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ravo My Life~!/쏘가리와 산나물

1. 쏘가리와 산나물, & 서해참돔 & 탐라갈치& 한치낚시...(호랑이 고개를 넘어서)

by 찌매듭 2016. 7. 6.

 

 

1 달에 갈치 잡이를 다녀온 것이 바다구경의 마지막이었다.

 

그것도, 두 번쯤, 채비를 담가보곤, 심상치 않게 급변해 버린 날씨에

서둘러서 짐을 꾸리곤, 선실 안으로 달려 들어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누워서는

멀미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 눈을 감아버렸기에 하나씩, 둘씩 단내를 풍기며

뒷사람들이 선실로 들어오는 기척을 느끼며 탁월한 선택이었음에 흐뭇하기까지 했으니

별일이다 만, 견디다 못한 선장이 좀더 바람에 의지가 될 만한 우도(牛島) 밑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홋이불을 털어대듯 배가 흔들리다 보니 모두가 넋이 나가버렸다.

 

그중에서도 아직, 갈치낚시에 익숙하지 않은 일행하나만이 홀로 남아

버티고 서있었는데 세 번째의 갈치 잡이였기에 원래 배라는 것은 이렇게

흔들리는 것인가 보다고 생각했다던가?

 

일행이 갈치낚시라는걸 처음 가본 것이 작년의 늦가을이었는데

단체객들이 당일에야 펑크를 내었기에 달랑, 여섯 명만이 낚시를 하게 되었는데

이런 경우를 황제낚시를 했다고 한다던가?

 

, 이 초행자가 아무렇게나 채비를 내리기만 하면 큼지막한 갈치들이 댓마리씩

주렁주렁 물고 올라오는 것을 보곤, 바다에는 고기가 많으니까, 이렇게 물고

올라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던가?

 

초행자가 두 번째 갈치낚시를 갔을적에는 날씨가 약간, 안 좋았기에 멀미기를 느꼈는지

선실로 들어가서 한숨 푹, 자고 자정쯤에나 기어 나와 낚시를 시작했는데

그제야 집어가 되어 한두 마리씩 잡아 올리기 시작한 시간이었기에 채비를 내리자마자

고기가 물고 올라왔으니 갈치 잡이가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게다......

 

삼세판이라며 세 번째부터는 더 잘 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가

뜨거운 바다 맛을 톡톡히 보게된셈이었다.

 

낚시를 시작한지 네 시간 정도만 지나면 반 뱃삯을 적용한다는 선장의

집념 같은 고집으로 조금만 더 버티면 자정을 넘길 판이었으니 절반의 성공(?)

목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험악한 날씨로 보아서는 삼십분도 더 버티기가 힘든 판국이었다.

 

결국에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 내밀고 일행에게 악을, 썼다.

 

이 멍텅구리, 바보 천치, 멍충아~~~~~~~ , 빨리 낚싯대 안 걷고 뭐하고 있는거얏~???!!!!!!”

 

눈치가 초단이었는지 그렇지 않아도 낚시를 더해야 하는건지? 말아야 하는건지?!

망설이던 중이었노라 며 ,늦게 사 선실로 들어왔지만 누울 자리는 고사하고 엉거주춤

서있을 공간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인 배안에는 신음소리들로 가득했다.......

 

새벽에 성산포에서 승합차안으로 쳐 박혀서 찜질방으로 옮겨간 시간이 새벽 1시경이었지?

 

 

몸부림을 치면서 불면의 시간을 보내다가 날이 밝아오기에 먼 거리도 아닌 선장 집으로

걸어가겠다고 찜질방문을 나섰다간, 눈발까지 휘날리며 코를 베어갈듯한

1월의 찬바람에 놀라서 얼른, 문을 닫아야했다.

 

그때, 일행 하나가 아침에 내려온 가족들과의 관광약속이 있다며 사나흘 후에나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남았다간, 폭설로 끊긴 하늘 길로 고생을 하며 며칠 더 묶이기도 했으니

몇 시간 차이로 운 좋게 탐라를 빠져 나온 것에 만족해야했었나?

