이 어려울 게다.
노약자가 대부분이다보니 가끔씩 이긴 하지만 무거운 가스통을 집집마다 교체해 주어야하는 작업이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혼자서는 어렵다보니 나온 생각이긴 하겠지만
삼성에서 새로 나온 불꽃이 보이는 인덕션이라면 좋겠지만 가격이 3백만 원대니 만만치가 않다.
기존의 인덕션렌지를 사용하면 보이지 않는 열기에 익숙해지기가 쉽지가 않을 테니 또 문제고........
얼마전만해도 집집마다 빗물을 모아 빨래를 하고(아직도 그렇지만…….) 
먹는 물은 섬에 하나뿐인 우물에서 길어 와야 했고 몸을 씻기라도 하려면 집집마다 나무뚜껑을 덮어놓고 
자물쇠로 잠가놓은 전용 우물을 사용해야했는데 바가지로 물을 푸려고 들여다보면 장구벌레가 득시글해 
기겁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푸세식 변소에서 양변기를 설치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정화조도 없이 그대로 어디로 스며들고 있는데 섬사람들만 사용하면 바닷물에 희석되어 별 이상이 없겠지만 
많은 사람의 생활오수가 스며든다면, 자갈밭 앞의 물속에서 해수욕을 할 수도 없을게다만 지금도 찝찝하긴 
마찬가지다...... 외지인들은 모르겠지만....... 


다른 섬들에 비해 텐트를 칠만 곳이 없는  험한 지형으로 어지간한 낚시인이 아니면 버티지를 못하는 곳이다. 
야영이라도 하려면 악마같이 덤벼드는 모기떼로 큰 고생을 각오해야한다.
여러종류의 모기약을 충분히 가지고 가야한다. 
1996년이 되어서야 전기불이 들어왔고 마을에도 냉장고와 전기밥솥, 가스레인지 같은 것이 생겨났고 
잘 나오지는 않지만 중고 TV도 가끔씩 오기 시작한 낚시 손님을 위하여 들여왔었다.
지금은 스카이라이프로 시청을 하게 되었지만...... 또, 섬사람들에게는 더운 여름날에도 자연풍으로 충분했겠지만 
가끔씩 찾는 외지인을 위하여 중고 선풍기도 사다 놓아야했으니 참, 별일이다.
휴대전화가 만재도에서 사용이 가능해진 것도 2천 년대 중반에 들어와서 부터다.
섬주민이 개통을 했다고 전화가 온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었는데 특정 통신사에 해당이 되었고
2014년에야 모든 통신사의 개통이 이루어 졌다…….
점차 잡히는 고기가 줄어들었다고도 하지만 물속 바닥까지 낱낱이 알다보니
큰 대물의 욕심만 버린다면 찬거리나 회꺼리의 고기를 욕심껏 못 잡을 리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그나마도 바닥이 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든다만 앞으로 십년정도는 문제없지 않겠어?!
만재도 에서의 낚시 방법은 조행기에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기록해 두었다.
주민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했지만 예전의 이야기고 지금은 서너 집에 불과하다.
관광객이 와보았자 별로 구경 할 것이 없다보니 하루나 이틀정도면 충분하고 물이 부족하고
모기가 많아 불편하기 그지없다. 쾌적한 숙박 시설도 없다,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펜션으로 개조하여 단체객이나 가족모임에 제공하게 되었지만
육지에 있는 펜션과는 달리, 불편하고 부족한 것이 많아 한 번 찾았던 사람들이
다음번에 또 찾아올지는 알 수가 없다........
낚시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곳이지만 아무나 고기를 잡을 수도 없는 것이 
만재도 특유의 낚시를 모르고서야 어찌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타 지역에서의 낚시 방법이 통하지 않는 별난 곳이 기도하다. 
만재도 특유의 방식의 낚시가 유리하며 발밑낚시로, 손 밑밥에 손낚시로도 충분하다.
아마도 내가 하는 낚시방식이 알려 진다면 만재도의 고기가 멸종할지도 모르고 낚시점의
매상이 대폭 줄어들어 낚시점이 문을 닫는 건 아닐까 염려되어 드러내고 공개하기도 그렀지만
몇 해 전부터는 따라다니는 일행 두어 명이 터득을 하며 알려지기 시작했으니 앞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낚싯줄(목줄), 3호~10호까지
바늘(감성돔 바늘 기준), 4호~10호까지
만재도의 낚시 시기,
5월경부터 볼락낚시가 가능하며 수온이 오르는 장마철이 피크이다.
돌돔이나 참돔은 수온이 제법 오르고 물색이 맑아지는 7월부터 10월까지가 피크이고
감성돔은 11월부터 12월 중순까지며 1월 초순까지 낚시가 되나 낱마리 수준이다. 
항상 조금물때가 유리한 것이 물살의 영향이 크다보니 포인트 진입이 중요하다
만재도 낚시 어종, 
돌돔, 참돔, 감성돔, 열기, 우럭, 쏨뱅이, 노래미, 광어, 농어, 볼락, 문어, 학공치, 장어 등
포인트 약, 70여 곳을 물때와 계절에 따라 물색을 살피며 포인트 선정을 하면 된다.
추자도, 거문도, 가거도, 외연도 등 다른 섬들에 비하여 험한 편으로 텐트를 설치할 곳이 몇 곳 없는
불편한 지형으로 추자도와 거문도만 다녔던, 최 씨가 한 번 따라왔다간, 꼼짝 달싹도 못하고 얼어붙어 있다가
낚싯대도 잊어버리곤, 다시는 찾지 않을 정도로 지형이 험한 곳이다.







