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오장 동에 있는 후배를 만나러 갔을 때,
당연히 점심은 비빔냉면으로 해결을 해주겠거니 했는데,
엉뚱하게 해장국집으로 가자고 한다.
'대낮부터 이슬을 희롱하자고?'
마다할 일은 아니지만, 가까운 곳도 아닌, 꽤나 먼 곳까지 끌고 가기에
장충동의 '평양냉면' 집이나 족발거리로 가는 줄 알았더니 늦으면 안 된다며
연실, 시계를 보면서 허름한 골목길 속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좁다란 골목의 언덕길가에 있는 허름한 해장국집에는
낡은 식탁 몇 개가 있는 작은 집이었는데 엉덩이만 반쪽,
간신히 걸칠 수 있는 주저앉을 것 같은 둥근 의자에 앉으니
간장국물 베이스의 고깃국 같은 것이 나왔는데 평소에 알고 있는
선지나 내포가 들어간 해장국하고는 거리가 멀었는데
그 해장국 한 그릇 값이 일만하고도 삼천 원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해장국 가격이 그 정도라면 무척이나 비싼 값이겠는데
십년도전의 값이었으니 어지간한 일이나, 광경,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를 보아도
눈도 꿈쩍도, 안하는 강심장의 소유자였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었던 생각이 들었다.
별난 해장국이요, 맛도 그리 나쁘지 않았기에 돈값은 한다는 기억만 남아 있었다.
몇 년 후에 그 부근을 지나갈 기회가 있었기에 다시 한 번 방문해보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특이한 것이 오후 두시 경에 문을 열기 때문이었다.
한 솥만 끓여놓은 해장국이 바닥이 나면 더 이상 영업을 안 하고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아직 고기가 제대로 무르지 않았다며 문밖에서 기다리라고 호통을 치는
할머니도 별스러웠지만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이 건너편 집
담벼락 밑에 앉아 가져 온 소주 한 병을 꺼내놓곤 병뚜껑으로 홀짝거리고 있었는데
해장국 집이건만 술을 팔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이상한 영업방침 때문에
미리 마시고 들어가서 해장국을 안주로 하겠다고 했다.
온 순서대로 할머니에게 눈도장을 찍은 데로 번호표를 받은 셈이라고나 할까?!
"다음순서……. 거기 천호 동에서 왔다는 애, 들어와~~~!!!"
정말, 몇 해 전, 그때만 해도 주인 할머니가 보는 입장에서는 애였는지도 모르겠기에
불러 주는 대로 들어가서 정해준 자리에 앉아, 토렴한 해장국 한 그릇이 나오는 동안에
주위를 둘러볼 사이가 있었는데 강남에서 시간을 맞추어 달려왔다는
조폭이 분명할 것 같은 험상궂은 손님들도 할머니의 해장국 한 그릇을
얻어먹기 위해서는 꽤나 인내를 해야 했는데 문 여는 시간이 늦다거나
다른 불평을 늘어놓으면 그 자리에서 나가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마,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얼마나 맛이 있기에 손님들이 줄을 지어 서있을까?
신기하게 생각했는지 들어와서 옆에 앉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메뉴도 단출했지만, 써 붙인 엄청난, 가격이 이해가 안 갔는가보다.
"여긴, 해장국밖에 없나요~???!!!"
무슨 장인정신을 지니고 있는 듯한 거만한 표정의 일을 돕던 아줌마가
다가와서는 ‘우리 집엔 처음 왔는가?고 물으니
그 기세에 눌린 손님은 낯빛까지 변하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은 해장국만 하는데, 가격은 보시는 바와 같이 써붙인데로여유~!!!"
"생각이 없으시면 그냥, 가셔도 되유~~~!!!!"
잠시 얼이 빠진 표정으로 앉아있던 손님은 벌떡 일어나서 나가버렸는데
평범한 해장국집같이 생각하고 들어섰기에 당황한 기색이 분명했다…….