 

 

 

 

  

2016년이 되었다지만 바다가 멀고 먼, 서울의 어느 하늘밑에서는 어설프게라도

바다구경을 하려고 나선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기에 어서, 덥지만 물색이 파란

여름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볼밖에…….

 

4월 중순이 되어서도 강원도의 산골주민에게서는 좀 더 기다려야만 나물구경을 할게라는

맥 빠진 소리만 들려 왔다가, 5월에 들어서야 산나물 소식이 전해져 왔다.

 

해마다 520일 부터는 쏘가리 금어기가 시작되기에 그 전에, 쏘가리구경이라도 해봐야겠다만

기상이 하수상하니 나서기가 쉽지가 않았다.

 

사용하고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책상위치와 묵은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한번 강원도 산길을 넘어봐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에 필요한 것만

간단히 챙겨서 나서보려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는데 필요한 하나를 찾으면

또 하나가 어디로 갔는지, 건망증이 도를 높여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몇 일간 더웠던 날씨도 막상, 떠나려는 날에는 잦은 비와 함께 기온도 내려갔겠다만

그동안 덥혀진 강원도 댐의 수온까지 쉽게 내려가진 않았겠지?

 

예전에는 낫으로 마구 베어도 될 만큼 취나물이 지천이었던 곳에서 새로 장만한

쿨러 백, 두개에 나물을 가득, 채우곤, 예전에 봐두었던 더덕이 있었던 산비탈에서

한바탕 호미질을 하니 두어 번 먹을 양이 땅위로 끌려올라왔다.

 

두릅나무가 많이 있는 곳도 가보았지만 입구는 벌써 발 빠른 사람들의 손을 탔기에

듬성하니 남아있는 것 중에서 따보았는데 그래도 이만큼이면 서너 번은 먹을 수가 있을게다…….

 

이 산길을 따라 좀, , 가면 더 큰, 두릅나무 군락처가 있지만 차체가 높지 않은

승용차로는 갈수가 없는 곳이니 돌아 설수밖에…….

 

소양 댐의 중류에 당도했지만 그동안의 수위 가둠으로 불어난 물이 많았기에

그만, 길이 끊기고 말았다.

 

미리 댐의 담수 량을 확인해보지 않은 미련을 탓해보며, 뻔히 건너다보이는

반대편의 골짜기로 가보자면 멀리 돌아 가야하니 중간에 해가 저물고야 말게다…….

 

이대로 그냥 돌아서기는 섭섭하니 넋이 빠진 쏘가리가 있을까 채비를 몇 번 던져 봤지만

마른풀들만 걸려 나오니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으니 뜯은 산나물이나

챙겨서 돌아가는 길에 막국수나 한 그릇 맛보는 것에 만족할 날이었다…….

 

 

 

 

 

 

 

 

 

 

봄의 기운이 들어 있는 맛있고 귀한 봄나물들을 꺾어다가 볶아먹고 데쳐먹고 무쳐먹고

쌈을 싸먹노라면 그 맛을 아는 이들은 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봄의 나물들이 잃어버린 입맛을 찾아주기에 나물을 찾으려고 움직이다 보면 봄의

기운에 녹아내려 겨우내 켜켜이 쌓아두었던 온갖 찌꺼기가 씻겨 내려가고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니 심호흡을 크게 하며 밀어 넣은 쌈 한입에

잃은 입맛도 되살아난다.

 

 

해마다 5월 중순경부터는 쏘가리 잡이의 금어기(禁漁期)가 시작된다.

 

쏘가리 금어기가 시작되기 전에 파로호나 소양호등지에 있는 나만이 알고 있을

슈퍼 골드 급의 화수분 포인트로 쏘가리 낚시를 다녀오는 것이 연례행사이다 보니

강원도 길을 곧잘 나서보곤 한다.