만재도 민박,
민박집 사용료에는 식사 3끼와 방값, 물값 등이 포함된 1인당 하루에 4만원(2015년 현재)
만재도 현지 종선료 1인당 1일 4만원,  (2015년  3월 현재)
그 외의 비용,
관광객 외에 낚시꾼은 미끼, 밑밥, 낚시용 품등의 부대비용은 별도로 개인 부담,
휴대전화가 안 되는 곳이 더러 있으며, 도깨비와 귀신이 출몰하는 지역이 있음을 경험했다.
현지에서 주민들이 그물이나 주낚으로 잡은 열기와 우럭 농어, 등은 구입이 가능하긴 하나
목포에 현지민이 만재도의 해산물을 공수해와 운영하는 음식점이 다수 있기에 
섭(홍합)이나 배말, 전복, 거북손, 돌김 등과 함께 현지인과의 친분에 따라 구입이 가능하나 
소량이라 그때마다 다르고 미역이나 다시마는 제철에는 여유가 있다.
고현진 어촌계장과 임도산 씨가 낚시 안내와 민박을 하고 있고, 
현재 내가 다니는 집은 이준식씨(010-5340-9866, 061-275-9866) 집으로 15년째
같은 집을 이용하고 있고 갯바위로 옮겨다주는 배는 없기에 조카인 현진이네 배를 
이용하고 있는데 현지에서 움직일 수 있는 배가 두 척밖에 없다보니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도 없다. 가거도나 추자도에 비하면 낚시를 할 수 있는 포인트인 
부속 섬의 수도 11개로 적은편이다. 
1996년 만재도 내연발전소 준공으로 1년에 한 번씩 공급받는 기름으로 발전기를 가동하여 생산되는 전력으로 
전기의 사용은 충분하다. 
바닷물을 담수화하여 집집마다 수도 계량기도 설치하여 물 사정도 좋아지긴 했지만 언제, 시설물이 
고장이 날지 조마조마하다. 식수도 충분히 가지고 가야 안심이 된다.


근래에 방송에 몇 번 소개되어 찾는 이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교통편도 불편하고
등산을 할 곳도 구경을 할 것도 없는 작은 섬이다. 반나절이면 온 섬을 돌아볼 수 있고
서해 중부권의 외연도와 같이 방송을 탄 소문난 맛집처럼 큰 기대를 갖고 찾아갔다가 
실망타 못해 절망을 하고 돌아갈 수도 있다.
쓰레기 처리도 어려워 외지인의 방문이 반갑지가 않은 곳이다.
그저 지금 있는 데로 낚시를 위하여 다니는 사람들이나 조용히 다니게 내버려 두어야할 그런 작은 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