신경도 안 쓰고 돌아서는 아줌마의 모습을 보니 가끔가다 황망한 표정을 짓는
손님들을 자주보기도 했겠다만,
거침없이 내쫓는 재주도 참, 별나기도 하다.......
어쩌다 소문을 듣고 온 이들이 사진을 찍기라도 할라치면 단골손님들이 퉁박을 날린다....
"거, 인터넷 같은 곳에 올리지좀 마쇼~!! 다니던 사람들이나 편히 다니게....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도 다니기가 힘들어진다니까?!"
한 끼 식사 값으로는 약간, 부담이 되는 가격이고 식사시간대에서도
한참이나 벗어난 시간대에 문을 여는 집이니 젊은 축들보다는
나이가든 손님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손님들도 여럿이 함께 온 일행이 있어도
식사 값은 각자가 지불하는 식으로 더치페이가 철저하게 실행이 되는 집이었다.
자기가 먹은 식사비를 직접 할머니가 차고 있는 앞치마 속에다 넣어주곤
자기가 직접, 거스름돈을 꺼내가는 묘한 집이었다.
그러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해장국집이 얼마 후에 할머니의 건강이상으로
문을 닫았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렇다면 해장국을 끓이는 비법을 전수해 주던지
팔라는 소리도 들려왔지만 전수받는 값이 삼천만원이나 한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얼마 만에 할머니가 건강을 찾았는지 다시 문을 열었다는데
질 좋은 고기만을 사용하기에 재료값이 올랐다며 해장국 값이
일만 오천 원이 되었다고 후배가 전해왔지만 가볼 기회가 없었다가
얼마 전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가 완공이 되었기에 구경을 갔던 길에
들러보려고 문전을 기웃거려보니 예전의 그 아줌마가 아직도 할머니를
돕고 있는지 문 앞에 나와 서있었는데 벌써, 해장국이 떨어졌을까?
영업시간을 바꾸어서 오후 다섯 시에나 문을 연다며 한 솥만 끓여놓은 해장국이 떨어지면
한시간만에도 문을 닫는다고 목에 힘을 주며 쳐다봤다…….
다섯 시가 되려면 두 시간 이나 더 기다려야하기에 길 건너편에 있는
‘평양면옥’에서 물냉면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와야 했다.
다시, 그 부근을 갈 일이 생겼기에 작심하고 찾아간 것이 엊그제였다.
다섯 시에서 삼십분 정도가 지난 시간이었는데 털레거리며 빈 통을 들고
내려오는 손님이 있기에 벌써 해장국이 떨어져서 먹지도 못하고
사오지도 못하는가보다 가슴이 철렁했는데, 일착으로 한 그릇을 먹고 오는 길이라며
어서 올라가보라며 이쑤시개를 물고 사라졌다.
마침, 한자리가 비어있기에 바로 앉을 수가 있었고 예의 그 거만한 표정의
일을 돕는 아줌마가 다가와서는 ‘와 본적이 있는 가’고,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니
곧, 공손한 표정으로 바뀌며 반찬접시를 놓고 갔다.
반찬접시라야 대파를 썰어 담아 양념장을 조금, 끼얹은 작은 스텐 접시뿐이고
그것도 예전과 달리 깍두기까지 한꺼번에 담아놓은 더 단출해진 초라한 반찬뿐이었지만
일만 칠천 원으로 오른 간장국물색의 해장국 맛은 큰 변함이 없었다.
일만 삼천 원에서, 일만 오천 원, 일만 칠천 원이 되었으니 버드나무집의 갈비탕과
가격이 같았는데 하동관의 곰탕도 이만 냥, 마포옥의 설렁탕이나 이남장의 설렁탕,
나주곰탕도 일만 오천 원이요. 청진옥의 해장국도 일만 원 시대가 되었으니
이젠, 만 원짜리 하나로는 입맛을 맞추기도 쉽지가 않게 되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가끔은 이집 해장국 생각이 날만한 것이,
언제까지나 할머니가 건강하여 별난 해장국을 맛볼 수 있을지 생각하면
몇 번은 더, 부지런히 다녀야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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