 

파로호에서 쏘가리 루어낚시를 끝내고 점심식사를 위하여 들러보는 화천 읍에서,

마침 장날이라도 걸린다면(3, 8) 시장바닥에는 시골 아낙네들이 산자락 중턱에서

갓 뜯어온 푸릇푸릇하고 보들보들한 나물들이 천지였는데 높은 산꼭대기서만 나는

곰취와 두릅과 다른 나물들도 많이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예년보다 비가 적거나 기온이 쌀쌀한 봄이라면 나물들이 좀 늦게 나오기도 하지만

이곳, 저곳에 펼쳐진 아낙네들의 보따리에서는 온갖, 어린 나물들이 살짝, 고개를 들고 있기 마련이다.

 

산을 타는 이들은 해마다 나물 철이 오면 별다른 반찬도 없이 밥과 쌈장만을 담은 그릇을

배낭에 넣고 산에 오르는데 나물을 뜯으면 눈에 보이는 먼지만 살살 털어 내고는

이른 점심으로 쌈밥을 해 먹기 시작한다.

 

쏘가리 낚시를 다니면서 오가다 들르곤 하는 파로호 깊은 산골집의 수정이네 할아버지는

강원도 토박이로 산나물에 눈이 밝은 분인데, 즉석에서 쌈을 싸먹는 산골 쌈밥은

자연이 입 속으로 쏙, 들어오는 최고의 꿀맛이라고 말한다.

 

찬거리 장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가끔씩 찾아오는 낚시꾼들과

산 손님들을 상대로 조그만 구멍가게를 차려놓긴 했지만 절대로

타산이 맞지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몇 안 되는 종류의 얼음 보숭이를 위하여

틀어놓은 냉동고의 전기 값이라도 제대로 건질 수나 있을까, 걱정이다.

 

워낙, 추운 곳이다 보니 음료수를 담아놓은 냉장고는 가동을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소일삼아 사람구경도 하려고 밥집과 구멍가게를 겸하였다기에 가끔 들르게 되면

인사치레로 닭백숙이나 하나 주문해 놓고는,

밤새워 낚시를 하였기에 꾸죄죄하게 끼어있을 눈곱이나 떼려고 얼굴이나 대충 씻고는

질펀하게 개울가에 주저앉아 양말을 벗어 던지고 발까지 닦고 있노라면

마당에서 노닐던 닭 중에서 가장, 재수가 없는 명 짧은 놈이,

아저씨의 손에 붙들려 털옷을 강제로 벗겨져지는 것이 보였고,

수정엄마가 압력솥에 집어넣으면 한동안 기다려야하는 동안에

알코올기가 풍기는 보리물이나, 병에 담긴 이슬 물을 먼저 청하게 되는데,

 

이때, 냉장고에 들어있는 이런저런 반찬과 함께, 할아버지가 뜯어왔다는

치마폭만한 크기의 거무튀튀한 취나물도 살짝, 데쳐서 내주는데

술안주에 산나물이 이렇게 어울릴지는 전혀 몰랐었다.

 

평소에도 나물반찬을 즐기는 나로서는 더운 김을 올리며 나중에 나온 닭백숙은 제쳐놓고

곁들이로 내주는 나물을 몇 번이나 더 달라며 이슬을 즐기곤 했다.

 

손바닥에 거무튀튀하고 넙데데한 취나물을 넓지막하게 펼쳐놓고,

살짝, 쌈장을 먼저 바르곤, 약간 식은 밥을 한 수저 올려서는, 입을 크게 벌렸다지만

그래도 흘러넘치는 밥알들을, 우기~우기, 맨손가락으로 밀어 넣다보면

이것이 더욱, 제 맛이 나니, 품위며 교양이란 단어는 모두가 허위 포장된

가식적인 말임이 드러난다.…….

 

재수가 좋은 날에는 곰취와 함께 더덕도 몇 뿌리씩 딸려 나오곤 했는데

기실, 이곳의 닭들은 모두가 놓아길러, 도시 음식점의 닭들에 비하면 야

맛이 제법이긴 하지만 온갖, 산나물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수정엄마는 가평 사람으로, 화천읍 근처에 있다는 동촌이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

동내에 산다는 지금의 수정 아빠를 아는 사람의 소개로 알게 되었단다.

 

나중에 수정이 아빠가 된, 이 양반, 중매쟁이가 한번 자리를 마련해 주니까

끝장을 보려는지 매일 같이 가평 읍내까지 찾아와, 장차 수정이 엄마가 될

아가씨에게 맛있는 점심부터 사주고는 아직, 어두워지지도 않은 초저녁부터

네온조명 몇 점이 켜진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시원한 생맥주잔을

건네주면서 억지로 목을 추기게 하며 분위기를 잡다가 또 한 번 자리를 옮긴

노래방에서는 탬버린까지 두들겨가면서 바람을 잡는 신바람 마무리를 몇 번 하더니

미리 준비해 간, 번쩍거리는 반지며 목걸이를 수정엄마에게 걸어주고, 끼워주며

온갖 뇌물로 마음을 녹이는 선물공세를 집요하게 펼쳤다는데 결국,

수정이 아빠가 된, 그 노총각이 멋지게 보이던 어느 날, 마음을 굳히게 되었기에

가평의 예식장에서 식을 치르게 되었단다.

 

신혼여행도 생략하고 바로 신랑 집으로 가게 되었기에 수정아빠의 자가용인

타이탄 짐차에 혼수 짐을 가득, 싣고는 이십여 년 간 공돈 들여서 길러 주시고

먹여주시고 재워 주셨던 부모님에게 손수건을 힘차게 흔들며 떠나게 되었단다.

 

3.8선을 넘고 화천읍도 지나더니 갑자기, 차가 포장도로를 벗어나 비포장 길로 들어섰고

흙먼지를 날리며 산 넘어~ 넘어~, 물 건너~ 건너, 달리고, , 달리게 되니

지진이 난듯 몸이 심하게 흔들렸기에 이상한 생각도 들고 왈칵~! 무서워지기 시작하더란다.

 

어째 좀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신랑 집이 대한민국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군?”’

 

언뜻, 신랑의 집이 동촌이라는 말만 들었지, 그런 동네가 있기나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고 손바닥의 손금에서부터 땀이 돋기 시작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풀과 나무와 바위 덩어리만 보이기에 이 산속이 대체, 어디일까 걱정을 하다 보니

어느 새, 해가 떨꺼덕~! 져버리고 암흑천지가 되어버렸단다.

 

인위적인 불빛도 한 점 보이지 않는 어느 산속에 있는 집 앞에 도착하였지만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이다 보니 한 치 코앞도 보이지 않기에 넘어지면 어쩔까?!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면서 신랑을 따라 신방이 차려진 방으로 들어서니 덩그러니,

호롱불만 하나 켜있었기에 내가, 납치를 당했구나? '

그만,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었다는구나!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물도 안마시며 울며불며 밤을 지새우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픈 생각뿐이었지만 대낮에도 호랑이가 나온다는

호음리 고개를 어찌 혼자 넘어서 부모님이 계신 가평으로 되돌아간단 말이냐........

 

밤에는 서방님의 따뜻한 품안에서 잠시, 탈출을 잊기도 했지만

날이 밝은 아침부터는 저 멀리 보이는 가느다란 산길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저 산을 넘어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선녀와 나무꾼같이 아이가 셋이 생기자 저절로 포기하게 되었단다.

 

공기 좋고 물 맑으니 이만하면 만족하고 살아야지…….”’

 

그나저나, 맑은 공기와 물, 서방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다보면

체구도 저렇게 우람해지는 걸까?

왜 자꾸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는지 정말, 모르겠다.……. ^^;;

 

 

 

 

  

파로호로도 불리는 화천댐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만

접근을 할 수 있었던 동촌이라 불리는 몇 집 안 되는 산골 마을의 안쪽에는

아늑하게 물이 담겨져 있는 둥그런 지형의 장소가 있었는데 그런 곳은

온갖 물고기가 서식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었기에 댐의 건너편쪽으로만

지나다니면서 한동안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간, 함께 낚시를 다니던 이들과

바지-barge ()을 대절하여 고무보트와 낚시도구들을 실은

화물차를 싣고 건너가 낚시를 해보게 되었는데 기대했던바와 같이

씨알 좋은 붕어와, 잉어, 향어 등 온갖 고기로 큰 손맛을 보게 되었다.

 

밥해먹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고기가 잘 잡혔기에 여러 명의 식사를

부탁할 집을 찾아 나섰다가 물가 가까이에 있는 수정이네 집을 찾아가

식사를 부탁하게 되었고 식사를 마치고 평상에 앉아 부른 배를 두들기며

산세를 둘러보니, 멀리 산위로 가느다랗게 작은 길이 나있는 것이

눈에 뜨였기에 물어 보니, 평상시에는 배편으로 대부분의 생필품을 조달하지만

아주 특별한 일이 생기면 산길을 이용하기는 하는데 워낙, 길이 험하여

차를 부셔 먹기로 작정하지 않는 한은 엄두도 못 낼 일이라며

수정엄마는 시집오던 첫날밤이 기억나는지 몸서리를 치다간,

지난 일들을 이야기 하며 막걸리 몇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다음번에 이곳으로 낚시를 오려면 그 산길을 넘어올 수 가 있을까?!

궁금해 하던 친구 하나가 어느 날 승용차로 도전을 하기로 했다.

 

불면 날아갈 듯한, 호리리. 한 몸매의 소유자였고 최대한 짐을 적게 싣는다면

혼자서 넘어볼만하겠다는 생각에 그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는데

산 정상을 넘고 부터는 자동차의 바닥이 바윗돌에 걸리고, 개울에 빠지고…….

애지중지하던 자동차가 오늘은 부서지나보다……. 후회를 하기 시작했지만

중도에 차를 되돌릴만한 공간도 없다보니 할 수 없이 계속하여 앞으로만 엉기다보니

얼마 만에 배를 이용하여 왔던 그곳에 도달하긴 했지만 이틀간의 낚시를 끝내고서는

도저히 되돌아 갈 엄두가 안 나는 거라......-..-;;

 

저 산길을 다시, 넘어가다가 중간에 탈이라도 나서 차가 멈춰서고

꼴딱~! 해라도 져버리면 영락없이 어둠이 밀려내려 올게고,

그 다음에 나타날 건 틀림없는 얼룩무늬 호랑이뿐~!

 

호랑이 밥이 되어 짧은 생을 끝내느니 보다는 비용이 좀 들더라도 혼자서라도

차를 배에 싣고서 구만리 선착장 쪽으로 나와서 집으로 돌아 갈 수밖에…….

 

무사히 집에 돌아온 친구 놈은 이슬 잔을 앞에 놓고 허공에 수없이

손 그림을 그려가며 혀를 내둘렀다.

 

갤로퍼 같은 찝차로도 간신히 갈수 있는 곳이니까 절대로 승용차로는 갈 생각도 말아~!!”

……. 차 수리비 엄청 나왔엉~~~~ ㅠㅠ;;“

 

이러니 산을 넘어서 낚시를 가보겠다는 도전을 몇 번이나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온갖 물고기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유혹을 물리치기란 쉽지가 않았다.

 

가끔, 수정엄마에게

'날씨가 풀렸느냐?'

'낚시 오는 사람은 무엇을 잡았더냐?'

'할아버지가 나물은 많이 뜯어 오더냐?'를 알아보려고 전화만 해보다간

드디어 사륜구동차를 새로 장만하게 되었기에 무한도전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마침 갤로퍼라는 차가 새로 나왔기에 현장용이라는 구실로 장만을 하게 되었지만

산속에 토목공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파로호에는 힘 좋은 잉어, 붕어도 많이 있었지만 워낙, 사람 손이 타지 않은 곳이다 보니

취나물 같은 것은 너무도 흔해, 손으로 꺾는 것도 귀찮다보니 아예, 낫으로

~ ~! 베어내야 성이 차는 곳이라 들었으니 나물에 눈이 밝은이를

한사람 더 태우곤, 네 바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험로 전용차로 드디어

대낮에도 호랑이가 나온다는 고개를 넘어가게 되었는데, 거리로는 8km 정도인데도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구먼.……. 이 정도야…….’

룰루랄라~! 콧노래도 불러가며 화전민의 폐가도 별난 정취로 보았지만

고개정상에 오르고 내려가면서 부터는 옆으로는 천야만야한 절벽길이 이어지기 시작했기에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는데 운전을 맡은 후배 놈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 면허증에 잉크마른지가 얼마나 되었니?”

~? 3???? 빨리 비켜 이놈아......”

 

얼씨구나, 하며 내 주었다는 게 맞겠지만 후배가 쥐었던 핸들을 빼앗아 쥐고는

걷는 속도보다도 느리게 차를 몰면서 급한 내리막길들을 연속하여 만나자

몸이 굳어 제대로 바퀴를 굴릴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험하다는 파서탕을 갈 때에도 이렇게 까지 몸을 떨어본 적이 있었나?

진땀깨나 흘린 등골이 축축해 지는 것을 느끼며 수정이네 집 앞에 도착하여서는

가끔씩 전화를 했던 사람이었는데 드디어 오늘 산길을 넘어왔기에 일행들과의

저녁식사를 부탁하겠다니

 

그렇지 않아도 누구실까 궁금했어요.........”

 

처음부터 전화상으로의 목소리만을 듣고는 묘한 매력에 몸을 떨었다며

고백 아닌 고백을 함께 찾은 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털어놔 당황해한 적이 있었는데

성우처럼 좋은 목소리도 아니었건만 그네 딴에게는 매력적인 목소리로 들렸었다나?

(그 덕분에 얻어먹기는 잘 얻어먹었다만~~~^^;; )

 

물가에 도착하여 보트를 펼쳐놓고 낚시를 시작하니 다른 곳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괴력과 몸집을 지닌 붕어며 잉어, 향어들이 줄줄이 낚여 올라왔고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 오는 끝도 없는 오르가즘의 향연을 몇 시간, 즐기다보니

허기도 지고 체력도 떨어졌기에 모두들 잠시 채비를 거두고 모여앉아

준비해온 도시락과 라면을 끓여서는 가지고온 이슬도 곁들였는데

진한 산속의 향기에 취해선지 어느새 바닥이 나버렸다.

 

멀리 보이는 수정이네 집에 가서 이슬을 몇 병, 더 가져오면 좋겠다만

일찍 잠이 들었을 산간벽촌 미니슈퍼에서 절대로 반겨 줄 리가 없으니

서로들 다녀오라 떠밀게 되었는데 그래도 수정엄마를 후리기에는

가장 낙점자 아니겠냐는, 등 떠밀기 한판에 밀려서 할 수 없이 일어서긴 했다만

껄꺼름하긴 나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차라리 이참에 이슬을 끊어버려야지…….

내가 무슨 핑클 오라비라고 이슬만 먹고 살겠다고……. )

 

손전등을 집어 들고 수정이네 집을 찾아 발을 옮겼는데 파로호 안으로

노천수(露天水)가 흘러드는 개울 입구에는 저 숫자가 마을사람의 전부일,

젊은 남녀가 몇, 모여 앉았는데 천엽을 하는 걸까? 누구의 생일일까?

술판이 벌어졌다…….

 

오이~~!! 지나가는 옵빠, 술 한 잔하고 가셔~~~”

나도 술 사러 가는 길인데?????”

하이고~~~ 오빠는 소주 사러가지? 우리는 비싼 양주를 마신단 말씀이여~~~”

 

, 양주라서가 아니라 한잔 하고 가라는 술자리를 매몰차게 거절하고 지나간다면

절대로 천당을 갈 수가 없다는 전설이 생각났기에 할 수 없이 술을 한잔 받아들게 되었고

따끔한 목 울림을 가라앉히려고 안주로 과자쪼가리라도 한 조각, 집어볼까 둘러보니

초고추장이며 생선회 같은 것이 접시에 담겨져 있었다.…….

 

안주로 회도 한 점하셔~~~~~~”

 

글쎄……. 나는 붕어회 같은걸 별로라.......”

 

하이고~~~~~ 붕어회는 디스토마 때문에 안 자신다 이거지???

이건 쏘가리회니께 마음 푹, 놓고 드셔~~~~ “

쏘가리? 쏘가리를 너희들이 어떻게??????”

 

우리들이 촌놈이라도 회는 쏘가리회만 먹는 당께?!

이 산속에 광어가 있을 껴? 붕장어가 있을 껴? 이곳에서는 흔해빠진

쏘가리라도 잡아 대충 안주로 먹는 거지....... “

 

민물새우 몇 마리를 잡아서 낚싯바늘에 끼워 물가에 대충 던져놓고는

저만큼 떨어져 앉아 있다 보면 물고 늘어지는 것이 쏘가리, 장어라는 말에

귀가 번쩍 일어섰는데 화전농사일이 전부인 그네들이 가끔씩 이렇게나마

무료함을 달래는 방법이란다.

 

술 취한 녀석들 중에 가장 순진해 보이는 한 녀석에게 연초도 권해가며

산속 마을에서 보기 드문 미남이라며 은혜로운 단어 몇 마디를 골라내어

한껏 기분을 업~! 시켜 놓고 슬며시 물어보니 비행기 멀미에 흥이 올랐는지

직접, 안내하겠다며 벌떡, 일어섰는데 산골 계곡물이 흘러드는 곳에는 커다란 돌들이

가득, 깔려 있었고 물속에서 손전등 불빛에 반사되어 번뜩이는 것은

손가락 마디만한 크기의 민물새우의 눈빛이었는데, 물속에 돌이 있으면 새우가 있고

새우가 있으면 쏘가리나 장어가 몰려드는 것이 먹이사슬이 형성되는 당연한 자연의 법칙~!!!!

 

(얼씨구~~~ 경사 났네.~~~~ , 봤다~~~~!!!!)

 

쏘가리 낚시에 심취하여 남쪽의 경호 강이며, 독락 정이며 단양의 쏘가리 포인트며

지금도 접근이 쉽지 않을 괴산의 깊은 계곡이나 남강 상류의 대평리 같은

여러 곳의 쏘가리 포인트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동차로 물가 가까이까지

접근할 수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몇이나 꼽을 수가 있을까?

 

화천댐의 수리가 끝이 나고 수위가 줄어들자 계곡의 물이 줄었고

그 좋은 포인트도 잡초밭이 되버리고 말았다.

 

 

오래도록, 뱃길로나 다닐 수 있었던 그곳에도 전기가 들어오고

사륜구동차로나 벌벌거리며 어렵게 넘어 다니던 산길도 어느 사이에

시꺼먼 아스팔트포장으로 뒤덮어버렸으니 다니기에는 한결 편해졌지만

예전의 정취는 대부분이 없어져 버렸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찾는 이가 많지 않다보니 그 높고도 험했던 산 정상에

잠시 차를 세워놓고 둘러보면 자잘한 더덕 싹들은 쉬, 눈에 뜨이고

듬성한 나물들도 남아 있긴 하지만 곳곳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들을 보면

나물꾼들이 예전보다는 많이 늘었다.

 

고로쇠 나무도 곳곳에 있다 보니 나물을 잘 아는 일행이 수액을 채취하겠다며

호스를 연결한 통을 매달아 두고 왔다가는 얼마 만에 다시 가보면 통 안에

수액이 가득 차 있곤 했다.

 

 

 

 

 

변변한 먹을 것이 없었던 굶주렸던 시절에, 산나물은 춘궁기 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구황(救荒) 먹을거리의 대명사였지만 이제는

세상의 어떤 좋은 음식보다도 몸에 좋고 약도 되니, 산에서 뜯어온

순수하고 깨끗한 나물을 즐긴다는 자체가 큰 호사가 되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양평의 용문산(1.157m), 인제군 기린면의 점봉산(1.424m)이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원시림과 깊은 계곡이 있는 방태산(1.444m),

평창의 가리왕산(1.561m) 특히 오대산(1.563m)의 나물은 예로부터

나물중의 나물 터로 알아주는데 가을에 떨어진 나뭇잎이 푹신하니 쌓였다가

시커멓게 변한 부식토의 영양과 수분을 한껏, 빨아들이며 청정한

고산 지대의 맑은 공기를 듬뿍 마시면서 자란 싱싱한 나물 덕에 오대산 밑에 있는

평창군 진부면 일대의 식당들은 오래도록 산채 정식으로 이름을 날려 왔다.

 

사실 산채 정식은 특별한 양념의 비법도 없을 것이,

싱그러운 나물 그 자체만으로도 자연의 참맛이 아닐까?!

 

이왕이면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직접 산을 타며 나물을 뜯어와

반찬을 만들어 내는 곳이 좋은데 많은 식당의 주인들 대부분이

수십 년이 넘도록 날씨만 좋으면 매일같이 새벽에 산에 올라가서는

등에 맨 배낭에 나물을 한 짐씩 지고 내려오는 나물박사들이다.

 

요즘은 방송을 타 잘 알려진 식당들보다는 뒷전에 있어도

현지민이 다니는 이름 없는 집들이 더 실하고 맛있기도 하다만…….

 

 

이제는 잘 포장된 도로를 이용하여 대낮에도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호음고개를 넘어가다 길옆에 있는 개울가에 잠시 차를 세워놓고,

코펠과 버너를 꺼내어 쌀을 씻어 올려놓고 삼겹살을 몇 점 굽고,

매운 고추와 상추도 꺼내 놓다보면 나물을 잘 안다기에 데리고 다니는

권 씨 아저씨는 근처에 지천으로 있는 손쉬운 취나물부터 한 아름 꺽고,

씀바귀, 토끼풀로 불리는 질경이와 잔대도 몇 뿌리를 캐어온다.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새파랗게 취나물을 데쳐 낸 다음,

한 덩이는 양념된장에 사박, 사박 무치고, 또 한 덩이는 준비해간

갖은 양념과 들기름을 뿌려 무치면 색다른 맛이 나니 까짓것, 고개도 넘어왔겠다!

음주단속을 하는 곳도 없겠다……. 너무 일찍 이슬 병을 꺼내들게 된다. ^^;;

 

산속에서의 자연이 곁들여진 점심을 마치고 다시 차에 올라 20분 정도를 내려가면

물가에 당도하게 되는데 나물공급을 맡은 권 씨 아저씨는 근처의 산으로 올려 보내놓고

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는 해가 약간 기울어서부터는, 쏘가리 낚시를 시작하여

한 마리, 두 마리 낚다보면 금세 꿰미가 묵직해진다.

 

텐트를 쳐놓은 곳으로 돌아와 쏘가리회도 한 접시 떠 놓고 매운탕도

한 냄비 끓이다 보면 산에서 내려온 일행의 등에 맨 가방 속에서는

잎사귀가 삐죽이 나와 있는 곰취, 더덕취, 청옥취, 개두릅, 참나물, 모시 대,

질경이, 신선초 외에도 들어는 봤어도 모양도 모르고 보고도 이름 모를

나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권 씨 아저씨의 얼굴에 올라앉은 소리 없는,

거만한 웃음을 보게 된다면 한쪽에 달린 작은 주머니 속에는 틀림없이

굵직한 더덕도 몇 뿌리 캐왔다는 표시이다.

 

바다를 찾아가 수많은 섬들에서 농어며 돌돔이며 온갖 물고기를 잡아

회맛을 즐기던 나에게 오늘의 회 몇 점이 중요할 리가 없다보니 일행들에게

쏘가리회가 담긴 접시를 모두 밀어주고 손으로 잘게 찢어놓은 산 더덕과

생나물을 내가 차지하곤 한다.

 

사륜구동의 찝차는 얼마 후 후배 놈에게 넘겨주게 되었는데 차량의 대금을

천천히 갚아도 되지만 그 대신, 언제든지 산길을 넘어 가겠다고 할 때마다

이유 없이 달려오는 조건이었으니 쏘가리와 산나물이 도대체 무엇이 길래…….

 

 

 

 

 

 

2016년의 첫나들이에서 쏘가리는 구경도 못했으니 산나물만 가지고 가야겠다.

늦도록 다듬어서 삶고 데친 나물의 절반은 말리기로 하고 묵나물도 만들어

냉동고에 넣어 두면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산 내음을 맡을 수가 있을지니…….

 

몇 일후에 오천의 김 선장에게서 2016년의 참돔들이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으니

복잡해지기전에 한번 다녀가라는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